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에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
권하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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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아직 살면서 동성애자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나는 왜 이렇게 동성애자에게 관대한지 모르겠다. 아니, 그렇다고 자신한다. 막상 동성끼리 애정행각을 벌이는 영화나 이야기를 접할 때면 눈과 귀를 어디에 둘지 몰라 곤혹스러워하지만 이건 생리적인 거부감일 뿐 철학적으로는 늘상 지지한다.

 아무래도 이건 네이버 웹툰 중 명작이라 손꼽히는 <어서오세요, 305호에!>의 덕이 클 것이다. 평범한 주인공이 하필 게이랑 동거하면서 겪게 되는 요지경을 지극히 평범한 시선으로 보여준 그 작품은 처음엔 덮어놓고 혐오감을 품었던 주인공이 게이와 진정한 베스트 프랜드가 되면서 끝이 난다. 그 과정에서 독자였던 나는 주인공과 같이 여러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동성애자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오늘 본 <로렐>이란 영화(개봉하자마자 봄)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왔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동성애를 비롯해 성소수자를 주제로 다룬 영화(<아가씨>는 논외다)를 보면 일맥상통한 주제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 혹은 주인공의 주변인이 동성애자로 나와 세상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필하게 되는 사건을 겪고 그 과정에서 한 단계 성장해나가는 줄기를 갖고 있다. 그들의 정체성이란 내가 봤을 때는 이렇다. 동성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뿐이다. 우리는 평범하다. 벌써 세 번째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몇 번이고 더 말해야겠는데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진짜 평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 얘기는 <로렐> 후기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이 작품도 여느 동성애 작품처럼 동성애자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이를 부정하고자, 숨기고자 여자친구를 사귀지만 번번이 그들로부터 도망친다. 자신의 불순한 교제 동기에 비해 너무나 순수하게 자신을 좋아해주는 그녀들의 진심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는 자신에게 솔직해지고자 남자에게 대쉬한다. 하지만 그 결과 사상 최악의 방식으로 인생은 파탄길에 오르고 마는, 적어도 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홍석천 씨다. 활발히 활동하는 방송인이고 특출난 미적 감각의 소유자이며 성공한 외식업자이기도 해서?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되지만, 알다시피 그가 게이임에도 이런 외적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그를 너무나도 존경한다. 최초이자 아직까지도 유일한 커밍아웃 연예인인 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편견에 시달려본 사람인데 나는 동성애자가 아님에도 그의 현재 모습이 멋있는데 동성애자들에게는 어떨지 정말 궁금하다. 처음엔 홍석천 씨도 동성애자 사이에서 치부의 대상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마 한국 동성애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장식될 위인이 아닐지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김조광수 감독도 그런 의미에서 그 자신의 행보의 성과를 꼭 거두었으면 좋겠다. 제발.


 이 책은 모든 동성애자가 후에 홍석천 씨처럼 세상에 녹아들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 비법이 녹아있는 성장 소설이다. 수많은 사람을 놓고 하필 홍석천 씨를 언급했냐면 그가 동성애자일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그리고 내적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 여겨서다. 어쨌든 주인공이 학교에서 자퇴하고 정상적인 학생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어진 마당에 찾아야 하는 자아는 일반 청소년들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처지인 동성애자 친구들 또한 찾아야 하는 것이라서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으리라 생각된다.

 대신에, 이건 흥을 깨는 말일 수도 있지만 작가의 <발이 닿지 않는 아이>를 기대하고 읽은 나로선 주제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지만 실상은 평범해서 실망이었던 작품이었다. 초반부는 흥미진진한 걸 넘어 머리칼이 쭈뼛 설 만큼 소름 끼쳤던 것에 비해 중반부부터는 교과서적인 성장 소설이라서 괜히 김샜다. <발이 닿지 않는 아이>는 진짜 걸작이었는데......

