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분에 세번 거짓말 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 - 속고 배신당하고 뒤통수 맞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로버트 펠드먼 지음, 이재경 옮김 / 예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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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때마침 선거철이다. 시내 한 복판에서도 동네 귀퉁이에서도 자기에게 한 표 던져달라고, 지역대표가 되고 단체장이 되어 주민을 위해 지역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하겠노라고 후보자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어차피 정치판은 이타적 인간들과는 거리가 먼 동네가 아니던가.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유세에 나선 후보가 사실은 나는 권력을 쥐고 싶은 것이라고 연설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100% 거짓은 아닐 것이다. 어떤 공명심에 자기라면 뭔가 다를 것 같은 믿음으로 그 자리에 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또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기기만 즉, 거짓말의 한 표현일 수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누군가를 속여넘길 의도가 아니었어도,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결국 선의의 거짓말에 의해서도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으므로 어떻든 거짓말은 좋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오늘 아침 내가, 교수님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생머리와 촌스러운 초록빛 원피스를 아름답다고 칭찬한 것은 교수님의 기분을 좋게 하고, 더불어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고자 했던 순발력이 아니라 거짓말이다. 이 책 대로라면 나의 칭찬을 들은 교수님은 기분이 좋아져서 오늘 자신이 정말 아름다운 줄 착각하고 시선을 너무 의식하고 다니다 발을 삐끗할 수도 있으니 결과적으로 그것은 좋지 않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대화 상대와 상황 등에 따라 그때그때 발휘하는 기지와 순발력을 거짓말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남을 속여 경제적 이익을 노리거나 그 외의 다른 부수적 목적이 있는 악의적 거짓말 외에도 평범한 사람들인 우리는 늘상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것은 때때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습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입 밖으로 내뱉어지곤 한다. 마음에 없는 인사치레, 상대방에게 호감을 사기위한 사소한 거짓말들, 원치않는 갈등과 다툼을 피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들... 가만있자, 나는 오늘 몇번의 거짓말을 하였나. 

그러나 나는 세상사는 기술이기도 한 처세술이나 대화술까지도 거짓말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않나 생각한다. 모두가 진실만을 말하는 세상이 어쩌면 더 각박한 모습이 아닐까. 촌스러운 긴 생머리를 느낌 그대로 상대방에 촌스럽다고 솔직하게 말 할수는 없다. 당장에 그녀와의 인간관계를 끊을 작정이 아니라면. 
모든 상황 모든 사람앞에서 한결같이 쓸데없이 진실한 사람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주변까지도 불편하게 한다.  

또, 상대방의 모든 말과 행동들을 진실일까 거짓일까 가늠하면서 쓸데없는 곳에 내 기력을 낭비하고픈 생각도 없다. 사람에게는 보이는 그대로 믿고 싶어하는 진실편향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모든것을 일단 믿고 보자는 쪽으로 설정된 우리 마음 속 편견을 어떤 말이라도 거짓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는 거짓편향 쪽으로 바꿔보자고 말한다. 마음 속에서 일종의 검열 단계를 거치자는 것인데 이 역시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진실이 거짓만도 못할때 조차도 진실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살아오면서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란 것을 스스로 체득해왔다. 사회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살아보니 그것이 옳은 것도 같다. 불편한 진실은 모두를 불편하게 할 뿐이므로(여기서 말하는 불편한 진실이란, 커다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교수님의 촌스러운 긴생머리 정도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단, 어떠한 경우에도 속지않기 위해 두번 세번 검열을 거쳐야 할 것들도 물론 우리 삶에는 도처에 널려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예를들면, 열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마는 스펨메일이라든가, 다급한 목소리로 걸려오는 보이스피싱 전화라든가, 자기를 뽑으면 잘먹고 잘살게 된다고 주장하는 유세장의 후보라든가, 혹은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라든가........

