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02
김규항 김정란 홍세화 진중권 엮음 / 아웃사이더 / 2000년 10월
절판


'지역감정'이라는 현상에는 윤리적 층위와 정치적 층위가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역시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후자, 즉 지역감정의 정치적 효과다. '지역감정'이 운위되는 맥락은 대부분 현실의 정당정치에 과낳ㄴ 것이다. 그리하여 선거철이 지나면 '지역감정'이라는 말은 공론의 영역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만다. 이 와중에서 종종 잊혀지는 것은, 한 집단이 다른 인간 집단을 차별하는 것은 인종차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반인륜적 범죄라는 사실이다. 지역감정을 논할 때 정치적 열기 속에 쉽게 묻혀지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나는 이 점이 다른 어떤 고려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것은 영남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그 차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거나 침묵을 통해 소극적으로 반관해온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70쪽

...여기에서 순수학문이라는 대목을 비판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좀 더 부연설명을 한다면, 제가 의미하는 순수학문이란 현실에서 유리된 채로 상아탑에서 자족적이고 뜬구름 잡는 학문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것을 지양한 상황, 즉 기본적으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 제한된 사회의 상상력의 지평을 보다 넓게 열어나가는 학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의된 학문은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을 침해하는 어떤한 억압에도 저항살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됩니다. 따라서 대학은 사회의 상부구조(당연히 하부구조 포합)를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지요. -92쪽

조 편집장님은 친절하게도 역사를 짧게 보면 군대가 민주화를 방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넓게 보면 민주화의 후견인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좁게 보고 넓게 보아도,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알 수 없는 둘리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넓게 보면 볼수록 국군은 민주화의 걸림돌입니다. 특히 일상의 민주화, 생활을 민주화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군대 갔다온 남성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전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이 남성중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자기반성이 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군대가기 전에 순결을 '버리기 위해서(있는 걸 왜 버리지? 무겁지도 않은데?)' 창녀촌을 향해서 돌진을 하는 사실을 모르시진 않겠죠? 그게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되는 중요한 계기라는 것도 인정하시나요? 이게 얼마나 남녀평등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인지도 아시죠? 아 조 편집장님에게 여자는 남자의 성적 대상으로서만, 정액받이로서만 존재하지요? 아,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96쪽

조 편집장님은 문화민주화와 사회민주화의 결정적 걸림돌인 군대에서 겨껙 되는 어이없는 고통과 처우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일러주십니다. "'신고빠따', '선착순', '원산폭격'을 당하면서 인격과 인권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더 떨어질데 없는 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들은..그 시적을 떠올리며 '에이, 군대생활 하는 셈치지 뭐'하면서 용기를 동원해내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군대생활은 인간을 하나의 물건으로 전락케 하고, 정당한 이유도 없고 필요이상으로 가해자는 가혹한 구타와 기합은 진취적인 젊은이를 시키는 것만 하고 눈치만 살피는 수동적이고 간사한 인가능로 만들며, 주위를 돌아보는 관대한 인간을 고참이 되어서 당한 만큼 돌려주기를 다짐하며 복수심을 불태우는 치졸한 인간으로 만듭니다.그뿐인 줄 아십니까? 정당한 대화와 토론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상명하달의 위계구조와 복종관행은 군대를 떠나서도 한국 남성의 가슴 깊숙이 남아 사회전체의 획일화와 경직화, 대화 및 토론부재, 노예근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출판되는 각종 출판물들에 대한 검열때문에 군대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은 고작해야 국방이로반 월관조센징이나 한창때의 젊은이들에게 극우. 파쇼적 사고를 머리 속 깊숙이 박아 넣어 머리는 없고 감정만 남은 인간으로 개조하는 것도 군대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사명입니다. -97쪽

