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쉼표를 찍다
김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도서관 정리서가에 있던 것을 우연히 집어들게 되었다.

일단 저자가 완전 미인이다. 책날개에 있는 저자사진,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이지만 학부생이라도 해도 될정도의 주름없는 하얀피부..심지어 김태희를 닮은 눈매까지 (서울대 의류학과에는 미인들만 모이는가)

사진 밑으로 달린 저자 설명- 자타가 공인하는 패션 전문가이자 국내 몇 안 되는 패션 칼럼니스트.라고...

쫘라락 ?어봤더니 컬러 도판들이 멋지길래 읽어봤다.  저자의 미모에 홀려서 책을 읽기는 또 처음이네..ㅋㅋㅋㅋ

그리고 별점 2개 만큼 실망했다. 국내 몇 안되는 패션 칼럼니스트가 만든 책이 이 정도인가..

일단 패션에 관한 서적의 한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너무 깊게 파고들 수가 없다는 거. 패션의 역사에 대해서 줄줄 꿰고 있지 않아도 이쁜고 사고 싶은 옷은 매 시즌마다 백화점에 나오는데. 패션이라는 게 참 그렇다. 일반인들이 '지식'으로서 매력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 분야라는 점.. 몇 세기에 어떤 복식 스타일이 유행했고 어쩌구 하는 책에 흥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을 터.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차라리 화려한 화보가 가득한 보그나 바자를 집어드는게 더 자연스러울진대...이런 패션관련 서적의 한계를 알고 있고, 어느정도 감안하면서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수준은 형편없었다.라고 할까.  책값은 또 왜이리 비싼가 11000원. 이 얇은 두께에(+재미도 없는데)!! 

책 설명에 있는 저 무수히 많은 챕터들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한 주제장 원고량이 짧다. 아주 짧다. 글 간격 크게 띄우고 사진도 넣고 그렇게 해서 2-3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다. 깊이 들어갈 것도 없고..거기다가 책 표지에는 <교양으로 패션 읽기, 패션으로 영화 읽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겉보기에는 한 번에 2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듯 번지르르 해보이지만 별 내용없는 책을 읽다보면 혹, 저자가 별로 쓸거리가 없어서 책을 교양과 영화 부분으로 나눈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좀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책으로 만들기 보다는 그냥 신문 한켠에 매주 게재하고 끝냈으면 좋았을 정도의 칼럼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교양으로 영화 읽기> 장은 그닥 나쁘지 않았다. 메트로 섹슈얼이나 청바지의 탄생, 비키니의 탄생등에 관련된 이야기는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라 별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자전거를 타기 위해 바지가 탄생했고 이가 여성해방운동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으니 말이다.

문제인 뒷부분인 <패션으로 영화 일기> 부분에서는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책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영화에 대한 짧막한 소개, 영화에 들어간 의상관련 비용 혹은 의상의 숫자..의상감독의 이름, 영화가 아카데미 의상상을 탔다..이런 '똑같은'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내용만 바꾸고 같은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화양연화가 나올 땐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 와..하고 기대를 했건만 역시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건 영화에서 장만옥이 입은 치파오가 27벌이었다는 거, 치파오가 더무 타이트해서 앉은 다음에는 다시 풀로 붙여서 촬영했다는 거 이 정도? 다른 챕터도 마찬가지라서..어느 영화에서는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용했다..영화 장화 .홍련에서 문근영은 레이스 달린 옷을 입었다 등등 누구라도 영화를 보기만 했다면 알 수 있을 '사실들'만 열거하고 있어서 무척이나 김 빠졌다. 패션.의상관련 학부생들에게 영화와 패션에 관한 레포트를 쓰라고 했더라도 이 정도보단 나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재미는 있지 않을까) 저자는...너무 많은 걸 쓰고 싶었기에 한 챕터당 원고량을 줄인 걸까? 차라리 영화 하나를 다루더라도 더 알차게 다루는게 나았으리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아무리 '일반' 독자를 의식했다고 하더라도...

