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원군
유주현
유주현(柳周鉉 1921 ~ 1982) 소설가. 호는 묵사(默史). 경기도 여주 출생. 와세다 대학 문과 수료. 1948년 『번요의 거리』로 데뷔. 주요작품으로 『조선총독부 』 『언덕을 향하여』 『자매계보』 『신의 눈초리』 『신부들』 『대원군』 『파천무』 『대한제국』 등이 있다.
[ 제 1 권 ]
대낮부터 기생 추선의 집에서 취한 흥선군 이하응은 비가 오는 거리로 나섰다. 그는 초라하기가 비렁뱅이 같았고 거리의 주정뱅이로 이름이 높다. 노름꾼으로 알려져 있고 술망나니로 유명하다. 종친 체면에 똥칠을 해서 친척들도 그를 가까이 안 한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그러한 자신의 신세를 개탄하지 않는다.
1860년, 철종 11년 7월. 서울에는 전염병이 창궐했다. 전해에도 9월에 전국을 휩쓸더니 이번에는 7월부터 수많은 생명들을 앗아간다. 그러나 슬픔은 족친의 것일 뿐, 관이나 나라에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뭄 끝에 전염병과 흉년, 그의 집에도 열여섯 재면과 아홉 살의 명복이 어제 저녁부터 끼니를 거르고 있다. 흥선은 거리의 잡배 안필주를 만나 오늘 밤 투전판을 벌이기로 약조하고 그와 헤어져 교동 김병기의 집으로 간다. 하인으로부터 ‘초상집의 개’ 취급을 받으면서도 김병기를 만나 아들 재면에게 궁 내부의 말직 소임이라도 하나 맡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흥선군 이하응. 그는 남연군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쥐상이라고들 하지만 족제비상이다. 하관이 빨고 눈의 광채가 사람을 꿰뚫을 듯했다. 다섯 자 두 치의 키에 체수는 작았으나 기상이 씩씩해서 젊은 여성들의 눈총을 한 몸에 받는 귀공자였다. 그는 스물일곱에 북경 동지사 직에까지 올랐으나 가세가 궁핍하여 스스로 그 중임을 버리고 왕궁 내의 주원, 전의감, 사포서, 전설사, 조지소 등의 책임자인 제조(提調)직으로 전전했었다. 서른두 살에 종친부 유사당상을 거쳐 오위도총부 도총관이 되어 궁중 금위의 총수로 입신하기도 했었으나 척신 안동김씨의 세력 앞에서 그의 입신은 한도가 있었다.
나랏님이 후사도 없이 수를 못 하실 것 같다고 한다. 강화도령, 강화 섬 구석에서 귀양살이하며 낫자루 들고 지게목발 두드리던 소년을 데려다가 임금이라고 모셔 놓고 수많은 여인들 틈에서 밤낮없이 주색과 연락에 탐닉케 했으니 오래 살 까닭이 없다.
안동김씨 김문근, 딸을 왕비로 만들고 그 일족이 조정의 현직을 모조리 독점하고 있다. 전 영의정 김좌근이 그들의 실제적인 두령 격이다. 김병국은 훈련대장, 한림의 대제학 김병학, 판서 김병기, 그리고 병필, 모두 병(炳)자 판이다. 영근, 현근, 흥근, 그놈의 뿌리 근(根)자의 무성한 뿌리들. 그‘근’ 패와 ‘병’ 패 중에 가장 영악한 세도(勢道) 김병기. ‘세도’는 정조 때 홍국영이 시초였고 그것이 불문율로 답습되어 내려온 것으로 임금이 직접 신하와 일일이 접촉해 가면서 군권을 행사할 수 없는 노릇이라 특정한 인물을 중간에 두고 간접적인 권력행사를 하게 한 것인데 금상(今上) 밑에 세도 김병기. 그 권세는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
다.