... 아지만 이건 허구에요. 난 민족 중흥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같이 자서 난자와 정자가 결합한 결과 태어난 것일 뿐이에요. 그리고 그 주정 과정은 확률이 수억 분의 일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명은 고사하고 우연에다 우연을 더한 결합으로 발생한 것이지요.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식을 얻기 위해 백일지성을 드린 수 정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잠자리를 같이 한 경우도 있겠지만, 정반대로 '술이 웬수'이거나 '찢어진 불량 CD'때문인 경우도 있을 거에요./ 여기에 무슨 의믈르 부여한답디까? 그리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은 왜 내가 책임져야되는데요? 보이지도 않는 실체 때문에 소중한 몸과 마음을 다 바쳐요? 그럴 정성 있다면 곁에 있는 부모나 형제나 친구에게나 잘 해주세요. -102쪽

조선일보도 그랬고 또 기타 보수세력이들이 DJ가 빨갱이라고 저놈이 정권을 잡으면 우리나라 김정일한테 갔다바칠 거라고 사설에 쓰고 그랬다. 보수냐 진보냐는 신념이다. 신념있는 보수세력이 있으면 청와대 앞에서 광화문 앞에서 분신자살을 한 20명은 햇어야 한다. 국민들이여, 우리나라는 이제 절단이 됐다. 우리 진보세력들은 불과 20년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백명 넘게 분신자살을 했다. 그럼 백이 아니라 그 십분의 일인 열이라도 분신자살을 했어야 된다. 단 한 명도 안 했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럼 그걸 어떻게 세력이라고 우리가 인정할 수 있냐 말이다. 한국에 보수세력이나 극우세력이라는 건 없다. 조선일보를 봐라 아무리 정치적 논리라고 해도 DJ가 대통령이 됐으면 전부 절필을 해야지. 어쩔 때는 칭찬도 해주고 어쩔 때는 까고 이짓거리들을 한다. 그것들이 기회주의자들이지 어떻게 보수주의자 극우주의자들인가.-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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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를 위하여 - '아웃사이더' 편집진 산문모음
김규항 김정란 진중권 홍세화 지음 / 아웃사이더 / 1999년 11월
절판


군대 가서 사람된다느니 사내다워진다느니 하는 얘기는 그저 농담이다. 사람이 되는 게 권위에 무작정 복종하는 일이고 사내다워지는 게 힘없는 사람에게 일수록 불량스러워지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군대도 군대 나름이겠지만 이 나라의 평범한 아들들이 가는 군대란 언제나 고되고 삭막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고시며 아차 하면 병신 되거나 죽는곳임 도무지 배울 게 없는 곳이다. 돈을 먹여서 군대를 빠지는 일이 끔찍한 죄인건 단지 신성한 국바으이 의무를 다 하지 않거나 남 하는 고생을 피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대신 군대에 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마님 아들 빠진 자리를 머슴 아들이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39쪽

...더군다나 박정희 시대의 정치적 폭압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층에서 발견되는 박정희 향수는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이다. 그들은 박정희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지, 그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영웅을 구하는 사회는 유약한 사회이다.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할 수 없는 사회가 영웅에 기댄다. 내가 못하겠으니까, 나 대신 해주셔요, 하고 영웅을 소환하는 것이다. 결국 영웅주의는 패배주의적 운명주의의 뒤집힌 이름에 불과하다.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순진한 대중을 정신적으로 유약한 상태에 묶어두려고 하는 이 상징조작이 두렵기 그지없다. -61쪽

자의식 없는 사람들은 국가나 민족과 같은 집단과의 동일시 속에서만 제 정체성을 찾는 법. 그래서 조국과 민족이 군사적 성공을 거두는 허구의 소설을 통해서만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엔 애국자도 많고, 민족대표도 많다. 너무 많다. 그래서 난 슬프다. -108쪽

...우리나라에서 예술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어느 예술적 상상력도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그 엄청난 일들의 스케일을 따라잡지 못할 게다. 가령 헐리우드적 상상력이라도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백주에 멀쩡한 백화점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300명의 사망자를 내다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낼 수는 없을 게다. 또 어느 시나리오 작가가 정지상태의 버스가 다리 위에서 강물로 잠수하는 기상천외한 모티브를 생각해낼 수 있겠는가? 또 정치인들이 하는 뻔뻔한 농담, 언론은 또 어떻고?
,,,이 현실의 희비극. 순전히 미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신문을 읽는 것처럼 신나는 일은 없다. 로마 시내에 불을 질러놓고 그 불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시를 읊는 네로 황제가 된 기분으로 본다면. 그런데 한가지 조그마한 문제가 있다. 즉 현실은 허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양자 사이에는 거대한 존재론적 장벽이 놓여 있다. 다시 말해 그 장대한 희비극의 스펙터클을 여유 있게 음미하고 신문을 덮는 순간, 나는 다시 느긋한 유미주의 황제의 입장에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불길에 휩싸인 로마시내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가련한 로마 평민의 주제로 되돌아와야 하는 것이다.-124쪽

