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황경란 지음 / 산지니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황경란의 소설집 사람들<얼후>
(이 책의 단편들을 읽어가며 리뷰를 쓸 예정이다. 일종의 읽기 과정의 리뷰.)

앞의 글 <사람들>에서 나왔던 연변합창단 이야기일까?

얼후二胡(이호)라는 중국 악기로 2개의 현을 활로 켜서 연주하는 중국의 악기로, ‘(er)’은 숫자 2를 가리키고, ‘(hu)’는 찰현악기를 의미한다. 세로로 건 두 줄 사이에 말총 활을 넣어 연주하는 것이 찰현(擦絃, 줄비빔)악기이다. 우리나라에는 해금이 있고, 일본의 고큐(胡弓), 몽골의 모린호르(馬頭琴마두금, Morin khuur) 등이 있다.

인락과 양춘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이다.
김단장과 양춘은 얼후 연주자와 연변아리랑 가수 관계이다.
이들은 연변 새불이 마을에 산다. 

양춘의 입장에서 글은 전개된다.

첫문장: 눈이 그치자 인락은 기다렸다는 듯이 양춘의 등을 떠밀었다.

        “가서 걷고 와라.”

눈 덮인 옥수수 밭은 왜 걸으라고 하는걸까?
눈으로 덮인 옥수수밭에 길을 내며 양춘은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p40  이 마을의 전설은 피란 말입니다.

김단장이 인락에게 하는 이 말은 또 무슨 뜻인가?

의문 속에서 점점점 글의 맥락, 아니 사람의 맥락을 잡아간다.


김단장과 양춘은 일주일 후에 한국에서 김단장은 얼후를 연주하고 양춘은 연변아리랑을 부를 예정이다. 인락이 양춘을 연습시킨다. 그러나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마을사람들처럼 양춘이에게도 염병할 새불이다. 염병할 연변이다.
새불이 마을에서 조선족으로 산다는 것은 눈 내리는 밭에서도 내 밭이라고 발로 밟아 금을 긋고, 옥수수밭에 문을 달아야 할 만큼 한족들의 텃새를 감당해야 했다. 이젠 미련을 버리고 떠나자고 아들 며느리가 말하지만 인락은 그럴 수 없다. 양춘의 엄마는 미련을 버리고 한국에 일하러 가고, 고생한다고 엄마를 칭찬하던 아버지는 시간의 의식 흐름 속에 죽일년이 된 엄마를 잡으러 한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둘 다 돌아오지 않는다.

인락은 간도를 오고 가는 조선독립군을 똑똑히 봤다. 해골 얼굴이지만 범이라도 잡을 눈빛을 봤다. 그리고 그들이 들여준 노래, 시라고 부르는 그 노래를 김단장이 안다.
p47 인락과 김단장의 대화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가난을 피해 왔지만 가난해서 고향에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 속에는 전쟁과 피와 땀이 있었다.


인락에게는 새불이를 떠나지 못할 이유가 분명하게 있는 것이다.
p49 “그러니까 내 고향도, 죽은 독립군들의 고향도, 모두 조선이란 말이지.”

양춘은 부모에 대한 반항, 돈에 대한 반항, 할아버지의 알 수 없는 신념에 대한 반항으로 새불이를 떠나 연변시내를 돌아다니며 관광객 호객행위를 했고 돈에 미처 탈북자 밀고도 한다. 인락은 양춘을 붙잡아 새불이 옥수수밭에 끌고 올라가 노래를 부른다. 양춘은 귀를 막고 인락을 뿌리친다. 노인네 인락은 옥수수밭 아래로 낙엽처럼 쓸려간다.
p61 양춘은 인락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까 겁이 났다.

일 년 가까이 연습한 공연이 일주일 후인데 공연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p62 “한국 사람들에겐 연변 아리랑이 불순할 수 있어도 우리에게 연변 아리랑은 순정이란 말입니다. 순정

김단장과 인락이 기억하는 마을의 전설. 이제는 양춘이 기억해야 한다.
p62 “그러니까 너 또한 네 할아버지가 간직한 이 노래를 기억해야 해.”


