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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평점 :
4.9
민음사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좋아한다.
17권의 책이 쌓이면서 각자의 이야기는 자신을 확실하게 드러내면서도 유사한 분위기를 띠게 되었는데 크게 보면 삶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일 이야기들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꾸준히 관심을 갖게 된다.
<딸에 대하여> 역시 나올 때부터 읽어 봐야지 생각했고 결론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이야기는 끝까지 엄마의 시점에서만 진행된다.
요양보호사인 엄마의 일상에 불시에 끼어들게 된 딸과 그 애로부터 자신이 돌보던 젠의 일생까지 모든 존재들이 만들어낸 불협화음이 묘하게 그녀의 생활을 잠식하게 된다.
엄마는 오래 전 허락도 없이 불쑥 아프리카로 떠난 뒤 독립한 딸이 갑자기 집으로 들어오겠다는 이야기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전국을 떠도는 시간 강사로 사는 딸이 서른이 넘도록 결혼도 않고 여자애와 지내는 게 못미덥다.
그녀에게 젊다는 건 어리석은 것이라 딸이 모든 상황을 조용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현실을 미처 모르는 탓이고, 평범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사랑을 주장하는 게 지나치게 많은 걸 배웠기 때문인 것만 같다.
매일같이 자신의 집에서 보란듯이 그 애와 지내는 딸이 유식한 깡패마냥 느껴지고 딸에게 받은 돈 때문에 할 말을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절망스럽다.
한편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후원을 보내며 다른 생을 수없이 구원했다는 젠은 그렇게 존경받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욕창으로 짓물러진 피부에 반 개의 기저귀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본인이 누구인지 온통 잊어버린 채 그저 살아있게 된 젠이 언젠가의 자신 같고, 혹은 딸 같아서 자꾸만 잘못된 것에 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리하여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쫓겨난 시간 강사의 일에 제 일 같이 뛰어드는 딸에 대해, 그 애에 대해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가장 귀중한 것을 나눌 이는 가족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엄마에게 테두리 밖의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버거워서 멀리 치워버리고만 싶은데 딸은 그것이 자신이라 주장하며 계속해서 눈 앞에 끌고 온다.
그렇게 젠과 딸이 내 세상 밖의 일을 내 것으로 만들어버려 그녀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그곳에 갇혀버렸다.
엄마에게 동성애자 딸은 당연히 버거운 문제지만 그 또한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살면서 나타나는 넘어가야 할 산 중 애써 돌아가며 무시해왔던 조금 높은 산이 비로소 눈 앞에 닥쳐온 것이다.
돈 때문에 집 안에 들이게 된 그 애의 존재가 점점 익숙해지고, 내 일이 아니라고 관망했던 일이 내 일이 되었다는 걸 점차 받아들이고,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딸과 그 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조금씩 산을 올라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딸을 이해하는 것은 기적이다.
언젠가 올 지는 모르지만 또 안 올 지도 모르는 기적.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싸우며 산을 오르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가족 임에도 남편을 닮아 타인 같은 딸이 그럼에도 가족이라 쉽게 놓을 수 없어 그저 붙들고 만다.
결국 그렇게 가족이, 삶이 자꾸만 산을 만들어왔다.
순탄하기를 바라며 생을 버텨가는 일 속에 끼어드는 모든 일들이 산이었고 짐이었다.
살아가는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이 세상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건 당연한 거고 내 삶이 티끌조차 되지 않는 걸 깨달은 지도 오래다.
그 모든 걸 기억하고 오랜 시간을 지나온 사람의 이야기다.
모든 걸 알면서도 나만은, 내 가족만은 해당되지 않기를 바라는 조그마한 이기심이고 그것조차 알지만 불가피하게 생겨난 마음이다.
이 책에서 동성애는 결코 단순한 소재가 아니었지만 결국 내게는 단순한 소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끊임없이 생에 대해 생각한다.
삶이란 어찌해서 이렇게 와버렸는지,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가는지.
젠이, 그린과 레인이, 엄마가 펼쳐놓은 삶이 저 먼 데서 다가온다.
그래, 이 또한 내 세상 밖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가가 원한 의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것만이 남아서 모든 것을 채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