100년의 시차를 느끼게 하는 것은 지식인의 '지식'이 아니라 '양심' 이다. '여기 이 땅'의 '진리'와 '진실'에 대한 목마름 없는 '양심'을 '지식'으로 대신할 순 없는 것이다.-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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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와 겐이치로 B - 짓궂은 겐이치로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3월
절판


대체로 나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생활을 견지해왔다. 그것은 내 주장중 하나였다. 쓰레기는 불에 태워지고 산화하여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서 오존층에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면 위험한 자외선이 펑펑 쏟아져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죄다 피부암에 걸리고 끝장에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는 것이다. 누군가 그 병에 걸린 대통령이 있었잖아.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사흘 전의 김밥 도시락 남은게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나흘 전의 이탈리안 햄버거 도시락 남은게 있었다....엿새, 이레, 나링 흘러감에 따라 도시락들은 부패하기 시작해서 상당히 냄새가 난다. 초심자에게는 퍽 괴로운 것이다. 이런 상태일 때 집에 찾아오는 놈은 대부분 파랗게 질려버린다. 냄새가 지독하다고 과장되게 말한다. 미숙한 놈들. 처음에는 톡 쏘는 식초같은 냄새. 그리고 직접 뇌수에 퍼져오는 듯한 이상한 냄새로 변화해간다. 이제는 냄새만 맡아도 그 도시락을 구성하는 성분과 요리 후의 경과 시간까지 알아낸다. 나는 세상에 단 한명뿐인 부패 소믈레이. 하지만 그 상태를 뛰어넘으면 도시락들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이건 정말 굉장하다. 우선 대단히 커럴풀하게 된다. 그저 허옇기만 하던 밥이 히타치의 플라즈마 50인치 텔레비전 광고 색깔 견본처럼 풀 컬러 1200만 화소의 색깔로 물들어간다. 그 도시락 뚜껑을 무서무서하면서 열어볼 때의 스릴과 서스펜스는 한니발과는 비교가 안된다니까-33쪽

오오 판타스틱두부에 뭔가 가느다란 털 같은 게 생겼잖아-34쪽

오오 판타스틱-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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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7-07-2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로 나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생활을 견지해왔다. 그것은 내 주장중 하나였다. 쓰레기는 불에 태워지고 산화하여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서 오존층에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면 위험한 자외선이 펑펑 쏟아져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죄다 피부암에 걸리고 끝장에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는 것이다. 누군가 그 병에 걸린 대통령이 있었잖아.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사흘 전의 김밥 도시락 남은게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나흘 전의 이탈리안 햄버거 도시락 남은게 있었다....엿새, 이레, 나링 흘러감에 따라 도시락들은 부패하기 시작해서 상당히 냄새가 난다. 초심자에게는 퍽 괴로운 것이다. 이런 상태일 때 집에 찾아오는 놈은 대부분 파랗게 질려버린다. 냄새가 지독하다고 과장되게 말한다. 미숙한 놈들. 처음에는 톡 쏘는 식초같은 냄새. 그리고 직접 뇌수에 퍼져오는 듯한 이상한 냄새로 변화해간다. 이제는 냄새만 맡아도 그 도시락을 구성하는 성분과 요리 후의 경과 시간까지 알아낸다. 나는 세상에 단 한명뿐인 부패 소믈레이. 하지만 그 상태를 뛰어넘으면 도시락들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이건 정말 굉장하다. 우선 대단히 커럴풀하게 된다. 그저 허옇기만 하던 밥이 히타치의 플라즈마 50인치 텔레비전 광고 색깔 견본처럼 풀 컬러 1200만 화소의 색깔로 물들어간다. 그 도시락 뚜껑을 무서무서하면서 열어볼 때의 스릴과 서스펜스는 한니발과는 비교가 안된다니까!! 오오 판타스틱!두부에 뭔가 가느다란 털 같은 게 생겼잖아! 진짜 진짜 존 카펜터의 영화에 나오는 에일리언처럼 완전 초현실이야! 이 흐물흐물하게 찌그러진 액체 상태의 것은 원래 무엇이었지? 나는 그 정경을 보여주고 싶어 여자를 데려온 적이 있었는데, 왠지 다들 즉각 도망쳤다. 뭘 모른다니까. 진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여자라는건, 하긴 남자도 그렇지만.
하지만 그 지복의 시기를 지나면 성자필쇠의 이치에 따라 도시락은 다시 흘배긍로 변해간다. 말라비틀어져 작아져간다. 작고 얇아져서 어떤 의미에서는 도회지의 화석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된다. 냄새 또한 약하고 희미해져서 어떤 의미에서는 낙엽이나 쇠에 슨 녹 같은 것이 된다. 이거, 어떤 의미에서는 최고급 와인과 똑같은 것이다. 뭐랄까, 내 방의 쓰레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 역사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얼룩말 2007-07-2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 읽고 있어요^.^

