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트리플 세븐 킬러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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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매화나무는 매화꽃을 피우면 돼.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으면 그만이고. 장미꽃과 비교한들 아무 의미도 없어. - 218p


 타인에 비해 운이 지지리도 없는 등장인물에게 던지는 위의 말은 안타깝게도 이 작품엔 해당되지 않았다. 너무나 뛰어난 전작들, 특히 <마리아비틀>의 생존자 나나오가 등장하는 이상 더더욱 두 작품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사유의 농도와 전개의 양상과 반전, 각기 다른 매력의 킬러들의 분투도 적어도 <마리아비틀>과 비교하면 한 수 아래로 보였다. 심지어 분량마저도.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동안 작정하고 써내려간 대작인 전작에 비해 <트리플 세븐>은 전작의 인기에 기댄, 정확히는 전작이 영화화된 것에 삘을 받은 작가가 노래 가사 흥얼거리듯 써내려간 느낌이었다. 가령 이누이의 정체에 관한 반전은 이누이란 캐릭터가 존재감이 미묘해 그렇게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6인조는 각자 개성이나 비중이 6등분으로 쪼개져 퇴장당할 때나 퇴장당할 때의 연출도 어딘지 시시했고 담요와 베개, 그리고 소다의 활약도 기대했던 것보다 저조했으며 무엇보다 상황에 딱히 변수를 주지 못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가벼운 작품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신기하게도 읽을 당시엔 몰입도가 좋았고 결말엔 여운도 있었다. <마리아비틀>에 비해 순조롭게 해결된 편인 지라 해피엔딩이 작위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어쨌든 산뜻한 결말이라 마음에 들었다. 나나오와 적대하는 킬러들도 매력이 후달려서 그렇지 격투 장면은 박진감 넘쳤고 지루해지려고 하면 펼쳐져 페이지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물론 작가 특유의 통찰과 철학 역시 건재했는데, 운에 기대지 않는 철저한 계산과 불운한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 한 인물의 집념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읽혔다. 스포일러 발언일 수 있는데 <도둑들>이 연상되기도 했다. 아무튼 연출이 미묘해서 그렇지 적어도 주제의식과 그걸 풀어낸 작가의 필력은 여전히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

 보아하니 시리즈의 후속작이 계속 나올 듯한데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상관없으니 다음엔 조금 더 공을 들여서 작정하고 집필해주길 바란다. 여러모로 정이 가는 캐릭터들이 재등장해줘서 반가웠던 만큼 시리즈가 이대로 끝나길 원치 않는다. 그렇다고 괜히 잘못 건드려서 안 쓰느니만도 못한 결과는 제발 만들진 말고. 인생과 마찬가지로 소설엔 잭팟이 없잖은가. 운에 기대고 던지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소설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되새기며 부디 더 멋진 작품으로 돌아와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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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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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다 자기 삶의 건조함과 만나는 건 언제라도 가능하다. 그러나 생의 의미를 찾아 멀리 떠날 것까진 없다. 의미는 사무실 소파 아래에 뒹구는 막걸리 통에도 얼마든지 있다. 의미를 몰라 인생이 건조해지는 건 아니다. - 12p


 12년 전에 읽었을 때 무려 10점 만점을 줬지만 다시 읽으니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으로 올해 여름에 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와 결이 비슷하다. 대필 작가인 주인공에겐 여러 사건이 벌어질 듯하다가도 불발로 그치고, 때론 사별한 아내나 반려견과의 추억 그리고 회한과 속절없이 마주하거나, 대필 작가로서의 직업적 고충과 사명감 등 이모저모를 서술하며 독자에게 적잖은 흥미를 안겨주면서 주인공의 사무실 주변 동네의 풍경이 묘사돼 전에 없이 편안하게 읽히는, 한 마디로 매력을 특정하기 어려운 오묘한 맛으로 넘쳐나는 작품이다. 아, 멋부리지 않았지만 촌철살인인 작가의 문장력만은 모두가 인정하는 이 작품의 매력일 듯하다.

