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문>제집 세간살이가 낯선 이의 손에 들려 길바닥에 하찮게 내던져지는 순간을 대면한 사람, 그런 모멸의 순간을 살면서 거듭 경험한 사람의 마음을 가늠할 자신은 여전히 없다. - P16

<서문> 내게 빈곤 연구란 우리 시대의 빈곤을 단순히 기록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빈곤을 어떤 방식으로 쟁점화하거나 외면했는지 톺아보면서 ‘빈곤을 어디로 가게 할 것인가‘를 부단히 질문하는 과정이다. - P17

온라인 공론장에서 가난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때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이 곧잘 소환된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가난 행세, 요샛말로 가난 코스프레를 한다고 느꼈을 때, 혹자는 주인공이 ‘상훈‘에게 품은 분노를 떠올린다. - P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류가 살아남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행성에서 살아야할 것이다. 떠남으로써 도착한 지구이거나, 머무름으로써 도착한 지구이다.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이 두 가지 방식은 우리에 대해 전혀 다른 무언가를 말해 줄 것이다. - P156

자기 집을 버리는 문명은 어떤 미래를 맞을까? 이런 결정을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드러날 테고, 우리는 결국 바뀔 것이다. 집을 없애 버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뭐든 없앨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할 테고, 실제로 없앨 수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 P157

기후변화를 진지하게 생각하건 안 하건, 떠나보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상실은 이미 시작되었다. 내일 탄소배출을 영(0)으로 줄인다 해도 과거의 행동들이 초래할 죽음을 계속해서 목격하고 경험할 것이다. 행성은 우리는 물론이고 아이들에게도 더는 살기 좋고 아름답고 쾌적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겨우 경험하기 시작한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로이 스크랜턴이 <뉴욕 타임스>에 쓴 에세이 <인류세에 죽는 법을 배우기>의 요지이다. 스크랜턴은 끝부분에 이렇게 썼다. - P168

기후변화가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국방부가 자원 전쟁을 위한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혹은 맨해튼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방파제를 건설해야 하는가, 호보켄을 언제 소개해야 하는가 따위가 아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를 사거나 협정에 서명하거나 에어컨을 끄는 정도로는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철학적인 것이다. 이 문명이 이미 죽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더 빨리 직시할수록, 우리 자신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더 빨리 깨달을수록, 죽어야 할 운명의 굴욕을 짊어지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힘겨운 일을 더 빨리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P1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정‘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데시데레(desidere)에서 왔는데, ‘잘라 내다‘라는 의미이다. 전시에 등을 끄기로 결정할 때, 버스 뒷좌석으로 옮겨 앉기를 거부할 때, 동생 신발을 가지고 고향 마을에서 도망칠 때, 차 밑에 깔린 사람을 살리려고 차를 들어 올릴 때, 구급차에 길을 터줄 때, 디트로이트에서 밤새 집까지 차를 몰아 달려갈 때, 파도타기를 맞아 일어설 때, 셀카를 찍을 때, 추수감사절 식사에 참석할 때, 줄을 서서 투표할 때, 의학 실험에 참여할 때, 나무를 심을 때, 우리는 우리가 그런 일들을 하지 않은, 있었을 법한 세계들을 잘라 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결정에는 손실이 따른다.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할 수 있었을 일만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함으로써 모종의 기여를 할 수도 있었을 세계를 잃는 것이다. - P95

우주인들은 우주에서 본 지구의 모습에 깊이 감명 받았고 정신적 변화를 경험했다. 우주인 앨런 셰퍼드가 소리를 질렀던 것은 달에 착륙했을 때가 아니라 자신의 고향 행성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이런 경험은 우주여행자들 사이에서 너무나 강력하고 한결같아서 ‘조망 효과‘라는 이름까지 붙여졌다. 고향을 갑자기 보았을 때, 우리가 행성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의 경외감을 묘사하는 말이다.
경외감을 일으키는 것은 아름다움과 광대함, 두 가지이다. 우주에서 본, 특히 무한해 보이는 검은 허공을 배경으로 한 지구의 모습보다 더 크게 사람을 변화시킬 만큼 아름답고 광대한 것이 또 있을까? 상상하기 어렵다. 이는 상호 연결성, 생명의 진화, 심원한 시간, 무한함을 시각적으로 가장 뚜렷이 보여 주는 예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환경‘은 더는 우리 바깥, 저기 어딘가에 있는 무엇이나 맥락이 아니다. 우리를 포함하는 모든 것이다. - P1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결책은 간단하다. 이 문제를 여성들에게 설명하세요. 이 사실을 앞 문단에서 설명하는 데 영단어 200개도 쓰지 않았다. 여성은 위험을 이해할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거리를 밤에 걸어서 지날지 혹은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더 나을지를 판단하는 데 대부분 익숙한 사람들 아닌가. - P349

나는 완경이행기를 지나는 동안 내내 부글부글 끓는 분노감에 휩싸여 있었고 그 정도는 점점 치열해졌다. 수많은 여성들이 나와 비슷한 상태를 경험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말 오랫동안 그냥 목청이 터져라 길게 비명을 지르고 싶은 마음 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공에 대고 비명을 지르는 일은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결국 지치게 마련이고, 자신을 돌보거나 변화하는 일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내 분노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만 그 분노가 내 머릿속을 무허가 점거하는 것을 막고, 그 힘을 건설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나는 문제의 핵심을 더 뚜렷하게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 P506

여성들은 우리의 몸, 다시 말해 ‘커다란 두뇌-작은 골반‘의 등식을 가능하게 만든 바로 그 몸이 문제가 많은 몸이고, 따라서 우리라는 존재 자체가 문제가 많은 것처럼 믿도록 가스라이팅을 당해왔다. 우리는 더럽고, 바보 같고, 뚱뚱하고, 징그럽고, 역겹고, 약한 사람들이고, 거기에 더해 마냥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이다. 남성들을 기본값으로 해서 만들어진 의료 체제에 우리가 맞춰가며 사랑야 하고,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무시되거나, 날조된 증상이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 P507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완경기를 잃어버린 젊음, 허약함, 가치 하락과 연관 짓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억하길 바란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와 주체성, 목소리, 지식을 뚜렷이 가다듬어 건강을 유지하고 정당한 우리의 몫을 요구해야 한다. - P5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