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
가와사키 소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3.0
반년 전 누군가가 밟은 지뢰로 인해 경찰청 내부에서 대규모의 인사이동이 일어났고, 외사과에 근무하던 다나카 겐이치는 불시에 시고쿠 촌구석의 경찰서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이리저리 휩쓸리는 성격이지만 공부만은 잘해서 그저 주변에서 하는 대로 따라오다보니 도쿄대를 졸업해 국가공무원 시험을 통과해 경찰청까지 오게 되었다.
평범한 관료인 채로 해외 출장비 산정 개정 시안 같은 걸 담당했을 다나카는 하필 관내에서 살인사건이 2건이나 발생한 지금 경찰서장으로 부임해 들개 같은 현직 형사들 사이에서 주눅들어있다.
15년 전 일어났던 1건의 살인 또한 동일범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져 수사 본부는 한층 심각한데 취미인 프라모델 이외엔 아무 생각이 없던 다나카는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은 혼잣말로 주임 수사관 교체를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그 이후 자신도 모르게 사건에 계속해서 개입하게 되고 조용히 1년만 지내다 가려는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다나카는 연이어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하며 경찰서의 영웅이 되어간다.

주인공이 무슨 말을 내뱉든 찰떡같이 알아듣고 혼자 실마리를 찾아 사건을 해결해가는 부하로 인해 얼떨결에 영웅이 되는 이야기, 한 편의 시트콤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시골 변두리의 작은 경찰서에서 연쇄살인, 테러, 절도품 국외반출, 연쇄방화 같은 엄청난 사건들이 줄지어 터지고 심지어 주인공의 남동생은 어마어마한 신부를 맞이해 피로연 자리에서 무장 괴한의 인질극까지 만나게 된다.
프라모델과 연결해 한 편씩 진행되는 사건들은 그 규모에 비해 너무나도 쉽게 해결되어 버리고 모든 공은 역시 주인공에게 돌아간다.
다만 그 사건들을 겪고도 주인공 머릿 속에는 프라모델 밖에 없는 건 변하지 않고, 결국 사건 해결은 모두 들개들의 몫이다.

너무 말이 안 되니까 장난 같게만 느껴진다.
표지랑 속지가 신선해서 좋았는데 내용은 딱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 같다.
각 에피소드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범인의 혼잣말도 유치하게만 느껴지고 꽃을 든 여자만 보면 살의를 느끼는 범인 같은 설정도 웃기기만 하다.
표지가 귀엽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꼭두각시 노릇만 하는 주인공을 제대로 그린 듯도 하다.
아무튼 <바봇>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표지 디자인만 보고 골랐다가 낚인 셈이다.
그리고 내용의 부족함을 떠나 결정적으로 일본 해군 군함 프라모델을 소재로 한 책이라 별로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어떤 활약을 했고 침몰했고 하는 배의 역사를 줄줄 읊으며 그 모형을 조립하는 꼴이라니 참 뻔뻔하기 그지 없다.
책의 감상을 적을수록 자꾸만 감정을 섞어 불만만 늘어놓는 것 같아서 자제하려 했는데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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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남녀
나혁진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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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주소만 강남일 뿐 낡고 낡은 낙원아파트에 2년 전, 하나의 살인 사건과 또 하나의 살인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개포동 사건으로 불리며 대규모의 수사 인력이 잠시 동원되기도 했으나 연쇄 살인인지 별개의 범행인지도 추려지지 않는 채로 사건은 미궁에 빠졌고, 2년이 지나도록 범인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는 채로 방치되었다.
유지혜는 2년 전 살인 미수의 피해자로 사건 당시의 기억은 하나도 없지만 여전히 칼로 찔렸던 후문 근처에는 얼씬도 않고, 밤과 낯선 자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며 PTSD에 시달리는 중이다.
사건으로 인해 다니던 자전거 회사의 비서를 그만두고 학원 영어 강사로 일하는 유지혜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6월의 날씨에 바바리 코트를 걸친 수상한 남자를 보게 된다.
그 수상한 남자가 술자리에서 자신이 여전히 불안함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몰래 듣고 집 앞까지 쫓아와 범인을 잡자고 하며 명함을 건네고 간 다음 날, 명함의 블로그를 통해 그가 서울대 공대 연구원으로 범죄를 해결해 표창까지 받은 사실로 신빙성을 얻은 유지혜는 탐정 강마로라는 부실한 명함에 속는 셈치고 전화를 건다.
그렇게 아마추어 탐정 강마로와 피해자 유지혜는 주변을 탐색해가며 2년 전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둘은 살인 사건의 피해자인 최순자와 유지혜의 공통점인 낙원아파트의 봉사단체, 낙원회의 회원 8명을 용의자로 선정해 2년 전의 그들을 추적해가며 각자가 숨기려 했던 진실들과 비밀들을 조금씩 드러낸다.
나귀가 사자 행세를 하다 들켜 맞아 죽었다는, 최순자가 죽기 전 회식 자리에서 말한 이솝 우화를 동기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과연 누구일지, 왜 아무 상관 없는 유지혜를 칼로 찔러야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는 아주 뜸을 들이며 답을 미룬다.
가십 거리에 환장하며 이리저리 소문 퍼뜨리기 바쁘던 최순자를 죽일 사람은 많아보여도 유지혜를 죽일 사람은 전혀 감도 오지 않는다.
하지만 뻔하다면 뻔할 수 있는 범인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아무 징조없이 확 터뜨려버리는 방식으로 이야기는 반전을 꾀한다.

