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상점
조경환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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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오리 요리를 먹어 보았는가? 트레이에 잘 조리된 오리고기가 실린 카트를 길다란 식당 주방장 모자를 정갈하게 쓴 요리사가 끌고 나와, 전병에 싸서 소스에 바로 찍어 먹을 수 있게 오리고기를 발라주는 모습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서비스가 끝나고 요리사가 돌아가기 전에 팁을 주어야 하지만 말이다. 이 장면에서 요리는 먹는 즐거움도 있지만, 시식하기 전에 보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조경환 작가의 <북경상점>은 수백년 역사를 가진 북경(베이징)에서 노자호라 불리는 한다하는 상점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독자에게 풀어내준다.

 

역시 예상대로 도시 투어의 기본은 역시 먹거리 기행이라는 말처럼 작가는 북경에 가면 누구나 한 번 꼭 먹어봐야 하는 북경오리 전문점 이야기로 상점기행을 출발한다. 북경 제일의 오리요리 전문점이라는 <전취덕>이 일번타자로 등장한다. ‘천하제일루라는 명성이 부끄럽지 않게 가게 앞에 줄지어선 손님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 있다. 역시 학자답게 <전취덕>의 유래에서부터 자의 필획이 하나 빠진 사연을 추적하는 장면에서는 감탄이 절로 피어났다. 그렇다고 상점 소개에 꼭 필요한 위치나 단가 그리고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독자를 위해 무얼 먹으면 되는지까지 자세한 소개가 줄줄이 이어진다. 과연 언제 북경에 가게 될진 모르겠지만 <전취덕>의 오리요리는 꼭 한 번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자랑하던 강희건륭 연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소맥 요리 전문점 도일처 이야기도 일품이다. 산서성 출신 왕서복이라는 이가 세웠다는 도일처의 자랑거리인 소맥 요리는 만두 비스무레한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1752년 당시 황제였던 건륭제가 직접 소맥 요리를 맛보고 그때까지만 해도 현판이 없던 가게에 <도일처>라는 현판을 직접 하사하면서 가게가 흥했다고 했던가. 가게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청동 조각상을 보며, 역시 대륙 스타일이지 싶었다.

 

차 한 잔에도 정성을 다하는 중국인들의 면모가 엿보이는 오유태찻집을 비롯해서, 왕족과 대신들의 신발을 짓기 위해 2100번의 바느질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내연승, 100% 수작업만을 고집한다는 모자전문점 성석복 그리고 한 번에 8,000명이나 되는 인원에게 쇄양육(양고기)을 접대할 수 있다는 동래순 등 북경 상가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전문 대로와 대책란 거리에 포진한 유구한 역사의 노자호들과의 만남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우정을 제외하고는 못 자르는 것이 없다는 왕마자 상점의 검은 호랑이가위는 정말 탐이 났다. 언제 북경에 가게 될진 모르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 가위만큼은 꼭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해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짜장면이 된 북경식 원조 작장면 이야기에선 귤이 회하를 건너 탱자가 되었노라는 고사가 생각나기도 했다. 어지간한 맛집 블로거를 뺨치는 요릿집 소개도 일품이었다.

 

