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 미디어 디스토피아에서 미디어 유토피아를 상상하다
정여울 지음 / 강 / 2006년 6월
품절


초등학생 때 위인전에 매혹된 이유는 논픽션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생생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정말 이렇게 살았단 말이야?' 라는 호기심은 닥치는 대로 위인전을 펼쳐 읽게 만들었고, 계백이나 베토벤이나 성삼문처럼 비장미로 점철된 삶에 대해서는 공포만큼이나 커다란 매혹을 느꼈다. 무엇보다 위인전은 이렇게 실수투성이인 나도 언젠가는 주위의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와 기대를 심어주었다. 자신의 장애나 갖가지 악조건을 초인적 의지로 극복하고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의 평범과 무지를 깜빡 잊게 만들곤 했다. 20 세기 초반에는 주로 비운의 혁명가들의 삶에 넋을 잃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손에 넣었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면 20대 초반의 나는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견뎠나'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 같다.....
울며 겨자 먹기로 20대를 마감하는 지금은 '그들은 어떻게 무엇을 소유했는가' 보다는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버렸는가' 에 시선이 간다. -145쪽

호치민은 전쟁에 계속되는 와중에서도 젊은이들을 세계 각국으로 유학 보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베트남 정부가 길 떠나는 유학생들에게 옷 한 벌, 구두 한 켤레, 가방 하나를 달랑 쥐어주며 전해준 것은 장학금보다 무거운 '호 아저씨의 덕담'이었다.
"우리 정부가 어려워서 너희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지만, 너희들은 지금 전쟁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인민들에게 크나큰 빚을 지는 것이다. 반드시 그 빚을 갚아야만 한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할 것은 분명하지만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것이며 그 과정에서 조국의 많은 인재들이 희생 될 것이고 너희들의 부모형제들도 죽어갈 것이다. 조국을 대신해서 이 아저씨가 너희들에게 받아두어야 할 약속이 꼭 하나 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희들은 학업을 마치기 전에는 돌아와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승리한 다음, 너희들이 전쟁으로 파괴된 조국의 강산을 과거보다, 세계의 어느나라보다 아름답게 재건해야 한다. 너희들은 공부하는 것이 전투다"-239쪽

조선 후기, 반역도 역모도 아닌 '괴이한 문체'로 인해 사대부 신분까지 박탈 당한 이옥이라는 문인이 있다. 문체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정신의 뇌관'임을 예민하게 감지한 국왕 정조에게, 이옥의 날티나는 문장은 가혹한 징계감이었다. 지고지순한 모범적 글쓰기에는 당최 소질이 없었던 그에게 과거시험 7전 7패보다 고통스러운 건 '권태'였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3류 인생들의 이야기의 힘이었다. 그의 글에는 지엄한 가문의 앳된 청년이 늙은 기녀를 짝사랑하며 애태우고 지아비를 아홉 번 바꾼 행복한 과부가 아홉 명의 죽은 남편을 거느린 채 함께 묻혀 있으며 의협심으로 똘똘뭉친 프롤레타리아 기생이 자신에게 밤을 구걸하는 선비들에게 퍼붓는 통쾌한 구토가 있다. 그는 붓끝에 달린 날카로운 혀로 저잣거리의 팍팍함과 익살을 담아냄으로써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스스로를 구원한다.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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