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기르는 법 1
김정연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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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사는 동안에 뭔가를 이뤄볼 수 있을까요? 명망을 얻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대문호 헤밍웨이는 거대한 덩치와 마초적 이미지와는 달리 음경이 매우 왜소했단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것이 시간과 세계를 가로질러 서울에 사는 먼지 같은 저에게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해보면...정말로 엄청난 것이죠. 나도 뭔가를 이루면 내 가슴 같은 것도 쿠바까지 갈까?

세상에는 많은 소재들이 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콘크리트입니다. 콘크리트 벽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왠지 회화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람이 아닌 사물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오브젝트 섹슈얼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제가 그렇단 말은 아니지만, 콘크리트보다 못한 사람을 몇명 알고 있기는 하죠.

시간을 의식하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고, 그만큼 여러가지 기준들이 있어왔습니다. 삶에 단위를 매기는 것은, 자신을 운용하는 톱니바퀴를 하나 품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월드컵을 주기로 하는 4년짜리 피파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4년마다 나름의 중대한 결정들을 해왔습니다. 크게 흔들거나, 관두거나, 시도하기에 3년은 짧고, 5년은 길기 때문이죠. 월드컵 기간 동안에는 앞으로의 4년을 계획하며 축구만 봅니다. 그래서 새벽 경기도 전혀 무리가 없죠. 제 인생은 과연 월드컵 몇개짜리일까요. 한번쯤은 제 슛도 먹혀야 할 텐데요.

일년에 한번씩, 나이는 저를 잊는 법이 없습니다. 초를 켰던 저와, 끄는 저는 어디가 어떻게 다르면 되는 걸까요. 분명 시간이 흐르면서 축적된 것들도 있을 테지만...그만큼 무너지거나 망가지는 것들도 생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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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왕가위.존 파워스 지음, 성문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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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영화마다 꼭 되돌아오는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랑의 갈망‘, 더 심오하게는 ‘사랑의 상실‘이란 주제를 이때부터 추구하고 있었다. 왕가위 버전의 사랑의 갈망과 상실의 세상은 높친 기회, 부재중 연락, 지나치는 야간 지하철로 이루어진 우주다. 젊든 늙었든, 결혼했든 미혼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그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레너드 코헨의 노래 가사 ‘사랑에는 치료제가 없다‘는 게 사실임을 깨닫는다. ...이 주제에 집착하는 왕가위를 보고, 그가 몸소 사랑의 고통을 겪었기에 그런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허나 현실의 왕가위는 그의 아내 에스터와 행복한 결혼생활 중이고 최근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과학도로 진학한 아들 칭도 두었다. 부부는 카오룽의 한 가게에서 청바지 판매원으로 만난 이후 쭉 함께였다. 당시 그는 19세 그녀는 17세. 거의 40년의 세월을 함께한 셈이다. 언젠가 내가 물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어째서 불행한 사랑 이야기만 만드는 겁니까? 당신 사랑은 안 그러면서."

그가 잠시 생각한다. 그러다 마침내 대답한다.

"내 사랑이 안 그래서일지도 모르죠.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생각하는 게 훨씬 재밌잖아요. 실컷 상상할 수 있으니까."

왕가위처럼 장숙평도 상서로운 우연과 마술적 사고에 엄청난 믿음을 갖고 있다. ‘간절히 생각하면 바라던 게 결국은 찾아온다‘고 그는 주장한다.

"정말 옵니다. 아비정전때 옛날식 냉장고를 찾아다녔는데 정말 찾기 어려운 모델이었거든요. 그런데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더니 우리 비서가 하나를 찾아냈어요 뭐든 마음속에 있다면 언젠가는 찾아오게 돼 있습니다. 해피 투게더 때는 아르헨티나에서 크리스와 함께 폭포를 촬영하러 갔는데 그 당시 폭포수가 정말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찍은 걸 보여줬더니 환상적이라며 다들 만족해했죠. 나중에 왕가위가 폭포를 한 번 더 찍어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다시 갔더니 그때는 물이 거의 없었어요. 알고 보니 우리가 처음 폭포를 찍었을 때 그전 일주일 동안 계속 비가 왔다더군요. 그런 환상적인 장면을 얻은 건 순전히 운이 좋았던 거죠. 왕가위와 나는 항상 이 말을 믿어요. "받아들여라, 그럼 올 것이다."

중경삼림이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라는 말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근데 저 말만 하면 감독님은 어쩐지 불쾌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뇨, 안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혹시 후다닥 만든 작품이라 그러시나 하고.

