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저택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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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저택은 어느 순간 통째로 옮겨져 뿌리를 내렸다.
고양이 아누바를 시작으로 하나 둘 저택을 찾아온 존재들이 저택을 메웠다.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 되며 함께 지내던 어느 날, 그들의 거울에 비치지 않는 아기가 요람에 든 채 발견되었다.
어린 티모시는 그렇게 다른 종족 사이에서 저택에 머물며 자라왔다.
드디어 할로윈 이브날 모든 가족들이 저택으로 귀향하는 파티를 열기 위해 모두가 분주히 움직인다.
날개 달린 삼촌을 필두로 시월의 종족이 저택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티모시, 시월의 종족과 관련된 단편들을 이어 놓은 책이다.
표지 그림만 보고 섣불리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상상했다간 분명 크게 실망할 지도 모른다.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울지 몰라도 이음새가 매끈하지 못해서 이야기들이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게 고스란히 느껴진다.
모두가 저택이라는 큰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외전격의 이야기들과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자잘한 인물들이 한 데 섞이지 못하고 흐름을 방해하는 것 같다.
차라리 긴 이야기라면 그런 인물들이 얼마든 등장하더라도 잘 흘러갈 텐데 얇은 책 속에 마구 엉켜버려서 갈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등장인물들의 각각의 사연 또한 간략한 소개로 끝나버려서 기억하기도 힘들고 아쉽기만 하다.

종족에게 닥친 위기가 서서히 저택을 찾아오고 갑자기 횃불을 든 자들이 밀려오면서 저택은 삽시간에 비워지고 모두가 세시의 도움으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달리 인간이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홀로 고민하던 티모시는 모두가 떠난 저택에서 천 번 고조할머니인 이집트 미라와 함께 인간의 세상으로 발을 딛는다.

새로운 시작,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티모시를 비추며 시월의 저택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조금 더 힘 있는 줄기가 뻗어나갔다면, 그래서 튼튼한 이야기가 되었다면 멋진 마무리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임팩트를 남기지 못한 이야기 같다.
모든 게 아쉽지만 뭐든 손대면 안 될 것 같다.
세시가 데려다 준 곳들이 너무나도 좋았던, 세시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던 이야기였다.
어지럽고 쌀쌀했지만 그대로 매력적인 가을의 저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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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본 살인사건 스코틀랜드 책방
페이지 셸턴 지음, 이수영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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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미국 캔자스에서 한 발도 벗어나본 적 없는 딜레이니는 어느 날 한 서점의 구인광고를 보고 마법에 걸린 듯 전화를 걸고, 결국 낯선 땅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향하게 된다.
인자한 택시 기사를 만나 무사히 서점 갈라진 책에 도착한 딜레이니는 그곳에서 함께 일하게 될 햄릿과 로지를 만나고 단숨에 스코틀랜드와 사랑에 빠진다.
다음 날 딜레이니는 주인 에드윈을 만나 단순히 희귀 서적을 다루는 서점이라고만 생각했던 갈라진 책의 창고에 에드윈이 경매를 통해 얻은 개인 소장품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자신이 그곳을 관리하고 에드윈의 경매일을 도우게 될 거라는 상상 초월의 말을 듣게 된다.
박물관에나 전시될 법한 물건들이 정리도 안 된 채로 뒹구는 걸 보며 딜레이니는 막중한 책임감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모험심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에드윈을 따라 간 경매에 에드윈이 내놓을 품목이 셰익스피어의 초판 2절본, 2절판이라는 경악스러운 얘기를 듣게 되고, 그것을 갖고 있다는 에드윈의 동생 제니가 등장하지 않으며 경매는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집안 대대로 부자인 에드윈과 달리 마약 중독자로 집안에서 쫓겨나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제니가 마약을 끊었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돕기 위해 에드윈이 2절판을 맡겼고, 경매 다음 날 제니는 자신의 집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2절판의 행방과 과연 제니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지 딜레이니는 자신도 모르게 조사를 시작한다.