리뷰를 쓰면서 그간 패션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이것 저것 주워들은게 있다보니 책이 더 재미없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상감독 조상경에 관한 부분이라던가 일부 영화의상에 대해서는 이미 이 책에서 말하는 것 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패션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면 오히려 괜찮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양보한다고 해도 이 책의 깊이가 아주 얕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짜 패션 컬럼을 읽고 싶으면 차라리 보그나 바자를 권하겠다.  번역투의 오버스러운 '보그체'가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김경의 글 정도를 패션 컬럼으로 이해했던 나에게 혹은 그렇게 기대하고 있을 독자들에게 이 책은 너무 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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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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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그 애를 낳았을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들어볼래요?
-그래, 말해 보렴
-아마 그 얘기를 들으면 지금 제 기분이 어떤지 아실 거에요. 매사에 왜 지금처럼 느끼는지 말이에요. 글쎄, 아이를 낳은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톰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알 수 가 없는 거에요.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전 완전히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간호사한테 바로 그 애가 아들인지 딸인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간호사는 딸이라고 했고, 그래서 저는 고개를 돌리고 울었어요. '괜찮아. 딸이라서 좋아. 그리고 이 애가 커서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어. 계집애라면 그러는 편이 제일 좋으니까. 아름답고 귀여운 바보 말이야.' 하고 혼자서 위로했지요. 제가 모든 걸 끔찍하게 생각한다는 거 아시겠지요.
그녀가 확신을 갖고 말을 이어나갔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는걸요.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도 말이에요. 그리고 전 알아요. 안 가본 데가 없고 못 본 것이 없고 안 해본 일이 없거든요
그녀는 조금은 톰을 닮은 듯한 도전적인 태도로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섬뜩한 경멸의 빛을 띠고 웃었다.
-닳고닳은 거에요. 하느님 맙소사. 전 아주 닳고닳은 여자라구요!-32쪽

머틀은 의자를 끌어당겨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느닷없이 더운 입김을 내뿜으며 톰과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기차를 타면 언제나 마지막까지 남는 자리가 있어요. 서로 마주 보는 자리인데, 거기에서 일이 벌어졌지요. 나는 동생과 함께 밤을 보낼 작정으로 뉴욕에 가는 길이었어요. 그이는 신사복을 입고 번쩍이는 에나멜가죽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가 나를 쳐다볼 때마다 그의 머리 위쪽에 있는 광고를 보는 척했지요. 역에 도착했을 때 그가 바로 내 곁에 있었는데, 흰 와이셔츠 앞가슴으로 내 팔을 누르고 있었어요...그래서 나는 경찰관을 부르겠다고 협박했지만 거짓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죠. 나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와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도 지하철을 탄 게 아니란 걸 깨닫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그때 내가 머릿속으로 줄곧 생각한 것은 '그래 너는 영원히 살 수 없어, 너는 영원히 살 수 없어'라는 말이 었어요"-56쪽

"개츠비가 그 집을 산 것은, 데이지가 바로 그 만 건너편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
그렇다면 그 6월 밤에 그가 바라보던 것은 밤하늘의 별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호화롭기만 했던 장막이 걷히고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는 알고 싶어 해요" 조던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언젠가 데이지를 집으로 초대하게 되면, 자기도 불러 줄 수 있는지 말이에요"
이토록 겸손한 요청을 듣자 나는 놀라서 몸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그는 오 년을 기다려 저택을 산 다음 우연히 날아드는 나방들한테 별빛을 나눠주었던 것이다. 정작 자신은 언젠가 남의 집 정원에 건너갈 수 있기만을 바라며 말이다.-114쪽

이틀 뒤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어쩐지 배반당한 것 같은, 그래서 숨이 가빴던 쪽은 개츠비였다. 그녀의 집 현관은 돈을 주고 산 별빛 같은 사치품들로 눈부셨다. 그녀가 그에게로 몸을 돌리고 그가 그녀의 진기하고 아름다운 입술에 키스를 하는 동안 고리버들로 만든 긴 의자가 멋지게 삐걱거렸다. 감기에 걸린 그녀는 전보다도 더 허스키한 목소리를 냈고 더욱 매력이 넘쳤다. 개츠비는 부가 가두어 보호하는 젊음과 신비, 그 많은 옷이 주는 신선함 속에서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은처럼 안전하고 자랑스럽게 빛을 발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이다.-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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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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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인터뷰는 열기가 대단해서 그 큰 목소리가 한참 떨어진 지로 일행의 귀에도 들어왔다
"그 자들이 우타키를 부순다면 나는 그 답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질러주지. 일이 그렇게 되면 죄다 케이티 책임이오. 그만큼 우타키는 우리야에야마 사람들의 정신적 뿌리 같은 것이야!"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는 건가. 이러다가 또 다시 공아닝 들이닥치는 건 아닐가. 리포터 까지 곁에서 아버지를 슬슬 부채질하고 있었다
"우에하라 씨의 삶을 반권력적인'슬로 라이프'의 실천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흠. 그렇지 마침 좋은 말을 하시는군.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참된 슬로 라이프요"
분명 이것으로 세무서도 적으로 만들었다.
-204쪽