추리 소설인 것 치고는 그리 탄탄하지만은 않은 듯한데 라이트 노벨인 걸 감안하면 읽는 재미는 충족시켜준다.
어차피 배경이 아파트라 다른 범인을 끌고 와 스케일을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 좁은 봉사 단체 안에서 온갖 버라이어티한 일들이 펼쳐지는 것 정도는 코난이 가는 곳마다 살인이 일어나는 거나 비슷하게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피해자로서의 유지혜나 탐정으로서의 강마로의 캐릭터는 지나치다고 할까 어설프다고 할까, 아무튼 완벽한 등장인물의 역할을 못 해내는 듯하다.
학원 강사 취재를 하기 전에 PTSD 환자들의 취재를 하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살인이 아니라 폭행과 학대만 해도 피해자에게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엄청난 후유증을 남기는데 하물며 살인미수의 범죄가 남긴 피해가 고작 일을 할 수 없어 그만두고 갑자기 꺼진 불에 비명을 지르는 정도로 그려지는 건 정말 아니다.
신경 정신과에서는 이만하면 괜찮다 말할 정도라 하지만 어두움에 불안을 느끼면서 가족들이 일찍 들어오라는 재촉에는 화를 내는 주인공은 방어 기제로 기억 상실까지 일으킨 트라우마가 무의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거기에 탐정이라는 또 다른 주인공과의 만남을 그리는데 그런 피해자를 술자리부터 집 앞까지 쫓아오는 설정이라니 정말 아주 많이 별로였다.

범죄 동기, 범행 방식 같은 게 한 번에 그려지지 않는 건 아파트 단지의 구조 탓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따라가기 귀찮게 느껴진다.
뭔가 깔끔하게 떨어지기 보다는 쓰잘데기 없는 게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각 회원들의 인물 설정은 눈에 확 들어온다.
공군 대령 출신의 회장, 음대 교수, 드라마 작가, 30대 부부, 가수 지망생 중 사람을 목 졸라 죽이고 칼로 찌른 사람은 누구였을까.
파헤쳐지는 과정과 드러난 비밀과 실제 범행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은 들지만 그 짜여진 판 자체는 마음에 든다.

