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양장본)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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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스티브 잡스 자서전에 대한 책 소개를 들었다. 사실 천 쪽 가까운 책을 누가 읽을까 싶었는데 지난 월요일 시중에 풀리고 나서 단박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초판으로 10만부를 찍었는데 물량이 달려서 8만부를 더 찍었단다. 어느 대형서점에서만 8,000부를 주문했다고도 한다.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책을 쌓아 놓고 팔고 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사실 아무리 책을 좋아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을 읽을 생각은 없다. 그래도 언제고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 이야기를 하게 될 텐데 맛보기로나마 이렇게 알아 두면 스티브 잡스의 삶에 대해 아는 척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수로 라디오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우선 이 책은 월터 아이작슨이라는 저널리스트가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부터 작업을 한 책이라고 한다. 스티브 잡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싫어하는 사람까지도 포괄해서 100여명으로부터 직접 취재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해서 쓴 책이다. 물론, 스티브 잡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도 많이 들어있다.

스티브 잡스의 기행과 괴팍함은 이미 널리 알려진 그대로다. 자신이 동료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만든 애플로부터 쫓겨난 사실을 비롯해서, 자신의 친딸인 리사를 부인하기도 했다. 친자확인 결과 95% 이상 친자로 판명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결국 화해를 했다고 하던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 받았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요 부분은 잘 다뤄지지 않은 사실이 아닌가 싶다.

그는 특히 사람들을 천재와 바보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했다고 한다. 자신을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로 생각하면서, 애플 2, 맥킨토시, 아이북, 아이팟, 아이패드 그리고 아이폰에 이르는 수많은 제품을 돈을 벌기 위한 상품이 아닌 예술품으로 생각했고, 자신이 직접 설립한 애플을 영구히 존속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놀랍군!!!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에 대해서는 자신과 같은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폄하하기도 했다.

1980년 애플을 기업 공개했을 때, 초창기 애플의 개국 공신들은 애플 지분으로 단박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동료에게는 전혀 지분을 주지 않아, 다른 이들이 자기 몫으로 돌아온 지분을 나눠 주자고 하면서 스티브 잡스에게 얼마를 줄 거냐고 했을 적에 당당하게 0%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위에서도 말한 대로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를 자신이 가진 고유의 가치판단 시스템(천재와 바보)으로 한 스티브 잡스의 사고를 설명해준다.

애플 신화를 창조한 동료 스티브 워즈니악이 엔지니어였다면,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만들 줄 아는 천재였다. 워즈니악에게는 없던 천부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가지고 있던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기술들을 조합해서 소비자의 기호를 자극했고, 그가 만들어낸 제품들은 소비자들로부터 열광적인 찬사와 환호를 받았다. 제록스 연구소에서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진 GUI 시스템도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에 적극적으로 탑재하면서 이제는 표준으로 자리잡지 않았던가. 아이팟의 경우에도, 기존의 MP3 플레이어 제조업체들이 이게 돈이 되겠어(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이다)라고 생각한 기술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지 않았던가. 아이폰의 와이드스크린 펑션도 마찬가지다.

생의 마지막 14년 동안, 애플로부터 매년 1달러의 연봉을 받은 것도 세간의 화제였다. 문제는 스티브 잡스에게 돈은 의미가 없었다는 점이다. 애플의 영속과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매진하는 천재에게 돈줄은 따로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디즈니 주식 배당금으로만 매년 4,8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였다. 그러니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CEO에게 돈이 무슨 필요가 있었을까. 스티브 잡스의 관심은 오로지 완벽한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었고, 대중은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제품에 아낌없이 돈을 퍼부었다.

이제 우리의 곁을 떠난 시대의 풍운아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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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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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표지의 빼어난 ‘가족 소설’이라는 책소개가 눈에 띈다. 그런데 할런 코벤의 장르 소설이 가족 소설이란 말이지. 이거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한다. 미국 뉴저지 교외에 사는 마이크 바이 가족을 줄기로 해서 다양한 가족들이 등장한다. 이상하게도 미국 사회는 이혼이 일반화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가족이라는 단위 구성이 중요한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할런 코벤은 바로 그런 미국 사회에서 가족이 갖는 단점과 장점을 소설 <아들의 방>을 통해 멋지게 보여준다.