LAYLA 2007-07-29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신기해요 *^^*
 
김지운의 숏컷
김지운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구판절판


감독이 되기 전 캠코더 한번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미학이 기술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기술은 미학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감독은 또다른 세상을 그리는 판타지만 품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예술이란 게 개인의 판타지를 세상에 어떤 현실물로 구체화하는 전 과정이라면, 좋은 판타지만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기술이 도와준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23쪽

어쨌든 나는 영화감독이 되어다. 남들 하는 공식을 따르지 않고 조금 특별한 삶의 행로를 통해 이 길에 들어섰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잘못 들어선 길이 지도를 만드는 법이니까. -25쪽

결국,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비극성은 천재와 범인이 한데 묶일 수 없는 범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무관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가 끼적거려둔 악보를 보고 "아니, 이럴 수가? 이 자식은 천재가 아닌가... 음....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은 뭘 먹지?" 하고 시큰둥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살리에리의 삶이 그렇게 비루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다. 여기에서 나는 타이느이 재능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지독한 자기혐오와 타인 부정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는 것에 섬뜩해지는 것이다.
재능이 없다면 쿨해지기라도 해야 하는데, 살리에리에겐 그런 요량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종종 야심가의 모습을 띠곤 하는데, 야심이란 '재능은 없고 욕심은 많은 어떤 것'의 또다른 표현이 아닐까 한다. 내가 아마데우스를 놓고 관심과 무관심에 대한 이야기를 너저분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두 가지 유형의 인간형들이 존속해 내려오며 비극적 드라마를 만들어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늘날 이 땅 이구석에도 살리에리 같은 인간형들이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33쪽

10년 전 난생처음으로 서유럽으로 무전여행을 떠났을 때 정말로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서양 아이들의 그 완전히 맑게 풀린 눈이었다. 사슴도 아닌 인간들이 저렇게 고요하고 평화롭고 멍청한 눈을 가지고 있다니. 한국땅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눈이었다. 도시에서 시골로 갈수록, 동에서 서로 갈수록, 남유럽에서 북유럽으로 갈수록 눈은 더더욱 깊이 풀려 있었다. 맑게 풀린 눈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의 눈을 보았다. 반짝반짝, 이글이글, 활활 타오르는 눈. 모임이 있는 자리에서 모르는 사람과 첫인사를 나눌 때가 있는데 손을 내밀며 눈에 무슨 초능력이라도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강렬하게 쏘아보며 힘을 주는 마초들이 아주 가끔씩 있다. 저 눈빞에 맞으면 아프겠다. 속으로 생각하며 웃지도 못하고 살짝 피한다. 지겨운 인간들. 이 험한 세상. 눈빛으로 맞장뜨마, 이런 각오로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정말 그런 사람과 안자 있기란 고역이다.-97쪽

