책 사용법 - 한 편집자의 독서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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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용한다고 할 때, 우리가 책이라는 사물 그것만을 추구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물론 책을 베개로 사용할 때는 예외이겠지만. 그런 점에서 책의 사용은 우리가 대상을 추구하면서도 그것 자체에 매몰되지 않는 드문 예인 것 같다. 책이 빽빽한 서재를 갖고 있는 것보다는 많은 책을 섭렵했다는 사실이 더 존중되어야 하고, 책쌓기보다는 책읽기가 더 유용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다.-13쪽

특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책이 주는 균형감각이다. 한두 권의 책을 읽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책을 섭렵하고 얻은 지식은 지혜가 되어 삶을 보는 균형감각을 준다. 여기에서 말 그대로 건전한 비판의식이 삭튼다. 또한 고전이나 문학 작품은 조악한 이론이 보여주지 못하는 삶의 진경들을 펼쳐 보인다. 이것은 사이비 이론, 남이 불러준 이론, 한두 권의 책에 경도된 이론을 물리치는 독서를 가능케 해준다. -22쪽

현대인은 누구나 시간에 쫓긴다. 바쁜 일상을 관성적으로 살다보니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 산에 못오르고 또 책을 못 보게 되는데 그 손해는 시간을 만들지 못한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26쪽

하이퍼그라피아는 창의적인 욕구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일종의 창이다. 욕구는 대개 측두엽과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는 변연계에 의해 조절된다. 일반저긍로 욕구와 재능은 매우 가까운 사이라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신경학적으로 보면 욕구는 재능보다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뭔가를 하려는 동기가 강하다면 그것을 잘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크며, 마찬가지로 어던 사람이 뭔가를 잘한다면(특히 그것이 남들로부터 칭송받는 것이라면)욕구가 증대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앨리스 플래허티 <하이퍼그라피아>-44쪽

...먼저 음독에서 묵독으로의 이행을 꼽을 수 있다. 음독의 성행은 두루마리 형태의 초기 책들을 읽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소리 내어 읽으면 그 뜻도 분명해지는데 이 점과 아울러 책의 수량이 적었던 점도 이 시대에 음독이 성행한 이유다. 서기 2세기 이후 책자 형태로 책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중세 유럽 수도원의 필경사들의 노력으로 묵독이 성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음독이 타인의 독서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책이 점차 널리 보급되면서 독서가 개인적인 도락의 형태를 띠게 된 것에도 일부 원인이 있었다. 다음으로 독서는 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혁명 이후 한두 권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던 형태에서 여러 권의 책을 다독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인터넷 검색과 같은 검색형 독서로 책읽기의 역사가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70쪽

예술 작품이란 서한이나 사교활동, 혹은 그 사람의 습관이나 속내 이야기 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 사람의 사회적 자아와 또 다른 자아에 의해 창조되기 때문에 자연인으로서의 인간과 그의 예술 작품을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프루스트-131쪽

18세기 한갓 지역어에 불과했던 독일어가 세계적인 언어로 된 데에는 괴테라는 걸출한 문인의 기여가 있었다. 그의 빛나는 문학 작품들은 분열된 국가를 문화적으로 통합했다. 당시 독일 사회는 전 시대에는 로마와 프랑스 문화에, 당대에는 그리스와 영국 문화에 탐닉해 독일적이라고 할 만한 문화가 빈약하였다. 괴테는 문학을 통해 독일 문화와 독일을 세계 속에 우뚝 성장시켰다. ...영국만 해도 셰익스피어와 워즈워스라는 두 걸출한 극작가와 시인이 나오기 전에는 그저 국지적인 문학과 문화에 불과했다. ...단적으로 말해 인류위 사고체계는 그에 의해서 세련성을 부여받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142쪽

흔히 나이가 들수록 지성이 감성을 압도해야 한다고들 말하는 데, 이 점에 관한 한 나는 생각이 다르다. 지성을 갈고 닦아야 하듯이 감성 또한 갈고 닦고 정성을 다해 애쓰지 않으면 좀처럼 개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학창 시절 읽었던, 그래서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한두 편의 시에 평생 의존하고 우리의 감성을 함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149쪽

우리는 고독한 이로 출발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실 선천적으로 고독하다. 만약 끈기 있게 노력하고 낙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간, 공간, 언어, 민족 정체성이라는 인공적인 경계선을 초월하는 문학이라는 신비로운 대체 세계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예술활동은 개인의 고독으로부터 홀연히 나타나서 다채로워지며, 끝없이 매혹적이고, 언제나 진화한다. -조이스 캐롤 오츠, "작가의 신념"-158쪽

많은 글쓰기가 그런 식이다. 맞춤법은 시가닝 가면 정확해지지만 우리의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도록 단어들을 배열하는 데는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 -알랭 드 보통 -175쪽

이제 앞서 제기한 물음으로 돌아가자.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는 우리 삶에 결여된 무엇이, 한마디로 욕망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떤 빈틈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다, 그 빈틈을 욕망이라고 불러도 좋고 재미없는 일상이라고 해도 좋고 회의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여튼 더 나은 상태를 바라지만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울를 책읽기로 추동한다고 나는 믿는다.-177쪽

건조한 현실을 위한 책들을 의무적으로 봐야 했을 때 나는 그 책읽기가 끝나자마자 고전을 펴들어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 즉 책으로 책을 해독하는 행위라고나 할까. -196쪽

책을 읽는 삶은 결코 속도에 있어 뒤처지는 삶도 아니고 또한 느림 역시 결코 뒤처지는 삶의 방식도 아니다. -203쪽

책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마치 스포츠 뉴스나 강도.살인사건처럼 한동안 너도나도 읽어 대화의 소재가 되었다가 이내 잊히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책은 진지하고 고요히 음미하고 아껴야 할 존재다. 그럴 때마다 비로소 책은 그 내면의 아름다움과 힘을 활짝 열어 보여준다.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 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 난생처음 글씨를 써보고 읽기를 배우면서 첫발을 들여놓게 되는 이 세계는 워낙 정교하고 극도로 복잡해서, 그 모든 법칙과 규칙에 통달하여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경지에 이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말과 글과 책이 없이는 역사도 없고 인간이라는 개념도 존재할 수 없다. 혹 누군가 소규모의 공간에, 이를테면 집 한채나 방 한칸에 인간 정신의 역사를 집약하여 소유하고자 한다면, 이는 오로지 책을 수집하는 형태로만 가능할 것이다. -204쪽

인생은 짦고, 저세상에 갔을 때 책을 몇 권이나 읽고 왔느냐고 묻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무가치한 독서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미련하고 안타까운 일 아니겠는가?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책의 수준이 아니라 독서의 질이다. 사람의 한 걸음 한 호흡마다 그러하듯, 우리는 독서에서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더 풍성한 힘을 얻고자 온 힘을 기울이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재발견하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몰두할 줄 알아야 한다. 한 권 한 권 책을 읽어나가면서 기쁨이나 위로 혹은 마음의 평안이나 힘을 얻지 못한다면, 문학사를 줄줄 꿰고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아무 생각 없이 산만한 정신으로 책을 읽는 건 눈을 감을 채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205쪽

그렇다. 나는 자위한다. 책에서 위안을 구하는 자는 행복하다. 세상에 얼마나 불행한 일이 많은지를 생각하면 더더욱.-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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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6 1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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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6 16: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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