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 하 미소년 시리즈 (미야베 월드)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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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치로 님은 혼화하고 자상하신, 볕이 잘 드는 양지 같은 인품을 지니신 분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해가 짧아지는 요즘 같은 때를 두고 흔히 `가을 해 떨어지는 것이 꼭 두레박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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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 상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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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재주는 그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그래도 뭐든 밥벌이가 될 만한 재주를 타고난 자는 그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 집 내외는 좋겠어요. 서로가 좋아서 가시버시가 되었잖아요. 역시 부부는 그래야 하는 거예요."
불쏘시개를 찾으며 오케이가 애써 명랑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 괜히 놀리시는 거죠."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정말이라고요."
"부부마다 다 다르지 않겠어요? 이래 봬도 제가 무가 저택에서 하녀로 일한 적이 있는데, 뼈대 있는 집안에서는 결혼할 때도 양가가 서로 저울질을 해 보고 결정하더라고요. 신랑 각시는 혼례상 앞에서 처음 얼굴을 보고요. 그래도 금실 좋은 부부로 살던걸요."
"있는 집안은 그렇겠지요. 먹고 사는 데 아쉬운 게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 같은 가난한 것들은 그저 부부 사이나 부모 자식 간에 화목한 것 말고는 따로 세상 사는 낙이 없잖아요. 우리 집사람은 그걸 통 몰라요."

유미노스케가 나리의 대를 잇는다면 반가운 일이지만 소년의 장래에 대하여 오토쿠는 이즈쓰 나리네 마님하고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괜찮다. 길바닥에 풀어놔도 이 아이는 어지간해서는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아이한테 홀리는 사람은 여자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할아버지이든 중년 아저씨든 모두 휘어잡는다. 심지어 돈 안 되는 일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관리인 고베조차 이 아이를 마음에 쏙 들어 한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휘어잡는 힘이 있는 자는 밥이나 축내는 바람둥이로 굴러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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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소설 - 하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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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도 며느리도 착하니까 나는 괜찮아요. 다만 그쪽이 조금 거북할 테니, 그게 좀 안됐지요. 진짜 할머니가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도 있고."
그렇게 말하고는 쓸쓸하게 웃었다. 마치 자기에게 아직 남아 있는 젊음이 부담스러운 듯했다.

"그런데 오이와케에 도착했을 때, 왜, 유리창 너머로 당신 얼굴이 보였잖아요. 그 순간 당신한테만은 이야기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하나님도 용서해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아무리 그래도, 나도 죽을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기는 힘들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남은 호박색 액체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카운터 쪽을 돌아보며 바텐더에게 빈 텀블러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얼굴을 앞으로 돌리고 말했다.
"이렇게 천박한 이야기...라기보다, 어른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얘기는 술이라도 먹지 않고는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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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소설 - 상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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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나의 마음은 미래로만 열려 있었다. 좀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넓은 세계와 만나야 한다, 유학생이 넘치는 보스턴 대학가에 가면 인생과 예술과 국가에 대해 검은 머리를 쓸어올리면서 도도하게 일본어로 이야기해줄 일본인 청년이 있고, 소설에 나올 법한 사랑이 거기에 있을 것이 틀림없다-이렇게까지 분명하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옛날 소설을 읽으며 자랐기 때문에 석기시대 같은 꿈을 이상형으로 그리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보통 소녀였기 때문에 남자가 나보다 교양이 풍부하길 원했던 것인지, 어쨌든 내 사랑의 상대가 내가 읽지도 못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만은 의심할 나위도 없는 대전제였다.

나는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집요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술에 취해서, 여러 가지 감정이 혼연히 가슴속을 왕래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처녀 시절, 나는 남자의 외관-용모의 미추나 성적 매력 같은 것에 무척 둔감했다. 여자의 외관은 신경도 쓰이고, 나도 아름다워지고 싶다, 매력적이고 싶다, 라고 절실히 바랐지만, 남자라는 것은 그야말로 그 정신밖에는 보지 않았다. 정신이란 높은 지조를 뜻했다. 무엇을 가지고 높은 지조라고 하는지 나 자신도 단언할 수 없었지만, 말하자면 저 멀리 종잡을 수 없이 막연한 무언가를 바라는 크고 늠름한 마음 같은 것이었다.

이문화의 인간이 서로 깊은 유대관계를 맺으려면 물건의 매매가 매개가 되는 것보다 더 적절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가진 자가 가난한 자에게 의무적으로 베풀어야 하는 기독교 전통은 미국 세법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기부는 몽땅 면세를 받는다. 미국에서 부자와 기부는 달맞이와 술병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자선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말만큼 부자가 되었다는 실감을 주는 표현도 없다. 그것은 개인 제트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보다 더 부의 무게를 묵직하게 전해주었다.

눈 앞의 젊은 남자는 이미 그런 일본의 공기에 감싸여 있지 않았다. 일본에서 막 온 일본인은 백화점의 새 포장지로 감싼 것처럼 일본의 공기에 싸여 있는 법인데, 젊은데도 불구하고 지친 인상의 이 남자는 이미 정신이 이국의 어딘가에 침식되기 시작한 듯했다.

어느 날 가루이자와에 갔다 왔다며 땀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아저씨가, 배낭에서 끈으로 묶은 책 다발을 꺼내서 내 앞에 놓았습니다. 역 근처 고서점에서 샀다고 했습니다. 도쿄의 책방에는 이제 책다운 책은 다 사라졌다는데 과연 가루이자와야, 라면서 "피난 온 도쿄 아가씨들의 책이야. 읽고서 `레이디`다워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비슷하게 아름다운 얼굴 셋이 나란히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 배가 아니라 삼십 배로 느껴지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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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
오쿠이즈미 히카루 지음, 지비원 옮김 / 현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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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는 사람들이 보통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쓴 것이다. 그저 어떠한 느낌-아름답다는 느낌이 독자의 머리에 남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 외에는 딱히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플롯도 없고 사건의 발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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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07-12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어떤가요? 소세키는 원래 좋아하는 작가라서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대표작들을 보고 최근에 현암사에서 나온 전집을 구해서 다시 읽으면서 전작하려고 하는데, 로쟈님 블로그를 보니 이 책이 좋은 길라잡이라고 하더라구요. 구할지 말지 고민입니다.

LAYLA 2016-07-12 12:27   좋아요 0 | URL
가볍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긴 했지만 transient 님처럼 혼자서도 잘 읽을 수 있는 분이 고생해서 구할 필요까지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마음`은 BL 처럼 해석할수도 있다, `도련님`의 주인공은 사실 중2병 환자이다...등 재미있는 해석을 농담처럼 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