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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황경란 지음 / 산지니 / 2020년 6월
평점 :
황경란의 소설집 『사람들』 중 <소년은 알지 못 했다>
(이 책을 다 읽지 않고 단편들을 읽어가며 리뷰를 쓸 예정이다. 일종의 읽기 과정의 리뷰.)
첫 문장: 태풍의 이름은 ‘날개’였다.
마지막 문장: 나는 열여섯 살, 너는 열세 살.
그때가 되면 내가 우리의 아버지를 없애줄게.
황경란의 소설집 『사람들』 중 <소년은 알지 못 했다> 마지막 문장은 눈물을, 가슴이 찌르르함을, 그리고 울분을 남겼다. 눈물의 근거는 이 일이 현재형으로 남아있다는 것이고, 가슴이 찌르르함은 고통 중에 있는 아이들 때문이며, 울분은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함 때문이다. 앞선 단편들은 익히 알고 있었던 문제들에 대한 시선이었다면 이번 단편은 알고 있지만 파헤치고 싶지 않은 이 사회의 현실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애통하는 이유도 답이 없다는 좌절 때문일 것이다.
‘날개’라는 이름과 의미만 남기고 간 엄마, 날아 보라며 놀리는 아이들, 문제의 근원으로 보고 차라리 학교에 나오지 않길 바라는 교사, 한번의 관심으로 날개에게 구원의 기대를 품게 한 했지만 더 이상 소망을 가지지 않게 한 선생, 짐승만도 못한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 그리고 가장 약한 여동생.
날개를 존재하게 하는 정신, 엄마가 사라진 가운데 날개는 놀림과 비난 속에서 스스로 닭도, 펭귄도 아닌 날지 못하는 화려한 새 공작을 꿈꾼다. 이젠 비웃음도 놀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스로 세운 가치가 날개를 단단하게 하고 약자에서 강자로 변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의 폭력을 닮았다.
날개의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날개를 버리고 간 엄마 탓이 아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의 육체적 이기주의자 아버지의 탓이다. 온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몸에 담아온 아버지의 냄새다. 폭력의 대물림. 폭력은 언제나 약자에게 행사된다. 가장 약한 약자 동생에게 아버지처럼 폭력을 가하는 날개.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 아래에서는 같은 약자로 동생과 같이 하는 날개.
날개는 처절히 사랑했다. 날개는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을 받아 줄 사람도 사랑을 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미운 얼굴이 된 소년, 날개. 손가락질은 날개가 받을 것이 아니다. 손가락질은 날개를 그렇게 만든 세상이 받아야 한다. 그들은 소년의 정신적 날개과 육체적 날개 모두를 잘라버렸다.
소년은 무엇을 알지 못했을까?
못 나는 날개가 아니라, 화려한 공작은 꿈도 꿀수 없는, 아에 날개 따위는 없다는 비참함일까?
열여섯이 되어도, 아니 평생토록, 우리의 아버지를 죽이지 못한다는 무능력일까?
소년의 이름의 탄생은 폭풍 ‘날개’가 상륙했던 날이다.
그해 7월, 어느 밤에 힘차게 불던 바람의 이름이 날개였어. 그러니 너는 분명 그날의 바람을 닮았을 거야.
태풍은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지구에 꼭 필요한 바람이다. 바다, 대기를 뒤흔들어 온갖 더러운 환경을 해결한다. 바다를 뒤집어 적조문제를, 저위도 고위도의 열적 불균형을 잡아준다. 태풍이 오지 않는다면 세상은 피해가 아닌 멸망이 오는 것이다.
사회의 문제에 태풍의 불어야 한다. 이 작품은 이 정화의 태풍을 바라는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