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 개정판
주원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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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자리를 물려받듯 시작하게 된 국회의원, 그런 서희에게 어느날 강력반 형사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민서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민서는 서희에게 전남편인 상훈의 이름을 꺼내며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전해준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꼭 저런 말들로 화두를 던질 것 같은 이야기다. 손, 발, 귀, 입, 눈, 머리, 심장의 차례대로 조금씩 읽어나갈수록 형언하기 어려운 혐오와 공포를 드나드는 결말이 예상된다. 장면들이 눈 앞에 사실적으로 보이긴 하는데 도무지 그 핵심이라는 게 뭔지 종잡을 수 없다.

요즘 흔히 극장에 걸리는 범죄 스릴러 영화들과 비슷한 느낌.
썩 좋아하지 않는 장르다.
드라마 아르곤의 작가라해서 약간 호기심이 생겼고 또 무슨 드라마의 원작소설이라하니 읽어나 볼까 싶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청해버린 이벤트에 덜컥 당첨이 되었을 뿐이었다.

이야기는 상훈의 오른손으로부터 시작해 신재생에너지 사업, 조선회사의 파업, 파양당한 아이들을 돕는 종교단체로 까지 나아간다.
저 단어들만 나열해도 전모가 뻔히 보이는 그런 이야기가 맞다.
도대체 무얼 위한 건지 알 수 없는 죽음과 그리 위협이 돼보이지 않는 적들과 전혀 대단하지 않은 비밀 같은 허무한 매듭이 긴장을 없앤다.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은 전혀 없었고 누가 범인인지 궁금하지도 않않고 왜 죽었는지 왜 죽였는지 늘어놓는 말들에 냉소만 지어질 뿐. 결말마저 흐릿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드라마 회차정보를 찾아보니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던 것 같은데 뭐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다.
약간의 의무감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라 더 맞지 않았는 지도.
받았으니 읽어야지 하는 책임감, 이제 2019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무감 같은 것 말이다.
어쨌거나 올해 안에 저 책들을 다 읽기란 무리고 또 재밌어보이는 것들은 계속해서 등장하니 차근차근 읽어가야지.
돈주고 사서보려니 책 둘 곳도 없거니와 실패하면 속이 좀 쓰릴 것 같다.
고민해보자, 책 읽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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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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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참으로 오랜만에 책을 읽기로 하니 뭘 읽을 지가 고민이었다.
지난 1년은 나라는 인간이 힘들 때 가장 쉽게 놓는 게 책이라는 걸 여실히 깨달아버린 시간었다.
무려 365일이 지나 배부른 돼지가 되고 나서야 난 그걸 깨닫고 창피해졌다.
그래서 다시 읽는 책에 뭔가 거창하게 의미를 두고 싶은데 읽지도 않은 책에 무슨 수로 가면을 씌우겠나.
그래서 늘 어여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꺼내든다.
그렇게 다시 시작하려 한다.

44명의 신부들의 짧은 감상을 남긴 ‘웨딩드레스 44‘, 도쿄에서 소울메이트인 친구에게 전화를 건 ‘효진‘, 밴드에서 키보드를 치는 역사학도의 논문 주제가 될 뻔했던 ‘알다시피, 은열‘, 운명의 남편을 찾아준다는 비밀의 책이 담긴 ‘옥상에서 만나요‘, 갑작스레 죽어버린 언니로부터 시작된 돌연사맵 ‘보늬‘, 서울시때문에 한날 아침에 오늘에 멈춰버린 ‘영원히 77사이즈‘, 이스마일의 한국 생활기 ‘해피 쿠키 이어‘, 이혼하게 된 여자와 친구들의 이야기 ‘이혼세일‘, 두 국가의 전쟁 그 사이에 낀 ‘이마와 모래‘.
소설집은 9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없이 말했지만 아직도 난 단편집이 싫다.
그러므로 내가 읽는 단편집은 너무 유명해서 도저히 지나칠 수 없거나 너무 좋아하는 작가라서 읽지 않고는 못 배기거나 둘 중의 하나다.
정세랑은 이미 많이 유명해졌지만 물론 내겐 후자에 속한다.
‘피프티 피플‘이 제법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보건교사 안은영‘은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화될 예정이다.
키운 것도 아니면서 웃기게도 성장 과정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다.
이 책 역시도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작가로서 유명세를 떨치는 것도 그렇지만 그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날이 다듬어지는 이야기들이 만족감을 준다.
그래,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어 하며.

