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기행 2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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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권에서 분노와 금욕이 지배하는 광물적 세계인 이슬람의 바다를 헤쳐 나온 후지와라 신야는 이번에는 신의 세계인 티베트를 찾는다. 지금도 티베트를 여행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당시에 캐슈미르 분쟁으로 인해 아마 국경이 개방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는 티베트 기행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이 하늘의 테두리에서 그가 찍은 <하늘, 구름, 바위산, 흙, 초목, 물, 집, 사람, 절>(18-9페이지) 사진처럼 티베트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사진도 없을 것 같다. 하늘과 구름의 광활한 배경을 뒤로 하고, 바위산이라는 공간 안에 담겨 있는 흙-초목-물-집 그리고 사람. 마지막으로 티베트 정신세계의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사원에 이르기까지 티베트가 보여 주는 모든 것의 집합체였다.

이 인도령 티베트에서 작가는 라다크라는 지역에 있는 심산의 사원을 찾는다. 엄격하게 기도와 수양을 위한 공간인 예의 사원에서 후지와라 신야는 21일간의 수도에 들어간다. 역시 사원에서의 경험을 원하는 이와 사원에서 삶을 사는 이들 간의 차이는 그가 말하는 흙덩이와 야채즙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에게 21일은 최대한 그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시간과 공간이 멈춰 버린 듯 그 사원 속에서 그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후지와라 신야가 만나는 이들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가 그렇게 그 나라 말들에 정통했던 걸까? 아니면 자기임의 대로의 생각을 적은 걸까, 풀리지 하는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그의 다음 목적지는 이제는 미얀마라는 익숙하지 않는 이름으로 불리는 버마였다. 이슬람권-힌두권을 거쳐 드디어 불교의 나라에서 다시 한 번 식물적 세계에서 만나는 기습적 폭우, 스콜을 대하는 현지인들의 자세를 관찰하는 작가. 많은 관찰을 통해서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했던가. 주홍색 법복이 인상적이었던 비오는 날의 수채화가 절로 그려졌다. 버마식 카레로 식사를 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응달을 만들어주는 자기희생에 감복하는 모습은 <동양기행>을 읽으면서 느낀 최고의 감동이었던 것 같다.

역시 불교의 나라지만 버마의 그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 주는 태국의 치앙마이로 무대는 바뀐다. 다시 한 번 유곽을 찾은 작가의 광화(狂花) 에피소드는 책에서 소개된 여느 이야기보다 싱겁기만 하다. 회색빛 상하이의 통제된 관광 스토리도 역시 다를 게 없었다. 홍콩에서 우연하게 만나게 된 리콴-유콴 브라더스의 이야기는 역시 개인적 관계가 있어야 흥미를 가지게 된다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불변의 사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을 접하기 전에 우리나라에도 들렸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었는데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었다. 후지와라 신야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이미지들은 택시 안에서 들은 판소리와 시장 좌판에 둔기를 맞고 죽은 돼지머리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 일 년 전의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 거였고, 여전히 통금이 실시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왠지 모를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다시 한 번, 복잡하기 그지없는 정치 이야기에 대해서는 외면해 버리고 마는 작가가 그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돌아간 작가는 오사카 근처의 고야산에서 402일 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자신을 다시 찾고, 되돌아보기 위해 이런 대단한 모험으로 가득한 여행을 시작하고 마무리 지은 작가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한다고 보았을 때, 작가 후지와라 신야와 더불어 일희일비가 교차하는 많은 순간들을 경험했던 것 같다. 눈발이 내리는 이스탄불의 황량한 거리에서, 지중해 태양과 장미향이 깃든 안탈리아에서, 지상에서 가장 더럽다는 캘커타의 숙소에서, 시간과 공간이 멈춰버린 라다크의 이름 모를 사원에서, 사람 응달을 만들어 준 버마의 노천식당에서의 그 특별한 경험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서양의 물질세계와 동양의 정신세계라는 아마도 서양에서 유래한 그의 도식적인 이분법적 분류에는 쉽게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여행자는 결국엔 타자의 시선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근 30년 전에 ‘동양기행’이라는 이런 멋진 기획을 하고, 실천에 옮긴 한 사나이의 열정에 마냥 부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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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기행 1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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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402일 간 유럽대륙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시작을 해서 자신의 고국 일본에 달하는 엄청난 여정을 일본 출신의 포토 에세이스트 후지와라 신야가 종이와 사진으로 표현해낸 책이다. 우리나라에 지난 1993년과 1994년에 각각 <인도방랑>과 <티베트방랑>이 소개가 되긴 했지만 절판이 되어서 이제 더 이상 접할 수가 없게 된 마당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동양기행>의 출간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시아 대륙은 인도를 기점으로 해서 서쪽의 광물적 세계, 다시 말해서 이슬람권과 동쪽의 식물적 세계로 나뉜다고 한다. 그 이슬람권에서도 터키는 이웃의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는 그 성격을 달리 한다. 예전에 메메드 2세가 기존의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을 정복하면서 오스만 제국에 편입된 이스탄불을 유럽 대륙에 걸치고 있으면서도 자기네들이 유럽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터키. 그런 동서양의 교차로라고 할 수 있는 이스탄불의 겨울날 작가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중동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막대한 석유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유독 터키만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이 씌여지던 80년대 초반, 오일쇼크의 여파로 인한 불경기에 심각한 인플레이션, 테러 그리고 파업이 후지와라 신야가 터키에서 받은 인상들이었다. 그리고 시베리아 한랭기단의 영향으로 인한 나그네들에게 치명적인 추위 또한 사진들을 장식한다.

