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기 전에
김진화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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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짙은 여름이 오기 전과 후, 딸과 나는 둘이서 그곳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우리는 아웅다웅 요란법석을 떨면서도 꼭 붙어 다니는 단짝이지만 일 년에 한번은 우리 사이에 완충제가 되는 그 남자를 떼어놓고 터전을 떠나 지냈다. 삼각형에서 한 꼭지가 무너져 내리면 균형은 깨지지만 나머지 두 개의 각은 팽팽한 하나의 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끊어질 듯 반듯한 직선으로 겨루다가 곡선이 되고 어떤 날엔 두 점이 만나 원이 되기도 한다. 우리 둘은 그 시간들을 나누며 자랐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하지만 또 하나로.. 보통 한 달 남짓 혹은 그 이상 집을 비우니 남편이 한번은 다녀가도 될법한 기간이지만 우리 부부는 그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사람이 다녀간 후에 흔들린 아이가 나머지 기간을 아빠를 향한 그리움만으로 지내는 것은 안 떠나느니만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빠와 떨어져야 하는 애틋함을 콩콩이와 동행하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어디든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존재였다. 다섯 살에도 일곱 살에도 여덟 살이 되어도 자라지 않고 언제든 배낭에 넣어갈 수 있었다. 나는 그 인형을 애착 인형_그쯤으로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지만 아이에게 콩콩이는 아빠와 집에 대한 향수뿐 아니라 떠나와서까지 전화기와 노트북을 붙들고 있는 나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까지 받아주는 대상이었다. ??어쩌면 반복되는 일상에 환기가 필요했던 것은 나였고, 그 시간에 너를 끌어들여놓고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집이 아닌 새로운 곳에 너를 데려다 놓고 원하지 않는 쉼표를 찍어 주는 것으로 완성형 휴가라며 오만방자한 환상에 휩싸였던 내가 투영되는 몇몇 장면에서 숨을 크게 내쉬어 본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휴가는 낯선 냄새가 나는 호텔이나 멀고 먼 타지가 아니라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고 귀 기울이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 같아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번 휴가에는 노트북도 태블릿도 키보드도 가져가지 않고 지금 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눈을 맞추겠다고 말이다. #여름이오기전에 #문학동네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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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여름 방학 라임 청소년 문학 61
이서유 지음 / 라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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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받는 것에선 멀어져 있고 하고자 하는 것에는 대체로 제약이 따른다. 미성년자 안에 청소년, 그 엉성하고 애매한 위치가 만들어낸 날카로움은 그 시기가 얼마나 지난하고 지리멸렬한 시간인지를 대변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처럼 ‘누군가 작당하고 감추어 놓은 듯이 보이지 않아 막막한 미래, 자신의 인생이건만 결정권은 어른들이 쥐고 있는 모순’에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어서 펼치는 청소년 문학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아 나간다. 아프고 슬프고 괴로워서 사투하고 격렬하게 반항하며 적립해가는 정체성을 지지하고 싶다.

청소년으로 분류되는 시기에는 어린이 때와는 다른 결의 존중과 인정을 배워간다. 무조건적인 격려와 응원이 필요했던 시기를 지나 동등한 위치를 확인 받는 호혜적인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절실한 때에 되려 비교 당하며 밀려나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다만 나는 #짐승의여름방학 에서 만난 한별, 김승, 민영, 윤오, 강욱 친구들에게 내 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는 것은 가정 내에 입지의 순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핵심을 꼭 전달하고 싶다.

자신을 후순위로 메기며 억울한 지점에만 집중한다면 열등감에 매몰될 뿐이다. 사람을 선형적으로 줄 세울 수 없듯 부모의 마음에 자식도 그렇다. 부디 많은 아이들이 그것을 알아차리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이 누군가의 뒤에 있다는 소외를 경험했던 모두에게 내 앞에 선 사람의 고통에 경청할 수 있는 배려를 알려주고 있다고 느꼈다. 잘 생각하고 물어보자! 부모라고 스스로를 가족 내 서열에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 느낄까? 결코 아닐 것이다. 너의 영역과 위치는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도닥도닥 엄마의 잠자리 토닥임처럼 들려주는 책을 만났다. #라임출판사 #호수네책 #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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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흐른다
송미경 지음, 장선환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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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앞으로도 그런 매일이 쌓일 것이다. 나는 내일 아침에도 라디오를 켜고 익숙한 디제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식사 준비를 할 것이고, 전쟁을 연상케 하는 등교준비는 현관 앞 엘리베이터에서 서로를 응원하는 아침인사로 종결될 것이다. 뒤돌아 숨을 고르며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시작할 것이다. 일상이란 그렇게 반복적이고 규칙적이고 익숙한 방향대로 흘러간다. 나는 그 속에서 지루할 새 없이 성실하고 열심히 삶을 꾸린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더 솔직하게는 이제서야 괜찮아졌다. 내게 주어지는 역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온전히 내게 주어진 또 다른 나를 흡수하는 과정이 오래 필요했다. 그 마다의 호흡에 박자와 길이를 맞추는 시간.

이 책은 심연에서 피어나는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는 신비로운 경험을 강물에 유영하는 나와 나에 빗대어 들려주며 무수히 많은 ‘나’를 마주하는 시간은 버둥대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을 알아차리는 과정 안에 있고 모든 ‘나’는 연결되어 있다고 전하고 있다. 경직된 주인공처럼 빳빳한 일상과 대비된 강물과 바람의 곡선은 유연함이 주는 자유로움을 선사하며 다채로운 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듯 하다.