우익과는 요란하게 한바탕 벌렸다. 가두용 차량을 집 가까이 들이대고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르겠다니 무슨 망언이냐!"라고 마이크로 꽥꽥거리는 얼룩덜룩한 군복 차림의 아저씨에게 양동이로 물을 퍼부은 것이다,
"대기업 건설사에 빌붙어서 먹고사는 이 우익 놈들! 너희는 야스쿠니를 놓고 떠들 자격이 없어!"
당장 몸으로 들이박는 싸움이 벌어져서 경찰이 달려와 필사적으로 떼어놓았다. 결국 폭력은 쓰지 않겠다는 규칙을 정한 끝에 메스컴이 지켜보는 앞에서 일대 설전을 펼치게 되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삼십여 분 뒤에는 서로 어깨를 두드려 주는 사이가 되었다.
"우에하라씨, 당신은 어떻든 단독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니까 참 대단해"
우익은 마지막에는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주의나 주장의 차이보다 '폭력적 성향의 연대감'이라는 공감대가 더 컸던 것 같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동질의 인종을 구분해내는구나, 라고 지로는 생각했다.-222쪽

아버지는 말 없이 공안을 쏘아보았다. 잠시 틈을 두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낙원을 추구해. 단지 그것뿐이야"
"허어 낙원이라. 멀쩡한 어른이 그런 걸 믿어?"
"추구하지 않는 놈에게는 어떤 말도 소용없지"-232쪽

"요코, 그런 얼굴 하지마라. 아버지와 엄마는 인간으로서 잘못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 어머니가 배에서 부두로 내려와 누나 앞에 앉아 말했다. "남의 것은 훔치지 않는다, 속이지 않는다, 질투하지 않는다, 위세부리지 않는다, 악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런것들을 나름대로 지키며 살아왔어. 단 한가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그저 이 세상과 맞지 않았던 것뿐이잖니?"
"그게 가장 큰 문제 아냐?"
"아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작고 작아. 이 사회는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해주지도 않아. 정의도 아니고 기준도 아니야. 사회란 건 싸우지 않는 사람들을 위안해줄 뿐이야"-287쪽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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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6-12-2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순한 말들인거 같은데 하나하나 다 좋아요.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와하지 마라..^^
 
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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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관둬. 지금 동지들 간에 싸울 때야?"
"나는 동지가 아니라잖아!"
아버지는 오른손으로 염소수염의 허리 벨트를 붙잡더니 프로레슬링처럼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구경꾼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
"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솔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아버지가 부르짖었다. 점점 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모두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이봐 , 우에하라 진정해!" 형사가 외쳤다.
"개인 단위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거얏!"
아버지가 세 번째 사람을 들어올렸다. 아버지의 키가 평소보다 곱절은 커 보였다. 어머니는 말리기를 포기하고 몰려든 사람들 뒤에 멀거니 서있었다.
"더 이상 소란을 피오면 체포할 거야!"
"더 이상 민중에 의한 혁명은 없어. 마르크스 주의는 패배했다고!"
세번째 사람은 전봇대에 내동댕이쳐졌다.
"폭행 상해 및 공무집행 방해! 우에하라 이치로,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좁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지로는 현관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건만 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개 인간으로서 바라보았다. 타인으로서 과연 저이들을 좋아할 수 있을까...그런 생각을 했다.-326쪽

"아무튼요, 우에하라 씨도 언젠가는 노인이 되실 겁니다. 개미와 베짱이에 빗대자는 건 아니지만, 변변한 저축도 없이 노후를 맞이한다면 그건 정말 불안한 일이죠. 그러니까요, 노후를 위한 저축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쓸데없는 참견이야. 그런 건 각각 자기 책임으로 해두면 돼"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굶어 죽는 사람을 나라에서 그냥 손 놓고 보고만 있겠습니까? 결국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밖에 없다고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군 대체 어느 누가 도와달래?"
"인도주의는 국가의 구심력인 겁니다"
"시건방진 소리. 미국의 패권주의와 똑같은 발상이로군. 인도주의라는 미명아래 지배층의 가치관을 온 세계에 이식하려고 하지"
"이야기를 비약시키지 마시고요"
"노상에서 죽을 자유를 빼앗겠다는 건가, 국가에서?"
아버지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우에하라 씨는 노상에서 죽고 싶다는 말씀이세요?"
"응 노상에서 죽고 싶고말고, 신주쿠 중앙공원에서 새벽녘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음, 아주 멋진 최후야"
.....
"그러니까요, 임의가 아니라 의무라니까요 국민의 의무!"
"그럼 나는 국민을 관두겠어"아버지가 가슴을 쭉 젖히며 말했다.
"예?" 아주머니의 목이 앞으로 쑥 내밀어졌다.
"일본 국민이기를 관두겠다고. 애초부터 원했던 일도 아니었으니까"
"..........어디, 해외로 이주하시려구요?" 갑자기 목소리 톤이 낮아진다.
"내가 왜 해외에 나가? 여기 거주한 채로 국민이기를 관둘 거야"
아주머니는 할 마링 얼른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
"그게 대체 무슨 농담이세요?" 아주머니가 당황하고 있었다.
"농담이 아냐. 오래 전부터 일본 국민을 관둘 생각이었어.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
...
"우에하라 씨 일본사람 맞으시죠?"
"그래. 하지만 일본사람이 반드시 일본 국민이어야 할 이유는 없어"-21쪽