희귀본을 둘러 싼 살인사건이 맞긴 한데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라 놀랐다.
표지도 그렇고 좀 더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기대했었기 때문에 초반 분위기부터 완결까지 모든 이야기가 성에 차지 않는다.
애초에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주인의 동생의 죽음에 그렇게까지 관여하며 진상을 밝히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오지랖 같고, 중간 중간 2절판과 관련된 내용이나 경찰도 못 찾은 걸 턱턱 찾아내는 주인공이나 너무 개연성이 떨어진다.
뜬금 없는 로맨스는 끼어들 시점이 아닌 것 같은데 갑자기 튀어나와 전혀 섞이지 못하고, 의심받는 인물들 간의 관계도 엉성하기만 해서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
책방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점은 좋았는데 따지고 보면 마약 중독자인 피해자가 어마어마한 보물을 가질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주기만 할 뿐이라 감흥이 떨어진다.
딱 한 가지, 스코틀랜드에 대한 묘사만 빼면 영 별로였다.
소설보다 오히려 에든버러 관광 책자로서의 역할이 더 어울릴 만큼 에든버러 성과 거리, 건물들, 엄청나게 다양한 책방이 있다는 얘기와 사람들 등등 마치 ‘세계테마기행’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투리도 원서를 보면 잘 표현되어 있을 것 같은데 번역이 좋지 않아 감이 오지 않는다.
에드윈이나 일라이어스가 딜레이니를 부를 때 색시라는 말을 자꾸 쓰는데 이게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인지 볼 때마다 거슬린다.
아가씨도 아니고 색시라니,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딱 <낙원남녀>가 떠오르는 정도의 미스터리였는데 내용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나 구성 같은 게 유사하게 느껴진다.
아쉽고 와닿지 않는 부분도 물론 유사하고 오히려 그보다 못한 것도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더 많이 읽다 보면 더 재밌는 게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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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
로런 그로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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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작은 꼬마 비트는 아빠 에이브, 엄마 해나와 함께 핸디가 이끄는 자유민 무리 속에 있다.
또래보다 작은 비트는 모든 어른들에게 보호받으며 친구들과 어울리며 아르카디아에서 살고 있다.
아르카디아의 시작은 평원의 버려진 건물들이었고, 핑크 파이퍼라는 2층 버스로 전국을 떠돌던 비트족은 임시 거주지를 지나 아르카디아를 세웠다.
핸디가 음악 투어를 떠난 3달 간 에이브가 무리를 이끌어 모두 함께 복원해 낸 아르카디아는 모두의 낙원이 되었다.
우울증을 앓아 겨울이면 깊은 동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해나와 모든 아픔에 깊이 빠져들며 말을 잃어가는 비트, 그러나 비로소 완성된 아르카디아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기로 스스로 결심한다.

태양의 도시, 헬리오폴리스, 축복받은 자의 섬, 지상 기쁨의 정원.
각 장마다 약 10년 씩의 간격이 있어서인지 이야기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소년, 청소년, 청년, 중년의 비트가 등장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사실 비트를 주인공으로 보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분명 스스로 자신이 겪은 일과 과거, 현재 모든 사건들을 풀어내지만 완전히 모든 일의 당사자라는 느낌보다는 일정한 간격 뒤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처럼 이야기는 서술된다.
물론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게 예를 들면 첫 부분을 읽었을 때만 해도 나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느낌은 <여덟 개의 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라바>로 변해갔는데 결국 이 책은 <사라바>와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서술이나 시점이 다르다는 걸 확실히 느낀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아르카디아를 주인공으로 보면 맞아떨어진다.
아르카디아의 탄생과 몰락, 그 후의 이야기를 계승자이자 가장 작은 히피 조각인 비트를 통해 보여주는 방식이라면 그토록 어지럽고 캄캄한 이야기들 속에서 따뜻한 제목을 붙인 이유도 설명이 되는 것 같다.

프롤로그에서 비트가 태어나기 전의 평화로운 묘사들이 아르카디아의 이상향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들이 원했던 태초의 아르카디아는 아르카디아가 생기기 전 이미 존재했었다는 걸 마치 낡은 영상처럼 펼쳐지는 첫 장면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비트의 첫 기억이지만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그 때가 바로 모두가 행복했던 아르카디아였다.
몇 천 명까지 불어났던 사회가 탄생하고 몰락하는 과정이 탄력적으로 한 눈에 들어오게 그려진다.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눈을 빌린 간접적인 서술이지만 끝까지 그 사람 속에서 존재하는 아르카디아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화자는 중요하다.

