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파인만 Feynman
짐 오타비아니 지음, 이상국 옮김, 릴런드 마이릭 그림 / 서해문집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추천사를 읽으며 '매력적인 천재 파인만' 이라는 수사를 본다. 파인만이 천재라서 매력적인 걸까, 파인만이라는 인물이 매력적인데 천재이기까지 하다는 걸까, 보통은 전자가 아닐까. 우리가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를 매력적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천재로 태어나지 않은, 후세에 길이 남길 만한 업적을 이룩해놓지 못한 사람은 남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기억되지 못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파인만 일대기를 읽고 나서 이런 시답지 않은 의문을 갖는 것은 사실, 그의 업적인 QED 라던가 양자 전기 역학 등의 물리 영역을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화로 읽는 간단한 설명이 아닌, 그의 강의를 직접 들었더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랬더라면 어쨌든 나도 파인만은 매력적인 천재 였다라는 수사에 수긍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천재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통해 만난다. 그렇기에 이 책을 덮으며 한 생각은 몇 번이나 만지작 거리기만 했던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를 읽어야 겠다라는 것이였다.
 

내가 그를 그나마 매력적인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건은 이 책에서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2차 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일에 동참하고, 뉴욕으로 돌아온 후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를 회상하며, 원자폭탄을 만드는 일에 참여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대목이었다. 파인만은 후에 원자폭탄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던 것을 회상하며, '사회적 무책임'에 대한 고뇌를 이렇게 정리했다.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불행을 대비해 시작하고, 성공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서 끔찍한 결과로 나타났을 때 뭔가를 배웠다. 어떤 일을 할 때 끊임없이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 결과까지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기밀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두번째 파인만의 매력을 실감한 사건은, 한때 자신이 자주 이용했던 토플리스 클럽이 공동체에 받아들여질 만한 영업인가에 관해 재판을 받을 당시, 클럽을 이용했던 사람들은 사회적 체면을 고려해 모두가 클럽쪽 증인으로 나서기를 거부했다. 그 때 파인만은 주저없이 나선다. 필요에 의해 클럽을 찾았던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또 필요에 의해 증인서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던 파인만은 다른 사람의 이목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증인으로 나설 수 있었다라고 한다. 이 두가지 사건은 파인만이라는 사람이 천재적인 물리학자이기 이전에 감성적인 인간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천재 물리학자의 일대기를 살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그의 업적을 이해할 수 없다니 이보다 더 맥빠지는 일이 어디있을까.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만 해석하기로 했는데, 바로 그의 인간사를 살피는 일이였다. 첫사랑의 여인이 완치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음을 알고도 결혼한 것, 그리고 그녀를 떠나보낸 후 슬픔을 처리하던 방식, 엉뚱하게도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취미를 한동안 유지했던 것, 또 그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운명의 연인 귀네스를 만나던 장면, 얼마간 할 수 없었던 연구를 토플리스 클럽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 투병생활, 그리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너무 지루해서 두번 죽는 것은 싫다 했다는 마지막 말 까지, 그는 확실히 유쾌하고도 독특한 인물이었다.
<과학 콘서트>를 쓴 정재승의 추천사에는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누구나 리처드 파인만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지만, 누구나는 아닌 것 같다.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사회 - 평등이라는 거짓말
대니얼 리그니 지음, 박슬라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복음 13장 12절)
천주교 신자인 나는 이 구절을 들을 때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의 예수님, 은총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무서운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은 '믿음'에 관한 말씀을하고 계신 것인데, 믿음이 있는 자는 더 큰 믿음으로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비유의 말씀이다. 그러나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말씀은 무척이나 불공평하게 생각되고, 더 나아가 분노와 반감까지 일으킨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사회적 우위가 더 나은 우위로 이어지고 사회적 열위는 더 못한 열위로 이어짐으로써 시간이 지날수록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격차가 심화되는 현상을 '마태효과'라고 일컫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태효과는 사회적인 모든 분야, 과학, 기술, 경제, 정치, 교육등 우리 사회구조 전반에 걸쳐 나타날 뿐만이 아니라 국가간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부유국은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나라는 끝없이 계속 가난해지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이런 마태효과는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가,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통제의 영역인가. 책에서 이 질문을 만났을 때, 나는 주저없이 마태효과는 인간의 악용으로 조장되고 있으며, 이는 이를 통해 득을 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과격하게 표현해서 마태효과를 통제하거나, 조절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골고루 차별없이 한결같다는 의미의 '평등'과,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르다는 의미의 '공평'은 같은 말이 아니다. 평등은, 누구에게나 똑같이란 의미를 지니고, 공평은, 결과적인 평등을 의미하는 말로 가진자와 덜 가진자에게 배분의 차를 둔다는 의미이다. 우리사회는 평등과 공평의 가치 중 어느것을 더 존중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내생각에) 우리 사회는 평등과 공평 중 그 어느것도 추종하고 있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단 우리 사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유시장을 갈망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의 불평등과 불공평을 조장하는 사회이다. 불평등을 통해 각자 개인은 만족을 느끼고, 불공평을 통해 조금이라도 약진하려는 욕망을 키운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용인될 수 밖에 없다라고 생각한다. 다만 불평등의 정도, 불공평의 정도는 무척이나 중요한 것인데, 바로 그점을 우리 사회는 무시하고 있다. 
 