표지가 색다르다고 좋아했던 책들이 모두 라이트 노벨인 걸 알고 보니 더 이상 손이 안 갈 것 같다.
예쁜 표지들이 더 나왔으면 했는데 일반 소설에서 표지의 다양성을 기대하기는 힘든가 보다.
그래도 비슷한 느낌의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보다는 제목부터 완결까지 이 책이 확실히 더 낫다.
사건의 당사자인 피해자가 주인공인 것도 그렇고, 경찰은 무능력한 집단인 건 매한가지지만 경찰이 제 3자에게 수사 자료를 유출하는 것보다야 못 미더워도 탐정이 조사하는 게 나은 것도 같고, 애인과의 사연보단 형에 대한 질투가 더 현실성 있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딱 적당한 라이트 노벨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본의 라노벨에 비하면 조금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 많이 아쉽지만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니 희망을 가지는 계기로 삼는 수 밖에.
정통에 못 미치는 완성도에 캐쥬얼을 섞어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들만 쏟아내지 않고, 무언가를 의식하고 따라하지도 말고, 가는 방향은 같지만 마치 편법처럼 지름길로 빠져버리는, 재밌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보고 싶어진다.
뻔하지 않은 이야기, 그때가 되면 예쁜 표지들을 마음껏 집어들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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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곽재식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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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요즘은 도서관에서 빌리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일도 드물고, 재밌겠다 싶어 빌린 책들도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이 많아 약간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든다.
재밌는 게 나타나지 않으면 절대 깨지지 않을 독서의 매너리즘이다.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아주 많이, 매우 싫어한다.
그러니까 장르로 따지자면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닌 공포, 호러 쪽 이야기는 거들떠도 안 본다.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텐데 이 ‘무서운’이라는 단어를 붙인 책은 묘하게 끌렸다.
아마도 그런 이야기라면 바로 덮어버렸을 나 같은 사람에게 아주 적합한 이야기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문제편, 풀이편, 해답편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한규동이 이인선의 회사에 면접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끈질긴 구직 끝에 겨우 맛본 면접 통보에 달려 온 한규동 앞에는 예전 학원 건물이었다는 증거로 수많은 책상과 의자가 늘어져 있고, 이인선이 먹다 남긴 것으로 보이는 탕수육 같은 쓰레기들이 너저분하게 놓여진 회의실에서 면접은 시작된다.
불합격과 합격을 동시에 바라게 된 한규동에게 이인선은 자신이 아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 주변에서 기가 막히게 돈을 번 이야기, 바람 난 이야기 중 가장 길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라 한다.
한규동은 전에 다닌 회사 이야기를 하며 돈 번 이야기를 해야지 생각하다가 3가지라 해놓고 까먹었다 뒤늦게 대충 덧붙인 바람 난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또 얼마 전 헤어진 전 여자친구 이야기를 할까도 했지만 이내 아무 것도 아닌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로 선택하고 이인선에게 말한다.
그렇게 그가 아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1940년대 한 의류 공장의 사장 임만섭은 사람들이 일본을 칭송하며 돈을 쉽게 버는 걸 보고 돈으로 전쟁을 치하하는 글을 사 일본군에게 낭송해 그들의 납품을 담당하게 되었다.
주로 자폭하는 군인들이 마지막으로 쓰는 두건이나 휘장을 제작하게 된 임만섭의 공장에 십대의 한 여자 직원이 들어와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수많은 물자를 찍어대며 일을 하던 중 계속해서 생산량은 늘어만 가고 직원들이 한계를 맞이 하자 임만섭은 더 많이 일하는 직원에게 상금을 건다.
그렇게 일하던 중 한 성실한 직원이 사고를 당하고 부상을 입자 임만섭은 슬퍼하며 다른 방법으로 직원들에게 각성제를 투여하기로 한다.
주사를 맞은 직원들의 능률이 오르고 계속해서 생산량은 늘어만 가는 와중에 임만섭은 더 큰 세상을 경험하라고 일본 국적으로 미국에 보낸 자신의 아들이 수용소에 갇혔다는 편지를 받고 크게 절망한다.
아들이 죽었다 생각한 임만섭은 낙심하며 전쟁을 열렬히 지지하게 되었다.
치사량에 준하는 약물 투입으로 점차 사망하는 직원들이 발생하고, 그들은 죽기 직전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다 호흡이 마비되며 사망에 이르는 공통점을 보인다.
그리고 이름은 알려지지 않는 그 여자 직원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에게 만약 자신이 환호성을 지르게 되면 자신을 깨우려 하지 말고 다량의 약을 주입해달라 부탁한다.
임만섭이 전쟁이고 뭐고 반쯤 미쳐 물건이 쌓이도록 생산량에 집착할 때 그 직원이 마침내 환호성을 질렀고 직원들은 모두 그녀에게 다가가 주사기로 약물을 주입했다.
피를 흘리며 점차 떨리는 몸으로 그녀는 한 번 더 부탁했고 그렇게 두 번의 약을 주입한 그녀는 결국 살아남았으며, 그 결과 인간의 사고를 초월해 사람이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전해진다.
일본이 패망하자 임만섭은 먹을 것을 들고 도망가기 위해 음식물 창고로 가, 되는 대로 음식물을 손에 쥐었고 그 모습을 본 그녀는 임만섭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어차피 죽을 것이니 죽기 전 며칠 간이라도 보람차게 보내자, 그 말을 들은 임만섭은 그것이 자신에게만 주어진 기회라 생각하고 빈 건물에 여러 가지 것들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공장의 불을 끄고 모든 사람들이 빈 건물로 들어 가 문을 잠궜고 아무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죽은 줄 알았던 임만섭의 아들이 미군의 탱크를 타고 잠긴 문을 열었을 때 그들의 눈 앞에는 거꾸로 매달린 직원을 중심으로 그녀의 머리카락과 함께 길게 늘어진 검은 실과 그것을 입에 물고 있는 한데 뭉쳐진 사람들의 기괴한 형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후로 아들은 번창하며 공장을 넓혀갔지만 모든 흔적을 지운 그 건물만은 사용하기를 거부했다.
그의 큰 딸이 공장을 물려받고 그 직원들에게 알음알음 퍼져있던 소문이 구체화된 건 키 큰 여자와 대머리 남자가 우연히 그 건물에서 그 이야기를 한 순간 거꾸로 매달린 귀신을 보았던 일 때문이었다.
그렇게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모두 무언가를 목격하며 도망가기에 바빴고 이야기에 문제가 있다는 그 진상을 밝혀낸 건 한 방글라데시 유학생이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증거를 발견하게 되는 패턴을 분석한 유학생은 그것을 자신의 모국어로 번역해 들었을 때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한국어로 이 이야기는 사람에게 정신 착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는 이야기.

