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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 ㅣ EBS 세계테마기행 1
이상은 지음 / 지식채널 / 2008년 11월
평점 :
책을 펴기 전에 소개된 이상은이라는 작가가 처음에는 여행 전문 에세이 작가인가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책을 펴보니, 예전에 <담다디>로 일세를 풍미했던 가수가 아니던가. <담다디> 이후에 그녀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는데, 이렇게 다시 EBS 여행 프로그램의 호스티스로 태양의 나라(이제 하도 많이 써먹어서 진부해져 버린) 스페인을 찾았다. 원래 자신의 몫으로 떨어진 나라는 아프리카의 말리였다고 하는데, 책 말미에 슬쩍 보니 말리에는 입걸은 배우 최종원 씨가 갔다고 한다.
가수이자 이 책의 저자인 이상은은 절친 “찐빵”이라는 동행과 두 명의 PD(아마 카메라맨도 겸했을)와 함께 14시간의 비행 끝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느리면서 쉬는 듯한 여행을 지향하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이상은에게 아마 EBS의 빠듯한 예산을 가지고 하는 여행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그렇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일이 되는 순간 생기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이란…….
짧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바로 안달루시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자 매년 4월이면 열린다는 페리아 데 아브릴(4월의 축제)의 도시 세비야를 찾는다. 태양, 춤 그리고 꽃의 모든 것을 만끽할 수 있다는 페리아 데 아브릴에는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화려한 옷들을 입고 벌이는 축제의 한마당이다. 아쉽게도 사진으로만 보이는 원색의 물방울무늬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프릴이 들어간 화려한 의상들의 여인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는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드신 할머니도 그리고 젊은 아가씨들도 하나가 되어, ‘카세타’(축제용 천막)에서 먹고 마시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 나도 마치 그 태양의 나라에 가 있는 것만 환상에 빠지게 된다.
다음으로 스페인하면 빼놓을 수 없는 투우에 대한 취재를 위해 투우에 쓰이는 소를 기른다는 미우라 농장으로 향한다. 작가는 투우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지만,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스페인의 투우 문화는 누구나 한 번 쯤은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짧은 투우 관람을 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세비야 관광이 시작된다. 12세기까지 무슬림의 지배하에 있던 탓에 스페인의 오래된 남부 도시들은 예외 없이 이슬람 문화의 곳곳에 스며있는가 보다. 그 세비야를 내리 쬐이는 태양이 너무나 부러웠다.
다음은 이상은과 친구 찐빵의 자유여행이었던 바르셀로나가 소개된다. 스페인이면서도 스페인스럽지 않은 바르셀로나, 카탈루냐의 지방의 중심으로 여전히 자주적이면서도 독립적인 그네들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다. 가장 먼저 그들은 서울의 대학로 같다는 람블라스를 독자들에게 소개해 준다. 열대에서나 볼 수 있는 야자수에 노천카페 그리고 아기자기한 상점가들과 갖가지 갤러리들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다가 어느 카페에서 타파스 요리에 바가지를 쓰기도 하고 초짜 여행자들의 면면을 자랑하는 그들.
다음 코스는 바르셀로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가우디가 설계하고 여전히 만들고 있다는 사그리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이다. 그의 손길이 담겨져 있는 구엘 공원과 더불어 바르셀로나를 찾은 이들이라면 반드시 찾아봐야 하는 명소 중의 명소란다. 실제로 보지 않고, 실물을 본 이들의 말만 듣고서 그 웅장한 자태를 상상하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물론 사진도 같이 게재가 되어 있었지만 그것으론 역부족이었다. 언젠가 바르셀로나를 찾겠다는 결심을 했다, 가우디를 만나기 위해서.
세 번째 장에서는, 자신들의 스페인 일정을 되짚어 가는 과정을 밟는다. 맨 끝에 실린 지도를 살펴보니 거의 스페인 전국을 도는 일주처럼 보였다. 마드리드에서 출발을 해서 세비야, 론다, 그라나다, 알리칸테, 발렌시아 그리고 톨레도에 이르는 긴 코스가 점선 몇 개로 그려져 있었다. 기타 연주곡으로 너무나 유명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40년 동안 수제로만 기타를 만든다는 빠코 아저씨, 해발 1482m로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 트레벨레스에서 만들어낸다는 돼지 뒷다리 햄(?) 하몽, 그리고 집시들의 동굴에 이르기까지 시각과 후각을 비롯해서 미각을 자극으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을 무엇보다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사진들이다. 아마 이상은의 친구라는 찐빵이 찍었을 것으로 사료되는 사진들은 참 감이 좋다. 평범한 스페인의 일상을 담아내면서도, 무언가 느낌이 있는 사진들. 우리네 일상도 가만 보면 그런 것들일진대 왜 그런 사진이 나오지 않는걸까 하고 생각을 해봤다. 일상의 일탈이 주는 여유라고 해야 할까? 여성의 시선으로(아, 찐빵이 과연 여자이길!) 담아내는 시선은 확실히 남자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지금은 평화의 땅일진 모르겠지만 스페인의 역사가 그리 평화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1492년 컬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그전에 이미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그리고 그 훨씬 전에 바이킹들이 발견했다고 하는데 과연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은 그전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학살과 대박해 결과 얻은 부로 이루어진 것이며, 중세의 가장 혹독했던 종교재판과 화형들이 횡행한 곳이 바로 스페인이었다는 역사의식의 부재가 아쉬웠다. 게다가 지난 세기 베트남전과 더불어 인류의 양심에 지우지 못할 한 줄기 상처였던 스페인 내전의 기억들은 어디에서고 찾을 수가 없었다.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에서는 발렌시아산 오렌지를 닮은 태양만이 빛나고 있었다.
어쨌든,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은 나로 하여금 스페인에 대한 동경심을 품게 해주었다. 미래의 어느 날, 스페인 모처에 있는 바르(마을회관이자 주막)에서 타파스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그렇게 느릿느릿 굴러가는 카이로스(의미 있는 시간, 크로노스의 상대적인 개념)의 시간 속에서 스며들어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