 아마 요즘처럼 일상의 소중함이 위협받는 시국이 아니라면 내가 이렇게 포스팅을 쓰는 일도 없었을지 모를 작품이란 생각도 든다. 일상의 사사로운 고민과 먹고 사는 문제, 장래에 대한 걱정만으로도 착잡한 와중에 시국마저 저 모양이니 일생의 즐거움조차 향유하기 눈치 보이는 요상스런 세상이 되고 만 느낌이다. 깨어있지 않으면 한심한 눈초리를 받는 분위기는 예전보다 덜해졌지만 상황이 전례가 없는 만큼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이거 참 어찌 될는지. 세상은 일상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기엔 다소 부적절한 곳이라는, 작품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감상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이게 작품의 문제는 아니고 나의 자격지심 내지는 세상의, 혹은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든 장본인, 그리고 그 장본인을 믿고 뽑은 사람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봐야겠지. 닭과 달걀의 문제, 뫼비우스의 띠가 연상되는구만. 자업자득이란 말은 너무 지독한 자학 같으니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가져갈 수만 있다면 사치는 가져가는 게 좋다. 정신의 사치는 우울증을 막아준다. - 18p

사람은 자기가 걸어 다니는 동네의 일만으로도 벅차다. 비열한 것은 세계가 아니라 개인들이다. - 19p

소설 되는 사람 있고, 소설 안 되는 사람 있고, 그러면 소설이 잘못된 거지 그 인생이 잘못된 거겠냐고. - 35p

절망까지 들여다보는 노련한 수사관이 있을까?
있다면 그건 노련함이 아니라 믿음일 것이다. 진실은 믿는 것이지 밝혀서 아는 게 아니다. - 98p

운명은 ‘모르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아는 건, 안다는 그것으로 인해 운명이 아니다. - 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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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건 아니겠지? 2 - 어느 만화가의 시코쿠 헨로 순례기
시마 타케히토 지음, 김부장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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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세상에는 어째서... "꿈을 가져라!" 라거나 "꿈을 포기하지 말아라!" 라고 말하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꿈을 잘 포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나 책은 없는 걸까요...? - 1권 91p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꿈을 포기하러 떠난 막연한 순례길에서 만화의 소재를 찾게 된 자칭 실패한 만화가의 성찰이 담긴 논픽션 만화다. 6년 전에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당시엔 내심 동정하며 읽었으나 지금 다시 펼치니 정말 나를 겨냥하는 얘기 같아 뜨끔하고 씁쓸해 한시도 가볍게 읽히지 않았다. 저자가 이 작품 이후로 어떤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는지 모르겠지만 이만한 결과물을 냈다면 다른 작품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작품을 통해 만족하고 펜을 꺾었다면 그 결정도 존중받아 마땅하며 언뜻 이해도 된다. 이만한 작품 이후엔 뭘 그려도 성에 차지 않아 일생 마지막 작품으로 남긴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을 듯하다.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면 일본엔 시코쿠 섬을 일주하는 오헨로 순례길이 있다. 시코쿠 전역의 88개의 절을 걸어서 순례하는 유서 깊은 순례길이며 몸과 마음이 벼랑 끝까지 몰린 사람들이 안식처로 오랜 세월 기대온 길이라는데, 종교적으로든 자기계발적인 측면으로든 뜻깊은 길이란 건 부정할 수 없겠다. 나 역시도 더 나이 들기 전에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 설령 무엇 하나 얻지 못하고 허송세월에 그친다 하더라도 해보고 싶어졌다. 만약 내가 지금 포르투갈어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새로운 인생의 활력을 얻고자 진지하게 알아봤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일단 포르투갈어 공부에 전념하고 싶어 더 나중 일로 미루련다. 포르투갈어를 배우기로 결심하기 직전까지 상당히 어지러운 나날을 보냈기에 지금 마음의 안정을 찾은 내 상황에 일단은 만족하고 있다... 나중엔 어찌 될는지 모르지만.