조경환 작가의 상점방문기를 읽으면서, 어떤 상점이든지 단순하게 좋은 물건을 취급하고 친절한 서비스로 고객을 접대한다는 기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20세기 기술문명의 시대가 속도전 같은 생산시대였다면, 21세기는 바야흐로 개별적 소통을 중심으로 한 소비시대로 규정할 수가 있겠다. 새로운 소비시대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작가가 초점을 맞춘 서사(스토리텔링)이 아닐까? 모주석(마오쩌둥)과 주총리(저우언라이) 그리고 좀 더 시대를 올라가 강희제와 건륭제 그리고 곽말약의 에피소드가 얽힌 가게라면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왜 작가는 이 책에 소개된 노자호를 중국식 이름이 아닌 한자 독음으로 굳이 표기하는지 궁금했는데, 말미에 실린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중국에서 100% 수작업으로 칼을 만드는 명장(名匠)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이제는 세계 G2 국가로 성장한 중국에서 만든 제품이 싸구려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장인 정신이 빚어내는 정성이 깃든 상품에 그런 평가를 내릴 수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됐다. 북경마니아의 노자호순례기를 통해 그동안 모르고 있던 중국의 비물질 문화유산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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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언수 소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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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여름 김언수 작가의 글과 처음으로 만났다. 문학동네 카페에서 연재된 <설계자들>의 인연으로 출간 즈음한 모임에서 작가도 처음으로 만날 수가 있었다. 킬러를 주인공으로 삼은 장편 <설계자들>은 그 소재의 선택에 있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9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 <>으로 그를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설계자들>도 그랬지만 이번 소설집 역시 잘 읽힌다. 타이틀인 <>을 제외하고는 소설집에 실린 순서대로 읽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읽었다. <>에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삶을 접하게 된 어느 십대 소년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분노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누구나 꿈꿔 왔지만, 그 시절에는 언감생심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기득권에 대한 반항 때문에 억울하게 테니스장과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던 나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남고 학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문학과 조우하게 되었노라는 서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가 만난 문학은 분노에 차 샌드백에 쉴 새 없이 잽을 날리고, 풋워크를 배우는 예의 십대 소년에게 뿐만 아니라 전쟁터인 이 세상을 사는 모두가 언젠가는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꼭 만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인스톨인 <금고에 갇히다>는 설정이 멋지다. 일확천금을 노리며 어느 부자의 특수강으로 만든 사설금고에 갇힌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이야기는 우리가 꿈꾸는 성공신화의 허구를 그대로 드러내 준다. 성공강박에 빠진 사회는 그저 우리에게 노력해서 성공하라고 다그치지만 성공 이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어떤 삶이 성공한 삶인지는 전적으로 주관적이지만, 이러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무언의 공식이 지배하는 비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엄청난 돈과 보석 그리고 금붙이 가득한 금고에 갇히지만 외부에 단절된 공간 속에서 그것의 가치는 제로(zero). 금으로 만든 주사위를 굴리며 베네수엘라 미녀와 해보려던 수작을 뱀놀이 승부에 목숨 거는 두 사내의 절박함에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비슷한 시절을 보낸 작가의 서술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선배 세대처럼 절박하지도 그렇다고 후배 세대처럼 세련되지도 못한 어중간한 시대를 보낸 세대의 고백이 줄줄이 이어진다. 어쩔 수 없이 마틴 스코시즈의 <비열한 거리>(Mean Street)<레 미제라블>을 연상시키는 <단발장 스트리트><꽃을 말리는 건, 우리가 하찮아졌기 때문이다> 모두 회한과 허무주의가 팽배해 있던 어느 시절과 묘하게 겹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아무런 꿈도, 야망도 그리고 미래에 뭐가 되겠다는 결심도 없었던 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가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인스톨은 역시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이다. 귤을 사가지고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에게 납치되어 비더게부르트라는 기묘한 장비에 올라 모진 고문을 당하고 마침내 자료만 있다면, 불필요한 기술은 제거하고 명료하면서도 짧은 문장을 쓰는 법을 배우게 되는 주인공의 비참함이 묘한 공명을 울린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이 어제부터인가 주권자 위에 군림하면서, 지배자 행세를 하는 경찰국가의 원형이 씁쓰름함을 자아낸다.

 

파리 목숨 같은 시간강사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그야말로 똥 덩어리 같은 시집의 발제문을 작성해야 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못해 엉뚱하게도 섹스를 하자고 선포하고 행동에 옮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지식인의 이야기, 집에 어울리지도 않는 소파를 들여 놓았다가 다시 빼내지 못해 친구에게 말도 안되는 시간에 도움을 청하는 명동에만 눌러 붙어 사는 사내 이야기, 실직으로 아내에게 구박을 받으면서 돌아가실 날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에게 몸에 좋다는 알부민을 공급하기 위해 기세 좋게 아내의 통장을 들고 나섰다가 재수 털린 가장의 이야기 등등 이렇게 하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거창한 패러다임이 아닌 같은 소시민적 삶의 정곡을 찌른 서사가 참 마음에 든다.