김병기는 재면이 왕재가 되는가 묻고, 선왕 헌종이 승하하자 신왕으로 물망에 올랐던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직계후계자, 종친 이하전을 화제로 삼았었다. 이미 3대에 걸쳐 근 60년 동안을 두고 권세를 누려온 안동김씨 일족이 똑똑한 왕족은 모조리 없애려는 속셈을 알 수 있다. 흥선은 온갖 삶의 뜻과 기대를 오직 둘째 아들 명복에게 걸고 있었다. 하지만 그 뜻은 남모르게 마음속에 깊이 숨기고 겉으로는 정 반대의 파락호 노릇을 하고 있었다.
추선은 세도 김병기와 대제학 김병학의 대화 내용을 들려준다. 명복은 병이 나고 재면은 이틀이나 행방불명이다. 흥선은 그의 수족과 같은 거리의 건달패 천·하·장·안, 천희연, 하정일, 장순규, 안필주에게 아들을 수소문하게 한다.
젊은 여인이 열 서너 살짜리 소년을 데리고 와서 소년의 의탁을 청하면서 집권을 하는 날에는 화양서원 묵패로 화를 입어 죽은 오라버니의 통한을 풀어달라고 한다. 흥선 또한 화양서원에서 평생 잊지 못할 봉욕을 당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큰일 날 소리를 발설하는 그 여인을 꾸짖어 물리친다.
7월 백중 날. 김좌근의 소실 양씨가 백미 스무 섬을 밥으로 지어 노돌강에 뿌린다고 한다. 흥선은 사복시 제조로 있을 때 그이 밑에서 일을 하던 주부 이호준을 불러 시반선 뱃놀이에 함께 가면서 그로부터 이호준의 사위인 조대비의 친정 조카 조성하와 조대비 간의 밀의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3일 만에 집에 돌아온 재면은 종내 말이 없었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은 이틀 만에 조카라는 아이를 흥선에게 보내 청지기가 한 명 늘었었다.
가는 길에 만남 김병학은 자신의 남여를 흥선에게 기꺼이 내어준다. 강가에 이른 그는 양씨의 바로 뒤를 따르는 진판서의 배에 탄다. 진판서, 그는 어느 날 김좌근의 집으로 찾아가 궁색한 청을 했다가 무시당하고는 실의로 몸을 떨면서 물러서는 순간 그에게 야유를 준 인물. 그에게 당한 수모를 잊을 수 없었다. 그가 또 다시 빈정거렸다.
잠시 후 배가 예정없이 대안에 닿았다. 그 세척의 배에 각기 대여섯 명의 복면 괴한들이 침입해 밥을 강탈해 간다. 두 명이 붙잡혔지만 방면되고 흥선은 또 한번 웃음거리가 된다. 흥선은 조성하를 불러 얘기를 듣는다. 며칠 전 김씨 일족이 김좌근의 집에 모여 흥선에 관해 애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김병학과 김병국 형제는 흥선에 우호적이었고 김병필은 그를 제거해야할 대상이라고 했는데 김병기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한다. 이 날 이후로 그의 기행은 갈수록 심해졌고 사람들은 그를 더욱 무시했다. 그런 중에 왕족 중 한 명인 경평군 이세보가 역모죄로 신지도로 유배를 간다. 경평군의 아우 택응이 임금의 특지로 한림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김병기와 주변 사람들이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자 경평군이 교동대감 부자 김좌근과 김병기를 욕한 일이 있었는데 그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이하전의 집에 맹인 이씨가 찾아와 그의 부인에게 집에 왕기가 서렸다고 하고 갔다. 부인의 말을 들은 이하전은 크게 놀라 경솔하게 낯모르는 사람은 믿지 말 것이며 천주교도 멀리하라고 주의를 준다. 이날 밤 흥선은 조성하와 기방에 들렀다가 젊은 군관 이장렴에게 폭행을 당하여 뺨까지 맞는 봉변을 당한다.