마지막 문장: 그렇게 되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집으로 돌아가 인락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었다. 이제 그만 하면 됐다, 라고 말하는 인락이라면 김 단장이 말하는 이 마을의 전설인 피와 순정이 그대로 전해질 터였다.

마지막 문장, 정말 그럴까? 그래. 양춘이가 하면 될 터이다. 한국 관광객들은 옥수수밭에서 보이다 사라지다 하며 부르는 인락의 노랫소리를 이국적인 풍경으로만 봤다. 나도 어쩜 그 관광객 중에 하나일지 모른다. 

두 줄 사이에서 활이 움직여 소리를 내는 얼후처럼 김단장과 인락의 삶이 그런 듯 하다. 인락과 양춘의 삶도 그렇게 연주되는 것 같다. 이제 그 노래를 기억할 사람이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맘 2021-04-1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줄 얼후...그 속에 담긴 연주자들의 삶의 이야기...이제는 음악을 들을 때 연주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안녕, 나의 우주 반올림 51
오시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
안녕, 나의 우주는 만남의 인사인 줄 알았다.

책을 읽은 후
안녕, 나의 우주는 헤어짐의 인사임을 알았다.

 

잘 헤어지기.


난 이 책의 주제를 이렇게 잡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아빠의 죽음은 평소의 생활을 그대로 살게 한다. 그런 삶은 오히려 죽음을 애도해야 할 사람에겐 마치 외계의 세계와 같이 느껴질 것이다. 통곡을 하며 울어야 하는데 평소의 생활을 그대로 살고 있다니, 당사자는 웃을 일이다.

그런데 진짜 외계인이 찾아온다. 주인공 우주인에게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몇 번 그의 얼굴을 보았지만 그 푸른빛 몸을 발견한 것은 기철이와 한판 붙었을 때이다. 맘에도 없는 소리를 기철이에게 퍼붓고 미안한데 싸운다. 어떨결에 그를 삼촌이라고 해외에서 살다 와서 한국말을 잘 못 한다고 거짓말을 하며 그와 함께 산다. 그리고 그와 헤어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아빠에 대한 마음의 투사이다.

p151 “나는 아빠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영원한 헤어짐을 앞두고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것은 한이 된다.

기철이도 아빠와 작별 인사를 못했다. 기철이 아빠도 은하호를 타고 나가 풍랑으로 돌아가셨다. 아니 아버지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기철이는 단단하다. 오히려 아버지로 인해 꿈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기철이까지 잃을까 배를 탈 생각을 못하게 한다. 그저 뭍으로 나가서 뭍에서 살기 바란다. 주인이는 이런 기철이를 부러워한다. 꿈이 있고 몸도 마음도 단단한 기철이와 나약한 자신을 비교한다. 기철이는 단번에 단단해졌을까?

p19 “내도 겪어 봐서 안다. 그래도 쪼매만 지나면 괘않다. 처음엔 따라 죽을 것처럼 힘들지만 밥도 묵고, 잠도자고 그렇더라. 그라닌깐…….”
p161 “억수로 힘들었다. 그란데 한 해 두 해 시간이 가고, 할배랑 할매 차례상에 하듯이 아빠 차례상에 절하다 보이 괜찮아지더라.”



삼촌을 통해 주인이는 아빠의 생각들을 정리해 간다. 아빠를 다시 기억해 낸다. 아빠와 있던 추억을 다시 불러 들인다. 그러면서 삼촌을 보내고 싶지 않아 되돌아갈 수 있는 장치 하나를 숨긴다. 마치 선녀와 나뭇꾼처럼.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은 보내야만 하는 순간. 주인이는 기철이와 함께 지혜와 용기로 삼촌을 구한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여기고 기철이를 육지로 돌려 보내고 혼자 삼촌을 데리고 어두운 바다로 배를 몬다. 그의 이름은 스론아빠의 입술에서 들었던 마지막 소리, ....

잘 가요, 아빠
잘 가요, 스론


그제서야 주인이는 제대로 헤어진다.