아르카디아가 완전히 몰락하고 뿔뿔이 흩어진 식구들과 도시로 와 새롭게 적응해 가는 가족들의 모습은 과거 회상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중요한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빨리감기처럼 두 배 혹은 세 배의 속도로 다 흘려버려 남겨진 내용까지 어색해진다.
각 장에 포함된 이야기가 탄생, 몰락, 망각, 소멸이라고 보면 왜 그렇게 부차적인 이야기들이 많고 정작 궁금한 것들은 숨겨지는지 모르겠다.
답답할 정도로 애태우던 걸 다음 장에선 완전히 잊은 듯 행동하질 않나 아니면 또 이상한 부분에서 혼자 화를 낸다던가, 아무리 시간의 흐름으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동조하기 어려운 감정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도 떨어지고 내용이 와닿지 않는다.
뭘 말하려는 지는 알겠는데 눈 앞에 보이는 게 다라서 거기까진 다 읽히지 않는 책 같다.
잘 못 읽은 것 같기도 하지만 모르겠다.
문장들이 아름다워서 꼭 하나의 신화를 보는 듯했는데 그래서 갑자기 현실화된 후반부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유토피아와는 달리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의 삶을 뜻하는 아르카디아, 그리고 그들의 아르카디아의 탄생 배경이 된 ‘Et in arcadia ego’라는 말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정확한 결말이 있을까 싶다.
아르카디아가 없는 세상이야말로 진정한 아르카디아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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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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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야코포 로멜리 추기경단 단장은 갑작스레 교황의 선종 소식에 급히 성녀 마르타의 집을 찾는다.
교황의 마지막 공식 일정과 사망 시각 등을 확인하고 언론에 공표하며 로멜리는 추기경단의 단장으로서 자신이 다음 교황 선출 과정인 콘클라베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다.
현재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는 4명, 교황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으로 언론플레이에 능하며 능구렁이 같은 트랑블레 추기경, 현 국무원장이자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 벨리니 추기경,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 것이라 예상되는 아데예미 추기경, 나이가 가장 많고 5개 국어를 하면서 전 교황을 향한 비난을 꾸준히 해왔던 테데스코 추기경이다.
모든 선종 관련 공식 행사가 끝나고 드디어 새로운 교황을 뽑기 위해 모든 추기경들이 한곳으로 모인다.
콘클라베 직전, 교황의 선종을 처음으로 목격했던 보자니아크 대주교가 술에 취해 바쁜 로멜리를 찾아와 고해성사를 청한다.
폭탄 같은 고해성사로 충격에 휩싸인 로멜리 앞에 이번에는 명단에 없는 118번째의 추기경 베니테스가 등장한다.
네 명의 권력 다툼 속에서 이어지는 돌발 상황들로 인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는 콘클라베, 과연 새로운 교황이 될 자는 누구인가.

