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지와 겐이치로 B - 짓궂은 겐이치로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3월
절판


대체로 나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생활을 견지해왔다. 그것은 내 주장중 하나였다. 쓰레기는 불에 태워지고 산화하여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서 오존층에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면 위험한 자외선이 펑펑 쏟아져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죄다 피부암에 걸리고 끝장에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는 것이다. 누군가 그 병에 걸린 대통령이 있었잖아.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사흘 전의 김밥 도시락 남은게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나흘 전의 이탈리안 햄버거 도시락 남은게 있었다....엿새, 이레, 나링 흘러감에 따라 도시락들은 부패하기 시작해서 상당히 냄새가 난다. 초심자에게는 퍽 괴로운 것이다. 이런 상태일 때 집에 찾아오는 놈은 대부분 파랗게 질려버린다. 냄새가 지독하다고 과장되게 말한다. 미숙한 놈들. 처음에는 톡 쏘는 식초같은 냄새. 그리고 직접 뇌수에 퍼져오는 듯한 이상한 냄새로 변화해간다. 이제는 냄새만 맡아도 그 도시락을 구성하는 성분과 요리 후의 경과 시간까지 알아낸다. 나는 세상에 단 한명뿐인 부패 소믈레이. 하지만 그 상태를 뛰어넘으면 도시락들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이건 정말 굉장하다. 우선 대단히 커럴풀하게 된다. 그저 허옇기만 하던 밥이 히타치의 플라즈마 50인치 텔레비전 광고 색깔 견본처럼 풀 컬러 1200만 화소의 색깔로 물들어간다. 그 도시락 뚜껑을 무서무서하면서 열어볼 때의 스릴과 서스펜스는 한니발과는 비교가 안된다니까-33쪽

오오 판타스틱두부에 뭔가 가느다란 털 같은 게 생겼잖아-34쪽

오오 판타스틱-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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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7-07-2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로 나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생활을 견지해왔다. 그것은 내 주장중 하나였다. 쓰레기는 불에 태워지고 산화하여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서 오존층에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면 위험한 자외선이 펑펑 쏟아져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죄다 피부암에 걸리고 끝장에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는 것이다. 누군가 그 병에 걸린 대통령이 있었잖아.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사흘 전의 김밥 도시락 남은게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나흘 전의 이탈리안 햄버거 도시락 남은게 있었다....엿새, 이레, 나링 흘러감에 따라 도시락들은 부패하기 시작해서 상당히 냄새가 난다. 초심자에게는 퍽 괴로운 것이다. 이런 상태일 때 집에 찾아오는 놈은 대부분 파랗게 질려버린다. 냄새가 지독하다고 과장되게 말한다. 미숙한 놈들. 처음에는 톡 쏘는 식초같은 냄새. 그리고 직접 뇌수에 퍼져오는 듯한 이상한 냄새로 변화해간다. 이제는 냄새만 맡아도 그 도시락을 구성하는 성분과 요리 후의 경과 시간까지 알아낸다. 나는 세상에 단 한명뿐인 부패 소믈레이. 하지만 그 상태를 뛰어넘으면 도시락들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이건 정말 굉장하다. 우선 대단히 커럴풀하게 된다. 그저 허옇기만 하던 밥이 히타치의 플라즈마 50인치 텔레비전 광고 색깔 견본처럼 풀 컬러 1200만 화소의 색깔로 물들어간다. 그 도시락 뚜껑을 무서무서하면서 열어볼 때의 스릴과 서스펜스는 한니발과는 비교가 안된다니까!! 오오 판타스틱!두부에 뭔가 가느다란 털 같은 게 생겼잖아! 진짜 진짜 존 카펜터의 영화에 나오는 에일리언처럼 완전 초현실이야! 이 흐물흐물하게 찌그러진 액체 상태의 것은 원래 무엇이었지? 나는 그 정경을 보여주고 싶어 여자를 데려온 적이 있었는데, 왠지 다들 즉각 도망쳤다. 뭘 모른다니까. 진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여자라는건, 하긴 남자도 그렇지만.
하지만 그 지복의 시기를 지나면 성자필쇠의 이치에 따라 도시락은 다시 흘배긍로 변해간다. 말라비틀어져 작아져간다. 작고 얇아져서 어떤 의미에서는 도회지의 화석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된다. 냄새 또한 약하고 희미해져서 어떤 의미에서는 낙엽이나 쇠에 슨 녹 같은 것이 된다. 이거, 어떤 의미에서는 최고급 와인과 똑같은 것이다. 뭐랄까, 내 방의 쓰레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 역사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얼룩말 2007-07-2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LAYLA 2007-07-29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신기해요 *^^*
 