 

마지막 인스톨인 <하구(河口)>에서는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성공의 입구에서 그놈의 술 때문에 추락해서 시골로 내려온 사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술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설정이 주목을 끈다. 바닥까지 내려온 사내보다 고수들과의 술자리는 알코올의 유혹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사내를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이들이 보내는 황폐하기 짝이 없는 시간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그런 허황된 약속 따위는 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시절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고작이다. 그 정도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5년 주기로 돌아오는 위기로 자기계발 서적 대신 소설이 그 자리를 꿰찰 거라는 전망을 들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팽팽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글로 무장한 김언수 작가의 귀환을 축하하며, 돌아온 소설시대에 지속될 그의 날렵한 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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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없는 남자 1
로베르트 무질 지음, 안병률 옮김 / 북인더갭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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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천년의 마지막 즈음에 독일에서 99명의 저명한 소설가, 평론가 그리고 학자에게 20세기 가장 뛰어난 문학작품 100권을 선정했다. 그 중에서 1위에 오른 작품은 독일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토마스 만이나 프란츠 카프카가 아닌 조금은 생소한 이름의 오스트리아 출신 로베르트 무질이 쓴 <특성 없는 남자>라는 작품이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그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을 제치고 당당하게 독일 문학 1위에 올랐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이번에 북인더갭을 통해 출간된 <특성 없는 남자>를 통해 20세기 독일 모더니즘의 고전이 된 예의 작품과 만날 수가 있었다. 아 그런데 모더니즘 소설이라고? 엄청난 분량만큼이나 이 책을 읽을 독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지어다.

 

오스트리아 케른텐 주 클라겐푸르트 출신의 로베르트 무질은 필생의 역작인 <특성 없는 남자>를 1921년부터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치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로 망명해서 1942년까지 계속해서 썼고, 결국 미완성 원고로 남긴 채 작고했다. 무질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울리히는 명백하게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이전 세기에 유럽 대륙을 질풍노도처럼 누볐던 영웅 나폴레옹을 흠모하며 기병학교에 사관후보생으로 입교하였으나, 자신이 그저 한낱 모험을 쫓는 젊은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번에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현대문명을 선도하는 기술자의 길에 도전한다. 기술자로서 자유나 광활한 사유보다 예의 전문성에 매달리게 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이번에는 수학자가 된다.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유하고, 주변환경과 주변 인물들을 분석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 울리히는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가진 특성을 포기함으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현세의 기쁨을 포기한다고 선언한다. 작가는 32살의 청년 울리히를 그의 창조자 로베르트 무질에 그대로 등치해도 무방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문학적 감성보다는 규율 혹은 논리적 사고를 가진 저자가 어떻게 해서 소설가가 되었을까 라는 점이 궁금하다.

 

‘결정적 사유’의 개척자답게 울리히/로베르트 무질은 독자가 기대하는 평범한 서사 구조가 아닌 울리히 개인의 내부에 침잠한 광활한 사유를 무한대로 퍼올리는데 주력한다. 유럽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 일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13년 8월, 그가 살던 카카니엔(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수도 빈(Wien)은 다양한 사상, 철학 그리고 예술의 중심지였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손꼽히는 프로이트를 필두로 해서, 비트겐슈타인, 클림트, 실레, 쇤베르크로 대변되는 사실상 유럽의 문화수도였다. 수도 빈이 품고 있던 이런 문화적 다양성은 주인공 울리히가 만나고, 소설의 전개에 따라 차례대로 소개되는 주변 인물들과의 접점을 통해 로베르트 무질이 구사하는 사유 속에 그대로 녹아든다.

 

소설 속의 울리히는 스스로에게 현실감각을 박탈하고, 특성 없음을 자신의 캐릭터로 삼기 시작하면서 현세의 어떤 확실한 기쁨을 제거해 나간다. 과연 어떤 특성도 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어쩌면 특성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특성이 되는 건 아닐까? 울리히가 세 명의 부랑아와 마주쳤을 때 모든 사물이 경계(적대)를 통해 존재한다는 사유의 전개도 흥미롭다. 적대적 개념쌍이 아이러니하게도 존재의 이유가 된다니, 발상의 전환이 놀랍기만 하다. 세 부랑아는 그런 차원에서 그에게 적대적 위협이 아닌 ‘구원’이었다.

