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세트 - 전10권 삼국지 (민음사)
나관중 지음, 이문열 엮음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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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國 志

                                                                                                          나관중

  나관중(羅貫中 1330? ~ 1400 ) 중국 원말, 명초의 소설가. 극작가. 이름은 본(, 일설에는 관), 호는 호해산인(湖海散人)이며, 관중은 자()이다. 출생지에 관해서는 샨시성(山西省) 타이위엔(太原) 출신이라는 것을 비롯해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 없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및 시내암(施耐庵)과의 공저인수호지(水滸誌)2대 걸작을 비롯하여 수당연의(唐演義)》 《잔당오대사연의(殘唐五代史演義)》 《평요전(平妖傳)등의 작품이 있다.

 

  삼국지는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국사람들의 말에 <젊어서는 삼국지를 읽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마라>는게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재미있으니까 그냥 읽었다.

 

  우리가 읽는 삼국지는 삼국지연의를 말하는데 삼국지연의진수(陳壽, 233297)삼국지(三國志)에 서술된 (), (), ()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중국 원()과 명()의 교체기 때의 사람인 나관중이 장회소설(章回小說) 형식으로 재구성한 장편 소설이다. 오늘날에는 17세기 모종강(宗崗)이 다듬은 모본(毛本)’이 정본(定本)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천하는 주()나라 말년에 춘추전국시대로 나뉘더니 진()나라가 이를 통일하였다. 그러다 다시 초()나라와 한()나라로 나눠 다투다 한나라가 통일을 하였다. 그 뒤 광무황제(光武皇帝)가 다시 한나라를 일으켰다가 마침내 세 조각으로 나누어 졌다.

 

  노식이 조정의 부름을 받아 출관(出關)하게 되자 그 문하에 있던 유비는 공손찬과도 이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돗자리를 짜며 산다. 그 무렵 북부도위란 벼슬을 살고있던 패국 초현 사람으로 자는 맹덕인 조조는 고향 친구 하후돈과 십상시가 농락하는 어지러운 나라 일을 걱정한다. 그러나 조조는 또한 환관의 후예였으며 원소, 원술과도 친분이 있었다. 또 한 사람의 청년 장수 양주 오군 출신의 손견은 용맹과 무예에 못지않게 병법에도 밝았다.

 

  후한 중평 원년 태평도(太平道)의 무리들이 일제히 봉기하였다. 그들은 백성들을 충동하여 난을 일으키니 그 난리가 황건적의 난이었다. 조조, 손견, 공손찬, 원소, 원술에 이어 유비, 관우, 장비도 도원에서 의형제의 결의를 맺고 황건적 토벌에 나선다. 그러나 유비는 스승 노식이 모함으로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말머리를 돌려 북으로 가던 중 황건적에게 쫓겨 후퇴해 오던 동탁의 군대를 구하게 된다. 동탁은 벼슬이 없던 유비를 무시하고 유비는 주전 장군 막하로 들어갔다. 유비는 황건적 토벌에 큰 공을 세우고 주전을 따라 낙양에 입성했으나 다른 장수들과는 달리 관작은커녕 짜투리 상 하나도 받지 못하다가 장균이 황제에게 직접 아뢰어서 겨우 현위라는 자리 하나를 얻었지만 장비가 탐관오리 독우를 매질하자 벼슬을

버린다.