 꿈... 한때는 소설가로 등단하는 것에 적잖이 목매달았지만 지금은 흐지부지된 지 오래다. 올해 소설 한 편을 끄적이지 않은 것에서 거의 확실해졌다. 물론 소설에 대한 구상이나 열망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말로는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행동에 옮기지 않고 꿈이 있다고 말하는 건 꿈이란 단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꿈에 대한 미련 때문에 포기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쓰든가, 취업이든 뭐든 다른 일에 전력투구하든가 해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몸이 움직이지 않은 것은 나란 사람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라면 으레 그런 법인 걸까.

 어쩌면 잠깐의 성찰로 그칠 지도 모를 순례길에 오르는 작중 모든 순례자들의 모습과 다종다양한 사연을 접하며 내가 그렇게까지 뒤틀린 사람이 아닐 수 있겠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정말이지 순례자들에게 적잖은 동질감을 느꼈고 저자가 오헨로 순례를 완주했을 때는 내 일처럼 먹먹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픽션이 어느 정도 섞였겠지만 정말 다사다난했고 사기꾼 같은 범죄자들도 대가를 치르고 귀신은 성불하는 등 산뜻한 결말과 연출까지 더해져 이 정도면 이 작가를 만신으로 칭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주인공이자 저자는 자기처럼 꿈을 잘 포기하는 방법에 대한 만화는 오다 에이이치로나 이노우에 타케히코도 그리지 못할 것이라며 창작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희망을 표출했는데 이러한 자신감은 실로 훌륭한 결실을 맺었다. 물론 저자는 세 걸음 떼기도 전에 같은 소재와 주제라면 그 두 작가가 더 잘 그릴 것이란 자괴감에 빠지지만,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리얼>을 완벽히 완결 내지 않는 한 이 작가에 대한 나의 인상이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 이 작가를 향한 동질감이나 동정표가 아닌 구성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연출적으로나 완벽할 뿐더러 혼을 갈아넣었다고 봐도 좋을 만큼 깊이감이 남달라 꼭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한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심지어 소재도 특이하니 더할 나위 없다. 순례자의 신분을 악용하는 사기꾼을 비롯한 각종 범죄를 다루는 측면에서 작가의 통찰력이나 현실주의적인 시각 역시 일품이라 말랑말랑한 말만 해대는 그저 그런 에세이로 여긴다면 큰코 다칠 수 있다. 자기계발의 성격을 띈 창작물 중엔 가끔 너무 오그라들고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해 부담스럽거나 시간 아까운 경우도 있는데 이 작품엔 절대 해당사항 없는 얘기다. 제목만 제외하면 이 작품엔 오그라들거나 감성에 호소하는 요소가 일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담이지만 원제는 '걷는 헨로 수관(?)' 이라고 지극히 평범한데... 국내에 소개될 땐 더 임팩트 있게 바꾸는 데엔 동의하나 저렇게 길면서 대놓고 노린 듯한 제목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마땅히 대안도 없는 주제에 더 지적을 이어나갈 염치는 없으니 여기까지 하겠는데 아무튼 겨우 찾은 단점이란 것이 요거 하나다.