 

소설의 구심점 중의 하나로 작용하는 저물어 가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자는 다소 모호해 보이는 ‘평행운동’이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카카니엔의 황제가 1차 세계대전 중에 사망하면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신사조에 대항하는 구질서 회복 운동 정도로 규정해야 할까. 개혁에 반동해서 어느 사회에서나 벌어지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의 이 운동은 주창자인 라인스도르프 백작 또한 그 성격을 규정할 수 없다. 어쩌면 수십년 뒤에 이웃나라 독일의 병합되어 자발적인 병영국가(garrison state)의 원형질을 제공하는 실마리가 되었다고 한다면 너무 앞선 예단일까.

 

개인의 사소한 일상에서 출발해, 가정, 지인, 병리적 사회현상 그리고 국가적 차원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로베르트 무질은 끊임없이 사유의 확장을 시도한다. 확실히 서사보다는 사유에 방점을 찍은 그의 기술은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것이 또한 이 탁월한 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인 것일까? 인내를 가지고 끈질기게 읽어 가지만, 도무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저자의 복잡한 사유의 전개를 쫓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 번의 독서만으로는 무질의 사유를 이해하기란 난망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너무 세세한 것에까지 ‘결정적 사유’를 발동시킨다면 독서의 진도가 나가지 않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특성 없는 남자>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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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 번지는 곳 독일 In the Blue 13
백승선 지음 / 쉼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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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없이 그리고 여행 없이 살 수 없다는 백승선 작가의 13번째 이야기, <사색이 번지는 곳 독일의 책장>을 넘기며 슬며시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독일에 대한 나의 냉온탕 경험이 배어 있어서일까. 책 내용에 앞서 목차가 궁금했다. 내가 가본 단 두 개의 독일 도시 이야기가 있나 하는 마음에. 역시 빠질 수 없는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수록되어 있었지만, 온탕 경험의 배경인 뮌헨이 빠져 있어서 자못 아쉬웠다.

 

독일 이야기의 일번타자는 한자 동맹의 중심지 브레멘이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이제는 사무실에서 편하게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책에 소개된 도시 브레멘의 이모저모를 여행 블로그를 통해 정말 내가 가본 것처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역시 브레멘의 상징인 그림 형제의 동물음악대 조각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본 블로그의 주인장들도 어김없이 다른 관광객들과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며 그 멋진 사진을 찍었으리라. 그리고 보니 백승선 작가는 절대 자신이 들어간 사진은 책을 통해 보여 주지 않는구나. 아마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기 위해서일까.

 

