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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 선생님과 도토리 약국 돌개바람 52
윤선아 지음, 신지영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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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괜찮은 저학년 동화 찾기 참 힘들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기니까 생략.)
아직 말랑말랑한 상상의 뇌가 언제든지 퐁퐁 상상을 들락날락 할 수 있는 나이다.
<람 선생님과 도토리 약국>은 상상과 현실의 연결이 잘 이어져 있다마치 줄 인형극처럼 현실의 이야기가 줄을 타고 동화 속 상상을 통해 고스란히 들어가 다시 독자로 하여금 줄을 타고 나의 현실로 나오게 하는 멋진 작품이다.

이런 아이 꼭 있다.’
맞아어른도 그래 


오히려 현실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동화의 상상 언어로 풀어내어 이해하기 쉬운 감성으로 바꾸어 준다.

맞아 아이들이 이렇지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느껴.’

내 아이의 논리전개와 감성을 만난다.


그 때 나도 람선생님처럼 따뜻하게 말해 줄 걸

나도 아이의 논리 속에서 아이가 이해 할 수 있도록 말해 줄 걸

어른의 논리로 고집을 부리고 아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어리석음을 다시 뉘우친다.
그런데 아이들만의 이야기만 나오지 않는다어른의 이야기도 나온다아이들에게 어른의 연약한 감성도 보게 해 준다

어른과 아이가 분리가 아닌서로 다른게 아닌우린 서로 필요한 존재들이다.


답은 사랑이다.

그런데 왜 도토리 약국이지?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깜짝 놀랐다.

진짜?’
진짜 이야기란다.

그래 진짜일 것 같았어

검색엔진에서 도토리 약국을 찾아본다. 3곳이 찍힌다작가님은 어느 지역 도토리 약국일까?
만나 보고 싶다.  아니람 선생님을 만나 보고 싶은 거다.


선생님저도 좀 봐주세요저도 사랑이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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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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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서동아리에서 기후위기 관련 책을 읽다가 권유받은 책이라 읽게 되었다. 


한 번 잡은 소설집은 '단편집이구나!'를 깨닫고 나서야 손에서 내려 놓았다. 장편이었으면 한 자리에서 다 읽었을 책이다.
서문을 정용준(소설가)가 썼다. '이런 경우도 있나?' 싶다. 기후위기에 대해 마치 내 생각이라도 알고 있는 듯 잘 표현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어쩜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리도 적당하게 잘 표현해 주었는지. 감각의 앎. 

10개 단편 중 앞의 세 편은 '돔시티'라는 배경으로 판타지하게 그렸다. 영화 같은 느낌으로 읽었다. 가끔 머릿속 필름이 종종 끊겨지기도 했다. 그건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배경들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상의 고리들이 나를 계속 끌고 들어갔다. 흥미진진했다.
굴과 탑의 대비되는, 그러나 같은 일을 하는 남녀와 그들의 사랑.

환경단체에서 만난 두 남녀가 함께 에너지 정책에 대해 시위하며 어려운 환경과 여론을 이끌어 가면서 힘들어 하고 결국 헤어지는 모습.

치열한(어쩌면 이도 폭염이 아닐까?) 경쟁 시험에서 9급공무원된 여자가 폭염의 피해의 무허가거주자의 민원을 처리하다가 마음이 끌려 찾아간 남자, 그 역시 시험 폭염 경쟁자.

죽어가는 산호초와 사라지는 흰동가리, 그것을 사랑하는 소년과 서퍼들의 의문의 죽음. 소년만 알고 있다.

작품 하나 하나가 현실을 그대로 잘 반영했다.


10개 작품 중 나에게 의미를 준 작품은 약속의 땅이다. 살려고 하나 죽을 수 밖에 없는 북극곰 환경과 1846년 유빙에 갇힌 테드호를 찾는 남녀, 그곳은 '약속의 땅'이라 불리는 곳. 어미는 자식을 위해 먹이고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뜯어 먹인 그 어미곰을 죽인다. 그리고 발견된 약속의 땅. 그러나 그녀도 가라앉는다. 이 모습은 기후위기를 맞이한 우리의 모습이다. 동반죽음!

 

무기력한 장마속에 무기력한 무직청년의 접는 삶.

마지막 '천국의 초저녁' 또한 우리가 바라는 바의 마음을 그대로 고스란히 담았다. 마지막에 나오는 여자의 마음도 남자의 마음도 다 현재 우리의 마음이다.