 

  황건적의 난이 평정되자 십상시의 국정 농단이 끝이 없다. 황제의 눈을 가리고 충신들을 모함한다. 대장군 하진은 십상시 우두머리인 건석을 없애기는 하였으나 여러 사람들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하태후 때문에 그 뿌리를 뽑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여러 영웅의 힘을 빌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가 결국 십상시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자 부장 오광과 원소가 환관들을 모조리 척살한다. 난을 피해 몸을 숨겼던 소제는 원소 등의 호위를 받고 돌아오던 중 하진의 연락을 받고 달려 온 동탁의 대군을 만난다. 동탁은 하진의 병마까지 손에 넣자 소제를 폐하고 진류왕을 등극시키려 하다가 정원과 대립하여 마침내 둘은 싸움을 하게 된다. 방천화극을 든 여포의 용맹 때문에 싸움에 이기지 못한 동탁은 여포에게 금은보화와 적토마를 주어 꼬우자 그는 의부(義父) 정원의 목을 베어 동탁에게 귀순한다. 반발하는 원소에게는 발해 태수 자리를 주고 황제를 갈아 치운다. 그 후 폐제와 하태후도 죽게 한다.

 

  하태후와 폐제를 죽인 동탁의 무도함이 날로 더해지자 원소는 이를 갈며 세력을 모으고 있었고 조조는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도주한다. 진궁과 함께 도주하던 조조는 아버지의 의형제인 여백사와 그의 처자, 비복을 모두 죽여 후환을 없애지만 이를 본 진궁은 조조를 피하여 떠난다. 조조는 의병을 모아 동탁을 치기로 포부를 정한다. 그러자 악진, 이전, 하후돈과 하후연, 조인과 조홍 등 많은 장수들이 모여 들었다. 조조는 동탁을 처단하기 위해 각지로 격문을 띄우고, 군사를 조련하며 때를 기다리던 유비는 관우, 장비는 오천의 군사와 함께 낙양으로 가던 중 공손찬의 군세에 합류한다.

 

  17()의 제후들은 원소를 맹주로 하고 동탁과 맞붙는다. 동탁의 장군 화웅이 용맹을 떨치자 관우가 그의 목을 베어 공을 세운다. 그러나 원소와 원술은 이를 못 마땅해 한다. 조조는 몰래 사람을 공손찬에게 보내 술과 고기를 전하며 유비 3형제를 위로한다. 유비 3형제를 만난 여포는 도망을 치고 손견은 원술을 찾아가 군량과 마초를 보내지 않았음을 따진다.

 

  여포가 유비 3형제에게 패하자 동탁은 장안으로 천도를 결정한다. 조조가 동탁의 뒤를 쫓았지만 여포에게 패하여 후퇴하고 손견은 전국 옥새를 얻어 동맹을 떠난다. 공손찬은 원소의 장군 문추를 만나 고전하자 소년 장군, 자는 자룡인 상산 조운이 그를 구한다.

 

  유표와 싸우던 손견이 사망하고 손책이 그 뒤를 이었다. 한편 왕윤은 초선을 이용한 연환계(連環計)를 써서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게 한다. 동탁의 잔당인 이각과 곽사는 장안성을 점령하고 왕윤을 죽인다.

  여포에게 패한 조조는 옛 위나라 땅 동군의 태수가 되어 자리 잡고 기회를 노리다 또다시 일어난 황건적을 기화로 수많은 군사와 장군, 모사를 거느리게 된다. 유비는 옛 제나라 동쪽 고당현 벌판에 있다가 조조가 서주를 침범함에 이를 구원하려 공손찬에게 조자룡과 군사를 빌린다. 조조를 몰아낸 유비는 소패에 머무르다 서주목 도겸이 병이 나 죽자 유비가 뒤를 이어 서주목이 되었다. 황건적과 싸우던 조조는 허저를 얻고 조조와 일진일퇴하던 여포가 패하여 유비에게 의탁해 온다.

  조정을 수중에 넣어 농락하던 이각과 곽사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반목한다. 황제는 그들을 피해 낙양으로 돌아오지만 궁궐은 모조리 불타고 거리는 황폐하였다. 황제는 조조를 낙양으로 불러들인다. 이각과 곽사는 조조에게 쫓겨 산중으로 달아난다. 조정은 조조의 사람들로 가득차고 대권은 그에게 돌아갔다. 조조는 유비와 여포의 사이를 이간질한다.