브레멘 시의 수호자로서 여전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롤랜드 상에 대한 이야기도 자못 흥미진진하다. 전 유럽을 정복한 군사적 천재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타국의 미술품 약탈자로도 악명 높은 나폴레옹이 예의 롤랜드 상이 마음에 들어 자국으로 옮겨 가려 했지만 브레멘 시민들의 기지로 현 위치를 고수하게 되었다고. 하마터면 루브르 박물관에서나 볼 뻔한 운명의 롤랜드 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음은 통일 독일의 상징이 된 수도 베를린이다. 나의 독일 냉탕기의 주인공이었던 베를린. 유럽 여행길에서 만난 지인이 꼭 한 번 가봐야 한다는 말에 두말없이 달려간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 터키 베르가몬에서 통째로 뜯어 왔다는 신전의 규모에 그만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워낙 박물관 구경을 좋아하는지라 페르가몬을 위시해서 무제움스인젤(박물관 섬)의 곳곳에 포진한 박물관을 섭렵한 추억이 돋는다. 지나가는 독일 아가씨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가 그 아가씨가 들고 있던 카메라를 떨어뜨린 추억도. 물론 내가 아니라 카메라의 주인이 떨어뜨렸었지 아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버지의 날 휴일을 맞아 상점이 곳곳이 쉬는 바람에 사고 싶었던 버켄스탁 샌들을 결국 사지 못했었지. 그래도 알렉산더플라츠 주변을 빙빙 돌며 신기해 보이는 TV타워를 올려다보며 미처 올라갈 생각은 못했었다. 그리고 독일 의사당 옆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요란스레 몰려든 관광객들과 어울려 구 동독군복 혹은 소련군복을 입은 호객꾼들과 어울려 사진 찍는 이들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던 기억이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떠올랐다. 유태인 기념비는 보스턴이나 혹은 아우슈비츠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숨길 수 없는 지난 과거를 계속해서 반성하고 그 피해를 보상하려는 독일 사람들의 양심을 반영하는 <베를린 유태인 박물관>의 얼굴 형상을 한 1만 여개의 철조각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베를린 행 ICE 기차 안에서 아주 잠깐 만난 드레스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역사상 최악의공중폭격으로 그야말로 도시가 결딴난 상처를 가진 도시로, 현재 작센 주의 수도라고 한다. 왜 그 때 드레스덴에 들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나중에 미국 출신의 작가로 드레스덴 대폭격을 직접 체험한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에서도 만났던 드레스덴의 이야기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특히 훗날 다시 짓기 위해 폐허가 된 프라우엔 교회의 돌들에 번호를 매겼다는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중세 변화의 시초가 되었던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었던 수도사 마르틴 루터 동상이 이 교회 앞에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드레스덴은 신교를 상징하는 도시였다 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말처럼 정말 볼 것 없지만 그 유명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찾게 되는 로렐라이 언덕보다, 뤼데스하임의 아이스바인이나 내가 좋아하는 리슬링 그 중에서도 아우슬리스 같이 달달한 와인을 즐기며 라인강에 위치한 성들을 구경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구나.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이 된 하이델베르크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 코스다. 칸트, 헤겔, 야스퍼스, 막스 베버를 위시한 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해서 괴테 같은 대문호에 이르기까지 저명한 인사들이 남긴 흔적과 일화로 넘쳐나는 중세 대학 도시! 오죽했으면 이웃나라 일본에 본토 철학자의 길을 딴 짝퉁 이름의 길이 다 있을까.

 

, 그리고 보니 깜빡한 도시가 하나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 업적을 기리며 해마다 도서전이 열린다는 명실상부한 유럽연합(EU)의 수도 프랑크푸르트도 빠질 수 없다. 10월이면 악터버페스트와 책을 좋아하는 책쟁이로서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행을 꿈꿔 본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온탕 추억의 도시 뮌헨이 빠진 것이 좀 아쉽다. 하지만, 내가 가본 곳에서는 가본 곳대로의 추억을 되살릴 수가 있어 좋았고,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못한 곳대로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주는 사색의 시간들이었다. 책읽기가 책 자체가 아니라, 그 책을 통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면 이번 사색의 번짐은 나에게 만족 그 자체였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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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스티븐 러벳 지음, 조은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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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라는 영화를 봤다. 미국의 유명한 스릴러 작가 마이클 코넬리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영화 속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링컨 차를 타는 소위 잘나가는 변호사다. 이 멋쟁이 변호사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는 부유한 의뢰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법정 스릴러 영화였다. 문제는 의뢰인이 억울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그리고 의뢰인은 철저하게 이 유능한 변호사를 이용해 먹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을 실감나게 만들어주는 멋진 영화였다. 마침내 변호사는 법의 테두리 언저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이 악당을 응징한다. 내가 보기에 변호사의 행위는 통쾌했는데 과연 그가 생각한 정의가 법이었을까? 미국 법학계의 전설로 불리는 스티븐 러벳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에서 독자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도대체 무엇이 정의인가라고.