어쨌든 거짓없는 진실된 세상을 원한다면 속지않기 위해 신경줄을 곤두세우고 도끼눈을 뜰 것이 아니라 눈의 힘을 풀고 나부터 진실해야 할 것이다. 내 편리를 위해 순발력을 발휘할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불편한 거짓말을 늘어놓지 않을때 조금더 진실에 가까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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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쇼핑 -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 그 생생한 기록
주디스 러바인 지음, 곽미경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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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현대사회에서 내가 누구라고 규정지을때 소비자로서의 나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무엇을 어느만큼 어떻게 소비하는 자인가. 그리고 내가 소비하는 것들은 내 삶에 꼭 필요한 소비재들인가’ 하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본 적없이 오늘 지금 이순간까지도 나는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며 더 많이 소비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이 지구 한 귀퉁이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사는 물건은 필요에 의해서 사는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나 역시도 무엇인가를 살 때 나름대로 두번 세번 생각하고,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물건을 구입한다. 두고두고 오래도록 사용하리라 생각하지만 새로운 상품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새로운 물건을 향한 내 욕구들 또한 끊임없이 속구친다. 현대 사회는 이 끊임없는 소비를 향한 욕구로 굴러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는 합리적인 소비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소비해야만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가 현대 자본주의의 사회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소비하는가. 소비행위는 사회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사회 속에서 일원으로 살아가려면 소비할 수 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물물교환, 선물 주고받기, 경쟁적인 소비를 통해 한 개인은 꼭 필요한 사회성원으로 인정받는다. 자기만족 때문에 소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인간은 사회속에서 인정받는 즉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되고싶은 것이다. 유치하다고..?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인정받기 위해 더 높은 집, 더 좋은 차, 더 비싼 가방이 필요하다. 나 혼자 두고보자면 그것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그 사회의 가치는 개인을 지배하고 개인은 사회에 충족되는 성원이 되기위해 노력한다. 소비할 수 없는 자는 진정한 어른이 아니다. 소비할 능력이 없는 자는 인간으로서의 가치조차도 재평가되는 시대가 바로 현대사회다.

주디스와 폴이 1년동안 생필품 외에는 구매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과정을 일기처럼 기록한 책이 <굿바이 쇼핑>이다. 주디스는 그 과정에서 스키를 즐기려고 산 양말이 결국에 스키를 타는 행동을 규제하고, 스키를 타는 주체인 자신을 규제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사실이다. 쉽게 쓰기위해 산 샤프펜슬을 시험보는 날 집에 두고 왔을때, 시험치는 시간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며 나를 지배해 결국 시험을 망치게 되는것과 같은 경험이다. 나는 결국 물건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을 마주한다.

사는 행위는 갖고싶다는 욕망 한가지만으로 설명되기에는 복잡하다. 갖고 싶다는 이면에는 필요와 욕구 이외의 다른 감정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경쟁심이랄지, 보상심리랄지,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저 단순한 습관이랄지...... 우리는 이미 시장경제로부터 벗어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주디스와 폴처럼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는 삶을 선택한다 해도 우리는 대형마트와 글로벌 기업으로 부터 벗어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한 개인이 시장경제체제를 거부하고도 이 사회에서 살아갈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건을 구매할 때 내가 선택하는 소비가 지구의 자원과 선진국의 최저인금 수준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인금을 받으며 물건을 생산한 제3세계 사람들에게 미칠 잠정적인 영향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봐야 한다고 주디스는 말한다.  

