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에서 취리히로 아침 기차를 탔다. 기차표는 스위스 철도청 앱으로 끊었는데, 그러면 QR코드로 표가 생성되고 검표원이 돌아다니며 일일이 그 QR코드를 스캔한다. 신기술은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올드한 검표 방식은 그대로 지킨다는 것이 무척 유럽답다 생각했다. 내 옆자리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합석해서 앉아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하고 있었다. 4개의 언어가 공용어이다 보니 한쪽은 독일어로 말하며 당케로 문장을 마치고 맞은 자리에 앉은 상대편은 그걸 다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할 말은 프랑스어로, 메르시로 문장을 끝맺고 있었다.
스위스에 올 적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비행기표 구하기가 어려워 이리저리 일정을 짜맞추다 보니 오게 된 것이라 그다지 기대가 없었다. 그냥 딱 봐도 노잼일거 같았고 인구가 얼마나 되나 찾아보니 김이 팍 샜다. 취리히의 인구는 약 24만명 바젤 인구는 약 17만명. 바젤에서 트램을 기다리다 보면 우연히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주민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인구가 적으면 오며 가며 마주치고 저럴수도 있겠군, 싶었다. 어쨌든 시간은 잘 보냈고 취리히는 바젤과 비교할 때 이 나라 제일의 도시이고 수도라서 그 나름의 '바쁨'과 '대도시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단게 무척 귀여웠다. 바젤에서는 신호등 관계없이 어디서 길을 건너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취리히에선 차가 빨리 달려서 신호등을 지켜야 한다.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도 확실히 더 드라이하다.
취리히에서는 유명한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kunsthaus(미술관)를 보러갔다. 땅도 작고 인구도 적고 그래서 건물은 모두 나지막하고 이중주차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 나라는 미술관에 한해서만큼은 어마어마한 배포를 가지고 있다. 바젤에서도 그랬는데, 지은지 100년쯤 된 미술관 구관 옆에 신관을 새로 지으면 그 두 건물 사이에 지하를 파서 연결통로를 만든다. 그냥 작은 통로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규모로 시원시원하게 만든다. 스위스에도 이런저런 공사현장이 보여서 지나가다 보면 세상에 공사판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나? 싶은데(그만큼 일하는 사람 수도 적고 공사도 잔잔하니 차분하게 한다 ㅎㅎㅎ) 그런 스위스의 속도로 그 큰 건축물을 단지 그림을 걸기 위해 만들다니!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데 쿤스트하우스도 알고 봐서 그런지 아무레퍼시픽과 비슷한 결이 느껴졌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문제는, 대리석에 가까운 하얗고 부드러운 색감의 콘크리트와 금빛 브론즈, 원목을 섞어서 만든 그의 건물 정문이 아주 큰 브론즈 철문이었고, 여름 오후 나절의 햇빛을 한껏 받은 그 정문은 도저히 사람이 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손을 내밀어 문 손잡이를 잡은 나는 마치 물이 끓는 주전자를 만진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펄쩍 뒤로 물러났고, 나를 비롯한 다른 관람객들은 누군가가 안에서 문을 열고 나오기를 기다리다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면 뭐해 여름 오후에는 문을 열수도 없게 지어놨는데...! 어쨌든 명성만큼 많은 돈을 쓸 자유를 얻었을 그의 미술관에는 고급스러움이 공기 중에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좋은 환기 시스템을 썼는지 공기부터가 달랐고 바닥의 원목은 광폭에 낮은 채도의 촉촉한 톤이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신관을 여유롭게 보고 지하의 통로로 구관으로 건너가 또 한참을 돌아다녔다. 사실 나는 건축 전문가는 아니지만 구관이 신관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구관도 기본적으로 공들여 지은 건물이었고 무엇보다 요즘은 보기 힘든 색색의 고급 대리석들로 지은 건물이라 중후하고 화려했다. 미술관에는 그림을 보러 간다지만 그림을 보며 오감이 활성화되어 그런지 이것저것 별것까지 다 따지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된 미술관들은 계단을 올라갈 때 발이 딛는 단단한 감각이 좋다고 생각한다. 먼 옛날에 좋은 돌과 대리석을 아끼지 않고 만든 바닥만이 줄 수 있는 감각. 좋은 안목을 가진 선조가 한 번 잘 지어놓으면 수백년간 그 후손들, 그리고 지구 반바퀴를 날아온 관광객마저 발바닥으로 작은 호사를 누리게 된다.
인스타그램에 미술관에 간 사진만 주구장창 올렸더니 친구가 연락이 왔다. "내가 팔로우 하는 다른 사람드 스위스에 있는데 그 사람은 풍경 사진만 올려. 넌 왜 밖에 안나가는거야?" 순간 뼈를 맞은거 같았다. 이국에 와서 낮에는 미술관 밤에는 오페라하우스나 콘서트 홀만 돌아다니고 있으니 사실 그 대단하다는 스위스의 풍경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 그런데 좀 가." 친구의 말을 듣고 일부러 강가로 나가보니 여름을 누리려는 스위스인들이 수많은 요트를 띄워놓고 다이빙을 하고 헤엄을 치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출렁이는 물과 행복한 사람들의 표정은 보기에 좋았지만 든 생각은 '아 이 곳에선 인싸가 되려면 수영을 잘 해야 하는구나.' 나는 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다 일어나 오페라 하우스로 향했다. 래스트 미닛으로 산 프로그램은 피가로의 결혼. 오페라하우스는 무척 아름다웠고 주말의 오페라를 즐기러 나온 사람 중 동양인은 오직 나 혼자인 것 같았다. 공연은 좋았고 놀라웠던 건 현대식으로 약간 톤을 바꾸어 진행하더니 급기야는 오페라에 베드신까지 등장했다는 것이다. 남자 배우가 바지를 벗고 팬티까지 내리더니 여배우의 허벅지를 벌리고 자리 잡았다. 영상물로 본다면 그렇게 수위가 높게 느껴지지 않았을 거 같은데 바로 눈 앞에서 그런 장면이 펼쳐지니 오페라에도 연령제한을 둬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유교걸적인 생각이 불쑥 솟아났다...! 남자 배우는 성기를 가리는 공사를 하고 엉덩이는 벗은 그대로 다 노출되어 있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생각해보니 이것조차 무척 스위스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몸은 몸일 뿐이지 그것으로 왜 수치심을 느끼냐는, 교과서적인거 같기도 하고 타당한거 같기도 한 그런 사고방식 말이다. 거의 4시간에 가까운 공연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밤 11시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해는 넘어갔지만 공기는 여전히 후끈했다. 그렇게, 또 낮에는 미술관에서 밤에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낸 실내형 인간의 하루가 끝났고 나는 극도의 피곤함을 느꼈다. 실내만 돌아다니면서도 하루에 만보에서 만오천보, 거리로 따지면 10키로쯤 되는 거리를 내리 4일이나 걸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