단편이다 보니 남는 문장이나 크게 각인된 장면은 없지만 그냥 굵직한 이미지들이 잔상처럼 맴돈다.
절망을 먹고 옥상에 머무르게 된 남편이나 유토피아처럼 달게만 그려지는 은열의 섬이나 이재가 달려와 건네준 누름돌 같은 게 슬며시 미소짓게 만든다.
뭔가 전체적으론 비슷한 느낌이긴 한데 각각의 색은 전혀 다르다.
이 책을 포함해 정세랑의 작품들은 대부분 연한 채도를 띠고 있는데 놓고 보면 그게 또 어찌나 다채로운지.
‘이만큼 가까이‘부터 여전히 참 군더더기없이 따사롭다.
잊고 지내다보면 문득 그리워지는 그런 아늑함이 있다.
그저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뿐인데 어느 틈에 위로를 손에 쥐고 있다.
언제 어디서 내민지도 모르게 아무 상관도 없는 위로가 슬며시 고개를 치든 우울과 분노를 살금살금 깎아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신간을 기다리게 만드는 작가다.

마지막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스스로 선택했지만 나조차 알 수 없다는 게 말이 안되긴 하지만 정말 나도 그때가 마지막일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 보니 마지막 글을 올린 게 작년 5월 13일이었다.
그로부터 열흘 뒤부터 어제까지 적응될 만하면 날로 높아지는 난이도에 허덕이며 1년하고 보름 정도를 지나왔다.
올해 들어서는 그 흔한 계획도 없었다.
너무 힘든데 또 그게 적응이 된 듯도 하고, 안정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묘하게 가까워진 듯도 한 그런 나날들.
그 속에서 나는 겨우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1년의 단절로 인해 어휘는 바닥을 치고, 연관은 없겠지만 매일 하는 말들의 발음도 자꾸 엉키게 되고.
그것도 그렇지만 그냥 다시 무언가가 읽고 싶었다.
보여지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캐내야만 하는 재미.
도서관은 멀어졌고, 검증되지 않은 책을 무턱대고 사기엔 방이 좁고, 전자책에 눈을 돌려도 봤지만 망할 안구건조 때문에 이북리더기를 사야하나 싶고.
아직 어떻게 책을 읽을 지 정하진 못한 채로 자석처럼 이끌리는 서점에서 한 두 권씩,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면서 인터넷으로 또 한 두 권씩 모은 책만도 거의 열 권은 되겠다.
그조차도 방치한 지가 벌써 두 달이라 일단은 그것부터 읽기로 했다.
운동을 시작하면 도서관까지 걸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 지도 모르지.
혹은 앉을 자리를 포기하고 지하철 환승역을 한 개 땡겨서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될 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좋겠다.
역시 난 내 일이라도 알 수가 없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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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O.S.T - 정재일의 작곡, 최우식의 노래 그리고 봉준호의 작사
최우식 노래, 정재일 작곡, 봉준호 작사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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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개봉하자마자 영화를 보러가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 대단한 감독에, 그 엄청난 수상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예측불가의 예고편을 본 이후로 나는 이 영화가 너무도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몰아치는 감정에 휩쓸릴 것만 같아서 아주 오랜만에 글을 남기고 싶었다.
책을 남기지 않은지도 오래지만 일단은 영화부터 다시 출발해보기로 한다.

