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뒤표지의 빼어난 ‘가족 소설’이라는 책소개가 눈에 띈다. 그런데 할런 코벤의 장르 소설이 가족 소설이란 말이지. 이거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한다. 미국 뉴저지 교외에 사는 마이크 바이 가족을 줄기로 해서 다양한 가족들이 등장한다. 이상하게도 미국 사회는 이혼이 일반화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가족이라는 단위 구성이 중요한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할런 코벤은 바로 그런 미국 사회에서 가족이 갖는 단점과 장점을 소설 <아들의 방>을 통해 멋지게 보여준다.

소설에서 한 편에서는 납치와 살인, 협박이라는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구성 요소가 등장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가족애라는 전통적 가치와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려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모성애가 충돌한다. 자수성가한 내과의사 마이크 바이는 아들 애덤이 절친 스펜서의 자살 때문에 부모와의 관계가 점점 더 서먹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한편, 애덤의 엄마이자 유능한 변호사 티아는 아들이 걱정되어 아들의 사생활까지도 감시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스파이 프로그램으로 아들의 이메일, 메신저 등등을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가족 간의 신뢰의 고리가 붕괴된다. 자식을 믿지 못하는 부모의 그릇된 결정이 사건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마이크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과연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가 하는.

마이크의 딸 질의 친구 야스민은 학교에서 조 루이스턴 선생님에게 폭언을 듣고 심각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조숙한 야스민의 친구 질은 그런 야스민을 위로한다. 야스민의 엄마 매리앤은 바람이 나서 딸과 자신을 숭배하는 남편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다. 한편, 마이크는 이웃에 사는 단테 로리먼의 멋진 와이프 수전의 아들 루커스가 사실은 단테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의사 아버지에 변호사 엄마를 둔 무엇 하나 부족해 보이지 않는 애덤은 막무가내로 가출을 감행하고 마이크는 아들 구하기에 나선다.

이런 게 21세기 미국의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란 말인가? 아무리 모든 가정은 제 각각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가정 중에 정상적인 가정은 하나도 없다.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바로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할런 코벤은 조금은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한 이래 계속되어온 절대 가치를 소설을 통해 재현한다.

마이크 바이는 합리적인 이성의 소유자로 스파이 프로그램의 설치가 과연 아들에게 최선의 방법이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다. 하지만, 아들이 위기에 빠지자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왕년의 가락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자신의 가정에 위해를 가하려는 악당에게 한 치의 망설이 없이 돌진하는 그런 마초로 변신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트머스 칼리지를 졸업한 아이비리그 출신답게, 마이크는 클럽의 기도이자 자신의 동문 앤서니에게 도움을 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역시 이래서 좋은 학벌이 중요한 걸까? 클럽 기도에게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비교적 양호한 교육과 보살핌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미국 사회에서 청소년의 약물 오남용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들의 방>은 절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어떤 어른들은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청소년들까지도 서슴지 않고 범죄에 이용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클럽 재규어를 운영하는 로즈메리 맥디비트라는 팜므 파탈이 그런 예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술집에서 만난 매리앤과 대형마트에서 만난 레바 코르도바를 차례로 납치해서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내시와 피에트라 2인조의 활약은 <아들의 방>이라는 미스터리 소설에 독자를 홀리게 만드는 핵심적인 동기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하고 사랑해 마지않았던 카산드라를 잃은 슬픔에 결국 파멸적인 범죄의 길에 들어서게 된 내시의 운명에 동정심이 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변호사 티아를 쉴 새 없이 몰아붙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FBI에 연행된 마이크와 애덤을 위해 적극 변호에 나서는 프로페셔널 변호사 헤스터 크림스타인(이름만 들어도 바로 유대계라는 점을 알 수 있겠다)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인신의 구속과 증언에 관한 미국 내 법률은 잘 모르겠지만 절대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은 하지 말고 차라리 묵비권을 행사할 것을 주문하는 그녀의 프로 근성에 그만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역시 원칙에 충실한 필요가 있다. 물론, 헤스터는 자신의 지시 사항을 따르지 않은 티아는 가차 없이 잘랐지만.

사건의 다른 방향에서 연쇄살인 사건 해결을 도모하는 로렌 뮤즈의 추리도 빼놓을 수 없다. 유능한 여성 형사과장의 활약과 경륜은 많지만 사건의 초동 대처에 실패한 트레몬트 형사의 첨예한 맞대결도 눈길을 끈다. 소설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캐릭터는 없다는 격언대로 이 무능한 트레몬트 형사도 사건 해결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수확을 올린다.

할런 코벤의 <아들의 방>은 참 먼 길을 돌고, 다양한 사건을 체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가족의 소중한 가치로 환원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스톨은 바로 이런 가치관을 향해 돌진하는 아이스하키 선수가 날린 퍽(puck)처럼 독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이리 빼고, 저리 빼지 않고 단도직입적인 이런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올디스 굿디스’라는 말처럼 일견 진부해 보여도 역시 조금 늘어난 티셔츠가 편한 건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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