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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
로런 그로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4.2
작은 꼬마 비트는 아빠 에이브, 엄마 해나와 함께 핸디가 이끄는 자유민 무리 속에 있다.
또래보다 작은 비트는 모든 어른들에게 보호받으며 친구들과 어울리며 아르카디아에서 살고 있다.
아르카디아의 시작은 평원의 버려진 건물들이었고, 핑크 파이퍼라는 2층 버스로 전국을 떠돌던 비트족은 임시 거주지를 지나 아르카디아를 세웠다.
핸디가 음악 투어를 떠난 3달 간 에이브가 무리를 이끌어 모두 함께 복원해 낸 아르카디아는 모두의 낙원이 되었다.
우울증을 앓아 겨울이면 깊은 동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해나와 모든 아픔에 깊이 빠져들며 말을 잃어가는 비트, 그러나 비로소 완성된 아르카디아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기로 스스로 결심한다.
태양의 도시, 헬리오폴리스, 축복받은 자의 섬, 지상 기쁨의 정원.
각 장마다 약 10년 씩의 간격이 있어서인지 이야기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소년, 청소년, 청년, 중년의 비트가 등장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사실 비트를 주인공으로 보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분명 스스로 자신이 겪은 일과 과거, 현재 모든 사건들을 풀어내지만 완전히 모든 일의 당사자라는 느낌보다는 일정한 간격 뒤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처럼 이야기는 서술된다.
물론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게 예를 들면 첫 부분을 읽었을 때만 해도 나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느낌은 <여덟 개의 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라바>로 변해갔는데 결국 이 책은 <사라바>와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서술이나 시점이 다르다는 걸 확실히 느낀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아르카디아를 주인공으로 보면 맞아떨어진다.
아르카디아의 탄생과 몰락, 그 후의 이야기를 계승자이자 가장 작은 히피 조각인 비트를 통해 보여주는 방식이라면 그토록 어지럽고 캄캄한 이야기들 속에서 따뜻한 제목을 붙인 이유도 설명이 되는 것 같다.
프롤로그에서 비트가 태어나기 전의 평화로운 묘사들이 아르카디아의 이상향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들이 원했던 태초의 아르카디아는 아르카디아가 생기기 전 이미 존재했었다는 걸 마치 낡은 영상처럼 펼쳐지는 첫 장면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비트의 첫 기억이지만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그 때가 바로 모두가 행복했던 아르카디아였다.
몇 천 명까지 불어났던 사회가 탄생하고 몰락하는 과정이 탄력적으로 한 눈에 들어오게 그려진다.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눈을 빌린 간접적인 서술이지만 끝까지 그 사람 속에서 존재하는 아르카디아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화자는 중요하다.
아르카디아가 완전히 몰락하고 뿔뿔이 흩어진 식구들과 도시로 와 새롭게 적응해 가는 가족들의 모습은 과거 회상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중요한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빨리감기처럼 두 배 혹은 세 배의 속도로 다 흘려버려 남겨진 내용까지 어색해진다.
각 장에 포함된 이야기가 탄생, 몰락, 망각, 소멸이라고 보면 왜 그렇게 부차적인 이야기들이 많고 정작 궁금한 것들은 숨겨지는지 모르겠다.
답답할 정도로 애태우던 걸 다음 장에선 완전히 잊은 듯 행동하질 않나 아니면 또 이상한 부분에서 혼자 화를 낸다던가, 아무리 시간의 흐름으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동조하기 어려운 감정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도 떨어지고 내용이 와닿지 않는다.
뭘 말하려는 지는 알겠는데 눈 앞에 보이는 게 다라서 거기까진 다 읽히지 않는 책 같다.
잘 못 읽은 것 같기도 하지만 모르겠다.
문장들이 아름다워서 꼭 하나의 신화를 보는 듯했는데 그래서 갑자기 현실화된 후반부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유토피아와는 달리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의 삶을 뜻하는 아르카디아, 그리고 그들의 아르카디아의 탄생 배경이 된 ‘Et in arcadia ego’라는 말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정확한 결말이 있을까 싶다.
아르카디아가 없는 세상이야말로 진정한 아르카디아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