기철이의 위로에 오히려 주먹을 날리고
p19 “그딴 거 필요 없어, 아빠도 없는 거지새끼 주제에.”
다시 주어 담지 못할 말, 자신에게도 던져지는 말을 하였다. 그 이후로 미안함을 가지고 같이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하고 일도 같이 하지만 정식적인 사과를 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p159 “미안했다.”
     “내가 잘못했어

     너한테 화가 났던게 아니라 나한테 화가 난 거야. 너한테 했던 그 말도 실은 나한테 한 말이고.”


주인이는 미안하다는 말, ‘잘 가요라는 말을 몸으로 알아간다.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거다.

나를 뒤돌아봐도 그렇다. 머쓱한 마음에 미안하다 말하지 못하고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다. 슬픔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한참 후에서야 상처가 터져 나와 근원을 알지 못한 체 방황한다. 돌이켜 보면, 제대로 미안하다 하지 못하고, 제대로 사과 받지 못하고. 제대로 헤어지지 못한 일들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오롯이 내가 해 내야 하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오롯이 해 내야 하는 일을 어쩜 어른들이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슬프다고 힘들다고. 그런데 결국 어른이 되려면 몸을 알아야 하는 것들이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 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 DNA는 그 아이에게도 있을 것이다.
기철이가 이겼듯이, 주인이가 이겨가듯이, 우리 아이들도 이겨갈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럴 수 있음을, 자신을 믿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길 바란다.

리뷰를 쓰기 전



안녕, 나의 우주는 헤어짐의 인사임을 알았다.
리뷰를 쓰고 난 후
안녕, 나의 우주는 다시 하는 인사임을 알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맘 2021-04-06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헤어지기...고마움이든 미안함이든 영영 헤어짐이든 잘 할 수 있도록...잘 해낼 수 있도록 마음 챙겨봅니다. ^^
 
사람들 -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황경란 지음 / 산지니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황경란의 소설집 사람들<사람들>
(이 책을 다 읽지 않고 단편들을 읽어가며 리뷰를 쓸 예정이다. 일종의 읽기 과정의 리뷰.)

첫 문장: 부장은 륜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마지막 문장: 다음 날 신문에는 네 번째 사람들이 아닌 사고, 연재를 마치며가 실렸고 그날 부장이 대신해 쓴 마지막 문장은 륜이 말하고 내가 씀이었다.

신문사 부장의 내면을 중심으로 하여 이라는 부하 기자를 관찰하는 시선으로 쓰여졌다. 륜은 2년차에 사회면 연재 기사를 쓰게 되었다. 그는 주제를 사람들로 잡았다. 시련을 극복한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 그들을 기억해 한다는 기획의도에 부장은 미친놈이라 생각했지만 사람들이라는 점 하나가 맘에 들어 허락한다. “신문은 일기장이 아니야” “그게 문제죠. 신문에는 선과 악,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밖에 없잖아요부장은 륜의 은유연민, 환멸을 닮은 흔해 빠진 단어들을 잘라낸다.

 

륜이 연재를 쓴 지 얼마 안 되어 갑자기 일본에 시모토리를 만나기 위해 떠나야 한다고 연락한다. ‘강제전향 장기수시모토리. 그는 죽었는데 륜은 만나야 한다고 한다. 부장은 허락하고 그를 대신해 연재를 쓰려고 준비하면서 륜을 생각한다. 그의 행태, 모양, 그의 글 스타일, 작업 스타일은 생각나는데 정작 륜의 얼굴이 떠올려지지 않는다. 그러다.....


이 글은 과 강제전향 장기수 시모토리, 한 줄로만 설명된 외국인 노동자 칸만 이름이 있다. 다른 이들은 이름이 없다. 이미지도 없다. 부장은 륜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니 독자도 이미지를 그릴 수 없다. 부장의 인물도, 주변 인물들도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가 아닌가 싶다. 사건은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 일은 있는데 그 속에 사람이 없는 느낌이다.


은 신문에 인간미를 나타내려 한다. 부장도 젊은 시절 그랬다. 그러나 지금, 부장은 그의 인간미 문장들을 자른다. 신문! 신문과 사람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난 신문에서 무엇을 읽는가? 사회면에서 무엇을 찾는가? ‘은 어떤 기사를 쓴 것인가? 100자의 생활정보를 어떻게 쓴 것일까? 그의 기사를 읽으면 나에겐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부장은 륜을 대신 해 글을 쓰기 위해 그의 컴퓨터를 켠다. 륜이 분류한 사람들의 기준은 사람에 의한 시련’, ‘외부 충격에 의한 시련’. 사람을 이렇게도 분류할 수 있구나. 그가 찾은 사람들이 궁금하다.