우리는 평가에 노출되어 있고 평가에 따라 나를 바꾸기도 한다. 바라고 원하는 모습대로 구기고 웅크린다. 스스로 확립하지 못한 또 다른 나를 타인이 정의하는 혼란을 경험하게도 된다. 하지만 내가 나를 맞닥뜨리는 방법을 깨친다면 지금보다 덜 고독하고 더 꼿꼿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이 황홀한 책은 전한다. ’흐른다’는 말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진다. 존재 안에 또 존재하고 살아있을 모든 ‘나’를 품는 너와 너를 응원하며 어디서 흘러왔고 어디로 흘러가는지가 여전히 궁금한 나의 고독한 항해를 멈추게 하기위해 온 듯한 책을 만났다. #나는흐른다 #송미경 #장선환 #창비 #100세그림책 #성인그림책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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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곰곰그림책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지음, 이명아 옮김 / 곰곰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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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게 된 소녀 마리나. 말의 자유를 빼앗긴 소녀는 지엽적인 것으로 자신을 판단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몸의 언어로 자신에 존엄을 증명하며 외딴곳에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어느 날 그녀는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판타지를 펼쳐놓으며 자신에 숨쉬던 곳에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상이라 하기엔 몹시 선명하고 구체적인 이야기에도 자꾸 커져가는 의심은 그녀가 존재했던 시간을 바래게 하고 부정당한 마음은 상처로 쌓인다. 깊어진 의심은 결국 그녀를 타박하고 채근하기에 이르고 소녀는 믿음이 소멸된 그곳을 떠나버린다. 몽환적인 느낌에 색채와 또렷하고 사실적 묘사의 그림체가 어울려 독자에 몫으로 남겨진 상상력도 함께 증폭시킨다.

이 책은 의심이 빚어낸 독단이 누군가의 정체성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무겁게 느끼게 하고 얕은 생각에서 탄생한 비난과 평가가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를 던지기도 하지만 잠깐 경로를 이탈하여 간결하고 명징한 그림에 빠져 명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잠기게도 한다. 꿈꿀수 있도록 숨겨놓은 징표와 같은 장치들이 결연한 소녀의 표정과 겹치며 바다 안의 이야기에 진위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무조건적인 믿음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게 한다.

매번 배가 아프다며 식사를 중단하는 아이를 양치기 소년에 비유하며 질책하였더니, 아이는 “엄마가 한숟가락이라도 더 먹어야 내가 아프지 않고 자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협박한다는 걸 나도 알아, 그래도 좀 다정하게 말해주면 좋겠어.” 라고 내 부정을 반박했다. 속이 깊은 아이에게 간파 당한 엄마는 신뢰가 포개지는 과정을 배운다. 일반화의 오류임을 알면서도 평범한 사고를 세속적이라 생각하며 모순을 끊임없이 범하는 나를 반성하게 하는 책을 만나버렸다 #곰곰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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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고 싶지 않을 권리가 있다 반올림 29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윤예니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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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 가족관계증명서를 챙겨야 아이는 아빠에게 발급을 부탁했고 아빠는 주말이라 안된다고 했다. 아이는 월요일에 당장 필요한 것인데 어떡하냐고 되받아쳤다. 그리고 말 끝에 “돈이면 안되는게 있어? 어서 해 줘”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얼어 버렸다. 물론 아이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돈을 내면 살 수 있는 물건이라 생각했다고 해명했지만 문장에 텍스트만 보면 그 뜻이 아닌것 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것이 부모의 경제력과 관계없이 요즘 아이들에 경제관념이자 자본을 대하는 태도라 느껴졌다. 직접 돈을 만져볼 일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계산을 하면서 품목별 금액이 얼마인지 알려고 들지 않는다. 부모의 카드로 결제를 하면 되니 굳이 모자라는 돈을 계산하며 들었다 놓았다 하는 고민에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아이를 어떻게 성교육 할 것인가? 고민을 하던 차에 부모 성교육에 다녀왔다. 강사님은 연령별 성교육이 다른데 돈의 개념과 물가를 어느 정도 계산할 수 있는 연령의 아이들에게는 기저귀 가격과 분유 가격을 먼저 묻는다고 하셨다. 질문은 현실적 책임에 대한 부분인데 상당수 아이들에게 돌아오는 답변도 위의 가족관계증명서 사례처럼 비현실적인 답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가령 갓난 아이를 키우는데 한달에 100만원이 필요한다고 가정 했을 때 “학원 하나 그만두면 되지 않을까요?” 와 같은 대답처럼 말이다.

소비에 고심이란 단계가 생략되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경쟁하듯 사고 그 사람의 몸에 닿아있는 물건 금액으로 부의 척도가 매겨진다. 부유함이 나를 바로 세우는 힘이 되는 것과 사치를 하는 것은 개념이 다르지만 요지는 검소함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의 매체에서 넓은 집, 좋은 가구, 고가의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만 노출되니 그것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은 현대인 적격심사에서 낙방한 것 같은 좌절감을 겪게 된다. 나는 그것이 소비조장에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사고싶지않을권리가있다 라는 책을 되도록 많은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다. 뿐만 아니라 쌓이는 물건을 보며 내가 왜 이렇게까지 소유하려 하는지 나를 잘 모르겠는 사람들에게도 건네고 싶다. 이 책을 탐독한 다음 내려놓음과 동시에 물건으로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될 방법이 무엇인지 찾는 고민에 빠진다면 더 없이 좋겠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부디 절친한 친구의 SNS속 명품백이 불행 요소가 아니길 바래본다 #바람의아이들 #호수네책 #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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