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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평점 :
<일상이 사투가 된 혐오와 폭력의 세계에서 소녀 어밀리아와 ‘평범한‘ 이웃들이 살아가는 법>
그 간단한 한줄의 소개로 내용을 어림짐작만 하다가 세계사에 무지한 독자를 위해 친절히 사전지식을 알려주신 편집자님의 편지 덕에 배경을 확실히 인지한 채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첫장을 열었다.
초반부터 너무 잔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라면서.
trouble이라는 단어로는 검색이 어려워 나름 브리태니커까지 들어가서 살펴보긴 했는데 편집자님의 편지 내용을 빌려 요약하자면 이렇다.
북아일랜드 분쟁(Northern Ireland conflict)이라고도 불리는 The troubles은 지리상으로는 아일랜드 섬에 속하나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에서 1968년에서 1998년까지 아일랜드와 재합병을 원하는 로마 카톨릭 세력과 영국에 그대로 남아있으려는 개신교 세력 간의 충돌을 뜻하는데, 1998년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 주도로 해소되기까지 3600여 명이 사망하고 3만 명 이상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그리고 이 책은 작가가 어린 시절 실제 나고 자란 ‘아도인‘ 지역을 배경으로 트러블의 현장을 직설적으로 그려낸 글이다.
책에는 말 그대로 ‘어밀리아 보이드 러빗‘과 그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이 짤막하게 시간순으로 담겨있다.
일곱 살, 트러블이 뭔지도 모른 채 또래와 골목에서 노는 일이 일상인 나이부터 학교에 가고 점점 더 많은 것을 알아가며 그만큼 많은 것을 보게 되는 나이까지, 어밀리아는 자라면서 그 주변 사람들과 동화되는 한편 튀어나오고 고개를 돌리다가도 이내 수그러지고 만다.
저 멀리서 지켜보는 입장에선 초반 트러블(The troubles)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맞닥뜨린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그렇게까지 팍팍해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화자의 나이 탓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쌓인 균열이 심해져서인지 갈수록 괴물들의 모습을 빌려 현실화되는 재앙에게 각자의 삶이 위압받는 게 인상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사실 트러블보다 당장 눈앞의 또래 관계가 더 중요하고 먹고 사는 게 더 큰 문제라서 당장 이것만 붙들고 싶은데, 자꾸 트러블이 눈앞에 끼어드는 판에 해결 방법은 요원해지고 문제는 더 불어터지고 만다.
당장 지켜줄 성인 남성 한 명 없이 집에 숨어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는 초반에는 적이 트러블인지 강도인지 구분되지 않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까지도 거리낌 없이 신교도와 구교도를 나누어 서로를 낮잡아 부르며 갈등을 빚는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트러블이 대두되기까지 책은 시종일관 담담하게 비참한 일상을 그리면서 중간 중간 시간을 생략하여 그 틈새의 잔혹함을 상상하게끔 만든다.
그리하여 책에는 동기 없이 일어나는 범죄들의 폭격으로 온갖 폭력과 죽음과 함께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총이 장난감이고 살해가 놀이가 돼버리는 상황과, 와중에 평범함을 꿋꿋이 누려간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이켜보면 피범벅된 난장판을 자세만 바로한 채 걷고 있을 뿐이었던 괴리가 도처에 산재해있다.
전쟁에 대한 감상은 차치하고 문득 기후 변화에 따른 생태계 위협 역시 비슷한 모습의 결과를 낳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오존층 파괴며 북극 빙하가 녹는 거며 그런 아득하게 먼 이야기 말고, 기후가 변해서 당장 내일 세상이 멸망하는 게 아니라 감자가 사라지고 밀가루를 못 구하고 식용유가 없어지는 등의 작다면 작은 변화들로 우리는 결국 삶을 구성하는 요소를 100퍼센트 영위하지 못하는 채로 죽어가게 될 거라는 것.