이야기가 진짜 같아 좋다는 이인선은 이 이야기를 팔자며 한규동에게 합격했으니 내일 나오라는 말을 전한다.
고민하던 한규동은 결국 다음날 출근하고 이인선을 찾아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가 민물고기를 사는 걸 구경한 다음 이인선이 찾아 낸 그 공장에 따라간다.
기자는 아니지만 취재를 해 신문사에 아이템을 파는 일을 하는 회사인 걸 알게 되고 가장 잘 팔리는 건 몸매 노출이지만 그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덤비기에 자신들은 무서운 이야기, 돈 번 이야기, 바람 난 이야기를 다룬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공장에서 민물고기의 사용처도 알게 되고 실존하는 그 건물에도 들어가 보게 된 둘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거꾸로 매달린 웃는 얼굴을 목격하고 부리나케 도망친다.
겁먹은 한규동을 달래 이야기의 출처라는 전 여자친구 장혜경도 만나 이야기를 듣지만 여전히 그것의 정체는 알 수 없는데, 다시 확인하기 위해 들른 공장에는 이인선의 전 남자친구이자 그녀에게 민물고기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는 김 기자의 상사 오 차장이 서 있었다.
임만섭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으러 왔다는 오 차장과 김 기자를 피해 건너편 산으로 온 그들은 그곳에서 무당들을 만나고 한규동은 더욱 겁에 질린다.
조용해진 틈을 타 다시 들어간 건물 안에는 탐사 장비를 가진 오 차장이 아직 있었고 티격태격하는 그들 앞에 다시 거꾸로 된 얼굴이 나타난다.

다음 날 다시 공장으로 향한 그들은 방글라데시 말을 하는 인턴 학생을 앞세워 공장 직원들을 탐문하며 예전에 한 직원이 그 귀신이 나오는 시간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다시 얼굴을 내민 오 차장 뒤로 키 큰 여자와 대머리 남자를 발견한 이인선은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한규동 대신 오 차장과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만 키 큰 여자와 대머리 남자는 놓치고 만다.
대신 탐사 장비로 벽면을 쏘아보던 이인선은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 자연스레 오 차장과 거래하며 보수를 정하던 중 다시 거꾸로 된 얼굴이 등장한다.
눈도 못 뜨는 한규동에게 입모양을 가르쳐주며 한 번만 다시 보라는 이인선의 말에 한규동은 겨우 눈을 떠 확인하고 이인선은 모두에게 그 정체를 털어놓는다.

귀신처럼 보이는, 그런 이야기를 3분의 2가 되도록 진행시키는 데도 나는 전혀 겁에 질리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보니 장면들이 섬뜩한데 읽을 때는 한규동이 대신 놀라서인지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심지어 그걸 목격하고 도망치는 장면인데 웃음도 난다.
진짜 재밌는 책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환상적인 내용을 다룬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요청을 받고 쓴 이야기라고 했다.
계약금을 건넨 처음 회사는 소설 작업을 중단해버렸고 스스로 홍보해 다른 회사와 계약했지만 계속해서 미뤄져 이 소설은 저주받은 원고라 칭한다 했다.
이미 발매되었으니 유통기한이 지난 저주가 되겠다.
첫 회사는 10편을 기획했고 그것을 작가에게 맡긴다 했다는데 이런 10개의 이야기라니, 왜 회사는 망해버린 걸까.
무서운데 재밌는 감정을 생전 처음 느꼈다.
이래서 공포 영화를 돈 주고 보러가는구나 싶다가도 다시 책을 읽을 마음까진 생기지 않는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시도는 그럼에도 성공한 듯해 다행이다.
잠들 수 있으니 진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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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린의 전쟁 같은 휴가
벤 파운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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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빌리는 이라크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브라보 분대 소속 군인이다.
알안사카르 운하의 영웅이라 불리는 그들이 그곳에서 동료인 브룸 하사를 구하려던 모습은 폭스의 종군 기자를 통해 전국에 방영되었고, 그 결과 2주 간의 승전 여행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 온 상태다.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연락하며 계획을 타진해오던 영화 제작자 앨버트는 여행을 줄곧 함께 하며 영화에 대해 조금씩 구체적인 실행안을 흘리며 팀원들의 사기를 증진시킨다.
워싱턴에 가 부시 대통령과도 만났고, 미국의 가장 큰 축제라고도 할 수 있을 슈퍼볼에도 참석해 하프타임에 데스티니스 차일드, 즉 비욘세를 만날 기회도 생겼으며 부자건 가난하건 온 국민이 자신들을 향해 응원과 감사의 메시지를 보낸다.