네, 정말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과 대학을 가고 싶다는 것은 개와 고양이만큼이나 다른 것 같아요. - 37p




내가 물소 떼 속의 물소처럼 행동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나를 몹시 착잡하게 한 거지. 하아....... 나는 그냥 나면 안 되는 건가? - 42~43p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본모습은 절대 수치스러운 게 아니야. 자연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거든. 단지 그 모습을 인정할 수 없는 자신은 수치스러워해야 해. 자신을 인정할 수 없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야. - 46p




잘못 없는 인생이라니, 그건 그거대로 끔찍하지 않니? - 201p




그래서 나는 한 사람을 사랑하듯 내 삶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어. - 2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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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 탐정 그림의 수기
기타야마 다케쿠니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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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이렇게 동화를 원작으로 둔 소설은 사실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흑소소설>에서 '신데렐라 백야행'이라는 단편을 읽었었는데 이 작품은 <백야행>의 성격을 고스란히 <신데렐라>의 무대와 등장인물에게 옮긴 패러디 소설이었다. 통쾌하리만치 섬뜩했는데 어쨌든 재밌게 읽어서 이 작품도 내심 궁금하면서도 걱정됐다. 처음 접하는 작가였는데 국내에 유일하게 출간된 <클락성 살인사건>의 평이 그닥 좋지 않아서 믿음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잘 몰라도 읽는데 지장이 없는 게 우선 참 마음에 들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으로 접하긴 했지만 그 애니메이션이 원작과 달리 해피 엔딩을 그린 것이 논란이 됐던 만큼 원작에 대한 이해는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못한 채 넘어간 동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타야마 다케쿠니의 <인어공주>는 그 동화의 후속의 이야기로서 진행되는 만큼 패러디니 오마주니의 문제가 없이 별개의 전개가 펼쳐져서 상당히 볼 만했다.


 목소리를 잃으면서까지 인간이 되어 왕자의 곁에 있으려던 인어공주였지만 그마저도 왕자가 타국의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실연을 당하게 되고 결국 인어공주가 바다의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하지만 그 이틀 뒤에 왕자도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왕실 사람들은 타이밍 좋게 행방이 묘연해진 인어공주를 의심하게 되는데...

 동화를 배경으로 대놓고 판타지를 차용하는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가슴 떨리는 도입부로 시작된다. 안데르센이 화자(왓슨역)로, 그림 형제는 탐정으로 활약하고 인어라는 존재가 등장하는 등 해봄직하면서도 시도하기 힘든 설정을 아낌없이 끌어다 쓰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서민에서부터 왕궁까지의 묘사도 부족함이 없이 생생해서 상상을 마구 자극시키는데 일견 작위적이긴 했어도 동화 속, 실화 속 존재들이 앞다투어 등장하는 진풍경은 독자들이 이 독특한 추리극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게끔 하는데 일조한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수작을 만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는데 불안했던 짧은 분량이 결국 발목을 붙잡아 안타까운 결말을 내고야 말았다. 비슷한 작품으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판타지 추리소설 <부러진 용골>이 떠오른다. 그 작품도 분량이 짧은, 엄밀히 말해 53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음에도 급결말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 작품은 390페이지밖에 안 되니 어떻게 보면 예견된 미래였는지 모르겠다. 17세기 덴마크의 낯선 정경과 분위기, 인어의 세계, 각종 마법에 대한 풀이를 더 세밀하게 해냈더라면 500페이지는 기본으로 넘었어야 했는데...

 엉뚱한 탐정인 루트비히(그림 형제)나 사명감을 띄고 동생의 누명을 벗기려고 인간이 된 인어 셀레나 등 인상 깊은 캐릭터가 좀 있었지만 정작 화자이자 주인공인 안데르센이 그 존재감이 흐릿한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동화 <인어공주>가 안데르센의 작품이니 등장시킨 것 같은데 학교 가기 싫어하고 환상의 모험을 동경한 소년이란 여러 설정은 좋았으나 이번 추리극 안에서의 실질적인 역할은 미미했었다. 안데르센이라는 한 소년의 성장과 모험담에 주목한다면 얘기는 좀 달라지겠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원작자인 안데르센이 '보릿자루'의 성격이 강해서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다.


 '물리의 기타야마'라는 별명답게 범인을 특정 짓는 트릭은 기발했지만 기껏 동화나 인어라는 설정을 가지고 왔으면서 그와 따로 노는 트릭을 선보인 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고 그 범인의 정체나 범인을 지목하는 탐정의 추리 부분도 논리적이긴 하나 복선 회수가 부족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어의 세계관을 너무 난잡하게 설정한 나머지 괜히 몇 차례 복잡하게 꼬아져서 에필로그 읽을 때는 정말 피곤했다. 뜬끔없이 '역사 속 그 인물'이 등장한 것도 옥의 티였던 것만 같다.