두 가족,의 이야기.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아니, 어디서 어디까지 얘기해볼까.
스포일러없이 공개된 그 짧은 예고만으로 이 영화를 전부 설명하기엔 너무나 턱없이 부족하다.

채도가 낮은 색채들과 모든 상징을 담고 있는 소품들.
어둡긴 해도 거칠지 않은 눅진한 분위기.
선명하진 않지만 아주 뚜렷하게 보이는 이미지들이 시종일관 눈에 박혔다.
탁해질지언정 쨍쨍한 무언가들.
색깔은 당연하게도 상징적이다.
아니, 그 무엇도 상징적이지 않은 게 없다.

시종일관 우연과 계획을 섞어 이야기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만든다.
여기서 한번 튀고 저기서 한번 구르면서 주저없이 보는 사람을 끌고 간다.
분명히 여기선 이런 장면 하나쯤 나올 거 같지만 절대 나오지 않고, 이렇게 되겠지 했던 것들이 죄다 다른 방향을 향해버린다.
보는 내내 넋을 놓으면서도 한편으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그들이 심히 걱정스러워 진다.
흔하게 흘러갈 법한 부분에서마저 결국 색다른 길로 빠지는 그 수가 대단히 놀랍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과 부자이지만 불행한 가정, 혹은 가난해서 삭막한 가정과 부자여서 풍족한 가정, 빈부를 두고 봤을 때 우리가 떠올릴 만한 대립구도가 성립될 듯 말 듯 하면서 미묘하게 비껴간다.
그러나 지극히도 현실적인 이 이야기는 누구나 다 예상 가능한 지점에서 마치 사냥을 시작하듯 서서히 그 이빨을 드러낸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극도로 영리하게 극은 차차 소강에 접어들지만 길다면 길다 할 러닝타임 안에 숨은 이야기란 없다.
객석의 모든 사람들이 숨소리 하나 내지 않을 만큼 영화에 빠져들었고, 그조차 이 영화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끝까지 독특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경탄만을 남기며 참았던 숨을 몰아쉬게 만든다.
그리하여 끝에 이르면 이 영화가 상을 받은 이유와, 왜 이러한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고, 이야기가 어떻게 이렇게 흘러왔는지, 그 모든 걸 알게 된 듯한 기분에 일순간 사로잡힌다.
하지만 결국 내가 알고 본 것은 표면적인 것들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깊이에 잠식되는 것 같다.
아주 사실적이고 직관적으로 모든 걸 내놓았음에도 가랑비에 옷 젖듯 깊은 여운에 빠져들게 만드는 영화였다.

스포일러를 포함해 여러 해석과 주관들을 찾아보고 다니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장면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닌다.
마치 살아있는 이야기를 머리에 심어놓은 것처럼 그 소름끼쳤던 생동감이 지워지지 않아서 자꾸만 생각에 잠기게 된다.
찝찝한 영화가 싫다는 지인에게 그렇지 않다고 선뜻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내용보다도 이렇게 엉겨붙은 무언가가 너무 쉽게 끌려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할수록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감정이 섞여드는 건 콕 찝어 내가 어디에 있는 지를 알려준 덕분에.

엊그제 저녁 영화를 보고 어제 아침엔 비를 만났다.
오늘, 벌써 이틀이 지났지만 한동안은 날씨마다 생각 끝에 이 영화가 끌려올 것 같다.
그 자체로 온전해서 이야기의 전후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영화.
딱 하나의 이야기.
또 한 번 보고싶은데 과연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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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보이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박형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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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외계인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서 말했지.
“10월 28일에 폭우나 한번 내리게 해주세요.”

이 책을 읽게 만든 그 문장이 결국 이 책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10월 28일 그녀의 결혼식, 막지는 못하지만 비나 맞아라 하는 찌질함.
2주 간의 우주 체험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한 주인공은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는 우주대스타가 되었다지만 정말 지독히도 찌질한 인간이다.