어느모로 보나 소비를 떠나서는 생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일 때 주디스처럼 세상을 위해 소비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즉, 좀 더 책임있는 소비자가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유기농산품을 사고,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기업에 투자하고, 그리고 소비를 줄이는 것....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않는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내면화 시킬 수 있다면 말만 앞서는 표면적 환경주의자가 아니라 좀더 공리적인 인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공리...’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그 속에서 득을 보는 인간들은 결코 원하지 않는 가치이지만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기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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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즐거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색의 즐거움
위치우위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이다미디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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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은 저자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노를 저어가는 행위이다. 노를 저어 물길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갈 때, 그림과 같은 풍광을 마주치는 일은 너무 흔하며, 때로는 한가롭게 물놀이를 하는 물새를 만나기도 하고, 갈데숲을 헤쳐야 할 때도 있으며, 노 젓기를 멈추고 물 속에 손가락을 담궈 볼 때도 있고, 거센 물길을 따라 한 길 낭떠러지에 이를 때도 있다. 그러나 한 길 낭떠러지 길도 그림과 같이 느끼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 폭의 그림을 만나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 할 이도 있다. 그것은 읽는 사람의 몫으로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위치우위.. 나는 처음듣는 중국 작가지만 중국에서는 매우 알려진 문화답사 작가인 모양이다. 책의 전반부에는 위치우위의 글 중 유적이나 폐허 혹은 중국고전에 관한 것들을 묶어두었다. 중국의 고전이나 유적답사에 얼마간의 지식조차도 없는 나로서는 조금 지루해 마지 않았다. 사실여부와는 관계없이 동양의 지식인들이 흔히 그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그의 잘 정돈된 언어들이 따분하고 고루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시작된 유적과 폐허를 넘어서 예술과 삶을 넘어서 인간을 조망하는 이야기로 접어 드는 책의 후반부에서 나는 밑줄 긋기에 바빠졌고, 한 번 읽고 넘어가기 보다는 같은 문장을 여러번 되풀이해 읽는 일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의 오해가 두려워 이해해주기를 마냥 기다릴 필요는 없다. 현대생활은 만상이 공존하면서도 또한 지극히 독립적이다. 동쪽 버드나무가 조금 작다고 해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고 사실은 좀 더 자랄 수 있는 너무였다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 또한 서쪽 홰나무가 조금 크다고 해서 이웃에게 풍수지리의 덕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고 해명할 필요도 없다.
 
   


매사가 그랬다. 나는 주관이 뚜렷하고 폭넓은 인간으로 남들보다는 더 인간적이라고 나 스스로를 평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얇은 나의 참 모습인가. 나는 다르다고, 적어도 나만은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그러나 너는 아니라고, 너는 나를 쫓아오기엔 아직도 한참이나 멀다고........
질투였다. 나약한 내 자신을 숨기기 위한 나름의 사투였다. 남을 끌어내려서라도 내가 올라가고픈 시기였다. 사고할 줄 모르면서도 사고할 줄 아는 척 하고 싶었던 조급함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자신의 존엄함을 위해 타인의 존엄을 생각해야한다는 위치우위의 글을 읽으며 인문학적인 사고란 내안의 나를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두 번다시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한번 조차도 읽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사색의 즐거움>은 위치우의의 명언집으로, 아무때나 아무 쪽이나 펼쳐 저자의 생각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때 그때 내 안의 소용돌이에 따라 만나는 사색의 깊이가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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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없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은 없다 - 사랑, 그 불가능에 관한 기록
잉겔로레 에버펠트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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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해 돈, 명예, 우정, 사회적 지위뿐만 아니라 목숨 마저도 초개처럼 던져버린 사람들에 이야기를 역사속에서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그들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정열적인 연인으로 일컬어 진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8세는 왕좌 마저도 미련없이 버린 로맨틱한 남자다. 에드워드는 "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없이는 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없고 그 무거운 책임을 짊어질 수도 없음을 알았다"고 밝힌후 기혼녀인 심슨 부인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 프랑스로 날아갔다.  