 초, 중반부가 가슴 벅차게 만드는 요소로 가득했지만 막판의 정리가 미흡해서 속 어딘가가 얹혀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작가에 대해 흥미는 가지만... <클락성 살인사건>도 비슷한가? 아, 그 전에 동화 <인어공주>부터 읽어야지.

세상의 규칙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더욱 엄격히 속박당하게 돼. 진심이 아니어도 되니까 순종하는 척하렴. - 2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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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도플갱어라는 소재는 주로 호러 장르에서 많이 보게 된다. 자신과 외양이 완전히 똑같은 사람과의 조우는 미지의 공포심을 자극하는지 많이들 써먹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소재 자체가 갖고 있던 신비함이 이제는 다소 퇴색된 느낌이 든다. 그렇게 호러를 챙겨 보지 않는 나조차도 그리 식상하게만 여겨지는 걸 보면 도플갱어는 이젠 한물간 소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 두 명의 소코가, 도플갱어로 등장하는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식상함을 넘어서 새삼스럽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는데 막상 읽으니 똑같이 생긴 둘이 서로 역할 바꾸기를 하자고 해서 제법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소코 A와 소코 B. 전자는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그에 반발하여 남편처럼 똑같이 바람을 피지만 그조차도 덧없음을 느끼던 일상으로부터, 후자는 자유가 없이 계속 자신을 옥죄는 일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둘은 서로의 일상을 교환하기로 한다.


 비슷한 소재의 작품은 바로 떠오르진 않아도 머릿속에 많이 그려지는데 이 작품처럼 진행되는 것은 처음 봤다. 사람에 따라선 호러 소설로, 결혼 소설로, 뒤가 궁금해지는 스릴러로도 보이는 실로 다면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일상을 바꿔서 처음엔 만족하다가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전개들이 충분히 예상이 갔지만서도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 무지하게 궁금했다. 보통은 비극이 도래하지만...

 하나의 소재를 통해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어 전체적으로 풍성한 독서가 아닐 수 없었다. 결혼했지만 행복하긴 커녕 어딘가에 예속되거나 무시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존재와 그에 의한 무력감, 자유를 향한 갈망, 억눌렸던 감정의 폭발 등이 약간 전개가 빨라도 세밀히 묘사되어 남성 독자인 나도 무리없이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치밀한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도플갱어 소재가 안겨주는 '인간의 존재감의 상실'에서의 공포 같은 부분을 적재적소에 잘 녹여내 두 명의 소코의 여정의 귀추가 주목됐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하지 않았나 싶다.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했고 틀에 박히지 않으면서도 공감이 충분히 가서 좋았던 작품이다. 끝맛이 나름 산뜻했던 것도 개인적으로 참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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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의 꿀
렌조 미키히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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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8.5






 무심코 읽었을 땐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쁜 표지나 띠지에 적힌 출판사의 화려한 선전 문구, 그리고 작가의 이름에 혹해서 집은 책이다. 제목이 '조화로운 꿀'을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조화造花였다. 가짜 꽃의 꿀이라니. 그 모순된 의미만으로도 구미가 당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난 잘 모르는데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들 중에는 색다른 별명을 가진 작가가 있다고 한다. 작중에 토막 시체가 많이 등장하는 시마다 소지의 경우엔 '토막의 시마다'라는 별명이, 그리고 이번에 읽은 작품의 저자인 렌조 미키히코는 유괴를 작품 속에 자주 다뤄서 '유괴의 렌조'라고 불리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재밌는 별명이 붙은 경위가, 그러니까 그 정도의 별명이 붙을 만큼의 '전문성'이 내심 궁금했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괴를 다룬 추리소설이라 하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게임의 이름은 유괴>나 요코야마 히데오의 <64>가 당장 떠오르는데, 유괴라는 설정도 수많은 작가에 의해 다양한 변주를 일으키며 획기적이면서도 천인공노할 방식으로 작중에 등장해왔다. 하지만 시작과 끝이 비교적 비슷한 경향이 있어서 이번 작품도 솔직히 대단히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이건 정말이지 유일무이의 유괴극이지 않나 하며 감탄하며 읽게 됐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돌아가신 작가한테는 약간 죄송한 말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연식이 차서 그런지 유괴극을 둘러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극과 추태, 범인의 이미지 같은 것이 어딘가 고루한 감이 있어서 실망스러웠던 것은 있다. 범인의 노림수는 추리소설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매우 신선했고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해 재밌었지만 그 정체에 한해서는 어째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어서 괜히 민망해질 정도였다.