대도시 이스탄불 속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작가의 모습과 교차되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여행의 빙점 속에서, 사람들의 온기를 찾아 나선 작가의 그것이 투영되고 있었다. 그는 길 위에서 만난 그 어느 누구와도 소통을 원하고 있었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의 어느 음식점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들을 거리낌 없이 먹어치우는 여성과의 만남에서도 말이다. 그 옛날 전 유럽을 무슬림화의 공포에 몰아넣었던 오스만 터키의 영광은 이름도 알 수 없는 식당의 진수성찬으로 오늘날 다시 구현되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음식들은 양머리를 정확하게 반으로 쪼갠 코윤 바쉬유(양머리 구이)와 양의 배설물이 들어가 있는 이쉬켐베 초르바스(양내장 수프)였다.

그만의 진기한 여정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살을 에우는 추위를 피해 지중해 연안의 안탈리아의 뒷골목에서 본 사진 속의 젤린이라는 여자를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시 앙카라 행 버스에 몸을 싣는 후지와라 신야. 결국 그녀가 아니 그가 성전환여자 수술을 했다는 남자 핫산 타슈테미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흑해의 바다 색깔이 검은 색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흑해 연안의 시노프라는 어항을 찾는다.

개인적으로 많이 기대했던 터키 외의 본격적인 이슬람권 나라들인 시리아-이란 그리고 파키스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실리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하긴 그 400일간의 일정을 두 권의 책으로 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양기행 1권은 지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라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마무리 지어진다.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고 긴 여행길에 나선 후지와라 신야는 이 ‘동양기행’을 통해 기존의 사물들을 찍던 모습에서 점차 사람들에 대한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의 빛바랜 오래된 사진들을 보며, 어느 문화권에 있든 간에 사람들의 삶은 영위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그가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의 생생한 현장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 장소는 시장이 되었건 식당 혹은 유곽이 되었건 간에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순간에 그들과 함께 했었다는 점이다. 2,000년에 시저가 한 표현을 빌리자면,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라고 할 수가 있겠다.

책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글을 읽고 있는데 가운데 사진이 삽입이 되어 있어서, 사진을 보다 보면 앞에 읽던 내용들을 잊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터키 리라 같은 현지 화폐를 왜 일본 돈인 엔화로 굳이 표시했나 싶었다.

1권에서 후지와라 신야는 광물적 세계의 탐험을 마치고, 비로소 식물적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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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
애덤 필립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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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후유~ 왜 이 책을 다 읽고 이런 한숨이 나온 걸까. 곰곰 생각해 봤다. 우선 첫 번째로는 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는 책을 다 읽었다는 안도감에서. 두 번째로는 내가 도대체 이 책의 저자 애덤 필립스가 말하려고 했던 것 중에 얼마나 이해했을까 하는 것에 대한 한숨이지 않았나 싶다.

영국 출신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이자 에세이스트로 유명한 애덤 필립스는 아마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멀쩡함’(sane, sanity)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주제에 도전장을 던진다. 아마 이 멀쩡함이라고 번역되는 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인 광기의 경우에는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매달렸지만, 의외로 멀쩡함에 대해서는 연구성과가 없는 모양이다. 사실 광기가 보여 주는 매력적인 부분에 비해, 멀쩡함은 재미가 없다 이 말이다.