이야기는 스페이스 보이가 된 주인공 김신이 무중력 훈련을 마치고 우주로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우주에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지구와 완전히 똑같은 공기와 빛으로 둘러 싸인 양호실이었고, 외계인이랍시고 자신을 마중나온 건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였다.
자신은 외계인이고 이곳은 우주가 맞으며 단지 김신을 위해 꾸며진 현실 공간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김신은 우주를 떠돈다.
생각만 해도 불려오는 칼 라거펠트와 간 카페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마주하고, 자신이 사용하던 일렉 기타를 연주하며 김신은 마침내 이곳이 자신의 뇌라는 걸 깨닫는다.
지우고 싶었던 기억을 마주하며 모든 것이 그녀이고, 자신은 그녀를 놓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김신은 기억을 지우지 않고 남기기로 한다.
2주 간의 우주 체험을 끝내면 이 모든 기억을 지우는 대신 하나의 소원을 들어주겠노라 말하는 칼 라거펠트에게 자신은 소원이 없으니 10월 28일에 폭우나 내리게 해달라 말한다.
모든 기억 속을 떠돌며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2주가 끝나고, 김신은 온전한 기억을 가진 채로 지구로 복귀한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질문들에 외계인의 기억 조작으로 암기된 답변을 술술 내뱉고, 연예인의 삶을 누리며 김신은 그녀를 찾아간다.
닿지 못할 곳으로 가버릴 그녀와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연극같은 삶이 줄줄 이어지며 시간이 흘러간다.
드디어 그녀의 결혼식, 화창한 하늘에 홀로 우산을 든 김신은 우주 체험보다 더 가상 현실같은 실제 상황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방송에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말들을 이어가며 비호감 이미지가 되어버린 김신은 어느 토요일, 로또 발표 15분 전 라이브 방송으로 로또 번호를 공개하기에 이른다.

뒷 표지의 소개글이 뭔가 두루뭉술하게 느껴지긴 했는데 전혀 이런 이야기일 줄 예상도 못해서 끝까지 당황했다.
우주는 그저 인간으로 살기 위한 요만큼의 첨가물에 불과했다니, 너무나도 다른 방향의 이야기라 굉장히 황당했고 어색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이야기인데다 짧은 추억 묘사 부분을 지나고 나선 거의 연예계 생활에 대한 좋지 않은 얘기들 뿐이라 작가가 연예인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나 싶을 정도다.
마치 일기를 쓰듯 짧은 문장으로 남겨지는 진행 방식 또한 간결하고 눈에 잘 들어오긴 하지만 연예계 생활 같은 긴 흐름의 이야기에선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혹시나 하며 네이버에 책 이름을 검색한 결과 뜻밖에 같은 내용의 단편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장르가 SF로 소개되어 있는 게 찜찜했지만 딱 36장의 전용뷰어로 끝나는 이야기에는 같은 내용이지만 2주가 아닌 5일 간의 우주 생활이 담겨 있고, 그녀는 만나지도 못한 채 신혼부부가 오픈된 웨딩카를 타고 떠날 날, 단 하나의 소원인 폭우를 내리며 끝이 난다.
물론 그 연예계 생활 역시 스타일리스트며 계약 연애같은 쓸데 없는 내용을 다 쳐내고 아주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아카시아 향을 뿌리던 향수 이름들과 함께 펼쳐지는 우주에서의 2주 간의 시간까지는 정말 독특하고 좋다고 느꼈는데 그 느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게 단편이었다.
단편을 읽고 보니 확실히 아쉬운 책이다.
사실 전기 충격 같은 일렉 기타 연주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그녀에 대한 기억 부분처럼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던 게 단편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부러 내용을 늘린 부분들은 전부 없어도 될 것들이었다.
묘사는 책이 조금 더 나은 듯하고 우주 부분을 조금 더 다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럼에도 둘 중엔 확실히 단편이 어울린다.
뜬금없이 통찰력을 준 것도 그렇고, 다시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후반부 내용도 너무 쌩뚱맞고 어이가 없었기에 그냥 폭우로 끝냈으면 좋았을 걸 싶다.
괜히 인간다움을 추구하네 어쩌네 하며 중2병 추억 같은 걸 끄집어 자꾸만 찌질해지지 말고.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확실히 우주와 뇌를 연결시킨 그 참신함은 기억에 남는다.
향수의 기억을 묘사하는 부분과 그물을 건져올리는 것들 역시 새로웠다.
그럼에도 출판사에는 미안하지만 단편이 저렇게 공개되어 있는 한 다시 이 책을 읽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단편을 추천하면 했지,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권유하지도 않을 듯하다.
참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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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상열심사
김순희 지음 / 이야기의숲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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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특이한 제목에 끌려 집어 들었다, 향토음식을 둘러싼 에피소드로 경북 스토리 콘텐츠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라는 소개글을 보고 빌려왔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그만큼 실망하지는 않았지만 전혀 내 취향이 아니란 건 확실하다.
음식 소개만이라도 제대로 해주었으면 좋았을걸.
사실 처음부터 내가 읽고 싶다기 보단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빌려왔었다.
요즘엔 다른 책에 빠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책은 딱 엄마 취향 같아서.
몇 번 재밌게 본 책을 읽어보라 권유했다가 죄다 실패한 뒤로 나도, 엄마도 서로 취향에 간섭하지 않고 있지만 이건 보자마자 엄마가 떠오르는 책이었다.
메인이 음식에 경북이니, 경주 출신의 요리하는 엄마는 분명 읽어보려 하지 않을까.