김지운의 숏컷
김지운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구판절판


감독이 되기 전 캠코더 한번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미학이 기술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기술은 미학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감독은 또다른 세상을 그리는 판타지만 품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예술이란 게 개인의 판타지를 세상에 어떤 현실물로 구체화하는 전 과정이라면, 좋은 판타지만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기술이 도와준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23쪽

어쨌든 나는 영화감독이 되어다. 남들 하는 공식을 따르지 않고 조금 특별한 삶의 행로를 통해 이 길에 들어섰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잘못 들어선 길이 지도를 만드는 법이니까. -25쪽

결국,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비극성은 천재와 범인이 한데 묶일 수 없는 범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무관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가 끼적거려둔 악보를 보고 "아니, 이럴 수가? 이 자식은 천재가 아닌가... 음....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은 뭘 먹지?" 하고 시큰둥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살리에리의 삶이 그렇게 비루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다. 여기에서 나는 타이느이 재능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지독한 자기혐오와 타인 부정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는 것에 섬뜩해지는 것이다.
재능이 없다면 쿨해지기라도 해야 하는데, 살리에리에겐 그런 요량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종종 야심가의 모습을 띠곤 하는데, 야심이란 '재능은 없고 욕심은 많은 어떤 것'의 또다른 표현이 아닐까 한다. 내가 아마데우스를 놓고 관심과 무관심에 대한 이야기를 너저분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두 가지 유형의 인간형들이 존속해 내려오며 비극적 드라마를 만들어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늘날 이 땅 이구석에도 살리에리 같은 인간형들이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33쪽

10년 전 난생처음으로 서유럽으로 무전여행을 떠났을 때 정말로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서양 아이들의 그 완전히 맑게 풀린 눈이었다. 사슴도 아닌 인간들이 저렇게 고요하고 평화롭고 멍청한 눈을 가지고 있다니. 한국땅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눈이었다. 도시에서 시골로 갈수록, 동에서 서로 갈수록, 남유럽에서 북유럽으로 갈수록 눈은 더더욱 깊이 풀려 있었다. 맑게 풀린 눈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의 눈을 보았다. 반짝반짝, 이글이글, 활활 타오르는 눈. 모임이 있는 자리에서 모르는 사람과 첫인사를 나눌 때가 있는데 손을 내밀며 눈에 무슨 초능력이라도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강렬하게 쏘아보며 힘을 주는 마초들이 아주 가끔씩 있다. 저 눈빞에 맞으면 아프겠다. 속으로 생각하며 웃지도 못하고 살짝 피한다. 지겨운 인간들. 이 험한 세상. 눈빛으로 맞장뜨마, 이런 각오로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정말 그런 사람과 안자 있기란 고역이다.-97쪽

<8과 1/2>인가에 나온 대사 중에 이런 게 있는데요, 예술하는 이유에 대해 "진실을 드러낼 때는 어떤 누군가는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예술은 혹은 영화는 상처를 최소화하면서 진실을 드러내는 매체"라는 대사가 있었어요.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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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2007-07-2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그 눈빛들 한번 보고 싶어요. 부러워요ㅠ.ㅠ

책읽기는즐거움 2007-07-29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밑줄긋기를 보고 한가지가 갑자기 떠오르내요.
"하늘은 어찌 이 주유를 지상에 낳으시고, 다시 또 제갈량을 낳으셨단 말인가!"
이 말을 하고 피토하고 죽었다죠.