소설에서 한 편에서는 납치와 살인, 협박이라는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구성 요소가 등장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가족애라는 전통적 가치와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려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모성애가 충돌한다. 자수성가한 내과의사 마이크 바이는 아들 애덤이 절친 스펜서의 자살 때문에 부모와의 관계가 점점 더 서먹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한편, 애덤의 엄마이자 유능한 변호사 티아는 아들이 걱정되어 아들의 사생활까지도 감시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스파이 프로그램으로 아들의 이메일, 메신저 등등을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가족 간의 신뢰의 고리가 붕괴된다. 자식을 믿지 못하는 부모의 그릇된 결정이 사건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마이크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과연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가 하는.

마이크의 딸 질의 친구 야스민은 학교에서 조 루이스턴 선생님에게 폭언을 듣고 심각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조숙한 야스민의 친구 질은 그런 야스민을 위로한다. 야스민의 엄마 매리앤은 바람이 나서 딸과 자신을 숭배하는 남편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다. 한편, 마이크는 이웃에 사는 단테 로리먼의 멋진 와이프 수전의 아들 루커스가 사실은 단테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의사 아버지에 변호사 엄마를 둔 무엇 하나 부족해 보이지 않는 애덤은 막무가내로 가출을 감행하고 마이크는 아들 구하기에 나선다.

이런 게 21세기 미국의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란 말인가? 아무리 모든 가정은 제 각각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가정 중에 정상적인 가정은 하나도 없다.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바로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할런 코벤은 조금은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한 이래 계속되어온 절대 가치를 소설을 통해 재현한다.

마이크 바이는 합리적인 이성의 소유자로 스파이 프로그램의 설치가 과연 아들에게 최선의 방법이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다. 하지만, 아들이 위기에 빠지자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왕년의 가락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자신의 가정에 위해를 가하려는 악당에게 한 치의 망설이 없이 돌진하는 그런 마초로 변신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트머스 칼리지를 졸업한 아이비리그 출신답게, 마이크는 클럽의 기도이자 자신의 동문 앤서니에게 도움을 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역시 이래서 좋은 학벌이 중요한 걸까? 클럽 기도에게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비교적 양호한 교육과 보살핌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미국 사회에서 청소년의 약물 오남용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들의 방>은 절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어떤 어른들은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청소년들까지도 서슴지 않고 범죄에 이용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클럽 재규어를 운영하는 로즈메리 맥디비트라는 팜므 파탈이 그런 예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술집에서 만난 매리앤과 대형마트에서 만난 레바 코르도바를 차례로 납치해서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내시와 피에트라 2인조의 활약은 <아들의 방>이라는 미스터리 소설에 독자를 홀리게 만드는 핵심적인 동기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하고 사랑해 마지않았던 카산드라를 잃은 슬픔에 결국 파멸적인 범죄의 길에 들어서게 된 내시의 운명에 동정심이 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변호사 티아를 쉴 새 없이 몰아붙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FBI에 연행된 마이크와 애덤을 위해 적극 변호에 나서는 프로페셔널 변호사 헤스터 크림스타인(이름만 들어도 바로 유대계라는 점을 알 수 있겠다)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인신의 구속과 증언에 관한 미국 내 법률은 잘 모르겠지만 절대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은 하지 말고 차라리 묵비권을 행사할 것을 주문하는 그녀의 프로 근성에 그만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역시 원칙에 충실한 필요가 있다. 물론, 헤스터는 자신의 지시 사항을 따르지 않은 티아는 가차 없이 잘랐지만.

사건의 다른 방향에서 연쇄살인 사건 해결을 도모하는 로렌 뮤즈의 추리도 빼놓을 수 없다. 유능한 여성 형사과장의 활약과 경륜은 많지만 사건의 초동 대처에 실패한 트레몬트 형사의 첨예한 맞대결도 눈길을 끈다. 소설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캐릭터는 없다는 격언대로 이 무능한 트레몬트 형사도 사건 해결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수확을 올린다.