부자 참가자와 가난한 참가자에게 성공할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졌다라고 말하는 것은 오류다. 출발 신호음이 같다라고 해서 평등하다라고 말 할 수 있는가, 기본적인 시작점이 다른 것을. 이는 완전한 불공평이라고 생각한다. 초기의 조건 자체가 명백히 우위인데, 평등한 사회, 공평한 사회라는 신념은 완전한 오해이다.
누군가가 이득을 볼 때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승자와 패자의 득실을 더하면 총합이 0이 되는 제로섬 게임에서, 마태효과는 잔인하다. 패자와 승자의 위치는 변화할 수 없고, 그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배집단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더욱 확고히 다질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마태효과 체제를 설계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경제적 우위는 보다 우월한 정치적 우위를, 정치적 우위는 보다 우월한 경제적 우위를 불러옴으로써, 우위와 열위의 악순환의 고리는 끊이지 않는다. 
 

부자가 더욱 부자가 되게 해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기대하자는 경제정책은 완전히 거짓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이 잘 되야 국민이 잘 산다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부자 감세와 불법행위가 명백히 들어난 재벌의 죄를 벌하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
요몇일 트위터에는 '마우스 랜드'라는 동영상이 유행이다. 쥐들의 나라에 권력자인 검은 고양이들은 쥐들을 위한 정책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정책으로 국민들인 쥐들의 원성을 듣는다. 이에 쥐들은 투표를 통해 검은 고양이들을 몰아내고, 하얀 고양이를 권력자로 뽑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고양이들은 처음부터 고양이였을까, 권력자가 되고 나자 고양이로 둔갑하게 된 것일까. 후자라고 하면, 쥐들의 미래에 더이상 희망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권력자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와 정책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다 알아서 해주리라는 믿음은 다 알아서 착취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마태효과는 분명, 극단적인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마태효과는 절대적인 자연 법칙이 아니며, 인류가 만들어낸 사회적 결과이므로 언제든 임의적 조절이 가능하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기에는 언제나 그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곤 했다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노예해방 운동이 그렇고, 뉴딜, 인권운동, 양극화에 저항하는 사회운동 등이 그렇다. 뉴욕 맨해튼의 주코티 공원에서는 월가 점거 시위가 3주째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 경제체제에 반대하는 시위는 전세계 곳곳에서 빈발하고 있다. 자본주의로 증가하는 사회 불평등과 자연과 문화자원의 파괴를 통한 성장의 집착에 대한 불만에서 소수로 부터 시작된 시위들은 혁명적인 개혁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싶은 진실이 이 책에 있다. 내 자신의 위치가 우위이거나, 열위이거나를 떠나 언제나 한결같이 내 경우에만은 열외이길 기대하는 마음이 마태효과를 용인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또 한편으로는 상속제를 폐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사람의 수명이 다하면 일정액 이상의 상속을 금지하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부모의 경제적 우위가 자녀에게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위가 더 나은 우위로 이어지고 열위가 더 열악한 열위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경제며 정치에 밝지 않은 나는 이 책을 읽는데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저자가 일반 독자도 읽을 수 있는 전문적이지 않은 개론서를 목표로 이 책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우위가 우위로 이어지고 열위가 열위로 이어져 아무리해도 달라지지 않을 뿐더러 더욱 살기가 팍팍해지는 현 사회 시스템에 의문을 갖은 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네요.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예요.  

 

 

친절한 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후속편이네요. 전편 즐거움을 읽으며, 이해하지 못해 때때로 괴롭기도 했다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요... 그래도 후속편을 포기할 만큼의 괴로움은 아니었다라는 것 역시, 고백합니다. 이제는 강신주 박사 매니아가 되버린 것 같습니다. 혹시 아직 강신주의 철학 강의를 놓치신 분이 있다면, 강추합니다.  

