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첫문장 : 나에겐 이름이 없다

첫 페이지부터 너무 맘에 든다.

 

편하게 읽어 가려고 늘 쓰던 독서록을 내려놓고 읽으려 책을 들었는데 초반부터 포진되어 있는 끌리는 문장들 때문에 펜을 다시 챙기고 노트를 펼친다.

첫 페이지에서 작은 알 하나의 힌트만 던진 채 이야기는 노든에게서 출발한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 작은 알 하나가 굴러 다닌다.

 

사람들의 보호가 있는 초원.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란 노든은 남고 싶지만...


p16.“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 그래
p18.“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생략)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 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p22. 코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코뿔소들이 있어야만 했다.

 

가족을 이룬 노든은 가족을 모두 빼앗긴다. 사람들의 보호는 완벽하지 않다. 그 사람 중엔 나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파라다이스 동물원> 반어적 이름이다.

p.40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 코뿔소 노든을 소개합니다

 

이 소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코뿔소를 코뿔소 답게 하는 뿔을 자르고 그를 울타리안에 감금 같은 보호를 한다. 다른 종류의 동물들도 그들이 원래 살아야 할 땅이 아닌 인간의 만족을 위해 마련한 <파라다이스 동물원>에 있다.

 

치쿠와 윔보는 자신의 알도 아닌, 심지어 펭귄 알처럼 보여지지도 않는(펭귄의 알은 흰색, 이 알은 검은 반점-이 말 때문에 나는 읽는 내내 펭귄이 아닐 것이라 생각 함.) 버려진 알을 책임진다. 화재가 나던 날 밤, 치쿠와 찌그러진 작은 양동이 안에 알과 노든이 동물원을 탈출한다. 정어리 눈곱만한 코뿔소와 코끼리 코딱지만한 펭귄, 그리고 정체 모를 알. 이름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노든과 치쿠는 이름도 없고 정체성도 모르는 알을 지킨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포기할 수 있는 것,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그것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 자신을 희생시킨다는 것. 요즘 잃어버린 모습이다.


긴긴밤은 시련의 밤이다. 긴긴밤은 슬픔의 밤이다. 긴긴밤은 외로움의 밤이다. 긴긴밤은 긴긴기다림이다. 치쿠가 노든에게 그 애를 바다에 데려다준다고 약속해부탁한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알이 담긴 양동이를 흔들리지 않게 보호하고 걷다가 펭귄이 쉬기 좋은 이슬 내린 풀 위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p77에는 알에서 깨어나면서 노든을 바라보는 시선의 그림은 루리작가가 그림도 그렸지!’를 제대로 느끼게 하는 그림이었다. 긴긴밤에 태어난 생명, 처음 긴긴밤을 보게 되는 생명체를 그림이 고스란히 표현해 주고 있다.

p80 알 바깥의 세상에서는 살기보다 죽기가 더 쉽다고 했다. 살아남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데도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치쿠와 위보 때문이라고 했다.


<망고열매 색 하늘>은 도대체 어떤 하늘이지? 105쪽 그림이 보여 준다.

이름 없는 아이를 치쿠의 약속대로 데리고 가는 노든. 그러나 방향을 알 수 없다. 또 다시 아내와 딸이 죽었던 날 맡았던 총 냄새. 그 위험의 긴긴밤. 사막도 걷는다. 방향은 바다이다. 노든은 지쳤고 병들었다. 노든은 코뿔소의 바다에 머무른다.

p115 “그러면 나도 여기에 있을께요

아니야, 너는 네 바다를 찾으러 가야지. 치쿠가 얘기한 파란색 지평선을 찾아서

너는 펭귄이잖아. 펭귄은 바다를 찾아가야 해.”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자신의 바다를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노든과 오래도록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펭귄은 바다로 떠난다. 그리고 혼자 바다에 도착한다. 모래 언덕을 넘고 절벽에서 수백 번 미끄러지며 틈새를 쪼아 만들어 절벽을 넘어가려 한다.

 

p124 여기저기 멍이 들고 상처가 생겼지만 밤은 길지 않았다. 나는 오르고 떨어지고 오르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시도 끝에 절벽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었다.

밤은 길지 않았다!’ 이 말에 나는 의미를 둔다. 밤이 길지 않았다! 밤이 길지 않았다!

p124-125

축축한 모래를 밟으며 나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내 앞의 바다는 수도 없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노든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난 이름 없는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너의 긴긴밤 이야기 고마워. 너도 노든처럼 누군가의 긴긴밤을 같이 해 줄 것 같아. 훌륭한 펭귄이 될거야. 그런데 말이야, 나도 너랑 같은 것 같아. 혹시 너의 이름을 미아라고 하지 않을래? 내 이름이야


덧붙임: 중간 중간 루리 작가의 그림은 따뜻하다. 책을 더 이해하게 한다. 맨 뒤에 루리 작가의 그림을 추천한다. 바다 앞에 선 펭귄, 노든의 초록바다. 망고열매하늘색과 초원, 망고열매, 긴긴밤, 그리고 두 개의 바다, 그리고 나에게 눈 맞추는 주인공. 글의 여운을 그림이 더 짙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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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맘 2021-03-2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을 지어주셨군요. ^^ 이름을 지어주고 싶을 만큼 애틋함이 남은 이야기였나봐요. 긴긴밤을 함께 보낸 세 명의 친구들 저도 만나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