할런 코벤의 <아들의 방>은 참 먼 길을 돌고, 다양한 사건을 체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가족의 소중한 가치로 환원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스톨은 바로 이런 가치관을 향해 돌진하는 아이스하키 선수가 날린 퍽(puck)처럼 독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이리 빼고, 저리 빼지 않고 단도직입적인 이런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올디스 굿디스’라는 말처럼 일견 진부해 보여도 역시 조금 늘어난 티셔츠가 편한 건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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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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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재구성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허구와 사실의 혼재 속에서 퍼올리는 작가의 이야기야말로 김훈 역사소설을 읽는 재미가 아니었던가. 여전히 작가의 삶이 보여주는 궤적은 불편하지만, 그의 책은 재밌다. 그리고 제목만 역사에서 채취한 <공무도하> 같은 현대물보다 아무래도 역사소설이 더 좋다. 그러니 <흑산>을 읽을 수밖에.

인터뷰에서 김훈 선생은 <흑산>을 주인공 없는 소설이라 했지만, <흑산>은 사학(천주교)을 신봉한 죄로 흑산도로 유배된 자산 정약전과 정부 당국에 의해 사학의 수괴로 지목된 자산의 처조카 황사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물이라는 매개로 작가는 남해 고도 흑산도에 유배된 서울 선비 자산 선생의 행장을 정씨문중 삼형제의 고향 마재(두물머리)로 연결시킨다.

개혁군주였던 정조 시대에 사마시에 급제한 황사영은 신분의 이동을 반상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가로막았던 악랄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태어난 불우한 소년천재였다. 그의 재기를 알아본 정약현은 일찍이 자신의 딸인 명련과 짝을 지운다. 고금의 경서가 아닌 사물을 통해 진리를 구하는 도를 깨닫게 된 어린 사위에게 처삼촌 약종은 천주의 교리를 알려준다. 그렇게 가문과 개인의 비극은 시작된다.

정조가 죽고 난 뒤, 대권을 장악한 영조의 계비 정순대비(貞純大妃)가 섭정에 나서면서 조선 신분질서를 어지럽히는 사학, 천주교와의 일대 대결을 선언한다. 중국에서 천주교 선교를 위해 밀입국한 주문모 신부를 체포하고, 조상의 제사를 폐하고 공화 세계를 주창하는 사학의 무리를 일소할 것을 강력하게 명령한다. 순조시대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작가는 지식인 계급은 물론이고, 마부와 뱃사공들을 상대하는 강사녀, 퇴직한 늙은 궁녀 같이 신분제 질서 내에서 기약 없는 하루를 보내던 백성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져가던 시대의 흐름을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필력으로 형상화한다.

공화세상의 도래라는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는 기득권층의 반동이 소설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면, 흑산도로 유배되어 다시는 중앙 정계 아니 고향땅을 밟을 수 있을지 그렇지 않은지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던 자산 선생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김훈 선생은 뭍의 질서와는 다른 물의 질서에 맞추어 사는 이들의 삶을 고찰한다. 구백 리 물길을 거쳐 도착한 흑산의 실질적인 지배자 오칠구 별장의 횡포와 미역과 농사로 근근이 먹고 사는 백성을 갈취하는 벼슬아치의 가렴주구의 실체를 엿볼 수가 있었다.