그럼 주유도 쿨함이 부족했다는 말인가요ㅋㅋ

LAYLA 2007-07-29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룩말님 네 저도 함 보고싶어요 열심히 토플쳐서 바다건너가서 구경 함 해보려구요 근데 미국애들 눈빛은 별로 안 저럴거 같아서 목적지를 서유럽으로 돌려야 하나?? 잠시 고민..ㅋㅋㅋㅋ

책읽기는즐거움님 아 님의 댓글 보니 저 그부분 읽으면서 '얼마나 열받으면 피토하고 죽는데? 얘 정말 독하다..' 싶었던......ㅋㅋㅋ ^.^
 
언니네 방 2 -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 내게 힘이 되어줄 그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7년 3월
품절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여신을 가지고 있고, 그 여신들이 영혼의 성장을 돕는다고 믿는다. 우리가 상처를 알고, 상처를 치유하는 매 순간마다 우리들의 여신이 우리를 인도할 거다. -43쪽

솔직히 말해, 십년지기 친구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과의 관계를 한순간에 끊는 것이 아까웠다. 내 인생에서 그가 빠져버리고 나면 나와 함께 채워온 시간 만큼의 공백이 생길 것 같았다. 그게 싫어서 나는 그와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애인에서 친구로 관계가 바뀌면, 이별 때문에 아파하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어 좋고 새로운 친구를 얻어서 또 좋다. -64쪽

그 전에도 남의 결혼식에 가본 건 두세 번밖에 없었지만, 나는 3년 전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한 것을 마지막으로 아예 누구의 결혼식에도 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장례식에 가서는 돈을 내지만, 결혼식 부조는 하지 않는다. 결혼은 축하할 마음도 안 들고 부조 역시 회수할 수 없는 돈 임을 알기에 내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실, 비혼 여성인 내가 품앗이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주변의 비혼 친구들이 아플 때 병문안을 가는 것이라든가, 건강을 챙기기 위해 이런저런 정보를 나눈다든가, 비혼 친구들이 월세나 전셋집을 마련할 때 새로운 터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비혼 여성에게 경조사는 기혼자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76쪽

우리가 친해진 과정을 생각하면 좀 우스꽝스럽다. 나는 팔 굵은 사람이 너무나 섹시하다고 외쳤고, 그러면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 애는 내게 회개하라고 했다. 나는 반항이라도 하듯 내 성적 모험과 충동에 대해 적나라하게 읊었고, 그 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학년 때 나는 수업을 모조리 빼먹고 맥주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건들건들 돌아다니곤 했는데, 그 애는 일찍부터 학점 관리에 충실했다. ... 독특한 스타일 때문에 그 애는 일찍이 동기들 사이에 꽤 얼굴이 알려졌다. 다소 엽기적인 외모와 안 어울리게 기독교 동아리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그 애를 본 다음 친구들은 어김없이 나에게 달려와 그애의 새로운 면모를 보고하고는 했다. 나는 으흥 하고는 웃음지었고 그애에게 다른 친구드르이 놀라워하는 반응드를 일러주고는 함께 즐거워했다. 그리고 우린 여러날을 같은 이불 덮고 잠이 들었다. 안티 크리스트였던 나와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술, 담배를 일체 거부했던 그 애가 어쩜 그리도 친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직관이 일치했다. 심미관이 상당히 비슷했다. 그리고 '멋지다'내지는 '구리다'고 평하는 대상이 늘 같았다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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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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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의존증이라....요코는 혼자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 회사 30대 중에도 많이 있다. 사토미도 그 중 하나다. 설레는 만남보다는 자기랑 비슷한 동족이 많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싶은 것이다. -60쪽

참가자들은 모두 한껏 멋을 내고 왔다. 명품 브랜드의 정장 차림도 있었고, 아가씨처럼 원피스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몸매도 다들 나름대로 괜찮게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서른두 살의 어른이라니 선뜻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기가 10대였을 때는 서른 두 살이면 완전히 아줌마였다. 사실, 그 시절의 서른두 살들은 훨씬 더 제대로 나이를 먹고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인생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사회가 풍요로워져서 청춘이 길게 늘어난 것이다.
하기야 혼기나 출산연령이 옛날로 돌아갔다가는 도쿄에 있는 레스토랑의 반 이상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의류와 여행업계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고, 일본 경제 전체가 푹석 가라앉아버릴지도 모른다.
거봐. 난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만든 건 이 나라니까.-195쪽

Girl just wanna have fun!-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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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9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구판절판


"자연은 나에게 '가난해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또 ;부자가 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자연은 나에게 '독립적으로 살라'고 간청할 뿐이다." -상포르 <격언집> 1795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 판단은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다...판단만이 나의 것이며, 누구도 나에게서 떼어낼 수 없다" 에픽테토스 <어록> 100년 경-154쪽

다른 사람들의 인정은 두 가지 이유에서 우리에게 중요하다. 물질적인 면에서 보자면, 공동체로부터 무시당할 경우 신체적으로 불편하고 위험할 수 있다. 심리적인 면에서 보자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을 경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유지할 수 없다.