읽으면서 소설의 힘을 느꼈다. '그래! 문학의 힘은 이런거야!' 앞서 서문에서 말한대로 감각의 앎을 가지게 하는 힘. 우리는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소설가는 독자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하고 부딪치게 한다. 지금 기후위기 앞에 우리는 이런 부딪히는 감각의 앎이 필요하다. 그냥 뭉기적 말할 것도 뭉기적 행동할 것이 아닌 구체적 선택과 행동이 필요한 지점에 있다. 그런데 왜 뭉기적거리나? 몰라서이다.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기후위기시대와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가 분리가 아닌 하나임을 알게 한다. 이 점에서 오늘날의 우리의 상황은 더 시급한 것임을 느끼게 한다.


독서 동아리에서 같이 읽고 문제들을 짚어 어떻게 사회에서 행동해야 할지 나누고 실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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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황경란 지음 / 산지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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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란의 소설집 사람들<언덕 위의 집>
(이 책을 다 읽지 않고 단편들을 읽어가며 리뷰를 쓸 예정이다. 일종의 읽기 과정의 리뷰.)

첫 문장: 처음에는 하나였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 이제 늙은 아버지의 전설은 기다림뿐이다.

집과 집이 이어져 마을이 생겼다.


또 다른 아이들이 태어나 마을의 전설을 이어갔다.

마을의 전설은 왜 사리지고 있을까?
이제 집과 집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 위로 쌓여있다. 높이 더 높이 쌓는다. 권력의 높이가 더 높아진다.

아이는 아버지의 희망이었다. 좋은 사람이 될 기회 조차 빼앗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아버지에게 아이는 온 힘을 다해 살아야 할 이유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게 했다.
어느 덧, 아이는 소년이 되었다. 소년은 하늘을 날고 싶었다.

아픈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가난한 아버지는 언덕 위에 집에서 산다. 하늘과 가까운, 마지막 계단이 있는 곳에. 그리고 배고픈 사랑이 담긴 맛난 아채를 판다. 좋은 사람, 귀밑머리 반듯한 사람은 아들의 소원을 지키기 위해 재개발을 반대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쁜 사람이 된다. 부자가 되기보다 전설을 지킨다. 그리고 전설이 된다.

사람이 사니까 길이 있었던거야

 

소설에는 길이 있다고 하지만 정말 길이 있는걸까? 우리는 언덕 위의 집을 찾기나 하는 걸까? 무심과 방관,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망친다며 손가락질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사람의 처지가 어떻든지 간에. 집들이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길이 있게 되었는지는 관심 없이 말이다. 이 시대는 전설을 잃어버렸다. 전설을 이어갈 아이를 잃어버렸다. 날고 싶다는 소년을. 그럼 나는 어떠한가? 나 또한 전설을 잃어버린 이 사회의 일원이다. 나의 전설을 찾아가야겠다. 언덕 위의 집, 잃어버린 진정한 소망의 전설을 되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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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황경란 지음 / 산지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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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란의 소설집 사람들<당신의 자서전>
(이 책을 다 읽지 않고 단편들을 읽어가며 리뷰를 쓸 예정이다. 일종의 읽기 과정의 리뷰.)

첫 문장: 사람들이 바다를 향해서 뛰었다.
마지막 문장: 그 사진 하나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화자인 나는 꿈을 꾼다. 바다에 분홍돌고래가 출현하는 꿈이다.

-분명 꿈이었다. 분홍돌고래의 출현이 바다일 수는 없었다. 아마존이어야 옳았다.-


이 문장을 보면서 ?, 돌고래가 바다에 사는 게 옳은 게 아니고?’ 풀리지 않는 분홍돌고래.

분홍돌고래는 진짜 아마존에 산다. 우리는 자신의 범위 안에서만 타자를 판단한다.
위 꿈은 이 글에서 화자가 말하는 사실을 뒤집어 보여주는 편집이다.

 

단편<사람들>에서도 륜은 진실을 찾는다. 금령도, 양춘도, 리켈, 날개. <당신의 자서전>의 화자도 진실을 찾는다. 이 사회에서 진실은 비웃음과 무관심과 외면의 대상이다.

-제가 알고자 하는 진실의 실체는 저입니다.-

, 진실의 실체인 자신에게 조차도 비웃음과 무관심과 외면을 하는 시대이다.

아무리 사랑한다 할지라도 현실에 없는 진실은 버려짐을 당한다. 마치 화자의 엄마처럼. 그 진실을 사랑하면서도 버릴 수 밖에 없는 아버지는 스스로에게 벌을 준다. 그리고 정작 진실을 찾는다는 화자는 진실의 실체인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버린다. 그러나 무의식, 꿈에서도 그 진실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인지되지 못하는 마음 깊은 곳에는 어머니가 알려준 자신을 찾는 깊은 갈망으로 가득하다. 그것이 분홍돌고래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을 기리는 전시회. 그곳에는 생과 졸만 적힌 사진들로 하나씩 하나씩 채워져 간다. 화자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 행복했을 순간의 사진을 놓고 온다. 그리고 자신의 실존의 근원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 속에서 분홍돌고래와 헤엄치는 사진이 자신을 향해 웃는 것을 발견한다..