교황이 누가 될 것인지 예상하다보면 그 길 속에 자꾸만 원치 않은 정보가 끼어든다.
한 마디로 too much information, tmi들이다.
한 명이 우세하다 싶으면 꼭 그를 무너뜨릴 치부가 공개되어 새로운 이가 급부상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표는 요동치고 콘클라베는 여덟 번째 투표까지 이어진다.
평균적으로 다섯 번째 투표 정도면 판가름나던 선거가 도통 쉽게 결론나지 않고 연거푸 검은 연기만 피워대는데 내부 사정은 물론이고 수도원의 바깥 상황마저 심상치가 않다.
과반수인 80표를 넘기며 지도자가 될 자, 규율을 어기고 서로를 깎아내리며 서고자 하는 자리, 콘클라베 과정을 밀착 취재하듯이 상세히 보여주면서 교황이 될 사람이 누구인지 계속해서 묻는다.
비리를 저지른 자가 교황이 될 수 있는가, 혹은 치명적인 과거에 발목잡힌 자, 혹은 진실을 외면하는 자, 혹은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자는 교황이 될 수 있는가, 그런가 하면 터무니 없는 약점을 지닌 자는 과연 교황이 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교황 선출 선거 회의를 뜻하는 ‘콘클라베’는 바티칸 혹은 교황청을 다루는 소설들에서 드물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소재인 것 같다.
내가 처음 콘클라베라는 말을 접한 건 아마 <천사와 악마>였을 거다.
한 데 묶자면 <궁극의 아이>, <불로의 인형> 혹은 댄 브라운과 김진명의 소설들, 더 나아가자면 <무한의 책>까지.
읽고 나면 발 끝부터 묵직하게 올라오는 감정에 좌우되는 이야기, 그 스펙터클함에 맛들이면 한도 끝도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이야기들, 그리 친하지는 않지만 즐겨 읽을 때가 있었다.
요즘은 워낙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점점 손이 덜 가는 장르다.
찾아 읽기는 조금 멀지만 그래도 또 읽는 재미는 확실한 책들.
책을 읽기 전 작가 소개에서 영화 ‘일루셔니스트’의 원작 작가라는 말을 보고 놀랐다.
예전에 학교 교실에서 엄청 재밌게 봤던 영화였는데 원작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 이후로도 영화 채널에서 가끔 발견할 때마다 시청했을 만큼 좋아하는 영화인데 뜬금없이 여기서 등장하다니 정말 반가웠다.
약 90퍼센트까지만 예상 가능했던 이야기, 왠지 모르게 ‘일루셔니스트’와도 겹쳐 보인다.
어쩌면 아주 생소한 소재를 파고드는 과정인데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져서 좋았다.
전혀 어렵지 않고 또 마냥 무겁지도 않은 딱 읽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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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의 소나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권영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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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미코시바 레이지는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며 주로 죄질이 나쁜 사람들의 국선 변호를 자처하는 변호사다.
경찰 내부에서는 중형을 받아야 할 범죄자들을 너무도 유능하게 변호해 풀어주는 것으로 유명하고 범죄자들 사이에서는 실력은 확실하나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야기는 자신의 트렁크에 실은 시체를 미코시바가 유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체 유기 도중에 자신의 지난 살인에 대해 떠올림과 동시에 다음 장면에서 한 사기꾼에게 3억엔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뜯어내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미코시바라는 인물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강가에 던져진 시체는 사이타마로 흘러와 히포크라테스 시리즈에 등장했던 고테가와와 와타세 반장이 사건을 맡아 연작의 포문을 연다.
기자들로 인해 피해자의 정체가 기자 출신의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사진으로 약점을 잡아 공갈 협박을 일삼았던 가가야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가 마지막으로 쫓고 있던 보험금 살인 사건에 자연히 이목이 집중된다.
도조 미쓰코가 보험금을 노리고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던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의 특이점은 아들이 뇌성마비로 인해 왼쪽 손 이외의 전신이 마비된 상태라는 것.
아들의 병원비와 최근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남편이 무리하게 공장을 자동화한다고 빚을 지는 바람에 돈이 급한 상황에서 남편의 사망 일주일 전에 가입된 생명보험으로 인해 미쓰코의 혐의는 거의 확실시되고 있었다.
겨우 항소심까지 끌고 왔던 변호사가 건강 상의 문제로 사퇴하고 그 자리를 미코시바가 자진해서 맡게 되며 사건은 조금씩 뒤집히려 한다.
한편 고테가와는 가가야가 가장 많이 접속한 인터넷 페이지가 23년 전 시체 배달부라 불렸던 소년 살인범 소노베 신이치로의 사진임을 발견하고, 가가야가 마지막으로 관심을 갖던 도조 미쓰코 사건의 변호인인 미코시바 레이지가 그 소노베 신이치로와 동일인임을 알게 된다.

가가야 살인사건과 보험금 살인사건, 2개의 살인사건을 통해 미코시바 레이지라는 인물에 대해 깊숙이 파고드는 이야기다.
싸이코패스라고 불러도 좋을 괴물이었던 소년이 어떻게 변호사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후반부에 이르러 보여주려는데 또 다른 괴물을 등장시켜 바로 시점을 옮겨 버린다.
과연 변호사의 탈을 쓴 괴물인지, 혹은 성공적인 감화의 표본인지 계속해서 교란시키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결국 요지는 범죄자는 과연 갱생할 수 있는가다.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 교화되어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며 살 수 있을까.
너무나도 어려운 이야기를 또 태연스럽게 꺼내어 놓는다.
그 과정에서 주목되는 사연, 예를 들면 사유리 같은 인물의 이야기는 뻔하지만 꼭 등장할 법도 한데 결코 그 이후로 나오지 않는다.
소년원을 나올 때 하고 싶었던 말은 또 어떻고, 결말은 말해 뭐할까.
정말 감탄스럽게 잘 치고 빠진다.
어쩌면 자칫 샛길로 뻗을 지 모르는 이야기를 칼 같이 끊어내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며 호통치듯 단호하게 막을 내린다.
거침없이 나가는 이야기는 결코 주저하는 법이 없다.
모자라는 듯해 보여도 절대 부족하지 않다.
아주 정교하게 조각된 이야기, 더 손 댈 곳이 존재하지 않는 그 자체로 완벽한 작품이다.

처음 <살인마 잭의 고백>을 읽었을 때만 해도 이 정도의 감동은 없었는데 총 4권의 책, 읽을수록 놀랍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작가 이름을 외우지 못해서 그 작가가 쓴 책인 것도 모르고 빌려왔지만 이제는 확실히 각인되었다.
다른 책들이 또 궁금해진다.
중간에 잠시 책을 덮었을 때 다음 장이 넘기고 싶어 안달할 정도로 재밌었던 책이었다.
정말,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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