이 나라에 태어나면 무조건 선택의 여지도 없이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가 생기다니,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뭔가를 억지로 해야 한다는 건 지배를 받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야. 사람은 지배당하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오?-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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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 미디어 디스토피아에서 미디어 유토피아를 상상하다
정여울 지음 / 강 / 2006년 6월
품절


초등학생 때 위인전에 매혹된 이유는 논픽션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생생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정말 이렇게 살았단 말이야?' 라는 호기심은 닥치는 대로 위인전을 펼쳐 읽게 만들었고, 계백이나 베토벤이나 성삼문처럼 비장미로 점철된 삶에 대해서는 공포만큼이나 커다란 매혹을 느꼈다. 무엇보다 위인전은 이렇게 실수투성이인 나도 언젠가는 주위의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와 기대를 심어주었다. 자신의 장애나 갖가지 악조건을 초인적 의지로 극복하고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의 평범과 무지를 깜빡 잊게 만들곤 했다. 20 세기 초반에는 주로 비운의 혁명가들의 삶에 넋을 잃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손에 넣었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면 20대 초반의 나는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견뎠나'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 같다.....
울며 겨자 먹기로 20대를 마감하는 지금은 '그들은 어떻게 무엇을 소유했는가' 보다는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버렸는가' 에 시선이 간다. -145쪽

호치민은 전쟁에 계속되는 와중에서도 젊은이들을 세계 각국으로 유학 보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베트남 정부가 길 떠나는 유학생들에게 옷 한 벌, 구두 한 켤레, 가방 하나를 달랑 쥐어주며 전해준 것은 장학금보다 무거운 '호 아저씨의 덕담'이었다.
"우리 정부가 어려워서 너희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지만, 너희들은 지금 전쟁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인민들에게 크나큰 빚을 지는 것이다. 반드시 그 빚을 갚아야만 한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할 것은 분명하지만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것이며 그 과정에서 조국의 많은 인재들이 희생 될 것이고 너희들의 부모형제들도 죽어갈 것이다. 조국을 대신해서 이 아저씨가 너희들에게 받아두어야 할 약속이 꼭 하나 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희들은 학업을 마치기 전에는 돌아와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승리한 다음, 너희들이 전쟁으로 파괴된 조국의 강산을 과거보다, 세계의 어느나라보다 아름답게 재건해야 한다. 너희들은 공부하는 것이 전투다"-239쪽

조선 후기, 반역도 역모도 아닌 '괴이한 문체'로 인해 사대부 신분까지 박탈 당한 이옥이라는 문인이 있다. 문체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정신의 뇌관'임을 예민하게 감지한 국왕 정조에게, 이옥의 날티나는 문장은 가혹한 징계감이었다. 지고지순한 모범적 글쓰기에는 당최 소질이 없었던 그에게 과거시험 7전 7패보다 고통스러운 건 '권태'였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3류 인생들의 이야기의 힘이었다. 그의 글에는 지엄한 가문의 앳된 청년이 늙은 기녀를 짝사랑하며 애태우고 지아비를 아홉 번 바꾼 행복한 과부가 아홉 명의 죽은 남편을 거느린 채 함께 묻혀 있으며 의협심으로 똘똘뭉친 프롤레타리아 기생이 자신에게 밤을 구걸하는 선비들에게 퍼붓는 통쾌한 구토가 있다. 그는 붓끝에 달린 날카로운 혀로 저잣거리의 팍팍함과 익살을 담아냄으로써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스스로를 구원한다.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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