교통사고가 나 크게 다친 누나를 버린 약혼자의 차를 부수고 그를 위협했기 때문에 빌리는 졸업을 앞둔 학교에서 쫒겨 날 뻔 했지만 졸업식에 참여할 수 없고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벌금을 내고 중형을 면했다.
그렇게 전쟁터로 온 19살의 빌리를 다임 하사는 양아치라 괴롭히기도 했지만 빌리의 사연을 알고, 또한 그 날 이후로 편애라 해도 좋을 만큼 빌리를 아낀다.
뛰어난 리더인 다임 하사를 주축으로 팀으로 오기 전 폭격으로 인해 청각을 거의 잃은 전쟁 영웅 맥 소령, 홀리데이 하사, 어보트, 사이크스, 로디스, 맹고, 빌리, 중상을 입은 레이크와 전사자 슈룸까지 전부 브라보 팀이었다.

적군의 손에 들린 슈룸을 구해내려 빌리는 먼저 뛰쳐나갔고 후에 레이크의 잘린 두 다리를 발견한 것도 그였다.
온갖 화려하고 편하고 좋은 것들만 가득한 미국에서 빌리는 문득 문득 지독히도 열악한 이라크를 떠올린다.
고향집에 가 가족들과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으로 빌리는 편안해졌지만 늘 그렇듯 공포에 질린 채 잠에서 깨고, 자신이 그를 군대로 가게 만들었다 생각하는 작은 누나 캐스린은 빌리에게 일시적 제정신을 주장하며 전쟁터에서 도망치라 말한다.
경기가 열릴 텍사스 스타디움에 들어서며 브라보 팀은 관객들과 귀빈들과 만나며 접하면 안 될 것까지 맛보며 성대한 환영을 받는다.
구단주의 들러리로 기자 회견에 참석해 인터뷰를 하고 치어리더를 만나 사진도 찍고 바에서 부자들과 대화도 나눈다.
편법을 동원하며 결코 군대에 가지 않았을, 전쟁을 머리로만 아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사람을 진짜 죽였냐는 둥 무식한 질문들과 함께 적군을 부수고 승전하자는 이야기를 인사랍시고 건넨다.
빌리는 슈룸이 했던 말, 마지막 모습 같은 걸 자꾸만 떠올리며 현실과 혼란에 빠지지만 일찍이 연거푸 부탁한 진통제는 계속해서 손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신을 보며 웃어주던 치어리더 페이슨과 이야기하며 가까워지고 관계를 맺으며 급속도로 빌리는 그녀에게 빠진다.
한편 계속해서 탈영을 권유하는 캐스린은 그들에게 빌리의 전화번호를 알려 연락이 오게 만들고, 유명 배우인 힐러리 스왱크가 관심을 가진다던 그들의 영화는 영 진척이 없어보인다.
그렇게 데스티니스 차일드가 공연하는 하프타임의 시간이 다가오고 그들도 하프타임에 참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하프타임, 공연하는 비욘세의 뒤에서 학생들로 이루어진 의장대 주변에 정렬해 서 있는 역할을 맡은 그들이 전광판을 통해 대문짝만하게 전송된다.
쉼없이 터지는 폭죽의 소리로 인해 브라보 팀원은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아무도 그들을 챙겨주는 이 없이 방치되고 빌리는 결코 쓰러지지 않겠다 다짐하며 버텨낸다.
그렇게 악몽같은 하프타임이 끝나고 들어 온 천막에서 공연 장비팀과 충돌해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다임의 중재로 일은 조용히 마무리되는 듯 했다.
자꾸 자신들을 자극하는 관객을 혼쭐내는 사이 앨버트는 영화 제작을 텍사스의 구단주인 노먼이 맡겠다고 나섰다는 소식을 전한다.
대표로 노먼을 만나 영화에 대해 상의하러 가게 된 다임과 빌리에게 앨버트는 원래 약속했던 계약금 10만 달러가 아닌 5500달러로 시작해 지분을 주겠다는 말을 전한다.