나의 깊은 갈망의 진실한 행복은 무엇인가? 나도 그런 행복을 담긴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분홍 돌고래를 아마존이 아닌 바다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작 나의 진실은 외면한 채 남의 진실을 쫓아 사는 것은 아닌가? 나의 분홍돌고래를 찾아야겠다.

내 부모의 자서전은 내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행복한 실물 사진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기억에 있을 뿐이다. 실물 사진이 있더라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으리라. 나의 부모가 나에게 의미가 되어 남아 있음에 감사하다. 그러기에 내 부모는 또한 나의 자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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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황경란 지음 / 산지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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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란의 소설집 사람들<소년은 알지 못 했다>
(이 책을 다 읽지 않고 단편들을 읽어가며 리뷰를 쓸 예정이다. 일종의 읽기 과정의 리뷰.)

첫 문장: 태풍의 이름은 날개였다.
마지막 문장: 나는 열여섯 살, 너는 열세 살.
              그때가 되면 내가 우리의 아버지를 없애줄게.



황경란의 소설집 사람들<소년은 알지 못 했다> 마지막 문장은 눈물을, 가슴이 찌르르함을, 그리고 울분을 남겼다. 눈물의 근거는 이 일이 현재형으로 남아있다는 것이고, 가슴이 찌르르함은 고통 중에 있는 아이들 때문이며, 울분은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함 때문이다. 앞선 단편들은 익히 알고 있었던 문제들에 대한 시선이었다면 이번 단편은 알고 있지만 파헤치고 싶지 않은 이 사회의 현실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애통하는 이유도 답이 없다는 좌절 때문일 것이다.

날개라는 이름과 의미만 남기고 간 엄마, 날아 보라며 놀리는 아이들, 문제의 근원으로 보고 차라리 학교에 나오지 않길 바라는 교사, 한번의 관심으로 날개에게 구원의 기대를 품게 한 했지만 더 이상 소망을 가지지 않게 한 선생, 짐승만도 못한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 그리고 가장 약한 여동생.

날개를 존재하게 하는 정신, 엄마가 사라진 가운데 날개는 놀림과 비난 속에서 스스로 닭도, 펭귄도 아닌 날지 못하는 화려한 새 공작을 꿈꾼다. 이젠 비웃음도 놀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스로 세운 가치가 날개를 단단하게 하고 약자에서 강자로 변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의 폭력을 닮았다.

날개의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날개를 버리고 간 엄마 탓이 아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의 육체적 이기주의자 아버지의 탓이다. 온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몸에 담아온 아버지의 냄새다. 폭력의 대물림. 폭력은 언제나 약자에게 행사된다. 가장 약한 약자 동생에게 아버지처럼 폭력을 가하는 날개.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 아래에서는 같은 약자로 동생과 같이 하는 날개.

날개는 처절히 사랑했다. 날개는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을 받아 줄 사람도 사랑을 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미운 얼굴이 된 소년, 날개. 손가락질은 날개가 받을 것이 아니다. 손가락질은 날개를 그렇게 만든 세상이 받아야 한다. 그들은 소년의 정신적 날개과 육체적 날개 모두를 잘라버렸다.

소년은 무엇을 알지 못했을까?
못 나는 날개가 아니라, 화려한 공작은 꿈도 꿀수 없는, 아에 날개 따위는 없다는 비참함일까?
열여섯이 되어도, 아니 평생토록, 우리의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다는 무능력일까?

소년의 이름의 탄생은 폭풍 날개가 상륙했던 날이다.

그해 7, 어느 밤에 힘차게 불던 바람의 이름이 날개였어. 그러니 너는 분명 그날의 바람을 닮았을 거야.

태풍은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지구에 꼭 필요한 바람이다. 바다, 대기를 뒤흔들어 온갖 더러운 환경을 해결한다. 바다를 뒤집어 적조문제를, 저위도 고위도의 열적 불균형을 잡아준다. 태풍이 오지 않는다면 세상은 피해가 아닌 멸망이 오는 것이다.
사회의 문제에 태풍의 불어야 한다. 이 작품은 이 정화의 태풍을 바라는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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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맘 2021-04-25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손가락질은 날개가 아닌 날개를 그렇게 만든 세상이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 깊은 공감을 일으키네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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