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코드 - 너와 나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소통의 공간
신화연 지음 / 좋은책만들기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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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모든 행위가 결국,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부끄러움 또한 내면을 향한 감정이기 보다는 상대적이며 매우 사회적인 행위의 표현이기에 정치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탄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위이므로 그 후에 표현되는 대처방식은 각 개인의 성격과 사회 환경, 규범, 분위기, 상황, 그리고 부끄러움으로 인해 따라올 부수적인 것들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부끄러움의 표현 방식은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다. 

적당히 부끄러워해야 할 때 부끄러워하지 못하고 뻔뻔하게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 뻔뻔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말의 동정심마저도 거두어들이게 한다. 내 입장에서는 뻔뻔하게 할 말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서 부끄러움은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다. 그러나 경쟁일색인 우리 사회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부끄러워한다. 좀 더 뻔뻔해질 때, 좀 더 강해지고 좀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은연중에 세뇌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부끄러움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뻔뻔할 수 없는 상황에서 뻔뻔하기를 강요하는 시대를 개탄한다. 부끄러움을 감추고 수치스러움을 억지로 덮으려 애쓸수록 본능적이기까지 한 부끄러움이란 감정은 일그러지고 모가 나져 분노로 폭발하기도 한다.  저자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라는 위험한 감정으로 산화되기도 하는 부끄러움에 대해 뻔뻔모드로 이렇게 우리가 계속 달려가도 괜찮은 것인지, 마땅히 부끄러워해얄 상황에서 부끄러월 할 줄 아는 살아있는 인간으로 회귀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인간만의 미덕이며 존재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아는 강자로 거듭나자는 의미에서 부끄러움을 해석한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지루하거나 따분한 그런 이론서는 아니다. 저자는 박완서의 단편소설들과 실제인물의 에피소드, 그리고 몇 편의 영화 등을 매개로 부끄러움에 대해 알기 쉽게 이야기 한다. 이야기를 읽는 이는 중간중간 저자의 달변과 위트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이 책은 에세이를 읽는 듯한 가벼움과 함께 읽는 재미를 준다. 한마디로 전혀 지루하지 않은 책이다. 내가 너무 뻔뻔한 속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지금껏 나는 부끄러움을 겉으로 들어나지 않게, 안 부끄러운 척 감출 줄 만 알았지 부끄러움이란 감정이 나를  더더욱 인간답게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부끄러운 일을 부끄럽게 느낄 줄 아는 내가, 나를 솔직히 인정할 줄 아는 강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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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청춘에게>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 읽는 청춘에게 - 21권의 책에서 청춘의 답을 찾다
우석훈 외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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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는 어떠했던가 기억해본다. 부모 덕에 대충 공부했고, 심심해서 대충 아르바이트 했고, 남들만큼 대충 연애했고 그리고 대충 남들 읽는만큼 책을 읽었다. 생각해보니 나의 20대는 치열하지도 그다지 고독할 것도 없는 그렇고 그런 밋밋한 대충보낸 시절이었다. 그런데 가끔은 그 밋밋했던 시절이 후회스럽다.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너만의 재능을 깨우라고, 삶을 매순간 즐기라고, 즐겁지 않으면 시작도 말라고, 부모눈에 남들눈에 대충 그럴듯해 뵈는 사람이 되지말라고 말해주었더라면 지금 이자리에서의 내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요즘의 20대는 내 모습과는 많이 다른듯 보인다. 자신의 주관이 확실해 뵈기도 하고, 미래를 위해 스펙이란걸 쌓기위해 한시도 흘려보내지 않고 시간을 분초로 나누어 동분서주 보내며, 두려움없이 훌쩍 나홀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청춘도 많아졌고, 나처럼 남들의 시선에 목을 매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겉에서 보기에는.. 그러나 그들의 그런 쿨함 뒤에는 살아남으려는 치열함이 있다. 대학을 위해 밤 잠을 줄였듯이 취업을 위해 자기다움을 버려야 하며, 살기위해 다른사람을 딛고 올라서야 한다. 그야말로 살기위한 발버둥인 것이다. 그들에게선 나의 20대의 나태함을 찾아볼 수 없다. 나태는 곧 도태이니... 