어느 날 이른 아침 흥선과 사돈을 맺은 이호준이 찾아와 이하전이 역모에 몰렸다고 알려준다. 그들의 이야기를 청지기 수백이 엿듣고 있었다. 뒤이어 조성하와 안필주, 천희연이 차례로 사건의 경과를 알려 주었다. 이하전은 결국 사약을 받고 죽었다. 흥선의 집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박유붕이라고 밝힌 애꾸눈이가 둘째 아들 명복이에게 임금이 될 상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흥선은 천하장안을 통해 그를 수소문했으며 그가 실제 인물임을 확인 했다.
흥선은 어느 날 천하장안과 함께 투전판 털기에 성공하고 나합 양씨는 김좌근을 부추겨 매관매직하고 인사권을 휘두른다. 김병학과 병국 형제는 같은 안동김씨지만 교동대감 부자의 권력전횡을 염려하기도 한다. 사실 흥선의 첫째 아들 재면이 사라졌던 것은 김병기가 그를 몰래 꾀어 내다가 그 위인 됨을 시험해 본 것이었고, 명복의 일은 김병학이 시킨 지시였던 것이다. 모두 왕권과 관련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흥선이 닷새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그는 천희연의 장난으로 대감 행세를 하며 초월의 집에서 공짜 술에 오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짜 대감임을 눈치 챈 그녀에게 보복을 당하여 속옷 바람으로 도망을 치는 신세가 되었으며 결국 순라꾼들에게 붙잡혀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섣달 스무 여드렛날 석양 무렵 길을 가던 세 명의 맹인이 쓰러진 한 젊은이를 구해서 부축하고 가던 중 그 젊은이가 맹인들을 개천에 빠뜨린다. 흥선이 그들을 구출하고 집에 돌아오자 그의 집에는 김병국과 김좌근이 보낸 물품들이 한 바리 실려와 있었다. 한밤 중에 흥선을 노리고 담을 넘은 이상지를 잡았다. 그는 흥선이 맹인과 결탁하여 도정궁 이하전을 제거하였고 그 증거가 있다고 말하지만 흥선은 그를 놓아준다.
1862년, 임술년이 갔다. 봄엔 호남과 영남에 민란, 여름엔 가뭄과 장마가 겸하더니 가을 겨울에는 또 함경도 민란, 어지러운 해였다. 왕궁엔 무지무능 나약한 임금을 에워싸고 척족들이 더욱 발호했다. 도성엔 당화(黨禍), 지방엔 유생들의 횡포, 관원들은 주구를 일삼고 백성들은 시달림에 지친 한 해였다.
김좌근에게 교가와 조복을 빌린 흥선은 대왕대비 조씨에게 세배를 드리러 입궁한다. 그는 조대비와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다 헤어져 궁을 나서 추선에게로 향하면서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천희연이 구금되었는데 알아보니 언젠가 투전판을 턴 일 때문에 피륙전 주인이 사충사(四忠祠)를 통해 잡아 가둔 것이었다. 최근 유생들이 모이는 곳은 서원이고 사당이고 그 행패가 더욱 심해졌다. 서독(書牘)이라는 것이 있는데 서원이나 사충사에서 발행하는 일종의 영장이다. 그 곳에는 조(彫)라는 도장이 찍히는데 그 것의 권위 또한 대단하여 옥새 다음가는 권위를 가진다. 저들 임의로 발행하는 서독 하나로 서원이나 사충사는 미운 사람을 마음대로 체포할 권한이 있다. 서독은 관할구역도 없어 전국에 통한다. 서원이나 사충사는 청부도 맡는다. 거래가 성립되면 상대를 직접 잡아다가 이조나 한성판윤에 구금을 의뢰하고 놓아주라면 놓아준다.
흥선은 김병기를 찾아가서 천희연의 석방을 부탁하지만 무시당하고 천희연을 면회하러 의금부를 찾아갔다가 옥리에게 조차 조롱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