 그 외에도 아이를 유괴당한 가족이 안고 있던 어두운 비밀이라든지 그것이 드러나는 과정과 인물들의 심리 묘사도 식상한 경향이 있었다. 작가의 작품은 <백광> 밖에 읽지 못했는데 그 작품과 느낌이 상당히 비슷했지만 10년 가까이 차이 나는 두 작품 간의 출판 시기 동안에 작가에게 무슨 일이(매너리즘인가) 생겼는지 이번엔 그렇게 통찰력 있다거나 감성적인 부분이 달렸었다. 어쩌면 이는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인해 몰입감이 저해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적인 요소가 아니더라도 이 작품의 유괴극만은 정독할 가치가 있다. 자신은 유괴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돈은 필요없지만 준다고 한다면 받겠으니 아이를 먼저 돌려받으면 그 다음에 돈을 주라는 등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밀고 당기기'가 그야말로 대박이었기 때문이다. 액수를 부르니까 너무 많다면서 반을 줄이고 보통 돈을 받고 아이를 주는데 그 반대로 하자고 거듭 강조하는 식의 믿을 수 없을 만큼 평화주의적인 범인의 언동에 아이의 가족은 물론이고 유괴 사건의 전문 수사원들과 그걸 읽는 나까지도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그런 태도를 취함으로 인해 범인이 무얼 노리는지 궁금해서 계속 읽을 수밖에 없는 몰입도나 그 뒤편에 도사렸던 범죄의 저의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에 아낌없이 박수를 치게 되는 소설이었다. 막판에 100페이지에 걸쳐 사족을 펼쳐서 흥이 급격히 떨어지긴 했어도 당분간 이런 유괴극은 잊혀지지 못할 것 같다. 최근 읽는 추리소설들은 트릭적인 면보다는 드라마적인 부분에 더 감탄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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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원숭이
오사와 아리마사 / 이성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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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1





 나온다고 소식만 무성했던 오사와 아리마사의 '사메지마 형사' 시리즈의 2편을 읽었다. 알라딘에서 93년도에 출간된 절판본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노블마인에서 출간한 전편 <신주쿠 상어>를 나름 재밌게 읽은 나로서는 그야말로 개이득이었다. 시리즈 1편이 흥행이 잘 읽었는지 당최 후속작이 나올 기미가 안 보였는데 구태여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됐으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1편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후속작이었다. 일본에서의 평가는 좀 다른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좀 더 액션에 치중한 거친 범죄극에 좀처럼 나 자신이 동화되지 못한 것도 있겠고 기본적으로 클리셰 투성이었던 평이한 소재와 구성도 마찬가지였고 혹은 오래 전 번역에서 비롯된 고루함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전작은 후반부에서 추리소설의 원점이라 할 만한 주인공인 사메지마의 번뜩이는 수사로 범인을 극적으로 검거했던 요소가 2편에선 부족했던 것이다. 영상으로 봤더라면 얘기는 달랐을 수 있겠지만 좀 더 텍스트의 묘미를 잘 드러낼 정적인 요소보다는 동적인 요소에 치중한 것은 참 아쉬웠다. 그것이 사메지마라는 캐릭터의 거친 모습을 단적으로 잘 묘사하긴 했어도 엘리트 코스를 제발로 걷어찬 다음 현장에서 참다운 경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매력은 덜 드러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만의 킬러인 '독원숭이'의 살인 무술이 우리나라의 태권도인 점을 제외한다면 특별한 구석은 어쩐지 느껴지지 않았던 작품이어서 아쉬움은 더 배가되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후속작은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중에 언젠가 개정판이 나오면 읽을지도 모르겠다.

캐리어 제도는 일본 경찰조직의 모순의 상징이었다. 캐리어에 뽑힌 사람들이 우수한 인재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과상자 속에는 반드시 썩은 사과가 한두 개쯤 들어 있게 마련이었다.

두뇌가 명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가운데는 근본적으로 경관으로서의 자각이 모자라는 사람이 적지 않게 섞여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 56p




법률이란 건 눈에 보이지 않아요. 때문에 경찰은 펜스나 울타리 같은 존재라야 마땅하다고 봐요. 그 펜스를 넘으면 자기자신과 타인이 상처를 입게 돼요. 때문에 펜스가 가로막고 있으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경찰은 그걸 깨닫게 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 1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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