  원술과 유비가 맞붙어 싸움이 길어진 사이 소패에 있던 여포가 술 취한 장비를 몰아내고 서주성을 차지하였다. 손책은 원술에게 전국 옥새를 바치고 군사 3천과 말 5백 필을 빌려 강동으로 떠났다. 원술은 여포를 회유하고는 대군을 일으켜 유비를 치러 소패로 향한다. 그러나 여포가 둘의 화해를 성립시키자 원술은 여포와의 혼인의 계략을 써서 유비를 제거하려 한다. 결국 유비는 소패를 떠나 조조에게 도움을 청하고 조조는 유비를 예주목으로 천거한다. 예주에서 유비는 다시 힘을 기르기 시작했다.

  유비는 조조와 힘을 합쳐 여포를 치고자 하고 여포에게 패한 원술은 손책에게 도움을 청하자 손책을 조조와 호응하여 원술을 칠 작정을 한다. 여포에게 패한 유비는 다시 조조를 찾고 조조는 여포를 치러 간다. 여포는 부하들에 의해서 결박되어 붙잡혀 죽는다.

  조조는 대권을 잡고 국정을 농단한다. 유비는 조조의 휘하에서 농사를 지으며 야망을 숨긴다. 조조는 유비에게 5만의 군사를 주어 원술이 원소에게 투항하는 것을 막으려 보낸다. 원술은 유비를 만나 싸우다 패하고, 달아나다 죽고 만다. 국구 동승은 조조의 암살을 꾀하다 발각되어 그 일당들과 동귀비까지 죽임을 당하였다. 함께 거사를 도모했던 유비는 조조에게 패하여 원소에게로 가서 몸을 의탁한다. 하비성을 잃고 유비의 생사를 알지 못한 관운장은 조조의 수하로 들어간다. 조조는 여포의 적토마까지 주며 관우를 극진히 대우한다.

  원소는 대군을 몰고 조조를 치러간다. 관우는 원소의 장수 안량, 문추를 베고, 유비가 원소의 진영에 있는 것을 알고는 감, 미부인을 모시고 조조를 떠나 유비를 찾아간다. 가는 중 다섯 관을 지나며 그를 막는 여섯 장수를 베고 중간에 장비를 만난 다음 마침내 유비 3형제가 상봉하게 되고 뒤이어 조자룡이 합류한다. 이제 유비는 여러 장수와 마보군이 4, 5천이나 되었다.

  원소는 자신을 떠난 유비를 괘심하게 여겼으나 우선 조조를 먼저 치기 위해 손책을 끌어들이기로 마음을 정하지만 손책은 사냥 도중 자객을 만나 독화살을 맞고 치료 중 화를 참지 못하여 죽고 아우 손권이 그 뒤를 잇는다. 손권은 주유의 권유로 노숙을, 노숙의 천거로 제갈근을 인재로 모신다.

  손권과 조조의 연합을 우려한 원소는 70만 대군으로 조조를 치러 나서지만 관도 싸움에서 대패하고는 병이 난다. 조조가 허도를 비운 사이 유비가 허도로 진군하지만 조속히 회군한 조조에게 대패하고 형주의 유표에게로 도망가서 몸을 의탁한다. 원소가 죽자 그의 아들 간에 다툼이 생기고 조조는 그 틈을 이용하여 하북을 손에 넣는다.

  조운은 장무를 죽이고 그가 타던 주인을 해친다는 적로마(馰盧馬)를 유비에게 바친다. 유표의 아내 채부인은 유비를 의심하여 동생 채모로 하여금 유비를 죽이려 하나 적로마가 목숨을 살린다. 채모에게 쫓겨 산 속으로 들어간 유비는 우연히 수경선생 사마휘을 만나고 복룡, 봉추에 관해서 얘기를 듣는다. 유비는 서서가 추천, 자는 공명인 제갈량을 삼고초려(三顧草廬), 군사로 모신다.