글쎄요 전 그런 느낌 없는데. 사람들이 보통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말할 때 저는 그게 영화보다 말하는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걸 말해준다고 봐서(웃음)

우리가 알고 있는 화양연화의 아이디어 전체가(양조위의 캐릭터가 특히) 칸 영화제에 늦을 거 같단 이유로 180도 바뀌었다는 게 저는 살짝 불편한데요.

하지만 그런 일은 늘상 일어나는 걸요. 누구든 영화를 만들면 스토리가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일이 진행되는 내내 선택지가 나타납니다. 이 인물은 이걸 할 건가 아님 저걸 할 건가? 그리고 그런 선택 하나하나가 나중에 더 많은 다른 선택으로 이어지고요. 가능성은 끝도 없이 불어납니다. 그중 몇 가지를 시도해보죠. 하지만 가능성 하나한마다 가격표가 붙어 있고, "한번 해보자"는 말만큼 이 업계에서 비싼 말도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손에 남는 건 지금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그러나 원했던 게 아닐 수도 있는 한 편의 영화인 거죠. 영화를 만든다는 게 사람들에게 당신이 가진 담배를 깊이 들이마셔보라며 내미는 행위와 비슷합니다. 그렇게 들이마신 부분이 화면에 담긴 것들이죠. 나머진 그냥 재일 뿐입니다.

평범한 일반인을 찍을 때조차도, 감독님은 그들에게 빛을 부여해서 그들이 실제보다 훨씬 잘나 보입니다.

저는 제 영화 속 인물들을 좋아합니다. 자기 영화 속인물들을 좋아하면 그들을 보는 시각도 다정해지죠. 저는 영화를 보면 감독이 그 영화 속 배우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보입니다. 다 드러나요. 턱이 두 겹으로 찍히고 조명을 못 받고 그런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포괄적인 어떤 것입니다. 즉, 다정함이 없다는 것. 저는 캐릭터들과 함께 있고 싶지 그들 위에 군림하고 싶진 않아요.

그 말씀인즉, 아름다움을 잘 포착하는 실력은 애정에서 우러나온다?

영화 속 아름다움은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이느냐 이상의 문젭니다. 좋은 영화는 보고 난 뒤에 남는 맛이 있어야 해요. 어떤 한 장면일 수도 있고 한 줄의 대사일 수도 있고 그냥 어떤 한 순간도 좋고요. 뭐가 됐든 관객에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남는 게 있어야 합니다.

이 시나리오를 쓰시는 데 그렇게 오래 걸렸다는 게 웃겼어요. 왜냐하면 해피 투게더를 생각할 때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파트, 폭포, 가죽재킷을 입은 장국영, 불행해 보이는 양조위 표정, 그런 것들이거든요. 행동이 기억에 남는다는 거죠. 대사라고 해봤자 기억에 남는 건 양조위가 장첸의 녹음기에 한 말입니다. 우리 귀에는 사실상 들리지도 않았지만.

그 말은 칭찬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사실 최고의 대사는 두드러지지 않는 대삽니다. 개인적인 선언 같은 게 아니라 그 배역한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하는 그런 말들이죠. 그게 다 제가 티비 방송 출신이라 그렇습니다. 티비는 대사와 플롯이 전부 다라서. 하지만 영화는 대사와 플롯에 대한 게 아니죠. 영화는 행동에 대한 겁니다. 우리는 사람의 말보다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을 많이 알게 됩니다. 말에는 거짓에 포함될 수 있으니까요. 양조위가 연기하는 인물은 자기가 좋은 사람인듯 말하지만 실상은 장국영의 여권을 숨겨놓고 안 주잖아요.

저는 이 책이 쉽게 굴러갈 거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만.

빔 벤더스가 자기 책을 두고 한 말 같은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하려 했던 도전은 ‘묘사가 불가능한 경력을 묘사하려는 시도‘였다고. 저는 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거든. 사람들이 재즈를 두고 ‘꼭 물어봐야겠다면 결국 영영 모를 것이다‘라고 하는 것처럼요. 개인적인 이야기도 역시 좋아하지 않아요. 이건 영화 이야기 하자는 것보다 명분이 더 없어. 영화를 만든 30년 가까운 세월을 300페이지 책 한권과 맞바꾼다는 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발상인지. 이 책을 수락한 건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어요. 제 아들이 올해 스물한 살이 됩니다. 소년 시절을 뒤로 하고 성인이 되는 거죠. 아들과 아들이 보낸 유년기에, 왕가위의 의미는 부재나 다름없었습니다. 처음엔 제 직업적 경력이 만들어낸 스펙터클에 그 애를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보호하려 했던 거였지만, 나중엔 그 애 자신이 사람들의 시선을 원하지 않더라구요. 제 영화 중에서 그 애는 일대종사와 화양연화 밖에 안 봤습니다.

