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17
제프 린제이 지음, 김효설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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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덱스터>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나서, 미국 마이애미 출신의 작가 제프 린제이가 쓴 덱스터 시리즈가 미국의 케이블TV인 쇼타임을 통해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책을 읽기에 앞서 이미 3번째 시즌까지 제작된 드라마 <덱스터>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마디로 말해서, 제프 린제이가 창조해낸 덱스터 모건이라는 캐릭터에 완전 반해 버렸다.

덱스터 모건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시 소속 경찰국의 과학수사반에서 일하는 혈흔전문가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일주일에 주 5일을 일하고, 아이가 둘 있는 이혼녀 리타와 연애를 하고, 역시 경찰인 입이 걸한 여동생 데보라와 팀을 이뤄서 사건을 다룬다. 그게 전부인가? 물론 아니다. 보통 사람으로 ‘위장’한 덱스터에게는 유리 슬라이드의 비밀이 있다. 낮의 덱스터는 온순한 혈흔전문가이지만, 밤의 덱스터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서도 사회적 법망을 피해 다니는 최고 악당들을 응징하는 연쇄살인범이다. 덱스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처치하고, 일종의 기념품으로 그들의 혈액이 담긴 유리 슬라이드를 남긴다.

전작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와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를 통해 냉혈한 킬러에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모범적인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모습을 정착시킨 ‘몬스터’(드라마에서 덱스터는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인 덱스터는 세 번째 시리즈에 해당하는 <어둠 속의 덱스터>에서는 드디어 리타와의 결혼이라는 자신의 사회적 위장의 완성에 다가간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은밀한 프로젝트를 그만 둘 리는 없다. 결혼 후에도 남들이 모르는 자신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덱스터.

이번에는 마이애미의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모종의 범죄를 벌이는 것으로 사료되는 알렉산더 “잰더” 맥컬리를 잡아 응징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관찰자’가 있으니. 이 부분에선 드라마 시즌 1에서 쿠바 난민들을 수장시킨 악당 호르헤 카스티요를 처리하는 덱스터를 누군가 자동차 트렁크에서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어쨌든 덱스터는 ‘그’(IT)의 존재에 대해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덱스터의 모교인 마이애미 대학의 교정에서 불에 타고 머리가 잘린 두 구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14살부터 덱스터와 생사고록을 같이 해온 그림자 “검은 승객”(Dark Passenger)은 어느 순간 덱스터의 곁을 떠나 버린다. 덱스터의 어두운 자아였던 검은 승객은 덱스터의 은밀한 프로젝트 수행에 항상 영감을 주고, 공모를 하고 위험을 경고하는 파트너였다. 그런 검은 승객이 아무런 말도 없이 결별을 선언하자 덱스터는 그야말로 천둥벌거숭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한다.

덱스터의 관찰자는 덱스터가 자신을 추적해 오도록 패턴화된 연쇄살인을 계속하고, 살인현장에 오직 덱스터만이 알아볼 수 있는 단서들을 남긴다. 어느 고대의 종교적 의례와 같은 패턴의 집요한 연구를 통해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암호 MLK의 해석에 성공한 덱스터. 하지만 파트너 검은 승객마저 자신을 떠나고, 홀로된 덱스터는 분명 자신보다 한수 위가 분명한 ‘그’로부터 시시각각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공포와 두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된다.

최근 7명의 여성들을 살해한 희대의 연쇄살인범이 검거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사이코패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 같다. 아직 자세한 조사결과가 발표되지 않아서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대개의 경우에서처럼 유년기의 정서불안이 사회적 일탈행위의 근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둠 속의 덱스터>의 주인공 덱스터도 유년시절 부모를 잃고, 경찰인 양아버지 해리 모건에게 입양되어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덱스터가 어려서부터 살인 충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해리는, 덱스터를 위한 규칙을 세워주고 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을 전수해주기 시작한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이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덱스터 본인에게는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된다.

자신의 본질을 철저하게 감추고, 해리의 가르침을 통해 지극히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바로 이 장면에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최근에 체포된 연쇄살인범도 주변의 증언에 의하면,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고 하지 않은가 말이다. 전작들을 통해, 매력적인 캐릭터의 창조에 성공한 제프 린제이는 이번에는 좀 더 어려운 시도에 도전한다. 그것은 바로 “결혼”이다. 소설의 전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그”와 쫓고 쫓기는 치열한 심리전을 치르는 동시에, 덱스터는 리타와의 결혼 그리고 아이들을 둔 가정을 이루는 아슬아슬 외줄타기 모험을 벌인다.

이 부분이 말하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드라마에서 나오지만, 전 남편은 가정폭력을 시도 때도 없이 저지르는 약물중독자이고, 앞으로의 남편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믿고 있는 리타의 운명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밤의 완벽한 시리얼 킬러로서의 면모를 자부하는 덱스터가, 낮에는 이런 보통 사람들의 문제들로 번민하는 것은 역설적인 유머로 다가온다.