앞서 읽은 <디 아너즈>의 질문으로 그 책이 군인과 관련된 이야기라 짧게 생각했고 같은 종류의 이야기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완벽한 군인의 이야기로 보이는 이 책을 골라왔다.
무슨 말을 덧붙이기가 조심스러운 책이다.
말 그대로 전쟁과 군인이 고스란히 담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애초에 할 수 있는 말도 극히 적다.
전쟁과 군대, 결코 멀지 않는 말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와닿지 않는지. 이 책은 그런 군인에 대해 겪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을 어떤 감정을 내세운다.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 빌리의 가정사와 그가 느끼는 감정들, 혼란과 그가 보고 듣는 수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주변의 미국인들.
이야기가 주려는 메시지는 스타디움으로 들어서며 명확히 두드러진다.
강렬하지 않은 듯 한데 아주 독한 이야기다.
러브라인 같은 건 왜 넣었는지 의문이 들지만 빌리에게는 그 또한 필요한 존재라고 치자.
번역은 아주 훌륭하고 미국인에 대한 묘사 부분이나 빌리의 감정, 깨달음은 전혀 19살의 그것으로는 보이지는 않지만 매우 돋보인다.
원작의 표지 그림은 군복을 입은 듯한데 새까맣게만 칠해버린 건 조금 아쉽긴 하다.
난 처음에 저 까만 게 모자가 아니라 포마드 머리인 줄 알았다.

아이러니 하지만 읽고 난 후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그 문장이.
본질은 다르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이 책이 그 이야기와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알 수는 없다만.
뭐 아무튼 크게 더할 말은 없다.
그저 이 책의 내용만으로 충분하다.
‘알안사카르 운하의 영웅’이 된 영상에 대한 설명에서 약 10년 전 쯤 보았던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의 작전 영상 하나가 어렴풋이 기억났다.
아마도 같은 영상으로 출발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동명의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이거 입어라, 저거 말해라, 거기로 가라, 그들을 쏴라, 그리고 물론 그다음에는 최후의 궁극적인 명령이 기다리고 있다. ‘전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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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너즈
팀 클레어 지음, 정지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3.7
1934년 12월 열세 살 소녀 델핀은 화가인 아빠 기디언에게 선물로 준비한 붓을 가지고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깐깐한 엄마는 아빠를 제일 먼저 보려는 델핀에게 아버지는 아파서 만날 수 없다 말하는데, 불시에 나타난 기디언은 말리는 엄마를 뿌리치며 온갖 가구와 액자 등을 마당으로 가지고 가 모두 불 태우고 델핀은 겁에 질린다.
그리고 1935년 3월 델핀은 성 유스타스 학교에서 동급생을 보일러실에 가두고 불을 낸 혐의로 쫓겨 나 집으로 왔고, 가족들은 아빠의 정신적 치료를 위해 엘더베렌 경의 저택으로 들어가게 된다.

인간의 영구적 개선을 위한 협회 S.P.I.M은 엘더베렌 경의 저택을 거점으로 외국인인 이반 프롭이 치료를 담당한다.
협회의 사람들은 저택에 머무르며 프롭의 치료를 받고 자유롭게 생활한다.
델핀은 처음 엄마를 따라 저택에 온 날, 우연히 클로버 열쇠를 발견하고 방을 뒤지다 비밀 문을 찾아 숨겨진 터널에 들어가게 된다.
어두컴컴한 터널 속을 헤매다 그 끝에서 방과 연결된 널빤지 틈으로 늙은 여인의 방을 구경하고, 다른 방에서 한 노인과 검은 구두를 신은 사람이 영국에 전쟁을 일으킬 거라 이야기하는 걸 몰래 엿듣는다.
검은 구두를 신은 자가 아빠의 치료를 담당하게 된 프롭임을 알게 된 델핀은 홀로 그를 의심하며 계속해서 추적해 증거를 잡으려 하고, 얼마 뒤 프롭과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던 노인이 저택의 주인인 엘더베렌 경임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저택의 사냥꾼인 가포스 씨와 친해지고 그의 일을 도우며 그에게 자신이 총 쓰는 법을 가르쳐달라 청한다.