 

초반에 나오는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로 악명을 떨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에피소드에서 이 책의 원제인 정직의 중요성을 러벳 교수는 강조한다. 자신이 아칸소 변호사였던 젊은 대통령은 탄핵위기에 몰려 사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보호할 유능한 변호인을 선임한다. 문제는 클린턴이 작금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그는 심지어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줄 변호인에게까지 거짓말을 했다. 결국 케네스 검사의 리포트를 통해 치욕적인 사실들이 폭로됐고, 대통령 직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사실 스캔들보다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빌 클린턴이 전 미국인을 상대로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러벳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사법 시스템의 이모저모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사실 우리나라 같이 보통의 사람이 사법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법이란 그저 다른 세계의 일처럼 들린다. 그래서 정작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법정에 서게 되는 경우, 그야말로 패닉에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영화 목장의 결투>의 주인공인 와이어트 어프 형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이 사건에서 우리는 난폭한 무법자들을 보안관 어프 형제가 멋진 권총 실력으로 제압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건 직후 이 용감한 형제는 바로 살인죄로 체포됐고 법정에 서게 됐다. 저자는 고도로 훈련받은 이들만이 제대로 된 법정 증언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본 영국 드라마 <셜록 홈즈>에서도 결정적 순간에 대한 기억력이 62% 밖에 되지 않는다고 잘난 셜록이 말했다. 법정에서 사건에 대한 재구성을 시도하지만, 아쉽게도 자신이 가진 관점, 시야, 예상, 편견 그리고 희망 같은 다양한 요소로 진실을 말하는 증인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반대심문이야말로 과거의 재구성에 있어 중요한 법적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그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바로 뒤따라 나오는 글은 6년 전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과 인지오류에 대한 저자의 냉철한 분석이다. 이 사건은 총격 사건의 범인이 한국계 조승희였다는 점에서 우리의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저자는 그런 인종/민족적 관심이 아니라 사건의 초동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해 더 큰 재앙을 초래한 경찰의 인지오류를 지적한다. 사건 초기에 경찰은 체계적인 방식대로 수사를 진행했지만, ‘탐색만족오류에 빠져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진짜 범인을 방치해둔 것이 범인에게 2차 총격을 시행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주었다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글은 <사법체계가 야구라면 판사는 심판>이다. 무척이나 야구를 좋아하는데, 나도 직접 본 경기를 예로 들어서인지 정말 쏙쏙 이해가 갔다. 20051012,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홈구장인 US 셀룰라 필드에서 LA 에인절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이 벌어졌다. 9회 말 현재 스코어는 1:1 동점 상황 그리고 에인절스에게 첫 경기를 내준 화이트삭스는 홈에서 이 경기마저 내준다면 월드시리즈 진출은 물 건너 가는 상황이었다. 이미 투아웃 상황에서 AJ 피어진스키가 타석에 들어섰다. 피어진스키는 마지막 공을 헛스윙을 하고, 에인절스 수비진은 이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덕아웃으로 뛰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에딩스 주심은 아웃 판정을 하지 않았고, 약삭 빠른 피어진스키는 1루까지 내달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선수가 아닌 심판이 플레이어가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면 주심은 다른 부심이나 혹은 비디오 판독을 통해 아웃인지 아니면 그의 주장대로 인플레이 상황인지 물었어야 했다. 이 플레이 하나로 화이트삭스는 기사회생하며 결국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게 됐다. 오심도 야구 경기의 일부라지만, 사법체계에서는 심판/판사의 오심으로 더 심각하고 치명적인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러벳 교수는 경고한다.

 

판사들의 연봉 인상 주장에 대해서도 저자는 한 쪽 편에 치우친 주장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사실 공직에 복무하는 판사의 월급이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사법집행을 맡은 판사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보상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단순한 접근 방식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날선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호사들의 직업 불만족도를 지적하면서,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실을 지적한다. 반면, 연방판사들은 독립적인 법질서 수호를 위해 탄핵과 정치적 간섭 혹은 보복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안전장치가 준비되어있다. 그리고 예전 로마 시대 공직자들이 그랬듯이 물질적 보상이 아닌 시민에 대한 봉사 차원에서 여전히 판사직을 희망하는 젊고 유능한 변호사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미국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사법체계란 정말 따분하고 지루할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재밌고 신선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나같은 법에 문외한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또 생활에 유용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이 반가웠다. 여전히 우리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지배하는 원더랜드에 살고 있지만, 공명한 디케의 눈이 우리를 진실의 세계로 인도하리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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