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2
장미셸 게나시아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세상을 사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순응하거나, 반항거나.
그러나 세상을 사는 이 두가지 방법은 한사람의 일생동안 절대불변의 것은 아니며, 선택 당시 지나는 시기 혹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상을 꿈꾸며 방항과 일탈을 일삼던 젊은이는 어느덧 흐르는 세월의 뒤안길에서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할 뿐인 순응주의자로 탈바꿈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렇게 세상을 산 남자들의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때는 양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져버린 세계에 대한 재건과 정비로 몸살을 앓던 시기를 거쳐 소련과 미국이 주도한 이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비지향적인 삶이 우위로 서기 시작한 1959년이다. 그 무렵 민주주의를 표방한 자본주의 세계의 청년들은 역사 속의 사건들과는 무관하게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가벼운 향락을 쫓곤 했다. 그들의 관심은 이성이나, 축구, 광적인 록 음악에 있었으며, 정치에는 무관심했다. 반항이나 일탈은 단순히 머리 모양을 흐트러뜨리거나 거칠어보이는 장신구, 담배나 술을 비롯한 약물 따위로 표현되었을뿐 큰 그림에서는 체제, 관습, 문화, 사회적 신념 따위에 순응했다. 무엇보다 현실이 중요했으므로 과거는 무의미했고,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런가하면, 전쟁의 포화 속에 참전하거나 휩쓸렸던 기성세대들 역시 정치에 무관심하기를 내심 원했는데 그들은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세뇌했다. 그러한 시류에 동화되지 못한 사람들은 미쳐 돌아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편 이 소설의 배경인 프랑스에서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알제리와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전쟁은 불의를 징벌해야 한다는 신념에 빠진 많은 젊은이들을 또다시 전쟁터로 불러 모았고,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했으며, 그들의 죽음은 영웅적이지 않았다. 무엇으로 이름하듯 전쟁터에서의 죽음은 '개죽음'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쟁을 원하고 조장하는 이들은 정작 뒤로 물러나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도록 획책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정말 쓸모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 밖에 없었다."(1권, 62쪽)
화자이며 주인공인 미셸은 중학생으로, 책읽기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한편, 어른들의 카페에서 즐기는 테이블 풋볼과 록 음악에 빠져있다. 그외의 학교 공부나 또래 친구 사귀기 따위는 미셸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이민자이며 프롤레탈리아 계급에 속하는 가문의 아들인 아버지와 부르주아의 딸인 엄마 사이에 만연한 부당함을 일찍부터 느껴왔던 미셸은 나이보다 조숙했던 만큼 시니컬한 어른의 세계를 벌써부터 흉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미셸이 자주 드나드는 카페 '발토'에서 출입이 금지된 문 넘어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데, 그곳이 바로 '구제불능 낙천주의자'라는 이름의 체스 클럽이다.
'낙관주의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농담 한마디로 자신이 속해있던 사회에서 축출된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의 주인공 루드빅의 말에서 '구제불능 낙천주의자'라는 이름을 따왔다고 작가 게나시아는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소설 <농담>은 사회주의 건설에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던 당시 체코 사회에 대한 농담 한마디로 인생이 온통 뒤틀려 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게나시아는 이념이나 신념 때문이 아닌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망명을 택한 이들의 삶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이름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나는 내 진영을 선택한 게 아니야. 그냥 내 진영 안에서 태어난 거지. (1권, 18쪽)
클럽에 드나드는 남자들은 소련과 동구유럽, 그리스에서 망명온 이들로 본국에서는 의사, 외교관, 전쟁 영웅, 유명배우, 석유회사 간부를 비롯한 상류계급의 사람들이였다. 그러나 목숨을 건 망명 후에는 본국에서의 전적을 인정받지 못한 덕분으로 택시 기사, 야간 경비원 등의 일을 하며 밑바닥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무엇보다 가난했고,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려 한 조국에 가족을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클럽에는 이들 망명자들 외에도 사르트르와 커셀이 있었는데, 사르트르와 커셀은 정식 회원은 아니였지만, 가난한 망명자들의 경제적 후원자이며 든든한 구심점이 되었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태어날 곳을 미리 지정할 수는 없다. 그저 태어날 뿐이고, 태어난 그곳은 신념과 사상의 조국이 될 뿐이다. 그러나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의 그들은 주어진 진영을 버리고 '살기'를 택한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며, '삶'이 곳 '승리'이기 때문이다.