  이때 손권은 문무의 인재들을 널리 모집하여 강동의 성세를 더욱 더 높이고 있었다. 유표는 유비에게 형주를 넘길 의사를 전하지만 유비는 이를 사양하고, 3(三公)의 제도를 없애고 승상이 되어 권력을 오로지 한 조조는 유비를 치러 보냈던 하후돈이 패하여 돌아오자 다섯 갈래의 군사를 차례로 강남을 향해 진발시켰다.

  유표가 죽자 채부인의 아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지만 조조는 이들을 죽여 없앤다.

  조조에게 쫓겨 강릉으로 가는 혼란 속에 조운은 홀로 적진에 뛰어 들어 어린 아두를 품에 안고 돌아오고 장비는 장판교에서 홀로 조조의 수십만 군을 물리친다. 조조는 83만 대군을 일으켜 손권과 손을 잡고 유비를 쳐부수기 위해 동오로 향한다. 위기 의식을 느낀 제갈량은 노숙과 손권을 설득하여 동맹을 맺고 주유와 함께 계략과 지혜를 펼치고, 드디어 적벽에서 화공(火攻)으로 조조의 백만대군을 몰살시킨다. 이른바 적벽대전이었다. 싸움에 패한 조조는 끊임없이 쫓기던 중 관우를 만나 목숨을 부지한다. 전날 조조가 관우에게 베푼 호의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관우는 막다른 길목에서 만난 조조를 순순히 도망치게 놓아주었다.

  싸움에 이긴 주유는 남군을 공격하다 독화살을 맞고 적벽대전 이전부터 죽이려던 제갈량의 계략에 휘말려 남군과 형주를 잃게 되자 분노가 폭발하여 금창이 터져버린다. 노숙은 수차에 걸쳐 제갈량에게 형주의 반납을 요청하나 제갈량은 교묘하게 이를 회피한다.

  형주에다 남군과 양양까지 차지한 유비는 점점 영역을 넓혀 나갔으며 장수 황충과 위연을 얻게 된다. 손권과 주유는 형주를 얻기 의해 손권의 누이를 유비와 결혼시키는 계략을 써서 유비를 제거하고자 하지만 실제 결혼이 이루어져 계책은 실패하고, 유비는 손부인을 데리고 동오를 탈출하여 형주로 돌아간다. 수차에 걸친 형주 탈환 기도가 실패하고 제갈량에게 놀림까지 당하자 주유는 하늘은 어찌하여 이 주유를 낳고 또 공명을 낳았단 말인가하고 화가 치밀어 그 때까지 아물지 않았던 금창이 다시 터져 앓다가 죽고 말았다.

  손권에게 배척당한 봉추 방통은 유비를 찾아가 의탁한다. 한편 서량을 지키고 있던 마초는 아버지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자 서둘러 군마를 일으켜 조조를 치러간다. 조조는 잔꾀를 써서 한수와 마초를 이간질하여 자중지란이 일자 마초를 공격하여 격퇴한다. 장송은 서천을 바치려고 조조를 찾아갔으나 오히려 얻어맞고 내쳐지자 유비에게 가서 그 뜻을 알린다. 유비는 뜻밖의 기회를 잡아 서천으로 들어가 가맹관에 자리를 잡는다. 손권은 유비가 없는 틈을 노려 손부인을 귀국시키고 형주를 되찾을 의논을 시작한다. 유비는 서천으로 향하다 낙봉파에서 봉추 방통을 잃는다. 제갈량은 형주를 관우에게 맡기고 조운, 장비와 함께 서천으로 진군한다. 장비와 막상막하 일전을 벌이던 마초가 유비에게 투항하였고 유장이 항복하여 유비가 서천의 새 주인이 되었다.

  조조는 자신을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민 복황후와 그녀의 소생 두 왕자마저 죽인다. 조조는 장강 유역을 두고 손권과 전투를 벌인 뒤 한중을 두고 유비와 싸운다.