나름의 나태와 나름의 치열로 20대를 보낸 21인이 현재 20대를 살고있는 일곱 청춘들과 만났다. 멘토로서 그들은 자신이 지내온 시간과 가치에 대해 그들 자신을 일깨웠던 책을 통해 멘토링해준다. 각기의 분야에서 제자리를 찾고 충실한 인생을 살고있는 멘토들의 메세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든 책을 읽어라. 자신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해라. 그리고 스스로 즐거운 일을 해라... 

영특하고 손해보는 짓을 잘 하지 않는 요즘은 20대들은 이 책을 통해 20대에 해야 할 고민과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사회적인 성공이 꼭 인생의 성공이라는 생각은 버려두고 이 책을 만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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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왜곡의 역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예수 왜곡의 역사 - 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바트 D. 에르만 지음, 강주헌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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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성경은 완벽하다고 한다. 신자에게 있어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한치의 오류도 있을 수 없으며 성경에 대해 의심을 품는 자는 하느님을 의심하는 자와 같다. 그러나 가끔은 인간이 만든 완벽하다고 정해놓은 이런 틀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성경이 과연 하느님의 영감만으로 쓰여진 책일까.. 의심스러웠지만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 말해본 적이 없다. 나는 독실하다고까지야 말 할 수 없지만 하느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어린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참으로 난감했다. 읽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괜히 읽었다가 성경에 오류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간단히 무시되어 왔던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 나의 신앙심을 괴롭힐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아는만큼 보인다고, 읽어봐야 이 책의 잘 못된 점도 꼽을 수 있을것이란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저자는 예수를 부정하고 하느님을 부정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저자는 기독교를 공격할 생각도, 신앙을 무의미한 것이라고 증명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단지 그는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만으로 쓰인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한다.

성경은, 어느정도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다 해도 시간적 공간적으로 약간의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기록인 신약은 오류와 모순의 정도가 조금 더하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해 승천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구두로 전해 들은 상태에서 누군가가 복음을 썼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구전은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그때문에 성경에는 모순과 오류가 존재한다. 성경에는 절대 오류가 없다고 못박는 것보다는 유연하다는 생각이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오류를 만들어냈다. 하느님에 대한 더 큰 믿음을 종용하기 위해서 이겠지만 억지스러운 부분은 인정할 때 더 자연스럽다. ’절대’라는 부정은 강조하는 딱 그만큼 더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성경은 하느님이 보낸 가르침이란 믿음은 흔들림이 없지만 인간이 해석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와 실수가 곳곳에 드러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란 내 믿음에 의심이 생겼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믿음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만 ’절대’ 오류가 없다라고 하는 기독교적 고집을 조금은 꺾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느님은 틀림없고, 변함없는 분이시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인간의 뜻대로 해석하고 기록했다면 성경에 오류와 모순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은연중에 기독교인이라는 우월의식으로 타종교를 배척하고, 우습게 알아 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존재자체가 사랑이신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당신의 피조물들을 똑같은 크기로 사랑하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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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차라투스트라를찾아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 이진우 교수의 철학적 기행문
이진우 지음 / 책세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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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왜 하는가. 내 경우 여행은 꼭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일상에서의 탈출이라는 기쁨이 무엇보다 크다. 그렇다고 내 일상이 남들에 비해 유독 지겨운 사이클을 반복하는 것도 아닌데,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도 가끔씩 자주 나는 일상에서 달아나고 싶어진다. 그럴때 여행을 한다. 그렇더라도 유명관광지나 패키지 여행은 피하는 편이다. 모름지기 내게 있어 여행은 무엇보다도 휴식이며, 편안함이며, 고요다. 도무지 왁작지껄한 축제분위기의 유명관광지는 내가 적응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이진우 교수의 니체를 찾는 여행기를 읽으며 나는 내가 원하는 여행의 모티브를 발견한 양 몹시 즐거웠다. 니체의 발자취를 따라 베를린에서 이탈리아의 토리노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여행이라니 내가 베를린에 있지 않아도, 토리노에 서지 않아도 니체와 이진우 교수와 함께 있는 듯한 환상에 빠진다. 무심한듯 조용한듯 풍경에 빠져 생각중인 그들의 모습이 내 모습과 함께 겹쳐져 상상된다. 나는 누구일까....내 생각은 정말 온전히 내 것이기만 할까.... 