흑산의 주민을 괴롭히는 고등어와 소나무 수탈과 갈취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물사람들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어린 소나무가 땅을 뚫고 나오는 족족 뿌리채 캐어 냈을까. 유배 죄인을 호송하는 관원이 흑산에 오자 섬사람들이 말리던 미역을 거둬 산으로 도망간 이유가 관리들의 수탈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고, 고등어 다섯 마리를 몰래 감추었다고 옥섬에 가두는 장면에서는 정말 기가 찼다. 이런 백성의 고통과 피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기득권 수호와 유지에 급급한 정순대비로 대변되는 기득권층과 세도가의 폭정이 민본을 중시하는 조선의 국시에 들어맞는지 묻고 싶었다. 유랑걸식하고 굶어죽는 백성을 보듬지 못하는 왕조국가 조선의 운명을 엿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천주교도였다가 살기 위해 배교하고 개전한 박차돌이라는 캐릭터는 박해에 직면한 사학쟁이들의 운명을 더욱 더 가혹하게 몰고 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돈으로 공명첩을 사들인 박차돌은 관직에 진출했다가 사학에 빠졌다는 이유로 죽을 뻔한 위기를 배교와 관련자를 부는 조건으로 간신히 살아남는다. 우포도대장 이판수는 박차돌을 간자로 이용해서 사학의 괴수 황사영을 체포하고, 사학의 무리를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박차돌은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이 천주교도로 체포되자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장살시킨다.

이런 적극적인 박차돌의 배교는 과연 김훈 선생이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선택의 문제였을까. 비슷한 경우로 역시 살기 위해 처조카 황사영을 불었던 선왕 정조의 총신 정약용에 대해 작가는 냉정한 시선을 유지한다. 결국 체포되어 능지처참을 당하게 되는 황사영과 신앙을 버리지 않고 결국 참수된 가형에 대해 이 위대한 유자(儒者)의 변명이 듣고 싶었다. 또 다른 유자는 멀리 흑산에서 풍진세상을 잊고 물고기 관찰을 통한 격물치지로 소일한다. 조정에서 퇴출되어 유배길에 오른 선비에게 삶은 어떤 의미였을까. 읽을 책도, 담소를 나눌 벗도 없는 절해고도의 삶은 참담하다. 자산이나 고등어를 빼돌렸다가 옥섬에 갇힌 마을 어부 장팔수의 운명이 다를 게 무어인가. 



(김훈 선생이 직접 그리셨다는 "가고가리", 수억만년 시공을 건너서 가고 또 간다는 뜻이란다.) 

작가의 또 다른 역사소설 <칼의 노래>에서도 그랬지만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불편했다. 아무리 남존여비 사상이 일반적이었던 조선후기라지만,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여성성의 묘사가 아쉽다. 특정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면 강사녀나 아리 같은 캐릭터에 비중을 두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그냥 문득 성리학적 질서를 국시로 삼고 있던 조선시대에 천주교도로 개종한 유자가 과연 영적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상의 신분질서 유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던 사회에서 군주와 노비가 평등하다는 사상은 이단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문자로 만민은 평등하다는 사상을 수용한 유자도 무시무시한 치도곤이라는 실질적 폭력 앞에서는 한낱 목숨을 구걸하는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김훈 선생은 살과 피가 터지는 매 앞에 장사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한 이들은 순교자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택은 냉혹했다.

이 모든 과정을 김훈 선생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필치로 멋지게 그려냈다. 내공이 담긴 선생의 인간 드라마는 그래서 묵직하고 진중하게 다가왔다. <흑산>과 함께 한 10월의 어느 주말은 그래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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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23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장바구니에 담긴 책들이 이 서재에 리뷰로 속속 보이니, 군침 돌아요 ㅠ ㅠ
제가 [칼의 노래]를 안 봐서 그런데 여성에 대한 시선이 그리 불편한가요?
김훈 단편 중에 [언니의 폐경]이라는 작품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작품은 또 어떨지 궁금하네요. 부지런히 읽고 계시군요. 저는 잠시 방황하다 왔어요 ^^;;