 다음엔 이 작품을 언제 읽게 되려나? 5~6년 뒤에 다시 읽으면 다르게 읽힐 수도 있겠다. 기왕이면 내가 오헨로 순례길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때 읽으면 참 좋겠는데... 그날이 기대된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그래도 그런 결심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오길 기대해본다. 앞으로의 인생에 너무 위협적인 벼랑과 마주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렇게 말하기 전에 일단 해보라니깐! 당신처럼 제 입맛에 딱 맞아떨어지는 ‘자아‘만 찾게 되진 않으니까! - 1권 73p

자네는 어떤 인생을 산다 해도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 있어! - 1권 92p

한 달 정도 걸어서는...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이나 성격은 변하지 않겠...지...
별로 변하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분이 들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 2권 68p

나쁜 짓을 하려는 자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아. 가리는 것은 ‘상대‘뿐이지... - 2권 123p

붙잡는 고통이냐... 놓는 희망이냐... 어느 쪽이든 고통받을 거라면... - 2권 134p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건 모두 다른 사람 덕분이다. 지난 한 달은 그 사실을 절감하기 위한 과정이었을까...? - 2권 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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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담배
브누아 뒤퇴르트르 지음, 한지선 옮김 / 강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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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3



 내 논리를 이해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아무리 이성적인 증거를 대봤자 그들의 감성이 나의 결백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니까. - 177p


 최근 후임들한테 일 가르치느라 곤혹스럽다. 말 안 듣고 답답한 후임과 그런 후임을 닦달하면 잔소릴 해대는 선임까지... 지들은 나한테 더한 짓도 했으면서. 군대에 있을 때도 심한 갈등을 겪어보지 못한 나는 무작정 '요즘 애들은 다르다'며 두둔하는 언행에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다. 이렇게 배경 설명 생략하고 말하면 나한테 너무 유리할 테지만 어쨌든 최근 불만이 이래저래 많이 쌓였었다.

 하여간 호들갑과 감수성의 시대다. 엄밀히 말하면 감수성은 필요하다. 이성을 너무 앞지르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런데 호들갑은 확실히 문제다. 호들갑은 자칫 생사람을 잡기 십상이다. 나 역시 후임을 다루는 솜씨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감정을 제어할 필요하단 것은 인정하나 상황의 단면만 보고 상대편만 들어주는 모습들엔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그간 쌓아온 이미지와 공헌도가 있기에 함부리 흔들릴 자리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10월부터 포르투갈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른 넘어 뭔갈 새로 공부하려니 머리도 생각만큼 잘 굴러가지 않고 입력도 바로바로 되지 않아 1년이라도 먼저 하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뭐든 다 적기라는 게 있다지만 그런 아쉬움이 들 만큼 공부 성과가 미진한 편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격려해주고 인내하시는 걸 보고서 많이 배웠다. 나도 일터에서 후임들이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고 짜증을 낼 게 아니라 더 인내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야 일을 오래 했으니 숨쉬듯 하는 거지 후임들이야 이제 와 처음 배우니까 말이다.

 그렇다 보니 요새는 공연히 애들 가르친답시고 괜히 짜증을 내거나 하는 일 없이 솔선수범을 하거나 적극적인 역지사지를 통해 애당초 짜증을 낼 일 자체를 줄이는 것에 골몰하고 있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면 병이 난다는 말처럼 결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잘 극복하고 있다고 자평하는 중이다. 포르투갈어를 배우면서 얻은 의외의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 덕분에라도 포르투갈어를 배우길 참 잘한 것 같다.


 잡설이 아주 길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도 나처럼 자신의 불만을 잘 다스려보고자 노력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물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극단적인 나머지 동정심을 유발하지만 그래도 문제가 있는 인물임을 부정할 순 없다. 그가 어린이를 싫어하는 특유의 논리도 무슨 카뮈의 <이방인>에 빙의한 듯 지치지도 않고 나불거리는 게 읽는 입장에서 곤란할 지경이었는데 작중 인물들 입장에선 오죽했을까 싶다. 어차피 망한 인생, 하고 싶은 말 원없이 하자는 심정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그저 똘끼 충만한 인물이다.