요사이 여행서들이 부쩍 인기리에 출판되고 있다. 나도 욕심껏 여러권 읽어보았지만 유명관광지의 화려한 사진들 아래 여행가들이 적어둔 단상을 읽다보면 무언가 허전하다. 파리 있지만 파리에 있지않고, 라오스에 있지만 라오스를 겉돌고 있는 느낌이랄까..... 도시가 커갈 수록 사람들의 눈에 살기가 돋고 발거름은 더욱 빨라진다고 하는데, 출판을 위해 겉돈 여행서들에서는 그런 살기와 바쁜 걸음이 느껴진다.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것은 낯선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다. 

 
   

여행을 하는 것은, 그저 한 번 궤도를 이탈해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다. 궤도를 이탈해서 종종걸음으로 일상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해보기 위한 것이다. 이진우 교수의 니체를 따라가는 여행길은 니체가 정신줄을 놓기까지 사유했던 바로 그 길이었기에 더 깊은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잘 생각하고 잘 살기 위해 이 책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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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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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아침 저녁 제법 오래 타고다니는 나로써는 손에 읽을거리가 없는 날은 지하철을 타려면 미리부터 불안하다. 후텁지근하거나 혹은 너무 과한 냉기를 꾸벅꾸벅 졸면서 버틸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래서 구입했다. 일부러 버스를 타고 서너정류장을 가서 시내 대형서점에 들러 미리부터 점찍어둔 이 책을 고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있는 백화점에 도착할 때까지 한시간 가량을 정신없이 읽어갔다. 
우선 표지그림이 섬뜩하다. 제목인 '화차'와 달리 몹시도 쿨한 은색 세로선들은 냉동된 은갈치토막을 연상하게 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바코드였다. 언젠가 바코드로 지구가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 였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바코드 선 아래로 한 여자의 얼굴을 발견했을때의 느낌은 분명 공포였다. 바코드에 갇힌 불분명한 여자의 얼굴은 웃고있는 듯해서 더더욱 섬뜩했다.

한 번 손에 들면 놓을 수 없는 책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 책이 그랬다. 나는 개인적으로 겁이 많은편이라 스릴을 즐기지 않는다. 영화도 그렇고 놀이기구도 그렇고 책도 그렇다. 공포소설은 물론이고 탐정소설도 즐기지 않는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조심스러운 성격이 되었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되도록 좋은것만 보고 좋은 것만 알고 싶은 강박에 가까운 본능으로 영화와 책과 놀이기구를 선택한다. 그런데 이 책은 알듯말듯 한 공포속에서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이 책의 공포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지하철에서 내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읽었던 내용을 공포로 각인하고 있었던 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들렀던 백화점에서 민소매 블라우스를 할부로 구입한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모르는 척 의식밑으로 가라앉히고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이 나와는 상관없었으면 싶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나와 상관있는 내용이었다. 화사한 옷과 맛있는 음식, 고급스러운 취향의 기타 용품들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최근들어,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런 행복들은 정말 '행복'과는 상관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만 가끔씩 백화점에 들러 아름답고 부드러운 옷들을 볼 때마다 갖고싶다는 그래서 내가 입고싶다는 욕망에 부르르 몸을 떨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구입했을때의 느낌은 정말 '행복'과는 다른 떨림임을 알지만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것들을 내것으로 만들기에는 사실 너무 쉽다. 카드 한 장이면 말그대로 한껏 기분을 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어디서도 카드 한 장에 무너질 수 있는 내 인생 따위는 가르켜준 적이 없다. 그저 이걸 입으면, 이걸 먹으면, 이걸 갖으면 행복할 것이고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악마의 속삭임만이 넘치는 세상이다.

선택한 적 없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한 여자. 그 운명으로부터 몹시도 달아나고 싶었던 한 여자는 결국 자신의 이름에서 한 발자국도 달아날 수 없었다. 그저 바코드 뒤에서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어서 더더욱 공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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