레삭매냐 2011-10-28 09:04   좋아요 0 | URL
<칼의 노래>는 정말 ~~~ 마초 스탈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덜 그렇지만요.
몰랐던 역사적 사실(신유박해) 그리고 황사영 백서 사건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변신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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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용하는 램프의 요정 중고서적을 이용해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사서 바로 다 읽었다. 오래전에 네이버 오늘의 책 리뷰어 도전을 하겠다고 도서관에서 빌리긴 했었는데 완독하지 못하고 반납한 기억이 난다. 지난주 번개에 나갔다가 만난 분에게 요즘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뭐냐고 물었더니 카프카의 <변신> 이야기를 해서 다시 호기심이 동했다. 얼마 전에 카프카의 다른 책인 <소송>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끝을 맺지 못했다. 아니 시작만 했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그레고르 잠자라는 출장 영업사원이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더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인간에서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했다. 문제는 벌레로 변한 이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연달아 벌어지는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우선 그레고르는 잠자 집안의 청년 가장이다. 아버지는 5년 전 사업 실패로 자신감을 잃은 무능력한 가장이다. 아침에 읽은 어느 잡지의 기사에서 보니 경제력을 상실한 가장은 가장으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한 거라고 했던가. 전업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아직 십대소녀인 동생 그레테는 철부지 소녀다. 그러니 생존을 위해 돈 버는 일과 아버지의 빚을 갚은 일은 모두 그레고르의 몫이다.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출장 영업사원으로 월급을 꼬박꼬박 집으로 가져올 때만 하더라도 모든 가족이 그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이제 벌레인간이 된 그레고르를 환영하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

시계같이 정확하게 근무를 하던 잠자가 출근하지 않자 바로 매니저가 쫓아온다.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거부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한 단면을 읽을 수가 있다. 조직의 정교한 부품으로 돌아가야 할 그레고르라는 한 개의 나사가 빠진 것 때문에 매니저는 화가 난 것이다. 그의 건강이나 안위는 문제가 아니다. 벌레인간이 된 개인의 이슈는 그대로 묻혀 버리고 가족과 조직의 원리가 날것 그대로 그레고르에게 청구된다.

그레고르가 노동의 대가로 돈을 가져 오지 못하면서 잠자 집안의 경제위기는 현실로 다가온다. 현업에서 은퇴한 아버지는 다시 은행안내원으로, 어머니는 바느질로 그리고 동생 그레테도 취업전선으로 내몰린다. 철저하게 노동과 밥벌이에서 소외된 그레고르는 가족에게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나마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던 동생마저 경제적 독립체로 ‘변신’하면서 벌레인간 그레고르를 냉랭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마저 버림받은 그레고르는 살아갈 힘을 잃는다.

비록 육신은 벌레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사유를 하는 그레고르는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 그가 왜 벌레가 되어야 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거세된 상태에서 과연 그가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튀어나온다. 실존의 불안을 다룬 카프카의 글이 그런 동화로 귀결될 리는 만무하다. 벌레인간의 등장이 비극이었던 것처럼, 비극의 수레바퀴는 결말을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소설 <변신>에는 프라하의 유대계 독일인으로 살았던 프란츠 카프카 자신이 느꼈던 고독과 불안이 그대로 스며 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이 해체되기 전 프라하에 살던 카프카는 유대인이면서도 시온주의에 동조하지 않아, 동포 유대인에게도 그리고 독일인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수많은 유럽 청년들의 생명을 앗아간 전쟁의 참화 속에서 카프카는 필연적으로 시대의 불안과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라는 자신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에 천착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변신>에 등장하는 각충에 대해 원작자인 카프카는 그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하는데, 내가 읽은 문학동네 버전에서는 아르헨티나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루이스 스카파티가 다양한 형태의 각충/말똥구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그레고르가 완벽하게 각충으로 변신을 했는지 아니면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스카파티는 그런 독자의 호기심에 대답이라도 하듯, 다양한 모습의 그레고르/각충의 모습을 선보여 주고 있다. 디테일보다는 벌레인간으로 변한 그레고르의 실존적 불안에 초점을 맞춘 일러스트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림이 풍부하게 담긴 고전을 좋아하는데 다음 번에는 괴테 선생의 <파우스트>에 도전해봐야겠다. 진짜 입으로는 백번 읽은 고전과 친해져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카프카의 <변신>과의 만남은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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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가든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6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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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장르 소설은 읽는 재미가 있다. 플롯에 푹 빠져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기리노 나쓰오 작가 신작 <로즈 가든>도 마찬가지였다. <로즈 가든>은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외전(外傳) 격이라고나 할까. 유년 시절 미로와 미래의 그녀의 남편이 되는 히로오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사실 인도네시아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미로의 남편 이야기는 기억의 창고 저 너머에 아스라하게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인스톨인 <로즈 가든>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영업 사원으로 맹활약 중인 히로오라는 이름과 시리즈의 주인공 미로가 결합하자 바로 번쩍이는 기억의 화학 반응을 이끌어냈다. 아 그랬구나, 히로오는 미로라는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갔구나. 아니 그 반대였나? 뭐 상관없다.