파일 맨 밑의 문장.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사람에 의한 시련과 함께 외부 충격에 의한 시련을 모두 가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그래서, 모든 시련은 여기서 출발한다.” 이 말은 충격이었다. 그야말로 나에겐 뉴스였다.


륜은 술을 먹으면 그게요 선배라고 말한다. 뭔가를 설명하려는 륜. 연재 기사를 점검 받을 때 마지막 문장은 진실이거든요라며 부장에게 마지막 문장을 살려 달려고 말한다. 그러나 부장은 륜이 말하는 진실은 찾아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장은 륜에게 열정을 향한 집중이 있음을 안다. 들썩이지 않고 끓을 때 까지 절대 한 눈 팔지 않는 륜을 마음에 둔다. 그리고 그에게서 신입 때의 지신을 본다. “제 기사는 그냥 기사가 아니에요. 그건, 그건, 사랑이에요.”
진실을 말하려는 륜과 사랑을 말하려는 부장. 륜은 진실을 찾아 떠났고, 부장은 그를 대신 해 글을 쓴다. 어쩜 그것은 부장의 사랑이 아닐까 한다.

이 글은 단편임에도 장편의 서사를 쓰기 위한 발단처럼 보인다. 부장과 륜의 짧은 사연들과 문장은 씨실과 날실의 교차로 소설의 면을 채운다. 멈추어 생각하기에 녹녹치 않은 깊이가 있다. 사연과 문장이 생각과 함께 올올이 살아난다.

p20
블라인드가 그늘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이 컴퓨터 화면 위로 도드라졌다
빛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블라인드.
회전의자.
부장이 젊은 시절 썼다는 오늘의 소사문학과 연결한 연재 기사, 넬슨 만델라가 나딘 고디머와 만나는 상상의 글과 륜의 시모토리 인터뷰를 상상.
가난은 추하다라는 글을 작가에 대한 비판과 그 문장에 대한 미처 마무리 되지 않은 륜의 생각.
진실 된 역사를 찾는 고등학생들, “무조건 끼워 넣는 거죠. 맞을 거라 생각하면서요.” “침묵은……, 침묵은 자칫 진실처럼 보이니까요” “그냥지금처럼, 찾고 싶어요.”
생각할 것들이 수두룩하다. 넓게, 깊게 생각해 볼 것들이다.


부장이 쓴 유명 작가의 광고와 경제칼럼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나는 황경란 작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의 말을 빌려 이 작품을 말하자면 이 작품은 보편적이지 않다. 황경란 작가의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다.
<사람들>은 단편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장편을 여는 문으로 보여진다.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야기는 세상 모든 이야기이지 않은가. 끝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사람들은 끝없는 넓이와 깊이의 장편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효미 2021-04-0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제목을 잘 지으셨네요.
책을 읽으신 분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꿈맘 2021-04-05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없는 넓이와 깊이의 장편인 ˝사람들˝ 섬세하게 소개해 주셨네요. 선생님의 리뷰도 장편같은 서사가 느껴져요. ^^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이경혜 지음 / 바람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년 전 큰딸아이가 중2였을 때 처음 읽었다.

엄마 읽어 볼래?”

담배 피우는 중2 여자아이? 뭐야?”
책의 끝의 머리에서는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서너 번은 더 읽었다. 독서동아리에서, 아이들 때문에, 첫인상이 강렬해서인지 그 다음 부터는 설렁설렁 본 것 같다.

 

이번에 다시 바람북스로 리커버 되어 나왔다. 언박싱 했을 때 ~~ 너무 예쁘다벚꽃과 파란 일기장이 더욱 분명하게 다가왔다. 분홍 속지는 귓가에 <벚꽃 엔딩>을 들리게 했다. ‘벚꽃 엔딩 같은 책이구나. 17. 앞으로도 계속 읽혀질 것 같다.’ 이전 책보다 편집이 더 깔끔하게 느껴졌다. 글의 집중도가 더 높아졌다. 글들이 다시 보였다. 다시 보니 오래 갈 만한 요소들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첫 번째 제목이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제목이 너무 끌리지 않는가? 당연히 BTS가 볼 만하다.

