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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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용하는 램프의 요정 중고서적을 이용해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사서 바로 다 읽었다. 오래전에 네이버 오늘의 책 리뷰어 도전을 하겠다고 도서관에서 빌리긴 했었는데 완독하지 못하고 반납한 기억이 난다. 지난주 번개에 나갔다가 만난 분에게 요즘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뭐냐고 물었더니 카프카의 <변신> 이야기를 해서 다시 호기심이 동했다. 얼마 전에 카프카의 다른 책인 <소송>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끝을 맺지 못했다. 아니 시작만 했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그레고르 잠자라는 출장 영업사원이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더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인간에서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했다. 문제는 벌레로 변한 이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연달아 벌어지는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우선 그레고르는 잠자 집안의 청년 가장이다. 아버지는 5년 전 사업 실패로 자신감을 잃은 무능력한 가장이다. 아침에 읽은 어느 잡지의 기사에서 보니 경제력을 상실한 가장은 가장으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한 거라고 했던가. 전업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아직 십대소녀인 동생 그레테는 철부지 소녀다. 그러니 생존을 위해 돈 버는 일과 아버지의 빚을 갚은 일은 모두 그레고르의 몫이다.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출장 영업사원으로 월급을 꼬박꼬박 집으로 가져올 때만 하더라도 모든 가족이 그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이제 벌레인간이 된 그레고르를 환영하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

시계같이 정확하게 근무를 하던 잠자가 출근하지 않자 바로 매니저가 쫓아온다.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거부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한 단면을 읽을 수가 있다. 조직의 정교한 부품으로 돌아가야 할 그레고르라는 한 개의 나사가 빠진 것 때문에 매니저는 화가 난 것이다. 그의 건강이나 안위는 문제가 아니다. 벌레인간이 된 개인의 이슈는 그대로 묻혀 버리고 가족과 조직의 원리가 날것 그대로 그레고르에게 청구된다.

그레고르가 노동의 대가로 돈을 가져 오지 못하면서 잠자 집안의 경제위기는 현실로 다가온다. 현업에서 은퇴한 아버지는 다시 은행안내원으로, 어머니는 바느질로 그리고 동생 그레테도 취업전선으로 내몰린다. 철저하게 노동과 밥벌이에서 소외된 그레고르는 가족에게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나마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던 동생마저 경제적 독립체로 ‘변신’하면서 벌레인간 그레고르를 냉랭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마저 버림받은 그레고르는 살아갈 힘을 잃는다.

비록 육신은 벌레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사유를 하는 그레고르는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 그가 왜 벌레가 되어야 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거세된 상태에서 과연 그가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튀어나온다. 실존의 불안을 다룬 카프카의 글이 그런 동화로 귀결될 리는 만무하다. 벌레인간의 등장이 비극이었던 것처럼, 비극의 수레바퀴는 결말을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소설 <변신>에는 프라하의 유대계 독일인으로 살았던 프란츠 카프카 자신이 느꼈던 고독과 불안이 그대로 스며 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이 해체되기 전 프라하에 살던 카프카는 유대인이면서도 시온주의에 동조하지 않아, 동포 유대인에게도 그리고 독일인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수많은 유럽 청년들의 생명을 앗아간 전쟁의 참화 속에서 카프카는 필연적으로 시대의 불안과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라는 자신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에 천착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변신>에 등장하는 각충에 대해 원작자인 카프카는 그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하는데, 내가 읽은 문학동네 버전에서는 아르헨티나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루이스 스카파티가 다양한 형태의 각충/말똥구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그레고르가 완벽하게 각충으로 변신을 했는지 아니면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스카파티는 그런 독자의 호기심에 대답이라도 하듯, 다양한 모습의 그레고르/각충의 모습을 선보여 주고 있다. 디테일보다는 벌레인간으로 변한 그레고르의 실존적 불안에 초점을 맞춘 일러스트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림이 풍부하게 담긴 고전을 좋아하는데 다음 번에는 괴테 선생의 <파우스트>에 도전해봐야겠다. 진짜 입으로는 백번 읽은 고전과 친해져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카프카의 <변신>과의 만남은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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