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장바구니담기


그 엉뚱한 친척들이 하는 짓으로 보건대, 앞으로도 한없이 재미있게 놀아댈 수 있으리라 생각한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그들 모두가 남아 자기와 함께 일을 하도록 해야겠다고 작정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할아버지의 충동과 탐험가 정신을 지니고 있고, 체격 또한 장대한 물라또 아우렐리아노 뜨레스떼뿐이었는데, 그는 이미 전세계의 반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운명을 시험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 자신이 어디에 머물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2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장바구니담기


실제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 그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 향수였다.-181쪽

어느 날 밤, 그가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에게 물었다.
- 친구, 한 가지만 얘기해 주게, 자넨 왜 전쟁을 하고 있는가?
- 왜라니, 친구. 위대한 자유당을 위해서지.
- 그걸 알다니 자넨 행복한 사람이군. 난 말이야,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있다는 걸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되었네.
- 그것 참 안됐군.
- 그래. 하지만 어찌 됐든,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것보다야 더 낫지. 또 말이야, 자네처럼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보단 더 낫지.-205쪽

내가 걱정하는 건 말이야, 자네가 군인들을 너무나도 미워하고, 그들과 너무나 전투를 많이 하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이 했기 때문에 결국 자네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것일세. 그토록 비참한 경우를 겪으면서까지 추구할 만큼 고귀한 이상은 이 세상에 없는 법이네.-239쪽

아버지에 이끌려 처음으로 얼음을 구경하러 갔던 그 아득한 어느 오후 이후 그가 유일하게 행복을 느꼈던 순간들은 은세공 작업실에서 작은 황금 물고기들을 만들면서 보낸 시간들이었다. 근 사십 년 세월을 보내고 난 다음에야 소박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서른두 차례의 전쟁을 벌여야 했고, 전쟁을 통해 맺어진 모든 조약들을 죽음을 걸고 위반해야 했으며, 승리의 영광이라는 수렁에 빠져 돼지처럼 허우적거려야 했다.-253쪽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말게. 죽는다는 건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법이거든"
그의 경우 그건 맞는 얘기였다. 자신의 죽을 날이 정해져 있다는 확신 때문에 그는 그 신비한 면역성, 즉 정해진 날짜에 죽을 때까지는 전쟁의 온갖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불멸성을 지닐 수 있었고, 마침내 승리보다도 더욱 어렵고 더욱 처절하고 더욱 값비싼 패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25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이태리의 시골 며느리
김미화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2년 1월
장바구니담기


집 밖의 세계를 알 기회가 없는 집순이 이태리 아줌마로 살았다. 그러면서도 집 안의 진짜 이태리 사람들과 온전한 식구가 되지 못하는 나는 늘 집 밖의 사람이었다. 몸은 집 안에서 나갈 수 없고, 마음은 집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는 삶이었다. -7쪽

도대체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게 없었다. 그의 집이 농사를 짓고, 그가 운전기사라는 것만 알고 시집가는 셈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내가 농사짓는 사람하테 시집간다고 했더니, 미쳤냐고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내 주위 사람 거의 대부분이, 내가 나보다 못한 남자하고 결혼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별 볼일 없는 여자라는 것을. 한때 아닌 것처럼 착각하며 보내기도 했지만 빈 깡통같이 살았다. 수준 이하의 가정교육을 받았고, 집안 형편도 별로 좋지 않았고 ... 대학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학력고사 점수를 받았는데, 운이 무진장 좋아 실기시험으로 합격을 결정하는 서울예술대에 들어갔고, 술 취한 듯 지내다 졸업했다. 그 뒤로도 우왕좌왕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살았을 뿐이다. 그런 내가 무슨 기준으로 그보다 더 나을 수 있는가. 스물한 살부터 서른일곱 살까지 한 길로 꾸준히 운전만 한 그가 누구하고 비교해야 부족한 사람이 되나.-52쪽

투어리더 일은 내가 그 전에 했던 어떤 사회생활보다 사람을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일반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늘 자신의 얼굴을 감춘 가면을 쓰고 관계를 가지게 되지만, 여행 중에는 어떤 직업의 사람들이건 그 가면들이 벗겨진다. 직업이란 가면이 벗겨지면, 비 오는 날 숨어있던 단단한 껍질 밖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는 달팽이같이 본래 그 사람의 모습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 지금까지 가졌던 직업에 대한 내 선입견이 다 사라지고 속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그 어떤 직업의 대단함보다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 아름다움의 가치를 기준으로 보면 나보다 그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은 사람이었다.-52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12-08-19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어때요???막 궁금,,ㅎㅎㅎㅎ

2012-08-20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3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3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장바구니담기