애덤 필립스에 의하면, 멀쩡함은 광기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멀쩡함의 반대는 광기라는 식의 도식화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우리가 멀쩡함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부분들에는 광기들과 크로스하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흥미 있게 읽은 부분 중이 하나가 멀쩡함과 광기에 사이에 ‘열정’을 끼어 넣을 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사유의 근원이 그렇듯이 지은이는 바로 이런 멀쩡함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도대체 멀쩡함이란 무엇이냐 이 말이다. 답이 되기에 부족할지도 모르겠지만, 멀쩡함은 합리적인 사고에 근거한 이성적 행동을 담보로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는 문제제기에 들어간다. 어린이들의 성장/발달 과정에서 보여지는 욕망하는 존재들의 모습은 바로 광기 그 자체라고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  상존하는 충족되지 못하는 욕구는 그들의 생존의 문제다. 그리고 그 욕구는 바로 다음으로 소개되는 ‘멀쩡한 섹스’라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의 조합과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인 돈에 대한 사랑을 통해 소개된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청소년들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본능 중의 하나인 성에 눈을 뜨게 된다. 우리의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있어서 섹스만한 것이 없다고 애덤 필립스는 주장한다. 금기시된 터부는 언제나 깨지게 되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점에서 성은 금지되어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매력적인 요소라는 거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현대 자본주의에서 돈에 대한 광기만큼 복잡하면서도 일면 수긍이 가는 주제도 또 없을 것 같다. 너무나 단순한 명제이지만,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행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간단한 진리는 언제나 부정된다. 맹목적인 돈을 향한 광기는 인간성의 빈곤화와 몰 개성화에 더해서 냉혹한 자본주의 파괴성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 채 살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물질적 행복이 주는 순간의 쾌락이 이 사회의 구성원들을 획일화된 가치관으로 몰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띄엄띄엄 떠오르는 멀쩡함에 대한 편린들을 조각이불 깁듯이 떠올리는 작업이 수월치가 않았다. 애덤 필립스도 다른 작가들처럼 멀쩡함이 아니라, 광기에 포커스를 맞춰서 글을 썼다면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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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 노벨과 교육의 나라
박두영 지음 / 북콘서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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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마 누구나 “요람에서 무덤까지”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오늘 이야기할 책은 바로 그 말의 유래를 가져온 북유럽의 스웨덴을 자세하게 소개한 <노벨상과 교육의 나라 스웨덴>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스웨덴하면 무엇보다 먼저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해서 번 돈으로, 노벨상을 제정한 노벨을 연상시킬 것이다. 과학재단의 지원으로 스웨덴에서 3년간의 (연구)생활을 한 지은이 박두영 씨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떻게 해서 노벨상이 그렇게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게 되었을까? 바로 행정을 맡은 노벨재단과 시상을 담당하는 위원회 간의 철저한 분리의 원칙이 그런 노벨상의 공정성과 권위를 담보해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사실 노벨상이 수상되던 초기만 하더라도, 스웨덴에서 자국의 연구자 혹은 과학자들을 우선적으로 시상했다는 주장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정말 수상할 만한 발명들이 없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1913년 스웨덴 출신의 발명가 구스타프 달렌의 경우, 등대용 가스 어큐뮬레이터에 쓰이는 자동조절기를 발명한 공헌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다음 장에서는 제목에서 밝혔듯이 유치원에서부터 대학, 나아가 박사 과정까지 모든 공교육 과정이 무료라는 놀라운 설명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같이 사교육 망국론까지 나오는 상황과는 전혀 달리, 각자의 능력과 취향에 맞는 그야말로 맞춤형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스웨덴 공교육의 현장을 냉정하게 소개해 준다. 무엇보다 이론이나 비현실적인 입시교육이 아닌 고등학교를 졸업하더라도 바로 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실용적인 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스웨덴 교육이 느린 듯 보이면서도 결국 장기 레이스에서 볼 적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런 공교육 시스템을 통해,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들을 적시에 제공하는 시스템이 수립되어졌다.