철학적인 접근방법의 장점은 심리적인 면에서 드러난다. 누가 우리에게 반대하거나 우리를 무시할 때마다 상처를 입는 대신 먼저 그 사람의 그런 행동이 정당한지 검토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비난 가운데도 오직 진실한 비난만이 우리의 자존심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며 자학하는 습관을 버리고 그들의 의견이 과연 귀를 기울일 만한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사랑을 구하는 사람들의 정신에 존경할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면 그들이 우리를 경멸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특별한 악의 없이 경멸하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염세적 태도의 출발점이며, 철학사에서는 이런 태도를 뒷받침해주는 예를 수도없이 찾아볼 수 있다.

-164쪽

러스킨은 쇼보다 300년 전에 미셸 드 몽테뉴는 비슷한 맥락에서 삶의 결과들을 결정하는 우연적 요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변덕스러운 의지에 따라 우리에게 영광을 베푸는 우연"의 역할을 잊지 말라고 충고했다. "나는 우연이 능력보다 앞서서, 한참 앞서서 행진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냉정하게 평가해본다면 우리 자신을 자랑하거나 창피해할 이유가 그리 많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 가운데 많은 부분은 우리의 행동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몽테뉴는 힘 있고 부유한 자를 만날 때 흥분을 억제하고 가난하고 미미한 자를 만날 때 판단을 억제할 것을 요구했다.

"사람은 종자를 여럿 끌고 다니고, 아름다운 궁에 살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두 그를 둘러싼 것이지 그의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죽마를 떼어내고 그의 키를 재보라. 부와 장식을 벗기고 벌거벗은 몸을 보라...그에게는 어떤 종류의 영혼이 있는가? 그의 영혼은 아름다운가? 그 영혼은 능력이 있고, 행복하게 갖출 것을 다 갖추고 있는가? 그 영혼의 부는 자신의 것인가 아니면 빌려온 것인가? 운은 관계가 없는가?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들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상업적인 능력주의의 이상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 제기에서는 공통적으로 돈처럼 우연하게 분배되는 것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호소를 읽을 수 있다. 부와 미덕을 교조적으로 연결시키는 관행을 중단하고, 사람을 판단을 하기 전에 반드시 죽마를 떼어내라는 것이다.-257쪽

사회의 목소리 큰 사람들이 선험적 질리로 여기는 견해들이 사실은 상대적인 것이고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정치적 의식이 깨어난다. 그런 견해들은 자신만만하게 주창될 수도 있고, 나무나 하늘처럼 존재의 기본 구조에 속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어떤 정치적 관점에 따르면-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현실적 또는 심리적 이해관계를 옹호하고자 만든 것이다.
이런 상대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그것은 지배적인 믿음들이 자신은 태양의 궤도처럼 인간의 손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공들여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자명한 것을 이야기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카를 마르크스의 유용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믿음들은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적 진술이란 중립적으로 말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어떤 편파적인 노선을 밀어붙이는 진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데올로기적인 믿음을 주로 퍼뜨리는 사람들은 사회의 지배계급들이다. 그래서 지주 계급이 결정권을 쥔 사회에서는 툊에서 나오는 부가 본래 고귀하다는 개념을 주민 다수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이런 체제에서 손해를 보는 많은 사람들도 그런 개념을 받아들인다)반면 중상주의 사회에서는 기업가의 성취가 사회 구성원의 성공의 꿈을 지배한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이 관념이다"
그러나 이런 관념들은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면 결코 지배를 할 수가 없다. 이데올로기적인 진술의 핵심은 높은 수준의 정치적 감각이 없으면 그 편파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무색무취의 가스처럼 사회에 방출된다. 그것은 신문, 광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교과서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이데올로기는 자신이 편파적인, 어쩌면 비논리적이고 부당할 수도 있는 방식으로 세상에 접근한다는 사실을 감추면서, 자신은 그저 오래된 진실을 이야기할 뿐이며, 오직 바보나 미치광이만이 여기에 반대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277쪽

