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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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관둬. 지금 동지들 간에 싸울 때야?"
"나는 동지가 아니라잖아!"
아버지는 오른손으로 염소수염의 허리 벨트를 붙잡더니 프로레슬링처럼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구경꾼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
"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솔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아버지가 부르짖었다. 점점 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모두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이봐 , 우에하라 진정해!" 형사가 외쳤다.
"개인 단위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거얏!"
아버지가 세 번째 사람을 들어올렸다. 아버지의 키가 평소보다 곱절은 커 보였다. 어머니는 말리기를 포기하고 몰려든 사람들 뒤에 멀거니 서있었다.
"더 이상 소란을 피오면 체포할 거야!"
"더 이상 민중에 의한 혁명은 없어. 마르크스 주의는 패배했다고!"
세번째 사람은 전봇대에 내동댕이쳐졌다.
"폭행 상해 및 공무집행 방해! 우에하라 이치로,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좁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지로는 현관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건만 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개 인간으로서 바라보았다. 타인으로서 과연 저이들을 좋아할 수 있을까...그런 생각을 했다.-326쪽

"아무튼요, 우에하라 씨도 언젠가는 노인이 되실 겁니다. 개미와 베짱이에 빗대자는 건 아니지만, 변변한 저축도 없이 노후를 맞이한다면 그건 정말 불안한 일이죠. 그러니까요, 노후를 위한 저축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쓸데없는 참견이야. 그런 건 각각 자기 책임으로 해두면 돼"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굶어 죽는 사람을 나라에서 그냥 손 놓고 보고만 있겠습니까? 결국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밖에 없다고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군 대체 어느 누가 도와달래?"
"인도주의는 국가의 구심력인 겁니다"
"시건방진 소리. 미국의 패권주의와 똑같은 발상이로군. 인도주의라는 미명아래 지배층의 가치관을 온 세계에 이식하려고 하지"
"이야기를 비약시키지 마시고요"
"노상에서 죽을 자유를 빼앗겠다는 건가, 국가에서?"
아버지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우에하라 씨는 노상에서 죽고 싶다는 말씀이세요?"
"응 노상에서 죽고 싶고말고, 신주쿠 중앙공원에서 새벽녘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음, 아주 멋진 최후야"
.....
"그러니까요, 임의가 아니라 의무라니까요 국민의 의무!"
"그럼 나는 국민을 관두겠어"아버지가 가슴을 쭉 젖히며 말했다.
"예?" 아주머니의 목이 앞으로 쑥 내밀어졌다.
"일본 국민이기를 관두겠다고. 애초부터 원했던 일도 아니었으니까"
"..........어디, 해외로 이주하시려구요?" 갑자기 목소리 톤이 낮아진다.
"내가 왜 해외에 나가? 여기 거주한 채로 국민이기를 관둘 거야"
아주머니는 할 마링 얼른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
"그게 대체 무슨 농담이세요?" 아주머니가 당황하고 있었다.
"농담이 아냐. 오래 전부터 일본 국민을 관둘 생각이었어.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
...
"우에하라 씨 일본사람 맞으시죠?"
"그래. 하지만 일본사람이 반드시 일본 국민이어야 할 이유는 없어"-21쪽

이 나라에 태어나면 무조건 선택의 여지도 없이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가 생기다니,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뭔가를 억지로 해야 한다는 건 지배를 받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야. 사람은 지배당하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오?-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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