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사랑, 집착, 매혹 : 이디스 워튼의 기이한 단편들
이디스 워튼 / 바른번역(왓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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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장편만 읽어본 터라 이 단편집이 무척 신선했다. 작가의 이름을 모른 채 읽었더라면 장편과 단편이 같은 사람에 의해 쓰여졌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디스 워튼이 상류층의 삶에 답답함을 느낀, 어찌보면 전형적인 그 시대의 여성이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그런 면모를 담아낸 장편이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 주었을 뿐이지 그녀 본인이 더 흥미를 가지고 좋아했던 류의 소설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귀신도 나오고 약간 으시시하기도 하고 미스테리스러운 이런 류의 소설은 본인이 좋아하지 않고서는 써낼 수 없는 것이니까. 고전번역의 어투 때문에 문장의 느낌이 나쓰메 소세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고 귀신이 등장하는 분위기도 19세기말 20세기초 일본소설과 비슷하다 싶었다. 감성의 결이랄까? 사실 이디스 워튼이 일본소설의 영향을 받았을리는 없는데 전혀 동떨어진 두 세계의 소설에서 기묘한 기시감을 느끼는 감상마저 독특하게(좋은 의미로) 다가와서 신선한 독서였다. 각 단편을 다른 번역가가 맡아서 작업하였는데 번역의 수준이 무척 좋았고 이북으로만 읽기엔 그 공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에 민음사에선가 워터프루프로 펴낸 이디스워튼 단편집보다 작품 자체의 퀄리티와 번역 모두 뛰어났고 이 책이야말로 여름휴가에 어울리는 서늘한 소설집이 아닌가 싶다. 이디스 워튼의 팬이라면 단연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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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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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는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신이 홀리스 로맥스에게 끌리는 이유를 깨달았다. 로맥스의 거만한 태도, 달변, 유쾌한 신랄함 속에서 스토너는 비록 조금 일그러지기는 했어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친구 데이비드 매스터스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데이브와 그랬던 것처럼 로맥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런 마음을 스스로 인정한 뒤에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은 아직 남아 있는 반면, 어쩌면 우정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이 불가능한 것이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그를 슬프게 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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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테라오 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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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발뮤다 제품에 대한 극찬이 쏟아지며 국내시장에서도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나는 소비자로서 무척 황당한 일을 겪었었다. 발뮤다 토스터를 구매해서 사용해보니 스팀분사력이 신통치 않아 AS를 신청하였는데, 한국지사에서는 감히 발뮤다 제품에 이상이 있을리가 없다는 식의 태도로 응대를 한 것이다. "저희도 토스터 사무실에서 쓰는데 잘 쓰고 있는데요?" 담당직원의 형편없는 응대에 결국 한국지사를 담당하는 분에게까지 항의가 올라갔고, 그 분은 정말로 제품이 문제가 없다며 원한다면 내가 택배로 반품시킨 제품과 새제품을 우리집으로 가져와 동일 환경에서 테스트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시라고 했더니 정작 우리집에는 새제품만 가지고 오셨고. 더 이상 머리 아프기 싫어 새제품 성능을 확인하고 그 제품으로 교환을 받은 뒤 해당 컴플레인은 종료하였다. 그런데 그 모델, 몇 년뒤에 무상리콜 실시하더라. 실제로 제품에 문제가 있었고 피해고객이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거다. 죽은 빵도 살린다는 명목으로 비슷한 제품에 비해 몇 배의 가격을 받고 품질도 신통치 않으니 나는 그 이후로 늘 "죽은빵을 살리기 위해 수십만원짜리 토스터기를 사느니 그냥 살아있는 빵 바로 사서 먹으면 됩니다." 라고 말하고 다닌다. 나는 지금도 발뮤다는 과대평가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그 창업자의 글을 읽은 건 워낙 평이 좋았기 때문인데...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은 여기에도 적용이 될 것 같다. 여러 후기의 극찬을 믿고 토스터기 사서 그 고생을 하고는 또 같은 실수를 하다니. 글이 아주 엉망인것은 아닌데 글쎄, 아무것도 없이 무대뽀로 도전하여 발뮤다의 성공을 만들었다는 스토리라인이 가지는 설득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업은 이런 사람이 하는구나 싶은 감상은 있었지만, 내가 독자로서 굳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스티브 잡스가 초기에 제품을 만들때 완전무결한 미의식에 집착하여 보이지 않는 내부나 회로디자인에도 관여하였단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종류의 내용(브랜드의 방향성과 철학 등)보다는 발뮤다 창립자의 개인적 삶의 여정과 어떻게 발뮤다를 성공시켰는지 일본만화같은 감성의 성장과정에 더 방점을 찍는다. 솔직히 발뮤다 창립초기에 돈이 없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 보다는 디자인이나 제품에 관한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던지라 실망이 컸던거 같다. 특히나, 실제로 디자인에 관심을 먼저 가진 건 아내였음에도, 아내는 내조와 서포트만 하다 육아하느라 이제는 회사에도 나오지 않는 현실에 대해 태평하게 아내의 바람을 자신이 이어받았다는 소리를 하는 부분은 최악이었다. 안 좋은 책까지는 아니지만 소문만큼 좋지는 않은, 딱 발뮤다 같은 책이었다. 

