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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첫편, 채식주의자는 불쾌감이 남았다.
갑작스런 채식선언, 육류에 대한 민감한 배척.
이해의 결여, 대화의 결여, 감정의 고조.
갑갑하고 숨막히는 ˝나만의 입장 내세우기˝라는 상황이 불쾌했다.
현실의 생활과 닮아서 그랬는지.
지극한 현실적 감정이 읽는 내내 피어올라서 그랬는지.
3편의 단편들이 연결된다는것을 두번째 편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첫편의 불쾌감만 남은채 두번째 편을 보지 않았더라면 큰 실수를 할뻔했다.
두번째편, 몽고반점.
첫편의 영혜네 언니의 남편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첫편에 잠깐 등장한 ˝별볼일 없는 예술하는 사람˝으로 서술이 됐었다.(영혜네 남편되는 사람의 눈에 비친 모습). 두번째편은 뭐랄까. 사람들이 속히 말하는 ˝예술과 광기는 한끗차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또한 나의 인식속에 예술이란 무릇 ˝자본과 권력˝과 멀리 떨어진 것으로서 ˝일상에 묶인˝사람들의 눈에는 ˝돈도 힘도 없는˝ 약자일것이라 생각된다. 즉 영혜처럼 그 예술하는 나부랭이도 어느정도 ˝생활˝이라는것에 치여 시름시름 앓고있는 ˝약자˝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2편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보듬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럴리가 있나. 한쪽은 이미 현실을 버린입장이고 한쪽은 자신보다 예술을 더 사랑하는 입장이고. 둘의 만남은 현실을 더욱더 멀리 밀쳐낼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위기의 상황에서 순종보다는 더 격렬한 본성(이라 생각되는)으로의 귀환을 시도하지. 영혜는 채식주의자에서 식물로 되려하고 예술가는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새가 되려했다. 둘다 실패했지만 그래도 시도는 하지 않았는가.
나는 2편에 미친듯이 몰입되어버렸다. 1편이 기분나쁜 동굴의 입구라면 2편은 동굴속에 감춰진 카르스트지형 같다.
난 3편, 나무 불꽃
영혜의 언니의 이야기다. 1편과 2편에서 격정을 보여줬다면 3편에서는 어느정도 차분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할수있다. 영혜의 언니가 매우 가정적이고 받아들이는 성격이라 그렇게 느껴질수도 있겠다. 1편에서 이해가 안되던 영혜의 채식선언도 어렴풋이 이해가 갈것같고 영혜언니의 고통에도 집중할수 있었다.(3편을 읽기 전까지 영혜를 제일 불행한 사람으로 인식했다.)
3편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영혜의 언니는 끝까지 살아갈것임을 알았다. 적응해가면서...아니, 맞춰가면서. 스스로를 위한것이 아니라 아들을 위해서. 분하고 화가나도 여전히 살아갈것임을 알았다. 어쩔수 없이 살아있는 모두들 처럼.
번외: 2편에서 예술가가 찾아간 옛 애인은 대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안간다. ˝그녀˝였다가 ˝그˝였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