흔히 사랑을 이야기할 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단골 메뉴이다. 그들은 사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렸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복잡하게 꼬이지 않았더라도 둘은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들이 사랑을 이뤘다면 그 후 그들의 사랑이 그토록 정열적일 수 있었을까. <사랑은 없다>의 저자 잉겔로레 에버펠트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다만, 전통과 관습 그리고 부모에게 반기를 들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정도 나는 그녀의 의견에 동조할 수 밖에 없다. 때때로 사랑은 없다라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아침밥을 챙기고, 아이를 키우고, 다림질을 하며, 양가 부모들의 생일따위의 기념일을 챙기는 일은 로맨틱하지 않다. 연인의 사랑을 주제로 한 모든 드라마는 그들이 이루어지는 순간, 곧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전제로 하는 만남이 허락되는 순간 끝이 난다. 더이상의 로맨틱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렇다면 다시 세기의 사랑 에드워드와 심슨 부인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들의 결혼생활은 어땠을까. 더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는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일상은 로맨틱한 사랑의 감정보다는 동료애와 같은 우정으로 채워졌을 것이란 생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저자는 사랑의 종착점인 결혼은 국가의 안녕을 위해 만들어낸 제도일 뿐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그저 서로간의 인간적인 성욕을 위한 정신적인 행위일 뿐이며, 결혼은 종족을 보존하고, 한편으로는 성욕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위한 장치인 것이다.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UFO의 존재를 믿는것 만큼이나 허황대며, 사랑이 있다해도 그것은 사귄지 얼마 안 된 연인들에게만 존재하는 비교대상이 없는 일시적인 광기일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생각해본다. 사랑을 했고, 결혼을 했고, 그리고 현재도 사랑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것이 처음처럼 계속되어오고 있는 로맨스일까..... 사람은 결국 자기자신말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던 이가 누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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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의행복한책읽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 - 독서의 즐거움
정제원 지음 / 베이직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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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서법에 관한 책읽기를 즐긴다. 반면, 독서법에 관한 내용을 실천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 독서법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읽어서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것이 최고의 독서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독서법에 관한 책 읽기를 즐기는 이유는 독서법에 관한 책에는 나름의 독서법을 소개하는 독서 고수들의 지성을 은근슬쩍 훔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독서법을 소개하자면 책에 관한 고수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고, 나는 책을 읽는 법보다는 고수가 그 책에서 느낀 것들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에 독서법에 관한 책읽기를 즐긴다.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 제목에서 이미 노골적으로 드럴날 것은 다 드러나서 그닥 재밌을 것 같지 않은 책인데, 그것은 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술술 넘어가는 즐거움에 빠져 책을 끝나갈 즈음에는 아쉬움에 안타까움 마저 들었다.

이 책은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첫째가 ’나는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작게는 작가를 읽는 것이고, 크게는 작가를 통해 나를 읽는 것이다. 그러니 독서는 지극히 정치적인 소통에 관한 작업이다. 저자가 권해주는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가기 위한 열권의 책들을 읽다보면 적어도 나는 남을 짓밟고도 사고할 줄 모르는 속물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할 지점을 만나게 될 것만 같다. 두 번째 책읽기의 테마는 지식의 확장법으로 잡학상식을 늘리는 책 읽기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독서는 나를 찾아가는 깊이에의 작업임과 동시에 주변을 확장하는 넓이에의 작업이기도 하다. 모든 사물이나 사건은 관련이 되어있고, 그리고 그 마지막엔 ’나’라는 존재가 있다. 나는 홀로 고독히 존재하는 섬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통섭의 책 읽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작가를 읽는 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작가를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이며, 그것은 곳 내 상처를 위로받는 일이다. 저자는 책을 읽는 것이나, 작가가 책을 쓰는 것이나 모두 위로 받기 위한 작업이라고 했다. 값싼 격려가 아니라 진짜 위로를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형상화해 주고받는 일이 책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이라는 말은 너무나 낭만적이다.  낭만적인 일....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독서이다.  지극히 낭만적이고도, 동시에 몹시 정치적이기도 한 책을 읽는 작업을 나는 오래도록 사랑할 뿐이다.

독서법에 관한 책 읽기를 즐기면서도 독서법을 따라하지 않는다고 한 나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화두를 두고 화두에 따라 저자가 가는데로 책을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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