한편 꽉찬 두 해를 넘기고도 완전히 종식되지 못한 한 전염병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바깥을 나갈 줄 모르는 아이들을 만들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남겼고, 그건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해맑았을 어밀리아와 겹쳐진다.
그것은 또한 내 어린 시절 어떤 선거날을 떠올리게 하는데, 당선 확정 마크를 보다 절망하며 잠에 들었다 일어났는데 웬걸 예상했던 것처럼 하루만에 나라가 끝장나진 않더라는 이야기.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사소해보이는 저런 변화들이 때때로 하루 만에 세상이 망하는 것보다 더 고달픈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까 예기치 못한 재앙은 항상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좀먹는 듯하다.
생각 외로 별 거 아닌가 하고 방심시켜 놓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뜨거운 물을 빼앗고, 찬물에 씻는 것에 적응할라치면 또 쌀을 없애고, 라면이 물리긴 해도 배고픔이 가시는 건 똑같다고 위안삼으며 익숙해지면 결국엔 등불마저 꺼버리고 마는 거다.
그쯤 가선 삶이 반토막난 게 여실히 와닿는데 그렇다고 바람을 막아주는 집을 버리고 생을 포기하기엔 한참 이르다.
그렇게 그저 주어진 만큼만 살아지고 마는 것.
전쟁을 겪지 못한 내게 재앙은 죄 그런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기실 어밀리아와 주변 인물들의 삶이 모두 와닿을 리 없다.
고단해져가는 삶이 못된 방법으로 모두에게 영향을 미쳐 결론적으론 약자에게 여러 방법의 폭력으로 가해지고 마는 현실.
애써 모든 삶의 경험을 빗대어 이해하려 노력해도 어쨌거나 그 시간을 겪지 못한 자는 결코 알 수 없는 짐이 그들에겐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 짐의 무게를 뺀 만큼이라도 내가 가질 수 있다면 성공일 텐데 책이 그리 쉽지가 않다.
그나마 화자가 어밀리아일 때는 주욱 흐름을 따라가기가 편한데 화자의 성격따라 험악한 사건들이 너무 태연자약하게 밀려와서 소화가 버겁다.
특히나 절반 정도의 내용만 있는 가제본의 마지막 장에서 빈센트가 글의 주도권을 잡으면 이게 도대체 뭔가 싶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착란이고 현실인지 구분이 안되는 모호함과, 글을 읽는 내내 사정없이 흔들리는 카메라로 현장을 쫒아가는 긴박감이 멀미를 일으켜서 얼른 결말을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싶다.
아니, 진짜 이러고 끝나면 저는 이제 어쩌죠?
출간되고나면 <밀크맨> 역시 같이 읽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이 든다.
<노 본스>를 읽고 <밀크맨>을 읽으면 확실히 그 핍박받은 30년 세월의 손톱만큼은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마침 <노 본스>의 출간 기념으로 <밀크맨> 또한 리커버 특별판이 출간되었다니 두 권 모두 세트로 소장하기 좋을 듯 하다.
아무튼 전부 읽고 나서 다시 글을 남겨야지.
온전한 소설의 끝을 맞이해야지.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가제본을 읽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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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은 목요일에 시작됐다. 저녁 6시에. 그런데 어밀리아는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하루하루 날짜를 꼽고 있어서 알았다) 정말 그런 게 일어나고 있는지 확신이 안 들었다. 아직 여기에서 그대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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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선생, 배넌 선생님인가 누군가는 용감하게도 5학년 교실 창문에 매달려서 ˝무식쟁이들! 아일랜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지도에서 아일랜드가 어딘지 찾지도 못하잖아!˝라고 외쳤는데 사실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밤에 집에 갈 때 그 지역을 지나가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집이 그 지역에 있지 않으니까. 그러니 아일랜드에 대해 알건 모르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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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왜 열여섯 먹은 아이가 60년, 70년 남은 시간을 살고 싶어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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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처참한 일이다, 끔찍한 일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영영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 모든 일이, 언제나 그렇듯, 그다음의 새로운, 과격한 죽음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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