"한 번 성공해보면, 다음에도 반드시 성공할 거야!" 이건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인데, 지금도 나 자신에게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이다. 살다보니 요행수로 들어맞은 일도 당시의 조건만 갖춰진다면, 다시 성공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 - P1

류가사키에서는 내가 속할 곳이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마음이 불편한 도 없다. 이 여행이야말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원래 그랬던 게 아닐까? 어떤 장소나 집단에 정착해서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고 생각하는게 틀렸던 건지도 모른다. 변화가 많고 불안정해도 여행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인생이, 우리의 자리인 것이다. 오히려 소속이나 직업 같은 것들이야말로 불안정한 것이 아닌가? 몸뚱이 하나와 발을 딛고 서 있을 지면만 있다면 인간은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여행을 통해 그 사실을 온몸으로 배웠다. - P2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디자인한 형태를 아직 세상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적ㅇ도 오늘까지는. 내 아내가 돼버린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아내는 지금껏 나의 활동을 뒷받침해줬고, 몇 년 전까지 회사 일을 함께했다. 더구나 육아에 발을 내딛게 되면서부터는 디자인 작업을 할 시간이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아내가 가지고 있던 바람은 형태가 있는 물건을 이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을 내 가 이어받았는지도 모른다고 내 멋대로 생각할 때가 있다. - P3

꿈이 끝났다는 건 가능성을 잃었을 때가 아니다. 애초에 우리는 가능성을 잃을 수 없으니까. 꿈은 그것의 주인이 열정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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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1-02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사업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 같아요.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여행의 이유 (바캉스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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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 두 꼭지는 아주 신났다. 경쾌했다. 김영하를 아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에세이스트로서의 역량을 꼽는다면, 역시 김영하에 견줄 사람이 없긴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독자로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중반부를 넘어서고부터는... 여행보다는 김영하의 내적인 고뇌나 탐색 자아성찰 등에 더 무게가 실리고 글도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게 아니라 땅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다. 과연 김영하는 이 글을 신이 나서 썼을까? 이 경력에 돈이 궁한 것도 아닐테니 쥐어짠 글은 아닐거라 생각하지만 과연 작가가 신이나서 술술 써내려간 글이 맞는지 의문스러운 꼭지들. 물론 모든 글이 그렇게 쉽게 쓰여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여행에 대해 쓴 에세이라면 더군다나 '바캉스 에디션'이라는 깜찍한 꼬릿말도 달려 있다면 독자가 기대하는 건 작가가 쓰고 싶어서 쓴 글이지 땅을 파며 만들어 낸 글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정말 좋은 한국 에세이를 읽고 싶었던 바람은 다시 한 번 쓰러진다. 에세이는 쉬운 장르인듯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한 권으로서 완결성을 가지는 멋진 한국 에세이를 찾지 못했다. 아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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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1-02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땅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 하튼 레일라님 짱이야!!!ㅎㅎㅎㅎㅎㅎㅎㅎ