망명자도 아니고 더구나 어리기까지한 미셸이 거친 인생을 살아온 망명자들의 클럽에 정식 회원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남자들의 과거와 미셸의 현재가 적절히 섞이는데, 정작 망명자이면서도 망명자 클럽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샤의 비밀이 이 소설의 백미다. 오랜 세월에 걸쳐 조국의 충실한 일꾼이였으며, 그것의 올바름을 믿었던 사샤는 그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줄곧 자신을 죽이기로 한다. 아무도 자신이 태어날 진영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지만, 그곳으로부터의 탈주를 꿈꿀 수는 있다. 그것이 망명이든, 자살이든.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공산주의는 그 이념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역사 속에서 판명되었다. 소설은 공산주의를 지지했던 샤르트르의 장례식으로 시작해서, 공산주의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으나, 그것이 아름다운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망가뜨림으로써 속죄하며 죽어간 공산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이고, 망명자들의 세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공산주의를 낙관했던 진정한 낙천주의자였으며, 운명에 대한 반항아였던 사샤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세상을 사는 방법엔 순응과 반항 두가지가 있고, 한 사람의 삶에서 이 방법은 줄곧 하나만 선택될 수도, 두가지 모두 선택될 수도 있다. 선택은 순차적이지 않으며, 선택자의 시기나 상황에 따라 순응에서 반항으로, 혹은 반항에서 순응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변절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아무도, 그 누구도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전부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연은 없어. 오늘 우리가 만나는 것은 예정되어 있었어." (2권, 229쪽)
한 개인의 삶을 짜올리는데에 있어 그 사람의 의지와 자력은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길을 걸으면서도 책 읽기를 멈추지않는 미셸은 역시 길을 걸으면서 책을 읽는 여자와 부딪혀 사랑에 빠진다. 까미유는 별자리 운세를 믿었는데, 모든 것은 이미 별에 새겨진 채로 예정되어 있고, 인간은 그를 충실히 따르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 반항은 어떤식으로든 무의미하고, 인간은 그저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라는 주장인데, 의외로 까미유가 잠자리에서 머리맡에 두는 책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다. 망명자들의 클럽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망명자이고, 한편으로는 미셸의 정신적 지주이며 연애 상담자가 되어준 사샤는 이런 까미유의 이중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녀가 꿈꾸는 것은 시가 아니라 반항이고 탈주요. ... 나중에 가면 여자들이 변할 거요. 아이들과 남편을 원하고, 집을 원하고, 바다로 떠나는 바캉스와 가전제품을 원할 날이 온다는 말이오. 바로 그런 것이 그녀들 가슴속의 시와 반항을 죽이는 것이지." (2권, 283쪽)
이념이나 사상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반항이나 탈주를 꾀한다면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까미유의 말처럼 운명은 이미 별자리에 새겨있어 어떻게도 바꿀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인간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기호 같은 것이 반항 아닐까.
장미셸 게나시아를 모르기에 별 기대 없이 읽은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은 참으로 매력적인 소설이다. 나 역시 제사에 사용된 무명씨의 글처럼 똑똑한 비관주의자이기보다는 실수 연발의 낙천주의자이고 싶다. 진보라는 측면에서는 반항과 함께 낙천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깨닫는다. 실현 불가능할 지라도 인간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시대가 이상주의자들 혹은 낙관주의자들을 주저앉히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듯, 이에 대한 반항과 탈주 역시 계속되어야 한다. 비록 세월과 함께 순응주의자로 묻혀갈지라도 한때나마 방항하는 시절들이 모여 세상의 진보를 이뤄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