‘군인이 적의 눈을 바라볼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뭘까?’ 라는 질문에 답을 모르면 가르쳐줄 수 없다고 가포스 씨는 델핀에게 말했지만, 우연히 또 다른 터널을 델핀이 발견하고 커다란 박쥐 같은 괴물을 만난 후로 델핀은 총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다.
자신의 교육을 위해 엄마가 저택으로 부른 카마이클 교수와 매일 수업을 하며 델핀은 모든 열쇠를 복사하는 등 조용히 프롭의 뒤를 캐고 흰 담비들을 길들이며 가포스가 금지한 터널 탐색을 꾸준히 이어간다.
그러던 중 프롭의 벗인 쿵 씨가 저택에 와 지내게 되고 얼마 후 그가 저택 뒤 바다에 빠지려는 걸 델핀이 혼자 발견하고 아빠인 기디언에게 서둘러 구해달라 한다.
겨우 구출해 낸 쿵 씨는 닥터 랜슬리의 응급 처치와 병원 치료에도 목숨을 잃고, 쿵 씨가 남긴, 표지에 아무 것도 적힌 게 없는 책은 아빠가 가져가고 델핀은 책을 싸고 있던 DELLAPESTE 라는 말이 여러 번 적힌 종이를 갖게 된다.
델핀은 미스 디그루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으며 의지하게 되고, 모든 걸 알게 된 디그루트는 아빠가 가지고 있던 책을 슬쩍 가져간다.
늘 재수없게 구는 닥터 랜슬리 또한 연관되었다 생각해 그의 뒤를 쫒던 델핀은 우연히 엄마가 랜슬리에게 키스하는 걸 보게 되고, 그 이후 랜슬리를 증오하며 그를 산탄총으로 쏘거나 그의 물건들에 죽은 쥐를 넣는다.

9월 11일 여전히 터널을 통해 프롭, 랜슬리, 엘더베렌이 서로 의견 충돌하는 모습을 엿보던 델핀은 순간 랜슬리에게 발각되어 잡히게 된다.
곧장 아빠에게 달려가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델핀을 기디언은 프롭이 하는 말이라면 다 옳다 여기기에 딸을 데려가려는 프롭의 말에 따르며 갔다 오라 말한다.
그렇게 잡힌 델핀은 서로를 이간질하며 칼로 랜슬리를 찌르려고 한 바람에 클로로포름으로 기절당한 채 자신의 침대에 묶여 방 안에 갇히게 된다.
정신이 들어 매듭을 겨우 풀어 낸 델핀의 눈에 거대한 박쥐 괴물의 무리가 저택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이고, 델핀은 달려 나가 피해야 한다고 모두에게 소리친다.
그리고 저택을 침입한 박쥐 괴물로 인해 죽기 직전의 델핀을 랜슬리가 구해주며 죽기 싫으면 한 방에 목을 노리라 조언한다.
랜슬리와 프롭이 있는 방에서 델핀은 프롭의 부탁으로 그의 누이라는 휠체어에 탄 늙은 여인을 데리고 나가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둘은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간다.
가포스에게 모든 상황을 알리며 저택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총을 받아 든 델핀은 아빠를 구하러 가겠다며 저택으로 들어가고, 가포스는 신사들과 함께 얼음 저장소로 가 뿔을 가진 황소 괴물인 하카와 박쥐 괴물 베스페리와 싸운다.