 하후연이 황충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싸움에서 이긴 유비는 스스로 한중왕이 되고 장수들을 오호대장에 봉한다. 관우는 번성 전투에서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의 목을 베었으나 화살을 맞고 화타의 치료를 받는다. 그 사이 여몽은 형주를 점령하고 서황은 여러 성을 함락시킨다. 관우는 아들 관평과 함께 손권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는다.

  관우를 죽인 손권은 유비의 보복이 두려워 관우의 수급을 조조에게 보내고 조조는 관우를 왕후의 예로 장사를 지내준다. 얼마 후 조조도 죽는다. 조조가 죽은 후 조비가 그 뒤를 잇는다. 조비는 수선대를 쌓고 헌제로부터 그 자리를 물려받는다. 이로써 한()의 강산이 마침내 위()에게로 넘어갔다.

  낭중으로 돌아간 장비는 범강, 장달을 매질하고 술에 취해 잠자다 그들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유비는 관흥과 장포를 앞세워 손권을 치러간다. 오를 공격하던 황충이 화살에 맞아 사망한다.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임명한다. 육손은 촉의 군사를 물리치고 참혹하게 패한 유비는 예순 셋의 나이로 죽음을 맞는다.

  유비의 뒤를 이은 후주는 다시 오와 손을 잡고 위에 대항한다. 제갈량은 남만(南蠻)을 정복하러 떠나 남만 왕 맹획을 칠종칠금(七縱七擒)하여 굴복시키고 돌아온다. 조비는 제위 7년째 되는 해에 죽고 조예가 뒤를 이었다. 조예는 사마의의 반역을 지속적으로 의심하고 사마의는 몸을 엎드린다. 제갈량은 후주에게 출사표를 올리고 위나라로 쳐들어 간다. 촉군이 기세를 올려 중원으로 내닫자 조예는 다시 사마의를 불러 이를 막게 한다. 마속은 제갈량의 지시를 어겨 성을 뺏기고 병사들을 잃자 제갈량은 읍참마속(泣斬馬謖) 한다.

  조운마저 세상을 하직한다. 제갈량은 또다시 출사표를 올린다. 조진이 대도독이 되어 공명과 대항하지만 패하자 대장인(大將印)은 다시 사마의가 갖게 되어 제갈량과 대적한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지혜에 계속 패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된다. 제갈량은 유비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여섯 번째 기산으로 진격한다. 공명은 상방곡에서 만든 목우와 유마를 이용하여 적의 군량을 탈취하기도 한다. 공명을 두려워 한 중달은 싸우지 않고 지키기만 하고 공명은 쉰넷의 나이로 오장원에서 숨을 거둔다. 공명의 죽음을 짐작하고 촉병을 뒤쫓던 중달은 제갈량의 깃발을 보고 놀라 군사를 물리려 한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친다

  공명의 죽음으로 세 나라는 싸움을 그친다. 싸움이 없어지니 조예는 사치와 향락에 젖어들고 술과 계집에 골아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로 죽고 만다. 그러자 조상 형제가 정권을 차지하고 사마의는 두 아들 사마소, 사마사와 함께 벼슬을 버리고 조정을 떠난다. 그 후 사마의는 조상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다.

  사마의가 병들어 죽고 오래지 않아 손권도 죽었다. 이로써 삼국을 일으킨 첫 세대는 온전히 사라졌다. 그 후 촉한(蜀漢)이 멸망하고 조환은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에게, 조비가 한 짓과 똑같이 수선대에서 제위를 넘겨 주었다. 손권의 태자 손화의 아들 손호가 진제 사마염에게 항복함으로써 솥발같이 갈라섰던 세 나라는 다시 한 나라가 되었다.

  역자의 잔소리(?)가 너무 심하여 몰입을 방해한다. 평역이라서 그런지, 역자의 지식이나 노력을 뽐내고 싶어서 평역이라 붙인 건지 읽는데 많이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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