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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황경란 지음 / 산지니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황경란의 소설집 『사람들』 중 <얼후>
(이 책의 단편들을 읽어가며 리뷰를 쓸 예정이다. 일종의 읽기 과정의 리뷰.)
앞의 글 <사람들>에서 나왔던 연변합창단 이야기일까?
‘얼후’는 二胡(이호)라는 중국 악기로 2개의 현을 활로 켜서 연주하는 중국의 악기로, ‘얼(er)’은 숫자 2를 가리키고, ‘후(hu)’는 찰현악기를 의미한다. 세로로 건 두 줄 사이에 말총 활을 넣어 연주하는 것이 찰현(擦絃, 줄비빔)악기이다. 우리나라에는 해금이 있고, 일본의 고큐(胡弓), 몽골의 모린호르(馬頭琴마두금, Morin khuur) 등이 있다.
인락과 양춘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이다.
김단장과 양춘은 얼후 연주자와 연변아리랑 가수 관계이다.
이들은 연변 새불이 마을에 산다.
양춘의 입장에서 글은 전개된다.
첫문장: 눈이 그치자 인락은 기다렸다는 듯이 양춘의 등을 떠밀었다.
“가서 걷고 와라.”
눈 덮인 옥수수 밭은 왜 걸으라고 하는걸까?
눈으로 덮인 옥수수밭에 길을 내며 양춘은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p40 이 마을의 전설은 피란 말입니다. 피
김단장이 인락에게 하는 이 말은 또 무슨 뜻인가?
의문 속에서 점점점 글의 맥락, 아니 사람의 맥락을 잡아간다.
김단장과 양춘은 일주일 후에 한국에서 김단장은 얼후를 연주하고 양춘은 연변아리랑을 부를 예정이다. 인락이 양춘을 연습시킨다. 그러나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마을사람들처럼 양춘이에게도 염병할 새불이다. 염병할 연변이다.
새불이 마을에서 조선족으로 산다는 것은 눈 내리는 밭에서도 내 밭이라고 발로 밟아 금을 긋고, 옥수수밭에 문을 달아야 할 만큼 한족들의 텃새를 감당해야 했다. 이젠 미련을 버리고 떠나자고 아들 며느리가 말하지만 인락은 그럴 수 없다. 양춘의 엄마는 미련을 버리고 한국에 일하러 가고, 고생한다고 엄마를 칭찬하던 아버지는 시간의 의식 흐름 속에 죽일년이 된 엄마를 잡으러 한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둘 다 돌아오지 않는다.
인락은 간도를 오고 가는 조선독립군을 똑똑히 봤다. 해골 얼굴이지만 범이라도 잡을 눈빛을 봤다. 그리고 그들이 들여준 노래, 시라고 부르는 그 노래를 김단장이 안다.
p47 인락과 김단장의 대화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가난을 피해 왔지만 가난해서 고향에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 속에는 전쟁과 피와 땀이 있었다.
인락에게는 새불이를 떠나지 못할 이유가 분명하게 있는 것이다.
p49 “그러니까 내 고향도, 죽은 독립군들의 고향도, 모두 조선이란 말이지.”
양춘은 부모에 대한 반항, 돈에 대한 반항, 할아버지의 알 수 없는 신념에 대한 반항으로 새불이를 떠나 연변시내를 돌아다니며 관광객 호객행위를 했고 돈에 미처 탈북자 밀고도 한다. 인락은 양춘을 붙잡아 새불이 옥수수밭에 끌고 올라가 노래를 부른다. 양춘은 귀를 막고 인락을 뿌리친다. 노인네 인락은 옥수수밭 아래로 낙엽처럼 쓸려간다.
p61 양춘은 인락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까 겁이 났다.
일 년 가까이 연습한 공연이 일주일 후인데 공연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p62 “한국 사람들에겐 연변 아리랑이 불순할 수 있어도 우리에게 연변 아리랑은 순정이란 말입니다. 순정”
김단장과 인락이 기억하는 마을의 전설. 이제는 양춘이 기억해야 한다.
p62 “그러니까 너 또한 네 할아버지가 간직한 이 노래를 기억해야 해.”
마지막 문장: 그렇게 되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집으로 돌아가 인락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었다. 이제 그만 하면 됐다, 라고 말하는 인락이라면 김 단장이 말하는 이 마을의 전설인 피와 순정이 그대로 전해질 터였다.
마지막 문장, 정말 그럴까? 그래. 양춘이가 하면 될 터이다. 한국 관광객들은 옥수수밭에서 보이다 사라지다 하며 부르는 인락의 노랫소리를 이국적인 풍경으로만 봤다. 나도 어쩜 그 관광객 중에 하나일지 모른다.
두 줄 사이에서 활이 움직여 소리를 내는 얼후처럼 김단장과 인락의 삶이 그런 듯 하다. 인락과 양춘의 삶도 그렇게 연주되는 것 같다. 이제 그 노래를 기억할 사람이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