이 제목을 보고 어찌 안 읽으리. 이 책을 안 읽었다면 이 책의 제목을 듣지 못해서, 이 책의 표지를 보지 못해서이다.
작은 소재로 벚꽃, 고양이도 한몫한다.

보수적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 시선.

청소년기의 이성 고민과 죽음의 고민.

무엇보다 솔직함을 쓴 작가의 글이다. 현실을 마주하게 한 글이다. 이 현실은 지금도 있다. 우리의 구석 어딘가에.

그 구석에 있는 아이에게 이 책을 내밀고 싶다.

 

서로에게 좋아하는 이성이 있는 유미와 재준는 친구다. 벚꽃이 피고 떨어지는 어느 4월에 친구가 되었다. 유미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파란 일기장의 일기의 시작은 313! (2021313일 이 책을 다시 보고 있었다)
// p12.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말에 유미는 마지막에 내가 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뜻이지라고 답한다.

 

//p16. 가사완성축하해줘밤이깊어도죽음은오지않네첫줄이야죽이지않냐깨는대로답보내잘자.

이 말은 엄청난 복선이다.

 

재준이가 죽음을 생각하고 일기를 쓴 것은 너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죽는 순간 재준은 인생에 감사했을 것이다. 일기를 통해 이미 연습했으니까.

재준을 죽게 내 버려둔 작가에게 나는 고맙다. 이게 현실이니까. 현실을 보게 하는 것이다. 책의 아픈 여운은 마음에 가두어지지 않고 오히려 진짜 현실로 다가가게 하는 힘이 있다. 나는 처음에 재준이가 불쌍해서 운 것이다. 이번에 읽을 때는 유미 때문에 울었다. 살아준 유미가 고마워서 울었다. 그리고 재준이에게 고마워서 울었다. 일기장을 남겨서 유미가 버틸 수 있었다고, 유미가 잘 클 수 있었다고.

유튜브를 찾아보니 원령공주ost 반복 2시간 이상짜리가 여러 개 있다. 나도 다시 듣는다. 다음에 또 다시 이 책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우리 모두는 어느 날 죽는다. 나도 어느 날 죽을 것이다. 나도 재준이처럼 써야겠다. 죽음 앞에서 인생에 감사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남겨진 이들을 위하여.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덧붙임: 학부모독서동아리에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사춘기 시절을 돌아보며 유미와 재준이를 이해하고, 내 아이를 이해하는 감사의 시간이 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맘 2021-03-21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번 읽으셨군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학부모들과 함께 읽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걱정보다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될 듯합니다.

소유맘 2021-03-2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일기장 때문에 유미가 처음엔 힘들었겠지만 결국엔 다시 살아갈수 있는 힘을 얻은거같아요.
 
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첫문장 : 나에겐 이름이 없다

첫 페이지부터 너무 맘에 든다.

 

편하게 읽어 가려고 늘 쓰던 독서록을 내려놓고 읽으려 책을 들었는데 초반부터 포진되어 있는 끌리는 문장들 때문에 펜을 다시 챙기고 노트를 펼친다.

첫 페이지에서 작은 알 하나의 힌트만 던진 채 이야기는 노든에게서 출발한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 작은 알 하나가 굴러 다닌다.

 

사람들의 보호가 있는 초원.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란 노든은 남고 싶지만...


p16.“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 그래
p18.“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생략)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 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p22. 코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코뿔소들이 있어야만 했다.

 

가족을 이룬 노든은 가족을 모두 빼앗긴다. 사람들의 보호는 완벽하지 않다. 그 사람 중엔 나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파라다이스 동물원> 반어적 이름이다.

p.40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 코뿔소 노든을 소개합니다

 

이 소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코뿔소를 코뿔소 답게 하는 뿔을 자르고 그를 울타리안에 감금 같은 보호를 한다. 다른 종류의 동물들도 그들이 원래 살아야 할 땅이 아닌 인간의 만족을 위해 마련한 <파라다이스 동물원>에 있다.