게다가 산업계와 학계의 친밀한 관계 형성과 더불어 연구 개발 부분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막대한 투자는 기초 및 순수과학 부분에서 세계 유수의 과학강국들과 겨루어도 뒤지지 않는 스웨덴 국가 경쟁력의 진면모를 들춰내고 있다. 특히 스웨덴은 IT 와 생명공학 부분에 있어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는 실물 경제부분에 있어서도 에릭슨과 아스트라제네커 같은 기업들이 돋보인다. 개인적으로 스웨덴 교육에 있어서 가장 부러웠던 점 중의 하나는 바로 평생교육 시스템으로, 스웨덴 국민이라면 누구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밥벌이를 위한 취업이 아닌,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이런 모두를 위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실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인구 900만의 스웨덴을 이끄는 정부는 작지만, 아주 능률적이고 효율적인 기관으로 청렴결백을 모토로 하고 있었다. 책의 목차를 보면서 가장 관심을 끄는 타이틀 중의 하나가 바로 “초콜릿 하나도 물러난 정치인”이었다. 공용카드로 사적 물품을 샀다가 중도 퇴진하게 된 어느 여성장관의 이야기였는데, 그만큼 자신의 잘못에 대해 시인하고 책임지는 정치인들의 자세와 그런 정치인들을 용인하지 않는 스웨덴 국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에 소개되는 스웨덴 복지 분야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굳이 더 말할게 있을까. 외전 형식으로 소개되는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 외의 예테보리, 말뫼 등의 도시에 대한 소개들과 스웨덴과 이웃인 노르웨이-핀란드 그리고 아이슬란드에 대한 소개들도 흥미로웠다.

물론 스웨덴이라고 해서 그야말로 천국 같은 곳은 아닐 것이다. 지나친 사회복지 혜택으로 인해, 국민들의 노동을 통한 능률성은 여타 선진국에 비교할 적에 계속해서 하락세에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열심히 일한 만큼 소득이 늘어야 하는데, 소득이 늘수록 누진세가 적용이 돼서 소득세를 그만큼 많이 내야 하는 점 때문에 근로의욕이 날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는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외국 이민에 대한 개방적인 사고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스웨덴에 정착을 하고 있는데 이들이 빚어내는 문제들 또한 적지 않다. 여느 선진국에서처럼 스웨덴 또한 높은 실업률 문제를 안고 있고, 역설적이게도 무료 공교육 시스템으로 인한 학력의 저하 또한 철저한 사회복지의 폐단으로 지적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좀 아쉬웠던 부분은 짤막짤막하면서도 흥미로웠던 구성에도 불구하고, 지은이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에 대한 소개들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년 간 스웨덴에서 살았다면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았을 텐데, 마치 어느 재단에 제출하는 딱딱한 보고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스웨덴의 대표적인 기업 중의 하나인 이케아(IKEA)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이케아가 마침내 우리나라에도 진출한다는 뉴스는 더더욱 반가웠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북유럽의 나라 스웨덴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면서도 유용한 정보들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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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 EBS 세계테마기행 1
이상은 지음 / 지식채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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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기 전에 소개된 이상은이라는 작가가 처음에는 여행 전문 에세이 작가인가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책을 펴보니, 예전에 <담다디>로 일세를 풍미했던 가수가 아니던가. <담다디> 이후에 그녀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는데, 이렇게 다시 EBS 여행 프로그램의 호스티스로 태양의 나라(이제 하도 많이 써먹어서 진부해져 버린) 스페인을 찾았다. 원래 자신의 몫으로 떨어진 나라는 아프리카의 말리였다고 하는데, 책 말미에 슬쩍 보니 말리에는 입걸은 배우 최종원 씨가 갔다고 한다.

가수이자 이 책의 저자인 이상은은 절친 “찐빵”이라는 동행과 두 명의 PD(아마 카메라맨도 겸했을)와 함께 14시간의 비행 끝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느리면서 쉬는 듯한 여행을 지향하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이상은에게 아마 EBS의 빠듯한 예산을 가지고 하는 여행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그렇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일이 되는 순간 생기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이란…….

짧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바로 안달루시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자 매년 4월이면 열린다는 페리아 데 아브릴(4월의 축제)의 도시 세비야를 찾는다. 태양, 춤 그리고 꽃의 모든 것을 만끽할 수 있다는 페리아 데 아브릴에는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화려한 옷들을 입고 벌이는 축제의 한마당이다. 아쉽게도 사진으로만 보이는 원색의 물방울무늬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프릴이 들어간 화려한 의상들의 여인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는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드신 할머니도 그리고 젊은 아가씨들도 하나가 되어, ‘카세타’(축제용 천막)에서 먹고 마시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 나도 마치 그 태양의 나라에 가 있는 것만 환상에 빠지게 된다.