어쩄든 혹시 한 권으로서 완결성을 가지는 멋진 한국 에세이를 찾으시거든 꼭 글을 올려주세요. 저는 그런 것을 구분하는 능력부족이라;;;;;;
 

기말고사를 친 날 친한 동기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갔다. 다들 맥주 한 잔 하고 기분이 좋을때 즈음 한국인 여자 동생 하나가 중국계 교포 남자애 하나를 붙잡고 갑자기 내 나이 이야기를 꺼냈다.

"레일라는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지에지에(누나)라고 불러야 해"

그러자 영국에서 학부를 마친, 나보다 대충 열살쯤은 어릴 그 남자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닌데? 레일라는 나랑 나이 같아. 그리고 나에겐 메이메이(여동생)야."

그이가 나에게 그 어떤 사심도 없음은 오감과 육감으로 잘 알고 있고,
피시함의 관점에선 저 대답에 꺼림칙한 구석이 있을지라도
젠틀맨의 매너로서 응대하는게 너무 귀엽다 싶었다.

그리고 다음 날, 국경을 넘어 나보다 다섯살쯤 어린 지난 남자친구를 만났다.
몇 년만에 만나는 거라, 그리고 최근 공부하느라 내 얼굴이 많이 상했다 느끼고 있었기에 나이든 티가 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그 사람에게 어리광부리는 마음이 남아있는 나는 이런 말이 듣고 싶다 생각했다.

'넌 나이 들어도 예쁘구나.'

같이 차를 마시고 아름다운 그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음악당 계단에 앉았다. 습도 높은 미지근한 밤바람이 불어왔고 노란 불빛이 그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내가 그에게 빠진 그 순간들처럼, 여전히 그 사람의 눈코입은 단정하고 진지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무얼 할거냐는 물음에 내가 답했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 그래서 문제야."

아직도 예쁘다는 소리나 기대하고 있던 나에게 그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을 꺼냈다.

"넌 아직도 어려. 뭐가 걱정이니?"

작년, 자전거를 타고 일본열도를 달린 그 친구는 여행길에 동행을 만나 열흘정도 같이 다녔다 한다. 동행은 네덜란드 출신의 중년남성으로, 서로의 일정상 헤어질 때에서 나이를 물어보았는데 아무리 많아봐야 60쯤일거라 생각했던 그 남성은 사실 70대였다고 한다.

"70살인 사람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위해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어. 넌 아직도 한참 어려. 하고 싶은 건 다 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들었더라면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을 말인데 나보다 어린 사람이 저리 말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혹은 그 사람의 톤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애정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불어오는 바람이 달콤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지멋대로 살고 있는 요즈음, 세상이 여자의 나이에 덧씌운 편견과 고정관념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느낀다. 그런 사람도 있긴 하였다. "누나 운동 열심히 하네요. 역시 몸매 비결이 있었어. 여자들은 30넘으면 20대한테 안 지려고 운동 열심히 하는거 같아요." 많은 여성들이 나이듦을 무서워하는건, 나이 하나로 인해 저런 말도 안되는 평가를 당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일테다. 하지만 직접 당해보니 저런 평가는 나에게 아무런 상처를 주지 못했다. 어리고 잘생기고 매너좋고 스윗한 연하남들과 예의바른 교류를 하고 서로에게 지지를 보내기만도 바쁘기 때문이다. 나도 기대하지 못했던 인생의 베네핏패키지. 한국이 아니라서 가능한 마법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내 인생의 행복은 내가 긁어모아 챙기면 그만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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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1-02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요!!! 레일라 님보다 두배나 나이가 더 많은 제가 들어도 의미 있어요!!! 저도 70살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세계 여행은 못 가도 일본 여행은 하고 싶네요!!!! 멋지다!! 레일라님도 옛 남친도 , 젊은 그 친구도, 70세에 자건거로 세계 여행을 하는 그 사람도.... 새해부터 좋은 에너지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