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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종이 울리면 - 제3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고학년) ㅣ 창비아동문고 352
이하람 지음, 양양 그림 / 창비 / 2026년 3월
평점 :
가늘게 실눈을 떠서 확인하고 싶어 하셨다. 한번 뵙지 못한 커튼 너머의 옆침대 아저씨께선 “딸이 도착해야 목소리를 들을 수 있군요!” 라고 인사를 건네셨고 마지막 날엔 “딸 왔슈, 일어나보슈! 어째 오늘은 숨소리도 안들리오” 하셨다. 아빠는 내 목소리에 가장 선명하게 반응했고, 짙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옅어지고 있는 모든 감각들을 동원해 마지막 말을 남겼다.
곧 꺼질듯 깜빡이는 형광등처럼 아빠는 자꾸 어딘가로 다녀오곤 했는데 그곳에 한 평생 짊어졌던 혹은 한번도 나누지 못했던 슬픔, 괴로움, 두려움, 번민을 하나씩 내려놓고 오는 것만 같았다. 나도 점차 아빠의 섬망을 평온에 이르는 신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빠가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놓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아빠와 헤어지고 1년 후, 병상 기록과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손의 근육으로 나부끼듯 써내려간 필체의 유서는 비밀의 종이 되어 나를 울렸다.
내겐 더이상 비밀의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만질수도 눈을 맞출수도 없는 아빠와 아주 더디 석별의 정을 나누었고 며칠 밤을 지새우며 작별했고 작별하지 않았다. 그 마음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아빠가 영면에 들었다고 믿게 되었다.
#비밀의종이울리면 의 종소리는 오래도록 묻혀 있던 기억을 깨우고, 외면해왔던 진실을 다시 현재로 불러오는 신호다. 그 종소리를 따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종이 거듭 울릴수록, 주인공은 점점 더 깊은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결국 한때 멈춰 있었던 시간의 조각과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과거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비통함을 오히려 ‘전해지지 못한 말’과 ‘남겨진 마음’을 교차해가며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고요하고 분명하게 전달한다. 죽음이라는 낯선 경험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며, 무겁고 거대한 역사 또한 결국 한 사람의 삶의 기록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왕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슬픔을 기리는 방식을 따라가는 여정인 동시에, 남겨진 이들이 그 슬픔을 조용하고 슴슴하게 견뎌내는 시간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종소리가 멈춘 자리에는 여전히 남겨진 것들이 있지만, 그 잔향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마지막으로 안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