다음으로 스페인하면 빼놓을 수 없는 투우에 대한 취재를 위해 투우에 쓰이는 소를 기른다는 미우라 농장으로 향한다. 작가는 투우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지만,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스페인의 투우 문화는 누구나 한 번 쯤은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짧은 투우 관람을 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세비야 관광이 시작된다. 12세기까지 무슬림의 지배하에 있던 탓에 스페인의 오래된 남부 도시들은 예외 없이 이슬람 문화의 곳곳에 스며있는가 보다. 그 세비야를 내리 쬐이는 태양이 너무나 부러웠다.

다음은 이상은과 친구 찐빵의 자유여행이었던 바르셀로나가 소개된다. 스페인이면서도 스페인스럽지 않은 바르셀로나, 카탈루냐의 지방의 중심으로 여전히 자주적이면서도 독립적인 그네들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다. 가장 먼저 그들은 서울의 대학로 같다는 람블라스를 독자들에게 소개해 준다. 열대에서나 볼 수 있는 야자수에 노천카페 그리고 아기자기한 상점가들과 갖가지 갤러리들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다가 어느 카페에서 타파스 요리에 바가지를 쓰기도 하고 초짜 여행자들의 면면을 자랑하는 그들.

다음 코스는 바르셀로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가우디가 설계하고 여전히 만들고 있다는 사그리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이다. 그의 손길이 담겨져 있는 구엘 공원과 더불어 바르셀로나를 찾은 이들이라면 반드시 찾아봐야 하는 명소 중의 명소란다. 실제로 보지 않고, 실물을 본 이들의 말만 듣고서 그 웅장한 자태를 상상하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물론 사진도 같이 게재가 되어 있었지만 그것으론 역부족이었다. 언젠가 바르셀로나를 찾겠다는 결심을 했다, 가우디를 만나기 위해서.

세 번째 장에서는, 자신들의 스페인 일정을 되짚어 가는 과정을 밟는다. 맨 끝에 실린 지도를 살펴보니 거의 스페인 전국을 도는 일주처럼 보였다. 마드리드에서 출발을 해서 세비야, 론다, 그라나다, 알리칸테, 발렌시아 그리고 톨레도에 이르는 긴 코스가 점선 몇 개로 그려져 있었다. 기타 연주곡으로 너무나 유명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40년 동안 수제로만 기타를 만든다는 빠코 아저씨, 해발 1482m로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 트레벨레스에서 만들어낸다는 돼지 뒷다리 햄(?) 하몽, 그리고 집시들의 동굴에 이르기까지 시각과 후각을 비롯해서 미각을 자극으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을 무엇보다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사진들이다. 아마 이상은의 친구라는 찐빵이 찍었을 것으로 사료되는 사진들은 참 감이 좋다. 평범한 스페인의 일상을 담아내면서도, 무언가 느낌이 있는 사진들. 우리네 일상도 가만 보면 그런 것들일진대 왜 그런 사진이 나오지 않는걸까 하고 생각을 해봤다. 일상의 일탈이 주는 여유라고 해야 할까? 여성의 시선으로(아, 찐빵이 과연 여자이길!) 담아내는 시선은 확실히 남자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지금은 평화의 땅일진 모르겠지만 스페인의 역사가 그리 평화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1492년 컬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그전에 이미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그리고 그 훨씬 전에 바이킹들이 발견했다고 하는데 과연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은 그전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학살과 대박해 결과 얻은 부로 이루어진 것이며, 중세의 가장 혹독했던 종교재판과 화형들이 횡행한 곳이 바로 스페인이었다는 역사의식의 부재가 아쉬웠다. 게다가 지난 세기 베트남전과 더불어 인류의 양심에 지우지 못할 한 줄기 상처였던 스페인 내전의 기억들은 어디에서고 찾을 수가 없었다.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에서는 발렌시아산 오렌지를 닮은 태양만이 빛나고 있었다.

어쨌든,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은 나로 하여금 스페인에 대한 동경심을 품게 해주었다. 미래의 어느 날, 스페인 모처에 있는 바르(마을회관이자 주막)에서 타파스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그렇게 느릿느릿 굴러가는 카이로스(의미 있는 시간, 크로노스의 상대적인 개념)의 시간 속에서 스며들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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