 

 

 

 

'진보인사로 진중권도 있다'라는 말이 있다지만, 가끔은 그의 튀는 발언으로 마음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조금더 쉬운 언어로 대중에게 다가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진보인사 중 대표적인 인물로 꼽고싶을 지경이예요. 그러나 어쨌든 아쉬우니 진중권을 읽지 않을 수 없구요... 이 책의 서문에 씌여있는 것처럼 새로운 생각을 숙성시키는 요소가 내 머리 속에 들어와주길 기대합니다. 

 

 

  

 

한 개인이 광신자가 되가는 과정을 추적한 이 책, 읽고 싶은 이유는 저도 때때로 가끔은 맹신자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0-1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 완료했습니다! 첫 미션 수행 고생 많으셨습니다~

비의딸 2011-10-12 08:3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조국애'에서 비롯되었다. 대표적 강남좌파 '조국'이 <진보집권플랜>에서 깔끔하고 고상하게 원론적인 탁상공론만 펼치고 있는 것에 대해 순수하게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분연히 일어서게 된 것이다. 김어준, 자기가 뭐라고..?
나는 <진보집권플랜>을 읽으며, 아직은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 준비가 안되었다고 밝힌 조국 교수의 의사를 언젠가는 준비가 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렇게 바른 사람은 정치 안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올곧은 사람이 정치판에서 상처받는 모습은 이제 보고 싶지않다. 그를 지켜주고 싶다.' 라는 생각도 했다. 문재인에게서 그렇게 느끼는 것처럼. 그런데 김어준은 누가, 어느모로 봐도 엘리트인 진보인사의 이런류 겸손은 대중에게 '재수없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를 지원사격하겠다는 각오로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근본없이, 어수선하게. 아무것도 아닌 자기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시작은 그랬으나, 책에서 김어준은 우리나라 판의 좌와 우를 다루고, 좌도 우도 아닌 이명박을 다루고, 재벌을 다루고,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다룬다. 그 속에, 박근혜도 있고, 유시민도 있고, 심상정, 노회찬, 손학규도 있으며, 문재인도 있다. 이 책을 기획한 것은 '나꼼수'를 시작할 무렵이라고 했다. 챕터마다 인터뷰 기일이 명기되어 있는데, 5월 13일 부터 6월 2일 까지 총 여섯차례 인터뷰어 지승호와 만났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그가 예측하는 일들이 너무 정확히 일어나고 있어 조금 놀랬다. 혹시 출판에 닥쳐 군데군데 손본 것 아냐?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로. 평소에도 김어준은 자신의 '무학의 통찰'을 널리 자랑질 하는 인사이긴 하지만 말이다.
확실히 이사람은 자신의 주장대로 기질적으로 균형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앞을 내다보는 무당기질이 있는 것도 맞는 것 같고. 거기다 예리하기까지 하다. 또, 욕먹어도 억울하지도 상처받지도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배포도 있다. 이런 자신감 내지는 오만함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그의 말대로 '덕 볼 생각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자만인 걸까.
어쨌든 이 책에서 만나는 김어준은 제대로 김어준이다. 무학의 통찰로 공포의 원형질을 짚어내고, 공포로 구성되고 공포로 정치를 펴는 공포집단인 우리나라 판 '보수'에 대해서도 적확하게 짚어준다. 또 인간미 없는 '바름'으로, 대중성 없는 '원론'으로 승부하려는 진보세력의 문제점을 토로할 때는 그 예리함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진보는 너무 진지한 것이 문제 아니던가. 최소한 보수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욕망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욕망 또한 용서하지 않는다. 욕망은 타락이다. 욕망하는 자는 추잡하고 진보적이지 않다. 그러나 서민들에게는 욕망이 있다. 그런 욕망을 부끄럽게 여기는 진보가 어떻게 서민과 연결될 수 있나. 진보는 관념이 아니다. 진보는 폼이 아니라 서민의 생활이다. 그것이 곧 민심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진보'에게 기회가 있다. 민중을 가르치려드는 '진보'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타고난 본능주의자 김어준의 탁월한 직관과 균형감각에 박수를 보낸다.

그가 잘난척하려고, 혹은 더 튀어보려고 이 책을 썼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 개인이 나라를 망치는 불합리가 통용되는 이 시대에, 기득권 구조의 프레임에 반하는 '나꼼수'처럼, 이 책 또한 다중의 무력함을 깨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많은 부분이 이미 '나꼼수'와 그 밖의 매체를 통해 다양하게 접했던 김어준의 주장이기 때문에 그닥 새롭다 놀랍다 할 것은 없었지만, 책으로 만나는 그의 감수성은 그대로 소중히 여겨주고 싶다. 책이 마무리 될 쯤 느닷없이 페이지업에서 '웃어!' 라고, '울어!'라고 말하는 그... 그의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 주고 싶다. 잘하고 있다고,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응원하겠다고....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뭘 안다고 떠드는 것이냐고 심하게 분노할 수 있겠지만, 다각도의 세세한 들이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냥 한 마디 해주고 싶다. 근본없는 자의 어수선한 자기 주장이라고 이미 밝히고 있잖아. 누구라도 떠들 수는 있는거잖아? 그러니까 그냥,

닥치고 읽어!