우리의 건강이 좋고 권력도 막강할 때는 우리를 칭찬하는 사람이 진짜 애정 때문에 그러는지 아니면 어떤 이익을 노리고 그러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다."나 때문인가 아니면 나의 사회적 지위 때문인가?"하고 물어볼 용기 또는 냉소적 태도는 보여주기 힘들다. 그러나 병은 세속적 사랑의 조건을 제거하여 그런 구별이 잔인할 정도로 분명하게 눈앞에 나타난다.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눈앞에 다가온 죽음을 기다릴 때 우리는 우리의 지위를 조건으로 우리를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격분한다. 그들이 냉혹하게 유혹의 책략을 썼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 유혹을 당할 만큼 허영심이 컸다는 사실에도 화가 난다. 죽음을 생각하면 사교 생활에 진정성이 찾아온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입원실까지 와줄 것인지 생각해보면 만날 사람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건부 사랑에 흥미를 잃게 되면,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추구하던 많은 것들에 대한 흥미도 줄어든다. 부, 위신, 권력으로는 우리의 지위가 유지되는 한에서만 지속되는 사랑밖에 얻을 수 없다면, 그렇게 살다가는 어린 아이처럼 위로를 갈망하며 무방비 상태로 헝클어진 모습으로 인생을 끝내야 할 운명이라면, 우리가 지위를 얻든 잃든 지속될 수 있는 관계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297쪽

소로는 한 사람에게 돈이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재규정하려고 했다. 그것은 부르주아적인 관점이 미묘하게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반드시 인생의 게임에서 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돈이 없ㅎ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에너지를 사업 말고 다른 활동에 쏟는 쪽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현금이 아닌 다른 것에서 부유해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소로는 자신의 상태를 묘사하면서 가난한 생활이라는 말보다는 소박한 생활이라는 말을 쓰기를 좋아했다. 이 말이 강요된 물질적 상황보다는 의식적으로 선택한 상황을 표현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영혼에 필요한 것을 사는 데 돈은 필요하지 않다"-363쪽

보헤미안들은 또 실패라는 말도 조심스럽게 재규정했다. 부르주아적인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사업이나 예술에서 경제적 또는 비평적 실패는 당사자의 인격에 대한 의미심장한 고발장 노릇을 한다. 이들의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사회는 기본적으로 그 구성원의 노력에 공평하게 보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헤미안들은 세상이 어리석음과 편견에 지배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여 외적인 실패를 벌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볼 때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가장 지혜롭거나 가장 훌륭한 사람인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결함이 많은 청중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영합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 보헤미안들의 주장에 따르면, 상업적 성공 능력보다 어떤 사람의 윤리와 상상력의 한계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표시도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19세기의 많은 보헤미안들은 부르주아적 가치 기준으로 보자면 실패라고 볼 수밖에 없는 정치가나 예술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존경했다. 이런 인물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영국의 이류 시인 토머스 채터튼으로, 그는 후원자들로부터 작품을 인정받지 못하여 가난에 시달린 끝에 1770년 열여덞 살의 나이로 자살했다. 1835년 파리에서 초연된 알프레드 드 비니의 희곡 <채터튼>은 이 젊은 시인을 보헤미아가 귀중하게 여기는 모든 가치의 대변인으로 밖어 놓았다. 이 희곡은 전통보다 개인적 영감, 경제적 이익보다 친절, 합리성과 공리주의보다 집중과 광기를 찬양했다. 드비니의 메시지는 재능 있고 감수성이 예민한 시인은 부르주아적 공중의 아둔함 때문에 절망하고, 심지어 자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오해를 받고 거부를 당하며 살지만 그럼에도 인사이더보다 우우러한 아웃사이더라는 신화는 보헤미아의 가장 위대한 인물들 다수의 삶을 반영하거나 그 삶을 규정한다. -366쪽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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