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도플갱어라는 소재는 주로 호러 장르에서 많이 보게 된다. 자신과 외양이 완전히 똑같은 사람과의 조우는 미지의 공포심을 자극하는지 많이들 써먹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소재 자체가 갖고 있던 신비함이 이제는 다소 퇴색된 느낌이 든다. 그렇게 호러를 챙겨 보지 않는 나조차도 그리 식상하게만 여겨지는 걸 보면 도플갱어는 이젠 한물간 소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 두 명의 소코가, 도플갱어로 등장하는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식상함을 넘어서 새삼스럽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는데 막상 읽으니 똑같이 생긴 둘이 서로 역할 바꾸기를 하자고 해서 제법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소코 A와 소코 B. 전자는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그에 반발하여 남편처럼 똑같이 바람을 피지만 그조차도 덧없음을 느끼던 일상으로부터, 후자는 자유가 없이 계속 자신을 옥죄는 일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둘은 서로의 일상을 교환하기로 한다.


 비슷한 소재의 작품은 바로 떠오르진 않아도 머릿속에 많이 그려지는데 이 작품처럼 진행되는 것은 처음 봤다. 사람에 따라선 호러 소설로, 결혼 소설로, 뒤가 궁금해지는 스릴러로도 보이는 실로 다면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일상을 바꿔서 처음엔 만족하다가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전개들이 충분히 예상이 갔지만서도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 무지하게 궁금했다. 보통은 비극이 도래하지만...

 하나의 소재를 통해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어 전체적으로 풍성한 독서가 아닐 수 없었다. 결혼했지만 행복하긴 커녕 어딘가에 예속되거나 무시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존재와 그에 의한 무력감, 자유를 향한 갈망, 억눌렸던 감정의 폭발 등이 약간 전개가 빨라도 세밀히 묘사되어 남성 독자인 나도 무리없이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치밀한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도플갱어 소재가 안겨주는 '인간의 존재감의 상실'에서의 공포 같은 부분을 적재적소에 잘 녹여내 두 명의 소코의 여정의 귀추가 주목됐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하지 않았나 싶다.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했고 틀에 박히지 않으면서도 공감이 충분히 가서 좋았던 작품이다. 끝맛이 나름 산뜻했던 것도 개인적으로 참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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