 금연이라든가 어린이들의 권리엔 결벽에 가까운 잣대를 들이대면서 호들갑을 떠는 세태에 반론을 제기한 소설의 의도 자체는 훌륭하다고 본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무지성적으로 신봉하면 얼마든지 광기에 치달을 수 있음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으니까. 이 작품의 대표적 무지성적 신봉엔 '어린이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인데, 주인공이 화장실에서 몰래 흡연하는 걸 지적한 어린아이가 도리어 주인공이 노발대발하자 그대로 자신이 위협을 당했으며 성폭력을 당할 뻔했다고 고자질하면서 펼쳐진 대환장 서사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는 사형수가 사형을 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흡연을 하고 싶다고 하자 사형수의 권리나 금연 건물에서의 규정 같은 걸로 온갖 사람들이 나와 대안을 마련하고자 호들갑을 떤 것과 같은 맥락의 일이다. 시작은 사소하고 하찮기까지 한데 과정과 결과가 이렇게나 이상하고 충격적일 수 있다고? 이쯤 되면 사람들은 정치적 목적 같은 건 호들갑을 떨기 위한 구실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최근 동덕여대에서 남녀공학에 반대하기 위해 일어난 일도 연상됐다. 사명도 책임도 적법한 절차도 없이 단지 학교를 엉망으로 만든 결과만이 나왔을 뿐인 그 풍경에서 나는 지성이 부재한 호들갑의 전형을 느낄 수 있었다. 투표의 원칙도 없이 공개 거수 투표의 방식은 사회주의 내지는 전체주의까지 연상시키며 분명 학교를 점거하는 과정에서 적잖이 선동했을 총학생회도 결정적 순간에 자신들이 기물파손을 지시한 게 아니라며 꼬리 자르기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의리도 사명감도 엿볼 수 없었다. 수리비는 찬성에 투표한 2천 명 가까운 학우들과 자신들의 시위에 동참한 졸업생들과 그토록 중요시하는 연대를 통해 분담하고, 그 대신 반드시 남녀공학 폐지를 약속하라고 학교측에 먼저 제시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평소에도 여대의 필요성이란 무엇이냐며 관심이 있던 사안이었기에 내심 이 시위가 어떤 결과를 낼 지 궁금했는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무책임한, 한마디로 최악의 전개를 보이고 있어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결국 호들갑이었군.

 전술했듯 정말 호들갑의 시대다. <소녀와 담배> 속 호들갑이 결코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쏜 화살이 정조준되지 않아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무고한 사람들만 다치는 상황이 기가 찰 따름이다. 의도만 좋다면 정말 어떤 결과든 용인될 수 있는 것일까? 어린애한테 손대는 성폭행범은 사형당해야 마땅하지, 그런데 명백한 물증 없이 어린이의 진술만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가당키나 한 일인가. 여대의 필요성? 여대에 재학 중인 당사자들이 여대가 꼭 있어야 주장한다면 남녀공학으로 전환돼선 안 되겠지, 그런데 학교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자신과 의견이 다를 수도 있을 학우들의 수업권까지 방해하는 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주제의식만 그럴싸하고 재미는 대가리도 없는 소설을 쓴 주제에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다분한 소설가가 한심하듯 그들 모두 역시 한심하다. 의도와 사명을 언급할 가치마저 없는, 그저 호들갑쟁이들일 뿐이니 원.


 그런 의미에서 소설 자체는 전혀 호감이 가지 않고 뒷맛도 아주 나쁘지만 자신만의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두 번 읽은 보람이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땐 주인공이 그저 불쌍했지만 다시 읽으니 정말 많은 생각이 마치 고구마줄기처럼 뻗어나갔다. 살기 부담스러운 세상이니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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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라인 꼬마비 만화 전집 2
꼬마비 지음 / 글의온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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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까발려 뒤집어진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 아니라디? - 214p


 어느 날 갑자기 머리 위로 빨간 선이 생겨난다. 자신과 성관계한 사람하고 이어주는 'S라인'은 건물도 통과하고 숨길 수도 없으며 상대가 죽어야 비로소 사라진다. 이로 인해 혼전순결을 미덕이라 생각했던 부부들의 믿음은 깨지고 종교계는 한바탕, 아니 몇 바탕 뒤집어지고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계는 비상이 걸리는 반면 출판계와 인터넷은 호황을 이룬다.

