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세트 - 전7권 이병주 전집
이병주 지음 / 한길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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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智異山

                                                                          이병주


[ 4 ]

西林


 좌익과 우익 단체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난립하는 가운데 이승만은 인민공화국의 주석 취임을 거부했다.


 군정청은 인공이 해체를 명령하고 인공측은 이공 해체 반대 성명을 발표하였다멀리 북쪽 함흥과 신의주에선 반공 학생 사건이 발생, 수십 명의 학생이 죽고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들었다.


 인민위원회 대표자 대회장에서는 테러 사건이 있었으며 공산당의 주도권을 노려 재건파와 맞붙어 싸우던 장안파 공산당은 드디어 해체하고 말았다. 공산당 내부에서도 주도권 싸움이 표면화 된 것이었다.


 김구 주석이 돌아오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복간되었다.

 그런 가운데 박태영은 더욱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들어 부인인 김숙자마저 내팽개친 채 밤낮으로 공산당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진주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한 하영근과 권창혁이 상경하여 박태영을 말려 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는데 1227, 모스크바에서의 삼상회의가 한국을 신탁통치하기로 결의 했다는 전문이 날아들자 저물어가는 세모의 서울 거리는 이 뉴스로 발칵 뒤집어졌다......


 탁치를 반대하던 조선공산당이 소련의 사주를 받고 찬탁으로 돌아서자 신탁통치를 놓고 좌익과 우익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신념만으로 공산당이 되었던 박태영은 급기야 불순분자가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에서 제명되었다.


 전편에서, ‘20대에는 공산주의가 아니면 바보고 30대에는 공산주의면 바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졌는지 박태영은 점점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공산당들은 입지가 점점 축소되자 드디어 노동자와 학생들을 이용하여 사회 혼란을 부추기려 안간힘을 쏟는다.


 급진주의적, 사회주의적,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적 경향의 좌익(좌파)은 그들의 선전 용어인 민주화, 곧 적화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 사회 혼란을 기도하고 이를 틈타 정권을 찬탈하려는 행태는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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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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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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