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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 - 나답게 살기 위해 일과 거리두기
이즈미야 간지 지음, 김윤경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12월
평점 :
이 책은 삶의 방향성이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요즘 세대들을 타겟으로 하는 일반적인 정신승리류의 에세이에 비해서 상당히 진지한 책이기는 하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 시니시즘에 젖은 많은 청년세대를 치료한 경험이 있으며, 이 문제의 원인에 대해 병리적 접근을 벗어나 사회경제적인 원인을 찾아나선다. 사실 여기까지는 상당히 독창적이고 사고의 흐름에 있어 탁월하다고 할만하다.
저자는 경제성장이 고도화되어 성장률이 둔화되고 노동이 분절화되어 파편화된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전세대가 추구하였던 '직업적 자아실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또한 젊은 세대들은 이런 현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에 '도전'이라던가 '패기' 가 젊은 세대의 미덕으로 간주되던 이전의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아주 어린 나이부터 고민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쉽게 말하자면, 어짜피 아둥바둥 일해봐야 40대 50대에 명퇴하고 별거없는 인생인데 왜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십대부터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은 선이고 노동이 미덕이며,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 최고선이라는 종교적.자본주의적 가치관이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답이 없는 고민 '어짜피 뻔한 인생인데 무슨 일을 해야 좋을까?'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쳇바퀴 모순 속에 많은 젊은이들이 무기력과 우울함에 사로잡힌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진단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가 해결으로 제시하는 대안은 문제를 제기한 구조적/사회적 요인과 무관하게 개인 수준의 자발적 실천이라는 점이다. 그는 많은 성인들이 행동을 하기 전 본능적으로 행위의 경제적 득실을 따지며 가장 효율적인 선택만을 내리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때로는 우연에 몸을 맡기고, 인생에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내 스스로 인생에 의미를 둘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는 주체가 되라 말한다. 이런 종류의 제안이 그리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지만. 거창했던 문제제기에 비해 용두사미격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학문적으로 보자면, 원인을 구조로 상정하면 해결책 또한 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등한 수준에서 제안해야 의미가 있다. 문제는 구조인데 해결은 마음으로 하라니. 이건 무슨 소리인가.
저자가 쓴 건 논문이 아니라 교양서라고 감안해서 이해를 해준다 할지라도, 최소한 자신이 자부하는 환자들의 치료 케이스들이라도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진단까지는 꽤 흥미로웠다. 이전에는 40대 이상이 하던 고민이 저연령화되어 이제는 십대부터 시작한다는 부분은 특히 좋았다. 이런 부분은 정신과 의사가 전문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부분이리라. 하지만 앞서 말한 부분들에서 남은 아쉬움은 어쩔 수 없으며, 이런 부분을 더 보완한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