나는 따분함이야말로 부랑자 최고의 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허기나 불편보다도, 심지어 언제나 남 보기 망신스럽다는 느낌보다도 더한 것이지 싶다. 무지한 사람이라고 해서 온종일 아무 할 일 없이 가두어둔다는 건 어리석고도 잔인한 짓이다. 개를 통 속에 가둬놓고 묶어두는 일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감금을 견딜 수 있는 건, 자기 안에 위안거리가 있는 배운 사람들뿐이다. 거의 대부분이 무학인 부랑자들은 빈곤에 대해서도, 아무 영문도 모르고 의지할 데도 없이 당할 뿐이다. 그런 그들이니 10시간 동안 불편한 의자에 꼼짝없이 앉혀놓으면 뭘 하며 시간을 때워야 할지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생각나는 게 있다 한들 불행을 푸념하거나 일자리를 갈망하는 것밖에 없다. 그들에겐 무위의 끔찍스러움을 견딜 자산이 없는 것이다. -15쪽

열대의 풍경에선 이상하게 사람만 빼놓고 모든 게 눈에 잘 들어온다. 말라붙은 땅도, 석류도, 야자수도, 먼 산도 눈에 잘 뜨인다. 그러나 밭에서 괭이질 하고 있는 농부만은 꼭 놓치게 된다. 그것은 그의 피부색이 흙색과 같으며, 그래서 보는 재미가 훨씬 덜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나라들이 관광휴양지가 되어가는 건 바로 그래서다. 아무리 싸도 불황이 횡행하는 곳에 놀러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 피부가 갈색인 곳에서는 빈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인에게 모로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렌지나무 숲이나 식민기구의 일자리다. 영국인에겐? 낙타, 성곽, 야자수, 프랑스 외인부대, 놋쇄 쟁반, 도적떼다. 그러니 여기서 몇 년을 살아도 인구의 9할은 다 침식된 토양에서 얼마 안 되는 먹을거리를 짜내느라 늘 허리가 부러지도록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게 현실이란 걸 전혀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72쪽

1914~1918년은 무의미한 대학살로 무시될 뿐이었고, 그때 목숨을 잃은 사람들조차도 어떤 식으로든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나는 "아빠는 전쟁 때 뭘 했어요?"라고 묻는 모병 포스트를 생각하면(아이의 질문에 아빠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그리고 그 바로 그 포스터에 꾀여 입대했다가 나중에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아니었다며 자식들한테 무시당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온다. -80쪽

영국에선 정의니 자유니 객관적 진실이니 하는 개념들을 자기도 믿고 있다. 그것들은 허상일지 모르나 대단히 강력한 힘을 지닌 허상이다. 그런 것들에 대한 믿음이 행동에 영향을 끼치며, 그 때문에 국민 생활이 달라지는 것이다. -98쪽

영국 좌파 지식인들의 정서는 몇 개의 주간지와 월간지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이들 신문을 보면 당장 두드러지는 것은 대체로 부정적이고 불만 가득한 태도와, 언제나 건설적인 제안이라곤 없다는 사실이다. 권력을 잡아본 적도 없고 그걸 바라지도 않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트집 잡기 말고는 볼거리가 별로 없는 것이다. -116쪽

세계를 실제로 형성해가는 에너지는, 민족적 자존심, 지도자에 댇한 숭배, 종교적 신앙심, 전쟁에 대한 사랑과 같은 감정에서 솟아나는 법이다. 그런데 진보적 지식인들은 그런 감정들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기고 무시해버린다. 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도 그것들을 너무 철저히 파괴한 나머지 행동할 힘을 다 잃어버린 것이다. -126쪽

안전하고 문명화된 생활의 결과 중 하나는 원초적이고 중요한 감정들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지나친 민감함이다. 그래서 아량이 비열함처럼 불쾌하게 느껴지고, 감사가 배운망덕처럼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게 가능한 것이다. -143쪽

지식인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는 사람들이지만, 상황이 절박해지면 상당수가 좌절하여 패배주의에 빠진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승산이 없다는 걸 알 만큼 멀리 내다볼 줄 알며, 매수당하기도 쉽다. (그래서인지 나치는 지식인들을 매수하는 데 상당한 가치를 둔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을 농락하는 수법을 간파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하여 파시즘의 헛된 약속을 쉽사리 받아들이지만, 언제나 머지않아 투쟁을 재개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은 파시즘의 약속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언제나 자기 몸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을 영영 자기편으로 만들자면 파시스트들은 전반적인 생활수준을 높여야만 할 텐데, 그럴 수도 없거니와 아마 그럴 마음도 없을 것이다. 노동계급의 투쟁은 식물의 생장과도 같다. 식물은 맹목적이고 어리석을지라도 빛을 향해 계속해서 위로 뻗어나가는 것만큼은 알며, 끝없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밀고 나간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가? 그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며, 이제 그들은 그런 삶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152쪽

