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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4.3
작년 여름 서점에서 읽다 만 책이었는데 그 뒤로 손이 안 갔다.
워낙 단편을 싫어하기도 하고 그즈음 서점에 놓인 베스트셀러들은 거의 다 비슷비슷하게만 느껴져서 하나로 뭉뚱그려 저 멀리 치워버렸었다.
이제 와 다시 집어든 이유는 변덕스러운 성격과 빌릴 책이 없던 것, 그리고 김애란이기 때문이었다.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까지 총 7개의 짧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이다.
첫 이야기 ‘입동’이 다시 읽어도 참 좋았다.
아이를 잃고 난 후 집의 도배를 새로 하는 이야기, 단순히 보면 입춘이 되어야 할 제목이 입동이라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전에 ‘노찬성과 에반’까지 읽었던 것 같은데 쭉 이어서 모든 이야기를 읽고 나니 그때보다 더 정리가 안 되는 기분이다.
‘풍경의 쓸모’,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두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약한 인상을 남겼다.
단편은 꼭 이야기들끼리 경쟁을 붙여놓은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 이야기들이 한 데 묶인 이유를 모르는 나는 자연스럽게 별로였던 이야기를 꼽고, 그렇게 비교하고 나면 왜 좋았는지 혹은 왜 나빴는지 그 이유조차 모르게 된다.
그러니까 단편은 나와 안 맞는다는 걸 또 다시 읽으면서 느끼고 만다.
무언가를 잃는 이야기들, 상실이 키워드일까 싶었다.
그런데 단순히 잃는다고 보기엔 거기서 끝나는 이야기는 ‘노찬성과 에반’, ‘가리는 손’ 정도이고 나머지는 약간이나마 그 뒷 이야기가 덧붙여 있다.
상실이 주된 소재인 건 분명해보이지만 그것만은 아니기에 이야기가 묶인 이유와 제목의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다.
정말 단순히 바깥은 여름인데 안은 그렇지 않다는 걸까.
제목 표지는 좋았는데 단편집이라고 써져 있지 않은 것도 읽다 만 이유 중 하나였다.
하나의 이야기인 줄 알고 기대에 차 읽었는데 단편인 걸 안 후의 허무함이 컸다.
김애란 작가의 책은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두 번째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책이 주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영화도 챙겨봤었다.
그리고 아마도 학생 때 독후감 이후로 처음 쓴 감상문이 그 책의 것이었다.
무엇 하나 다루기 쉬운 게 없는 이야기인데도 너무 쉽게 흘러간다고 썼었다.
그에는 못 미치지만 ‘침묵의 미래’에서 비슷한 무언가를 찾은 것도 같다.
혹 기대하지 않더라도 언제고 찾아 읽을 수 있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 말에서 빠져나온 숨결과 기운들로 이뤄진 영이다. 나는 커다란 눈이자 입,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이다. 나는 단수이자 복수, 안개처럼 하나의 덩어리인 동시에 각각의 입자로 존재한다. 나는 내가 나이도록 도운 모든 것의 합, 그러나 그 합들이 스스로를 지워가며 만든 침묵의 무게다. 나는 부재의 부피, 나는 상실의 밀도, 나는 어떤 불빛이 가물대며 버티다 훅 꺼지는 순간 발하는 힘이다. 동물의 사체나 음식이 부패할 때 생기는 자발적 열이다.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어디 살까.
나는 구름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분방해 시시각각 어디로든 이동한다. 그러다 나와 비슷한 것과 쉽게 결합한다. 다른 영과 만나 몸을 섞는다. 몸을 불려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그늘로 단어에 수의를 입힌다. 나는 시원이자 결말, 미지이자 지,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닌 노래다. 나는 이렇게밖에 나를 설명하지 못한다. 다른 부족의 몇몇 문법을 빌려 말한대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뚜렷한 얼굴이나 몸통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안다.
나는 나무에 그려지고 돌에 새겨지며 태어났다. 내 첫 이름은 ‘오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 나를 점점 ‘이해’로 만들었다. 나는 내 이름이었거나 내 이름의 일부였을지 모를 그 낱말을 좋아했다. 나는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단수이자 복수, 시원이자 결말,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닌 노래다.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이다. 내 몸은 점점 붇고 이름 또한 길어져, 긴 시간이 흐른 뒤 누구도 한 번에 부를 수 없는 무엇이 됐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이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동력, 쓸모 있는 죽음, 단지 그뿐인 채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