음식과 엮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너무나도 흔해서 그것만으로 높은 점수를 주긴 그렇지만, 어쨌거나 경북 특히 안동과 관련된 음식 소재 자체는 나쁘지 않다.
안동 찜닭이야 흔하다 해도 책에서는 보기 힘든 안동 식혜나 헛제삿밥, 보리굴비 정식 같은 건 확실히 신선하다.
특히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갑자기 등장할 줄은 몰랐기에 지루해지던 찰나에 눈이 번쩍 뜨였다.
올해도 여름쯤 되어야 아오리는 언제 나오나 떠올리고 목 빠지게 기다릴 텐데 뜻밖에 책에서 먼저 만나는 바람에 그 맛이 벌써 생각나버려서 큰일났다.
하지만 소재가 아깝게도 아오리 사과로 희한한 생각을 펼쳐 간 것도 그렇고 이후 에피소드들도 영 재미가 없어서 그냥 대강 읽어버렸다.
이야기를 진행하려면 차라리 쭉 풀어 놓지 여기서 끊었다 저기서 붙이고, 이리 튀고 저리 튀고 난리가 났다.
이왕 좋은 음식들로 이야기를 쓸 거면 조금 더 깊게 들어가지 이렇게 스치기만 한 정도로 무슨 흥미가 생길지 모르겠다.
음식과 딱 맞는 에피소드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물이 특이한 것도 아니고, 그냥 휙휙 넘기고 보니 그닥 기억남는 이야기도 없다.
가장 좋았던 건 그나마 처음 안동 식혜라서 그 후 점점 지루해지는 이야기들 때문에 그 재미까지 퇴색돼 결국 실망만 남는다.
엄마한테 책을 넘길지 말지 고민된다.
재미라도 있든가, 아님 음식이라도 맛깔나게 잘 담아내든가, 하다 못해 로맨스라도 잘 끼얹어보지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어서 망설여진다.
아무리 나와 다른 취향을 가졌다 해도 과연 엄마는 이 책을 좋아할까.
아무래도 이 책으로 엄마와 나의 취향 차이가 확실해지지 않을까 싶다.
날 잡아서 결론을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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