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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가 싫은 날 ㅣ 높새바람 52
지혜진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심 찾기
와~ ‘바람의 아이들’이 이번에 신인 작가를 제대로 찾은 것 같다. 근래 내가 본 동화책 중에 최고다. 이런 주제의 책도 없지만 이렇게 차분하게 조용히 마음을 집중시키며 가슴을 울리는 책도 최근에는 만나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다른 책들이 좀 시끄러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밝고 명랑한, 그러면서 말이 많고 거친 반항과 대조적으로 이 책은 순종적이며 조용한 아이의 내면을 실제 생활 속에서 어떻게 갈등하는지 찬찬히 잘 보여준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길에서 떡볶이집에서. 양심의 갈등은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리고 아이는 그 갈등을 잘 딛고 한층 성장한다.
둘째 진주. 중학생 언니를 둔 초등고학년. 열심히 살았지만 이젠 아픈 몸과 실직이 된 엄마, 아빠. 알뜰살뜰 지출을 최대한 줄이지만 돈이 들어올 일이 없으니 어쩐다. 엄마가 감자 한 봉지를 슬쩍. 진주의 양심은 콕콕 찌르고 감자를 먹을 수 없다. 학교 급식에서도 모두가 먹기 싫어하는 브로콜리와 감자를 바꾼다. 양심과의 싸움이 치열하다. 그런데 엄마의 도둑질도 치열하다.
감자 한 봉지를 훔쳐야 할 만큼 마음이 가난해진 것이다. 마음이 돈 때문에 딱딱하게 굳어진 것이다. 그래서 양심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 한다. 한 번, 두 번, 양심은 돌아오지 못할 길로 건너가고 있다. 어른들의 굳은 마음을 만든 세상을 탓해 보고 싶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그것을 만든 것 또한 어른이 아닌가?
다행이다. 아이들은 몸으로 배운다는데 진주는 말랑한 어린이의 양심을 지킨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예민한 아이들의 양심 덕에 어른들의 양심의 굳은 살이 베어지길 바란다. 아이들이 어른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주 언니가 그런 거 아닐까? 겉으로는 엄마, 아빠에게 반항하지만 속으로는 걱정하고 아르바이트로 자기도 살 생각을 한다. 그래도 참지 말고 말하라는 언니가 있어 다행이다. 양심 없는 친구에게 참고 있는 진주를 불 뿜는 인형처럼 용기 내게 하니 다행이다.
진주 옆에 누가 뭐래도 하고 싶은 꿈이 있는 세영이가 있어 다행이다. 책밥논술 마음톡톡 게시판이 있어 다행이다. 양심이 돌아오길 기다려 주는 원장님이 있어 다행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과연 다행인가? 아이들에게 마음톡톡 게시판을 주고 있는가?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주는 어른이 있는가? 미안할 뿐이다.
엄마가 딱 걸려서 다행이다. 딱 걸려서 감자 몇 알을 몰래 갚으며 양심을 돌려 놓았더니 가족의 모습도 제대로 돌아온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양심이 돌려지고 세상도 제대로 돌아가길 바란다. 나는 이 책이라도 소개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나머지는 책이 해 줄거라 생각한다.
다행이다. 말랑하고 예민한 어린이의 양심까지 상처 주고 딱지딱지 굳게 만드는 지금에 모두의 양심을 챙겨 줄 책이 나와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