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심리코드
황상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먼저 정체성에 관해 생각해본다. 나는 누구인가. 여성, 한 남자의 아내이며 한 아이의 엄마, 직장인, 그리고 한국인.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나'라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라는 것, 아내이며 엄마라는 것, 한국인 이라는 것은 나를 설명하는 외적 조건은 될 수 있으나 '나'는 되지 못한다. 그것들의 총합이 반드시 '나'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들을 좋아하고, 다른사람들에게 세련되게 보여지길 원하고, 명랑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하지만 실제의 나는 조용한 사람이고, 많은 사람들 틈에 있기보다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한다. 또 나는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지향하는 성형수술을 혐오하지만, 자신의 외모를 가꾸지 않는 사람 또한 경멸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나는 아이가 명랑하고 쾌활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를 학교에서 학원으로 돌리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고, 4대강 공사는 시작부터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자살했다는 생각을 하면 치가 떨리는 사람이다. 또한 여자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기 보다는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며,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했을 때 우울해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보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그중 아이를 특히 사랑한다. 또 나는 애완견을 사랑하고, 애완견에게도 견격이 있다라고 믿는 사람이다.

또 나는 누구도 하고싶어 하지 않는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 예를들면 화장실 청소부, 뙤약볕에서 일하는 막노동자,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앉을 틈도 없이 비지땀을 흘리며 빈대떡을 구워대는 아줌마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경제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직도 나라는 사람에대해 이야기 하려면 멀었지만, 이정도로만 정리해도 '나'라는 사람을 '한국인'이라는 틀만으로 규정하기엔 모순이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을 생각이 든 것은, 각 개인을 규정하는 정체성과 함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있듯 한국인만이 갖는 심리 코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이렇듯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무던히도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노려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인은 사회 구성원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남을 이기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황상민 교수의 <한국인의 심리코드>를 읽으며 무던히도 피곤해지는 느낌이다.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발뺌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말 아닌가, 나는 정말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조금이라도 더 낫게 보이고 싶어했거나 혹은 낫게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을 숨기고 싶어하지 않았나. 내 자신의 시각으로 나 자신을 보기 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확인하며 단속하지 않았나.

내 스스로의 가치 판단을 부르짖으면서도 무심결에 '나 어떠냐'는 물음을 남발하고, 식당을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아이가 외국인 보기에 부끄럽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지점이다.

한국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다양한 심리코드는 뚜렷한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해 혼란스러운 한국인 각 개인이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대세를 따르는 데서 출발한다라고 말한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며 모든 것이 파괴되었던 상황에서 빠른 시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낸 한국인들은 성공에 대한 확신이나 혹은 자신감을 상실한데서 오는 정체감의 혼미를 겪으며 다른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을 찾는데서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돈으로 무엇이든 다 된다고 믿는 졸부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특히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릴 것을 종용하는 3장 교육에 크게 공감했는데, 황상민 교수는 우리 교육의 진짜 문제는 교육을 잘 받으면 성공하고, 출세하며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믿는 집단 심리가 우리 교육의 진짜 문제라고 지적한다. 돈을 모든 것의 척도로 삼는 사회에서는 교육조차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자기 포장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을 사느냐가 내가 누구인가를 결정한다는 한국인의 소비 심리에도 많은 부분 공감했지만, 나는 살짝 한국인의 집단 심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황상민 교수도 말하듯이 어떻든 새로운 세대는 자기만족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찾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집단 심리 코드를 알았다면 이제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것인데, 그 해결책은 바로 이렇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던 사회인식 불능증에서 너도나도 벗어남과 동시에 각자 다르게 직면하는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을 이해하고, 다양한 심리코드를 인정하며, 소통의 시대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황상민 교수는 행복하고 잘 살기 위해 남에게서 답을 찾는 행위를 멈추고 '한국인, 나는 누구인가요?'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에 묻는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떠나, 그저 나 자신이 누구인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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