9월 12일 델핀은 저택에 들어가 엄마를 포함해 베스페리에게 잡혀 있던 인질들을 구출해내고 아빠를 구하러 간다.
한편 아빠인 기디언은 전쟁에서 자신의 동료이자 벗이었던 엘더베렌 경의 아들 아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불을 지르고 천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델핀을 따라 온 모두가 총을 갖기 위해 총기실로 향하다 배신한 미스 디그루트에 의해 총을 뺏기고 베스페리의 대장에게 끌려간다.
그곳에는 랜슬리를 죽인 베스페리인 루슬리와 호리호리한 콕스, 콕스를 전령사라 칭하며 가면을 쓴 대장이 서 있었고 디그루트는 대장을 엘더베렌의 아버지인 피터라 칭하며 자신에게 보상을 달라 말한다.
자신을 피터라 부르지 말고, 이야기할 때 전령사가 아닌 자신을 보라 하는 대장은 커다란 벌이 디그루트를 쏘게 만들며 그녀가 명예를 얻었다 한다.
디그루트의 목에 종양이 생기고 그것을 통해 시녀를 만들면 시녀가 대신 고통을 느끼며 자신은 불로불사의 존재가 된다는 설명을 듣게 되고, 디그루트는 저택의 하인이었던 레지에게 종양에서 나온 유충을 먹여 그를 시녀로 만든다.
점점 디그루트의 팔과 다리는 줄처럼 늘어나고 대장은 콕스를 통해 말을 전하며 프롭에게 자신의 아이를 데려오라 하고, 끝까지 저항하는 프롭을 협박하려 엘더베렌 경의 지위를 박탈하고 인질들을 죽이려 한다.
그때 엄마에게 맡겨두었던 잼 통에 담긴 폭탄으로 델핀은 탈출을 꾀하고, 디그루트가 자신을 두고 가지 말라는 말에 흔들리다 우연히 그곳을 찾아 온 아빠를 놓친다.
한편 가포스는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온 루슬리와 베스페리 일당들을 죽이다 힘이 딸리고 결국 신사들을 위해 루슬리를 잡고 웅덩이로 빠져 부스러지고 만다.
다시 아빠를 찾으러 다니던 델핀은 늙은 여인이 사라진 것을 알고 가포스를 돕기 위해 얼음 저장고로 향하다 그들이 그곳에 있는 걸 알게 된다.
델핀이 동굴로 떨어져 총을 쏘며 그들을 위협하는 동안 프롭이 늙은 여인을 데리고 웅덩이에 뛰어들었고 이내 대장과 콕스에게 델핀은 잡히게 된다.
대장은 델핀이 마음에 든다며 자신의 하녀가 되어 불사의 존재가 되라 권하며 자신의 가면을 벗고 엘더베렌 경의 가문인 스톡햄 가와 아발로니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꽤 길고 빽빽하고 어두운 이야기다.
아마도 제목의 명예를 상징하는 벌을 나타내는 듯한 강렬한 주황색의 표지는 이야기를 함축하지는 못하지만 그 분위기 만큼은 잘 드러낸다.
<트롤 헌터>도 어두운 판타지였지만 그건 그래도 아동 청소년용이었고 이 책 <디 아너즈>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어른용이다.
더러움과 혐오의 차이랄까.
아무튼 분명히 내용은 어른용인데 델핀의 성격은 또 어른들이 보기엔 너무 성가시고 짜증난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은 골라서 하면서 화를 내면 무슨 중대한 음모가 있는 양 적반하장으로 굴고, 할 말 못 할 말 구분 못 하면서 마구 나대는 거며, 자기 몸도 제대로 못 지키면서 누굴 구한다고 설치는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은데.
정말 얘는 왜 그럴까 답답해하며 읽는데 끝까지 풀리지 않아서 꼬일 대로 꼬인 채 책장을 덮게 된다.
그런가 하면 책의 내용 역시 한참을 델핀이 의심하던 그대로 쭉 진행해놓고 베스페리 대장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뭔가 드러나나 했는데 나온 건 고작 가문의 비밀이다.
왜 늙은 여인을 보고 아이나 소녀라 칭하냐는 질문에 넌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구나 하면서도 끝까지 왜 그런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단지 딸이라서 라는 이유라면 정말 이 긴 페이지를 읽은 사람으로서 격렬히 실망할 테다.
해협의 건너편 아발로니아와 베스페리들 같은 찜찜하게 묻힌 것들이 사방에 가득한데 에필로그는 크리스마스 칠면조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저 질문의 답만 알려주면 끝나는 소설은 아닌 것 같은데 뭐하자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번역의 문제도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남의 이름을 바꿔 부르는 정도의 오역이 분명히 존재하는 듯 하다.

‘군인이 적의 눈을 바라볼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뭘까?’
전면에 내세워진 이 질문의 답을 생각할수록 도저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감이 안 온다.
아빠가 적은 아닐 테고 적은 정해져 있는데 거기서 그런 걸 내포하는 장면이 있었나 과연.
죽자고 아빠를 구하려 드는 열세 살 소녀 한 명이 내용의 전부 같은데 또 막상 아빠가 뭘 그렇게 잘해줬고 엄마는 뭘 그렇게 못해준 건지는 안 나온다.
그리고 주인공이 동급생을 감금하는 장면은 왜 나온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정작 겁 먹은 건 그 여파를 감당할 자신이었고, 불을 저지른 건 다른 사람인데 억울하고, 그 어떤 것도 그걸 합리화할 변명이 되지 않는데 다만 자신의 피에 물려진 광기로 그걸 설명하는 게 정말 마음에 안 든다.
끝까지 내가 광인의 피를 물려 받아 미쳐서 그런가 하는 그 마지막 장면 또한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너무 많은 내용과 말들이 불필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판타지는 결코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너무 큰 부피를 차지한다.
쓸 데 없다, 판타지인 것을 감안하고 아무리 좋게 봐도 이 이야기에 대한 감상은 그것 뿐이다.
정말 결코 나한테 필요한 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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