 

치쿠와 윔보는 자신의 알도 아닌, 심지어 펭귄 알처럼 보여지지도 않는(펭귄의 알은 흰색, 이 알은 검은 반점-이 말 때문에 나는 읽는 내내 펭귄이 아닐 것이라 생각 함.) 버려진 알을 책임진다. 화재가 나던 날 밤, 치쿠와 찌그러진 작은 양동이 안에 알과 노든이 동물원을 탈출한다. 정어리 눈곱만한 코뿔소와 코끼리 코딱지만한 펭귄, 그리고 정체 모를 알. 이름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노든과 치쿠는 이름도 없고 정체성도 모르는 알을 지킨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포기할 수 있는 것,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그것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 자신을 희생시킨다는 것. 요즘 잃어버린 모습이다.


긴긴밤은 시련의 밤이다. 긴긴밤은 슬픔의 밤이다. 긴긴밤은 외로움의 밤이다. 긴긴밤은 긴긴기다림이다. 치쿠가 노든에게 그 애를 바다에 데려다준다고 약속해부탁한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알이 담긴 양동이를 흔들리지 않게 보호하고 걷다가 펭귄이 쉬기 좋은 이슬 내린 풀 위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p77에는 알에서 깨어나면서 노든을 바라보는 시선의 그림은 루리작가가 그림도 그렸지!’를 제대로 느끼게 하는 그림이었다. 긴긴밤에 태어난 생명, 처음 긴긴밤을 보게 되는 생명체를 그림이 고스란히 표현해 주고 있다.

p80 알 바깥의 세상에서는 살기보다 죽기가 더 쉽다고 했다. 살아남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데도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치쿠와 위보 때문이라고 했다.


<망고열매 색 하늘>은 도대체 어떤 하늘이지? 105쪽 그림이 보여 준다.

이름 없는 아이를 치쿠의 약속대로 데리고 가는 노든. 그러나 방향을 알 수 없다. 또 다시 아내와 딸이 죽었던 날 맡았던 총 냄새. 그 위험의 긴긴밤. 사막도 걷는다. 방향은 바다이다. 노든은 지쳤고 병들었다. 노든은 코뿔소의 바다에 머무른다.

p115 “그러면 나도 여기에 있을께요

아니야, 너는 네 바다를 찾으러 가야지. 치쿠가 얘기한 파란색 지평선을 찾아서

너는 펭귄이잖아. 펭귄은 바다를 찾아가야 해.”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자신의 바다를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노든과 오래도록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펭귄은 바다로 떠난다. 그리고 혼자 바다에 도착한다. 모래 언덕을 넘고 절벽에서 수백 번 미끄러지며 틈새를 쪼아 만들어 절벽을 넘어가려 한다.

 

p124 여기저기 멍이 들고 상처가 생겼지만 밤은 길지 않았다. 나는 오르고 떨어지고 오르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시도 끝에 절벽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었다.

밤은 길지 않았다!’ 이 말에 나는 의미를 둔다. 밤이 길지 않았다! 밤이 길지 않았다!

p124-125

축축한 모래를 밟으며 나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내 앞의 바다는 수도 없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노든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난 이름 없는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너의 긴긴밤 이야기 고마워. 너도 노든처럼 누군가의 긴긴밤을 같이 해 줄 것 같아. 훌륭한 펭귄이 될거야. 그런데 말이야, 나도 너랑 같은 것 같아. 혹시 너의 이름을 미아라고 하지 않을래? 내 이름이야


덧붙임: 중간 중간 루리 작가의 그림은 따뜻하다. 책을 더 이해하게 한다. 맨 뒤에 루리 작가의 그림을 추천한다. 바다 앞에 선 펭귄, 노든의 초록바다. 망고열매하늘색과 초원, 망고열매, 긴긴밤, 그리고 두 개의 바다, 그리고 나에게 눈 맞추는 주인공. 글의 여운을 그림이 더 짙게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맘 2021-03-2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을 지어주셨군요. ^^ 이름을 지어주고 싶을 만큼 애틋함이 남은 이야기였나봐요. 긴긴밤을 함께 보낸 세 명의 친구들 저도 만나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