그런 목표에 대한 의식은 조수처럼 빠져나가기도 하고 밀려들기도 한다. -152쪽

행운을 빈다네, 이탈리아 병사여!
하지만 행운은 용감한 자의 것이 아니니,
세상이 그대에게 무얼 갚겠는가?
그대가 준 것보단 언제나 적으리. -161쪽

민주주의와 민족자결의 위대한 시대는 머스킷총과 소총의 시대였다. 부싯돌총이 발명된 뒤부터 뇌관이 발명되기 전까지, 머스킷총은 꽤 효과적인 무기였고 동시에 아주 단순해서 거의 어디서나 만들어낼 수가 있었다. 머스킷총의 장점 덕분에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의 성공이 가능했고, 민중의 봉기가 지금 시대보다 훨씬 심각한 사건이 되었다.
...
그러나 그뒤로는 모든 군사기술의 발전이 국가에게 유리하고 개인에겐 불리하게, 또 산업화된 나라엔 유리하고 후진국엔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그럴수록 세력의 중심 국가도 그 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1939년에 이미 대대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는 다섯밖에 되지 않았고, 지금은 셋뿐이다. (아마 결국엔 둘만 남게 될 것이다) -211쪽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적어도 우리 시대처럼 격동적이고 혁명적인 시대에는 그렇다)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나름의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며, 그것은 그가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다. 물론 그는 마땅히 자신의 기질을 다스려야 하고, 미성숙한 단계에 고착되거나 비뚤어진 심기에 매몰되는 경우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일찍이 받은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버린다면,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 자체가 없어져버릴 것이다. -292쪽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ㅏ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대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30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구판절판


다른 어떤 동물도 죽을 줄 아는 길로 걸어가지 않는데, 왜 사람만은 그게 자기를 파멸시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눈을 찌르는 것일까?-49쪽

누군가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한쪽 구석에 앉아 글을 써내려가는 장면을 상상할 때 어떤 애잔함 같은 것을 떨칠 수가 없다. 누군가 그런 소설을 가리켜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고 말했다. 식탁에 앉아서 쓰는 소설이라는 뜻인데, 전문적인 소설가가 아니라 일반인의 처지에서 쓴 소설이 크게 인정받았을 때 붙이는 이름인 듯 하다.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블 노블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여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한없이 긁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 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그들의 작품에 열광한 수많은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키친 테이블 노블이 실제로 하는 일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다. -60쪽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건 우리가 살면서, 또 사랑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세를 닮은 재벌 3세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내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남산 꼭대기에 세워 준다고 해도 나는 그 일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그 일들을 잊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문학을 한다. 그정도면 인간은 충분히 살아가고 사랑하고 글을 쓸 수 있다. -67쪽

하늘이 나 같은 재질을 냈다면 반드시 쓸 곳이 있으리라
천냥 돈은 다 써버려도 다시 생기는 것을
양을 삶고 소를 잡아서 우선 즐기자
한꺼번에 삼 백 잔은 마셔야 된다
-84쪽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건 한순간의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과정이다.-86쪽

아직 나이가 어린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내가 서른 살이 넘어서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내 계획은 정확하게 입대할 때까지만 세워져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20대 후반 까지는 간신히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지만 서른 살 너머까지는 무리였다. 그러므로 서른 살 이후라는 것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122쪽

'10여년 전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단 하루가 지난 일이라도 지나간 일은 이제 우리의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그 눈빛을 다시 만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발을 동동거리며 즐거움에 가득 차 거리를 걸어가던 그때의 그 젊은이와는 아주 다른, 어떤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우리가 변한 게 아니라 우리가 변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123쪽

그 집의 식구들은 모두 스물넷에서 서른두 살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그래서인지 우리는 금방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친해질 수 있었다. 그 집 마루에서 벌어지는 술자리에는 일종의 형재애나 자매애 같은 느낌이 있었다.-136쪽

그러나, 정말 나는 너무 슬펐다. 새벽마다 가슴은 찢어지고.
달빛은 잔인하고 햇빛은 가혹하여,
쓰디쓴 사랑이 무감각한 도취로 가슴을 부풀게 하였다.
아 용골이여 부서져라, 아 이 몸이여 바다에 떨어져라. -164쪽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것이 사라질 때를 상상할 수 있다면.

사실은 지금도 나는 뭔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다. 그 모든 것들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190쪽

그렇게 한 3년 정도 그와 함께 지냈다. 그의 집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함께 여러 곳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광경을 봤고 수없이 많은 소리를 들었다. 대개는 처음 보고 듣는 것들이 많았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듣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다.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뜻은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이 세상을 더 밝고 멀리 보라는 까닭이다.-194쪽

어쩌자고 삶은 그처럼 빨리 변해가는가? 어쩌자고 열아홉 살에 우리는 헤어지게 된 것일까? 어쩌자고 모든 것은 조금만 지나면 다 나아지는가? 어쩌자고 고통은 때로 감미로워지는가?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끝이 없으나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22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