혹시 그 애가 나머지를 볼 날이 오면 저는 그 영화들을 자기 형제와 누이로 맞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어떤 면에선 아들도. 그 영화들도 함께 자란 셈이니까. 그리고 어떤 형제와 누이들이 그런 것처럼 어떤 아이는 잘되고 또 어떤 아이는 잘 안되고, 일부는 뒤늦게 좋은 결실을 보기도 하고 그런 거죠. 이 모든 형제 누이들의 공통점을 혹시 이 책이 그 애에게 알려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인생을 살면서-뭐든 대담한 시도를 하려면- 한 번쯤 해야 하는 이 말 한마디에서 태어났다고. 그래,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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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 - 나답게 살기 위해 일과 거리두기
이즈미야 간지 지음, 김윤경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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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기의 위기는 대개 중년기인 40대 후반에서 60대 전반 무렵에 찾아오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고뇌가 20대 젊은 층에서도 일어나는 저연령화 현상을 보인다. 드물게는 10대 후반에 발생한 경우도 보았다.

...한 가지 원인은 사회적 자기실현이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데 있다. 현대의 젊은 세대는 정보화의 발달로 인해 어른들이 겉으로 연기하는 ‘사회적 자신, 즉‘역할적 자신‘이 그 무대 뒤에서 얼마나 공허한지를 상당히 이른 나이부터 알 수 있는 환경에서 삵 있다. 따라서 옛날 세대처럼 현실에서 낙관적이고 희망에 찬 장래의 모습을 그린다거나 천진하게 꿈을 향해 나아가기 힘들다.

...이렇게 현대의 젊은 세대는 청년기의 위기를 건너뛰고 바로 중년기의 위기와 다름없는 고민과 마주한다. 그들에게는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하는 사회적 자기실현에 대한 고민보다 한층 더 깊은 곳에 자리한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실존적인 굶주림이 오히려 절실한 문제가 되었다.

어른들은 ‘왜 일해야만 하는가?‘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장 어떻게든 그럴싸한 말을 해주고 싶지만 내심 대답이 궁해진다. 자신은 그런 의문을 품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어른들이 고작 한다는 말은 "사치스러운 고민이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어" "사람이니까 일하는 게 당연하지" 등 궁색한 답변뿐이다. 하지만 이는 ‘애 일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닐 뿐만 아니라 헝그리 모티베이션으로 살아온 인간의 정지된 사고를 여실히 드러낼 뿐 전혀 설득력이 없다.

루터는 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소명이라는 개념을 일에 종사하는 것은 모두 소명이다 라고까지 확대해석하고 이것을 천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이미 신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실현이라는 명목으로 본연의 나에 어울리는 직업을 찾는데 힘을 쏟고 있다.

진정한 자아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 의해 창출되는 ‘새로운 자신‘으로 완전히 개념이 바뀌었다는 점은 참으로 이상한 현싱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이 일 찾기를 통해 자아를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진정한 자아가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바깥쪽에 갖춰져 있고, 그래서 이미 사회에 마련된 ‘직업‘에 연결함으로써 자아가 실현된다는 사고방식은 확실히 사람들을 끝없는 자아찾기, 즉 일 찾기의 미로로 몰아넣고 있다.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지정한 자신을 밖에서 찾고 있다는 점과 그것을 직업이라는 좁은 범주에 맞춰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 준비되어 있는 일의 대다수가 노동이라고 불리며 보람이 적고 단편화되어 있는 오늘날, 기존의 선택지 안에서 끊없이 ‘직업 찾기‘에 매달려 헤매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때로는 자신의 마음=몸이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직업이나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창출하는 것도 좋고, 어딘가에 이상적인 직업이 준비되어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자신의 자질에 맞고 더 어울리는 직업으로 진로를 변경해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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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다른 아이들 2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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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아동과 마찬가지로 신동은 부모에게 그들의 특별한 요구를 중심으로 부모의 삶을 재설계하도록 강요한다.

레온의 원숙함은 지극히 자각적인 성격에서 기인한다. 그가 말했다.

당신은 작품을 연주할 때 자신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연주할 수도 있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서술자처럼 연주할 수도 있어요. 예컨데 ‘옛날 옛적에 어떤 사람이 있었어요‘라고 이야기하듯이요. 그리고 서술자처럼 연주하면 표현이 훨씬 풍부해질 수도 있어요. 이렇게 함으로써 청중의 상상력을 보다 자유롭게 해줄 수 있거든요. ‘내가 이렇게 느끼고 있으니 당신들도 이렇게 느껴야 한다‘고 명령하는게 아니에요.