궁금한것은 표지 사진의 셔츠.
살이 빠진거야? 팔이 짧은거야? 사이즈가 없었던거야?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int236 2011-10-0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컨셉이 아닐까요? 지상렬 닮은 김총수님의 지저분&하숙생 컨셉이요.

비의딸 2011-10-02 15:3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컨셉일꺼란 생각은 못했네요.

비로그인 2011-10-02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비의딸님! 닥치고 읽겠습니다...^^;;
김어준 총수의 비주얼이 날이 갈수록 멋있어지는 것 같아요.
어디 광야에서 걸어나온 초인 같아요 ㅎㅎ

비의딸 2011-10-03 06:4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광야에서 걸어나온 초인, 동감해요.

루쉰P 2011-10-0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비의 딸님! 저도 <닥치고..> 이 책을 신청해서 읽을려고 하기 전에 리뷰가 뭐가 쓰여져 있나 하며 서재를 돌아다니가 비의 딸님의 리뷰를 읽게 됐습니다. ^^
책 읽기 전에 하는 저만의 의식이라고 할까요? 원래는 책을 사기 전에 리뷰를 봐야 하는데 전 책 사고 다른 분들의 시선을 보거든요. 좀 이상하죠? ㅋㅋ 암튼 만나뵈서 너무 반갑구요.
전 지금 <나꼼수> 21회를 들으며 댓글을 쓰고 있어요. 하하하 전 나꼼수 완전 팬이거든요. 저도 닥치고 읽기나 해야 겠어요. ㅋㅋ

비의딸 2011-10-03 06:49   좋아요 0 | URL
음, 전 아직 21회 안들었어요. 나오자 마자 들어버리면, 기다리는 일주일이 너무 길더라구요.. 최대한 참다가 들으려구요. ^^; 즐거운 독서되세요.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의 인문경영 시리즈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인문학이 위기라더니, 오히려 기회가 되어 대학 밖으로 나온 인문학 강연은 여기저기서 유행을 타고 있다. 모 드라마에서 무늬만 경영자인 한 오너가 요즘엔 와인 강좌 대신 인문학 강좌를 듣고 있다고 느믈대던 장면을 기억한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 드라마 속의 그 경영자는 어디가서 폼잴만큼의 간판으로 인문학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CEO 인문강좌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간과 인간의 문화를 연구하는 인문학이 어디가서 아는척할 만큼만 하면 되는 학문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라고 위키백과에 명시되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생각하는 학문이다. 인간이라는 말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하듯이,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정현종의 시 <섬>에서 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학문. 그리하여 나와 너 사이를 잇는 가교를 세우는 학문이 인문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문학 강좌를 전공으로도, 교양과목으로도 수강하지 못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그렇다.

전공자가 아니고, 아는 것이 많지 않아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이 책이 '인문'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리봐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경영자로서 취해야 할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인문서라기 보다는 자기계발서, 처세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제목에 '인문'이라고 달았을뿐인 것을 말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경영이 인문을 만나야 하는 이유로 통찰의 힘을 키우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옳은 말이다. 인문의 힘은 확실이 통찰하는 데 있으니까. 그러나 그 통찰은 더 많은 페르소나를 사용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더 높은 자리로 오르기 위한 통찰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나'를 생각하고, 더 많이 '이웃'을 생각하고, 더 많이 '인간'을 생각하기 위한 통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통찰의 힘이 시각훈련을 한답시고 벽에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걸어두고 1주일간 하루에 최소 5분씩 바라본 후, 밤마다 그림의 세밀한 부분까지 떠올린다고 키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학이 현실로부터 유리되고 박제화 되었다고 탓하기 전에, 대학이 현실과 동떨어져야 하는 이유부터 생각해 보는 것이 통찰의 힘 아닐까. 잘 살기 위해, 지금보다 더 잘 살기 위해 공부하는 학문이 인문학인 것은 맞지만, '잘삶'의 의미가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은 굳이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잘알고 있다. 관념적으로만 '앎'에 머물지 않고, 몸으로 체득하고 실제로 행동하기 위한 공부가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살기위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한다는 저자 정진홍의 인문학 강좌에 그토록 열을 올리는 CEO들이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근본적으로 '인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인문학을 사랑하기를 감히 청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