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 소설가 백영옥의 유행산책 talk, style, love
백영옥 지음 / 예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먼 북소리를 읽고 에세이를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에 감동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으니 어느정도 불공평하다는건 인정하겠지만(노벨 문학상 수상이 예견되는 작가와 칙릿으로 떠오르는 작가를 비교하는거) 그래도 별 두개 이상을 준다는 건 나를 속이는 일이라서 차마 하지 못하겠다. 스타일은 너무 재미있게 읽은지라 그 센스에 말빨이면 에세이쯤이야 잘 써내릴 줄 알았는데 소설에 비하면 이건 뭐 독자 입장에선 대형참사 같을 뿐. 이래서 가장 심플한 것을 만들게 하면 누가 대가이고 전문가인지 잘 드러난다 그러나 보다. 장난처럼 농담처럼 실실 웃으면서 쓰는 글 같은 에세이에도 삶의 에센스를, 일상의 철학을 집어넣는 그 분들! 정녕 대단하셨구나. 그니까, 나는 소설을 잘 쓰면 에세이는 기본으로 잘 쓰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알게 된거다. 에세이란 소설을 잘 쓰는 자 중에서도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자만이 쓸수 있는 글이란걸. (여기서 에세이란 물론 '잘'쓴 에세이를 의미한다) 짧은 글 속에 기승전결을 담고 일상을 이야기하다 어느순간 툭 삶의 본질을 건드려 독자들을 아-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 힘!!! 그게 그러니까 이 책에선 보기 힘들단거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글의 흐름이 정말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 잠깐 저 이야기 잠깐 아 그러니까 어쨌든 결론은 이거- 이런 식인데 한두번이 아니니 작가의 짧은 글쓰기 능력이 의심될 수 밖에. 180쪽의 '자기 계발서, 너나 계발하세요'란 글을 보면. '나는 쇼핑을 귀찮아 하는 편이다........하지만 단 하나 그것이 '먹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먹는 걸 좋아하는지 그간의 사건을 주욱 나열하더니 '나처럼 프라다 백을 사주기보단 알랭 뒤카스(유명 요리사)의 레스토랑을 예약해주는 남자에게 훨씬 더 매력을 느끼는 여자들은 시장을 사랑한다.'로 갑자기 시장으로 이야기가 튄다. 그리고 '시장을 못가면 할인 마켓이라도 가는데 요즘 할인마켓엔 책 읽는 소파까지 있더라' 그리고 '내가 거기서 책 읽다가 보니 다른 여자들이 '마시멜로 이야기'에 대해 얘기 중이더라.'까지 미친듯이 튀어주신다. 그렇게 자기계발서까기라는 본론까지 들어가는 지난한 과정(분량은 2페이지이다만 이건 에세이라는 걸 고려해주시라)을 거치고 나면 또 '내가 보기에는 제목의 카피나 오염 현상은 훨씬 더 심각하다. 여자생활백서가 나오면 후다닥 남자생활백서까지 나오고...' 짚어야 할 본질이 무엇인가 잠시 멍해진다. 결론은 마시멜로 이야기를 하던 여자들이 자기 계발서를 집어들고 나서는 걸 보며 저자가 마시멜로에 대한 입맛이 떨어졌다나 뭐라나. 이 정신없는 흐름에 나는 그저 멍-때릴 수 밖에.
146쪽에서는 다른 종류의 멍때림을 유도하는 글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 어떤 남자가 늘 죽고 싶다란 말을 했었어요. 어찌나 죽고 싶단 말을 자주 하는지 옆에 있는 사람이 다 심란할 정도 였는데 전 그걸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경우 바로 그 죽고싶다라는 한 가지 마음으로 죽어라 살았기 때문이에요. 그는 83세까지 살았어요. 매일 죽고 싶다고 외치면서" 죽고 싶다는 마음이라도 꼭 잡고 있으면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역설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죽어라 열심히 산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가. '남'이란 글자에 점하나 빼면 '님'이란 글자, 라는 소리도 유행가 가사에만 나올 법한 얘긴 아닌것이다. --------여기서 남,님 이야기는 왜 나오는 것일까????????????????나만 이해가 가지 않는건가? 이건 하나의 예시이고 뭐랄까 평범한 상식 수준에선 어떤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다른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왜 이렇게 말도 안되게 문단은 많이 나눠놓은건지. 책 분량이 부족하다고 해서 줄간격을 크게 잡는 편집은 보았어도 대책없이 서너줄 단위로 문단을 구획하는 편집은 처음이다. 정말, 그녀의 라이센스 패션잡지 말투처럼 '지독한 농담같은'(이건 그녀가 방수기능이 없는 샤넬 우산에 대해 썼던 표현이다)에세이집이 아닌가. 이렇게 쿨한척 스타일리시한척 마놀로 블라닉에 일상과 삶의 고찰을 끼워맞추려 애쓰기 보다 그냥 그녀의 일상을 담담히 적어 내려가는게 훨씬 매력적일거란 평을 남기고 싶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신춘문예 13년 떨어진 이야기 같은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