한 때 연상의 여자가 진짜 여자라고 생각하던 히로오는 어느 날 동급생인 미로와 만나 같이 땡땡이를 치면서 파멸의 전주곡을 시작한다. 현재와 과거의 연결점을 넘나드는 구성이 참신하게 다가오며, 미로가 친 덫에 빠져 이제는 변태 소녀킬러(물론 연쇄살인범의 그 “킬러”는 아니다)로 바뀐 자신을 탓하는 장면도 빠지지 않는다. 너무 성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이 나오는지라 이 소설은 어쩌면 19금으로 분류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외전을 통해 미로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던 과거의 속살을 기리노 나쓰오 작가는 헤집는다.

첫 번째 인스톨이 과거의 회상이었다면 나머지 세 이야기는 무라노 미로의 활약이다. 귀신잡기라는 소재를 다룬 <표류하는 영혼>는 그냥 그랬다. 맨 마지막의 SM 클럽에서 여신으로 활약하던 메구미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하는 인스톨은 아무래도 일상에서 많이 벗어난 이야기라 그런지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다. 그렇다, 이 소설집에서 내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인스톨은 바로 <혼자 두지 말아요>다.

남편과 사별하고 삼십대 초반에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탐정으로 활약하는 무라노 미로는 참 용감하다. 어떤 일은 아무리 보수가 좋아도 선뜻 나서지 않지만, 또 어떤 사건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감으로 끝까지 성실하게 수행하기도 한다. <혼자 두지 말아요>는 상하이 클럽에서 일하는 유미라는 중국 베이징 출신의 절세미인을 사랑하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어느 남자의 이야기다.

기리노 나쓰오는 일단 치자꽃 같은 얼굴을 한 어떤 남자라도 한 번 보면 넋이 나가는 그런 절세미인을 등장시킨다. 집중과 선택이라는 소설 작법의 기법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미로가 이미 맡고 있는 불륜사건에 미야시타라는 남자가 의뢰한 자신이 사랑하는 유미의 마음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중첩시킨다. 물론, 그런 사적 감정에 대한 판단은 아무리 유능한 명탐정이라도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한다. 하지만 미야시타가 날카로운 칼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에 미로는 아마도 억울하게 죽었을 미야시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한다.

이웃에 사는 호모 도조 씨에 대한 야릇한 감정도 빠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탐정이라는 생리상 남자의 역할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미로는 주저 하지 않고 이 든든한 사내의 힘을 빌린다. 상하이 클럽에 침투할 적에도 여자 혼자 가기에 뭣하니 바로 이 도모 씨를 동원한다. 아마 현실세계에서라면 쉽지 않을 텐데 소설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정체불명의 유미라는 전형적 팜므 파탈의 등장, 살인사건의 발생 그리고 미스터리까지 적절하게 결합된 느와르를 방불케 하는 현란한 인스톨이 너무나 매혹적이다.

소설의 곳곳에 심어둔 복선과 암시의 부비트랩을 너무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다 보니 나의 의식 세계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기리노 나쓰오 작가가 독자를 위해 준비한 힌트는 보지 못한 채, 엉뚱한 것에만 한눈을 팔았나 보다. 아주 간단한 트릭도 잡아내지 못하면서 너무 큰 스케일의 상상이 문제였다. 아니 어쩌면 그런 엉뚱한 상상 때문에 더 재밌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독도 또한 독서의 즐거움이 아니던가.

참, 그런데 표지와 챕터마다 등장하는 이 얼룩말 녀석의 정체는 뭘까?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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