 내가 이 작품을 네이버 웹툰에서 접했을 당시엔 아직 미성년자였다. 지금 이렇게 삼십대가 넘고 다시 읽으니 작중 세계관의 혼란이 더더욱 와 닿았다. 가령 자기 머리 위에 생긴 S라인의 개수를 의식하다 못해 아예 풀페이스 헬멧을 착용하고 외출하며 익명성에 기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럴싸했다.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나 역시 내 성관계 횟수가 버젓이 드러나는 S라인을 껄끄러워할 것이므로 처음 연재 당시에 읽을 때처럼 이들의 모습이 유난을 떠는 것처럼 읽히진 않았다.


 작가의 엄청난 염세주의를 엿볼 수 있는 작풍과 그와 대비되는 아기자기한 그림체가 압권인 작품이다. 그림체나 연출은 다시 봐도 인상적이고 특히 색깔이 중요한 작품인 만큼 그를 활용한 연출은 인상적이다 못해 세련되기까지 했다. 단순한 그림체와 4컷 만화 형식, 거기다 흑백만화 특유의 단순한 색감을 유지하면서도 군데군데 중요한 부분은 형식을 파괴한 그림과 연출을 선보이는데 이건 직접 봐야 안다. 어쩌면 이런 부분 때문에 작가의 염세주의가 불쾌한 동시에 부드럽게 읽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종의 이유로 자신의 과거 성관계 상대를 죽이려는 작중 인물들의 행태나 자신이 어렸을 적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드러나버린 에피소드도, S라인이 비단 이성끼리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설정도 눈길을 끌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S라인이 너무 많아도 아예 없어도 조롱하는 분위기였다. S라인이 아예 없으면 비웃고 너무 많으면 걸레라 수군거리고... 소름 끼칠 만큼 현실적인 묘사라 픽션이라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S라인이 생김으로써 빛을 본 사람이 있는 반면 오히려 큰 피해를 보고 종국엔 자살까지 하는 사람도 생기는 것을 통해 S라인은 역시 재해이고, 인간에게 사생활이란 지켜져야 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적어도 인간에겐 '그깟 사생활'은 없는 것이다.


 작중엔 S라인이 가시화되기 이전부터 홀로 S라인을 볼 수 있던 능력자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은 선택 받은 능력자이며 그렇기에 자신에겐 남과는 다른 통찰력이 있다고 자부하던데 독자들은 그가 통찰력의 소유자이긴커녕 편협한 시선의 소유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S라인은 단지 성관계 여부와 횟수만을 보여줄 뿐 그것이 자의인지 타의에 의한 결과인지, 그 사람의 배경이나 인격을 온전히 나타내진 못한다. 작품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S라인따윈 하등 중요치 않다고.

 애당초 S라인을 볼 수 있다는 것으로 통찰력 운운하는 것부터가 오히려 통찰력이 떨어진다는 반증이기도 한데 문제는 우리라고 그 능력자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나 보이는 것이 워낙에 강렬하면 시선이 자연스레 닫히게 되니까. 나는 어떤 사람이려나... 실제로 없는 선인데도 자기 반성이란 걸 해보게 되는 걸 봐선 설정 하나는 인정해줘야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아마 내년 초에 방영 예정이라는데 왜 이렇게 걱정만 될까? 개인적으로 스토리는 걱정만 되는데 작품의 비주얼은 궁금하다. S라인으로 뒤덮힌 도심의 풍경이 시각적으로 어떻게 구현됐을지 보고 싶다. 물론 스토리도 좋으면 더할 나위 없고.

 하지만 드라마라는 매체의 특성상 작가의 염세주의는 상당 부분 덜어질 테지. 그런 점에서 영화로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 뭐, 지금 예측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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