1945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 피아노 콩쿠르가 오직 다섯 개밖에 없었다. 오늘날에는 750개가 있다.

연주는 감수성을 혹사시키는 행위이며, 감수성은 부서지기 쉬운 부싯깃 같은 것이다. ...연습을 좋아하고 다른 활동은 상상조차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은 창조적인 행위의 핵심이다.

스콧은 적절한 가사를 찾기만 하면 순식간에 영감이 떠오른다고 설명했다. 내가 곡 작업이 즐거운 과정처럼 들린다고 이야기하자 그가 말했다.

음악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복이 있는 지형들이 존재해요. 하지만 내 작품들은 대체로 아픔을 토대로 합니다. 내 인생 경험에서 후회와 체념, 절망 등으로 윤기가 더해진 새깔들이 나오는 거죠.

그가 자신의 아이폰에서 다섯 살 때 찍은 사진 한장을 내게 보여 주었다. 사진 속의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게 증거물 에이 이고요.

그리고 자신이 목용하는 항우울제 목록을 내밀었다.

이것이 증거물 비 입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이 모든 감정을 경험했다는 착가그이 덫에 빠지기가 정말 쉽습니다. 하루 종일 그런 감정들을 재생산하고 있으니까요. 중년이 되면서 나는 삶을, 내가 늘 책에서 읽었거나 영화에서 봤거나 다른 사람의 집에서 목격했던 그런 삶을 갈망하기 시작했어요.

대학에 다닐 때 나는 루이즈 매커런이라는 사람을 알았다. 그녀는 피아니스트로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20대 초반에 케네디 센터에ㅓ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친구들과 친척들을 공연장에 태워갈 버스까지 대절했다. 하지만 공연 이틀 전에 사람들은 그녀가 부상 때문에 연주를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지나친 연습으로 반복성 스트레스 손상을 입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단순히 새끼손가락을 다쳤을 뿐이었다. 이후로 25년이 지나도록 그녀는 공연 일정을 잡지도, 대중 앞에서 공연을 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아파트에 피아노를 두 대나 놓고 매일 여덟 시간씩 연습하면서 혼자 살았다. 예술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넣어야 하기 때문에 데이트나 결혼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가끔은 파티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자신을 콘서트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했다. 물론 그녀가 콘서트를 한 적은 없었다.

재능을 파괴하기는 매우 쉽다. 반대로, 양육을 통해 없던 재능을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원래부터 재능이 있는 경우 전체적으로 재능이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에요. 재능이 없는 경우에는 수치가 90퍼센트로 상승하죠. 재능의 부재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중국어와 그 밖의 성조가 있는 언어는 영유아에게 청각적인 예민함을 길러 주고, 전형적인 중국인의 손은 손바닥이 넓고 손가락 사이의 공간도 넉넉해서 피아노를 치는 데 특히 유리하다.

사춘기가 되었다고 해서 성숙했다는 뜻은 아니다. 음주, 투표, 성관계, 운전을 할 수 있는 연령은 오래전부터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생물학적 증거를 통해 사춘기의 뇌가 성인의 뇌와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고, 이는 성인 범죄와 청소년 범죄를 구분하려는 움직임을 뒷받침한다. 예컨대 열다섯 살의 청소년은 전전두엽 피질에서 자기 통제를 관장하는 영역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외에도 뇌의 많은 부분이 대략 스물네 살이 되어야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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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게 살지 않겠습니다
야마자키 마리 지음, 김윤희 옮김 / 인디고(글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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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는 대로 휩쓸려가지 않고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멈춰 서서 고민하고 사색하는 것. 즉, 의구심은 인간이 진지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그 사람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에너지가 된다.

이제 정말 틀린 걸까, 이대로 객지에서 죽는 건 아닐까, 극단적인 생각까지 드는 그 순간 문득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지금 나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내 옆을 스쳐가는 사람도 일본에 있는 엄마도 아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다. 나는 나를 믿고 의지해야 한다.
‘믿는다, 나를‘
‘믿을게, 이제 너밖에 없어‘
스스로에거 속삭이던 그 순간, 나에게 ‘자신을 지탱해줄 또 하나의 나‘라는 운명공동체가 나타났다. 잔혹한 상황에 휘말린다 해도 ‘또 하나의 나 자신‘이 있으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 존재가 그 후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지.

피렌체에 머무는 10년 동안 나는 두 분의 은인을 먼저 떠나 보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하다가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봤다. 이 경험이 훗날 내가 세상에 나갔을 때 인생에 소중한 거름이 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 실패란 아픔이 아니다. 실패를 하면 할수록 다만 내 사전의 어휘가 늘어날 뿐이다.

다양한 국적과 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융통성이 허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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