<8과 1/2>인가에 나온 대사 중에 이런 게 있는데요, 예술하는 이유에 대해 "진실을 드러낼 때는 어떤 누군가는 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예술은 혹은 영화는 상처를 최소화하면서 진실을 드러내는 매체"라는 대사가 있었어요.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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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2007-07-2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 그 눈빛들 한번 보고 싶어요. 부러워요ㅠ.ㅠ

책읽기는즐거움 2007-07-29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밑줄긋기를 보고 한가지가 갑자기 떠오르내요.
"하늘은 어찌 이 주유를 지상에 낳으시고, 다시 또 제갈량을 낳으셨단 말인가!"
이 말을 하고 피토하고 죽었다죠.

그럼 주유도 쿨함이 부족했다는 말인가요ㅋㅋ

LAYLA 2007-07-29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룩말님 네 저도 함 보고싶어요 열심히 토플쳐서 바다건너가서 구경 함 해보려구요 근데 미국애들 눈빛은 별로 안 저럴거 같아서 목적지를 서유럽으로 돌려야 하나?? 잠시 고민..ㅋㅋㅋㅋ

책읽기는즐거움님 아 님의 댓글 보니 저 그부분 읽으면서 '얼마나 열받으면 피토하고 죽는데? 얘 정말 독하다..' 싶었던......ㅋㅋㅋ ^.^
 
언니네 방 2 -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 내게 힘이 되어줄 그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7년 3월
품절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여신을 가지고 있고, 그 여신들이 영혼의 성장을 돕는다고 믿는다. 우리가 상처를 알고, 상처를 치유하는 매 순간마다 우리들의 여신이 우리를 인도할 거다. -43쪽

솔직히 말해, 십년지기 친구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과의 관계를 한순간에 끊는 것이 아까웠다. 내 인생에서 그가 빠져버리고 나면 나와 함께 채워온 시간 만큼의 공백이 생길 것 같았다. 그게 싫어서 나는 그와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애인에서 친구로 관계가 바뀌면, 이별 때문에 아파하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어 좋고 새로운 친구를 얻어서 또 좋다. -64쪽

그 전에도 남의 결혼식에 가본 건 두세 번밖에 없었지만, 나는 3년 전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한 것을 마지막으로 아예 누구의 결혼식에도 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장례식에 가서는 돈을 내지만, 결혼식 부조는 하지 않는다. 결혼은 축하할 마음도 안 들고 부조 역시 회수할 수 없는 돈 임을 알기에 내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실, 비혼 여성인 내가 품앗이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주변의 비혼 친구들이 아플 때 병문안을 가는 것이라든가, 건강을 챙기기 위해 이런저런 정보를 나눈다든가, 비혼 친구들이 월세나 전셋집을 마련할 때 새로운 터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비혼 여성에게 경조사는 기혼자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76쪽

우리가 친해진 과정을 생각하면 좀 우스꽝스럽다. 나는 팔 굵은 사람이 너무나 섹시하다고 외쳤고, 그러면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 애는 내게 회개하라고 했다. 나는 반항이라도 하듯 내 성적 모험과 충동에 대해 적나라하게 읊었고, 그 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학년 때 나는 수업을 모조리 빼먹고 맥주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건들건들 돌아다니곤 했는데, 그 애는 일찍부터 학점 관리에 충실했다. ... 독특한 스타일 때문에 그 애는 일찍이 동기들 사이에 꽤 얼굴이 알려졌다. 다소 엽기적인 외모와 안 어울리게 기독교 동아리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그 애를 본 다음 친구들은 어김없이 나에게 달려와 그애의 새로운 면모를 보고하고는 했다. 나는 으흥 하고는 웃음지었고 그애에게 다른 친구드르이 놀라워하는 반응드를 일러주고는 함께 즐거워했다. 그리고 우린 여러날을 같은 이불 덮고 잠이 들었다. 안티 크리스트였던 나와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술, 담배를 일체 거부했던 그 애가 어쩜 그리도 친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직관이 일치했다. 심미관이 상당히 비슷했다. 그리고 '멋지다'내지는 '구리다'고 평하는 대상이 늘 같았다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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