이미 드라마와 전작들을 통해 엽기적인 살인행각들이 선보여 왔지만, <어둠 속의 덱스터>에서 다뤄지는 살인 에피소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대의 인신공양적인 희생제례의 정수로 보인다. 게다가 프롤로그에서 그리고 소설의 전개과정에서 잠깐잠깐 소개되는 ‘그’의 이야기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역시 뛰어난 스릴러 작가답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을 이용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유도하는 절묘한 방식의 접근이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추후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역시 자신과 같이 유년의 고통을 경험한 리타의 아이들인 애스터와 코디가 덱스터의 파트너인 “검은 승객”의 존재를 알아보고 있다는 설정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과연, 덱스터는 해리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고, 자신의 후계자로 그들에게 가르침을 전수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연쇄살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블랙 유머가 넘치는 캐릭터들을 조종해서 환락과 조용한 삶이 병존하는 마이애미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제프 린제이의 글 솜씨에 반해 버렸다. 세 편의 소설을 통해 계속해서 진화하는 캐릭터의 전형을 선보여준 그가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들을 들고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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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찬 여행기
류어 지음, 김시준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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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나라 말기는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침탈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을 위시해서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서구 열강들이 중국에서 경제적 이권을 챙기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제국주의의 선봉 영국은 아편무역을 위해, 가장 부당한 전쟁 중의 하나였던 아편전쟁을 통해 결국 중국을 강제로 개방하고 연안무역권을 따내고, 지금의 홍콩을 할양받았다. 중국은 이러한 외환에 겹쳐, 태평천국의 난과 내부적으로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로 설상가상으로 전대미문의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류어의 <라오찬 여행기>는 바로 이런 시기의 중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당시의 사회를 비판한 소위 견책소설(譴責小說)의 백미라고 할 수가 있겠다.

주인공 톄잉(鐵英)은 지은이 류어(劉鶚)의 페르소나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고 과거의 길에 들어서려고 했지만, 입신하지 못하고 대신 우연한 기회에 중앙의 관리들을 도와 황하의 치수를 도우며 비로소 이름을 날리게 된다. 류어는 철저한 보수주의자로, 의화단 운동 같은 보수운동에도 반대를 하고, 혁명가 쑨원이 이끌던 혁명운동과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라오찬 여행기>는 류어의 유일한 소설로 알려져 있는데, 소설에서 요령을 흔들면서 인민을 구제하고 불의를 보면 못 참고 항상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도우려는 모습에 자신을 투영시키고 있었다.

소설의 가장 첫 이야기인 <풍랑에 휩쓸리는 거선> 편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류어는 자신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서구의 제국주의의 침탈이 횡행하는 망망대해에서, 시류의 휩쓸려 있는 거선은 바로 청제국이다. 뜻있는 청나라의 대신들이 양무운동과 무술개혁 등을 통해 쓰러져 가는 제국을 일으켜 보려는 노력을 했으나 그들만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틀 안에서 무언가 시도해보려는 지은이의 모습이 비춰진다. 거선에 탄 승객들은 바로 중국의 보통 사람들이다. 밖으로는 외세의 침탈에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부패한 관리들의 압정(壓政)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모습이 류어식 비유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바로 혹리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백성들을 가차 없이 수탈하는 파렴치한 관리는 아니지만, 비록 개인적으로는 청렴하지만 어떤 사건의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오로지 실적만을 위해 무고한 백성들을 못살게 군다. 위센이라는 혹리는 멀쩡한 백성들을 도적으로 몰아, 형틀에 매어 달아 가혹한 고문으로 하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게 하는 방법으로 주위에 악명을 떨친다. 라오찬은 이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9장에 등장하는 <산골처녀와의 고담준론>에서는 위구라는 묘령의 처녀를 등장시켜, 송나라 때에 등장해서 중국 유학의 판세를 뒤바꾸어 놓은 성리학에 대한 작가의 비판을 은근하게 전개해 나간다. 가령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이라면 좋아하는 색(色)을 가까이 하는 것을 사문난적시하는 성리학적 접근은 옳지 않다고 이 산골처녀의 입을 빌려 강력하게 주장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당시 왕조적 봉건제 하의 질서에 대한 부정이라고도 할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참설 같은 미신에 근거한 미래에 대한 어설픈 예측은 과학적 사고에 입각한 저자의 자각이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반증처럼 보였다.

다시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황하 주변에서 벌어지는 치수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 류어는 유사 이래 중국에서 치수사업이 얼마나 중요했는가에 대해 자세한 기술을 하고 있다. 민중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리들의 임의적인 제방 쌓기로 인해, 수해시기를 맞아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수해로 죽고, 재산의 손실을 당했는지 류어는 라오찬과 다른 이들의 진술을 빌어 말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한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민중들에게 엄청난 재난이 된다면 고려를 해봐야할 것이라는 사실은 현재의 위정자들도 깊이 새겨 들어야할 것 같다.

류어의 <라오찬 여행기>가 오로지 사회비판에만 치중을 했다면, 중국 현대문학의 사조로 손꼽히는 후스(胡適)이 이 소설을 두고 그렇게까지 극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여행기”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 소설에서 라오찬이 주로 유람을 다닌 산동지방의 절경들에 대한 묘사는 가히 탁월했다. 특히, <속 라오찬 여행기>에 등장하게 되는 태산 참배기에서는 마치 묘사가 마치 두 눈으로 직접 보는 듯하다는 느낌이 정도로 자세하면서도 생생한 기술로 독자들을 매혹시키고 있었다.

통쾌한 사회비판과 절묘한 묘사 그리고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명징한 전개로 <라오찬 여행기>를 통해 지은이 류어는 그야말로 ‘백조의 노래’ 같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시대를 앞서 내다보는 혜안의 부족 탓인지 보수적이다 못해 수구적인 경향들이 조금씩 엿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이런 뛰어난 작품을 발표했다는 사실은 역시 높이 평가할만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과거에서 배운다’라는 명제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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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의 고백 - 법의학자가 들려주는 살인 조서 이야기
마크 베네케 지음, 송소민 옮김 / 알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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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연쇄살인범의 고백>이라. 이 책의 저자는 채 마흔이 되지 않은 독일 출신의 법의학자 마크 베네케이다. 이십대에 쾰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서 법의학 검사관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지난 십 수 년 동안 매우 다양한 범죄들을 현장에서 경험한 바탕으로 해서 많은 저서들을 발표해오고 있다. 그의 연구 과제는 콜롬비아 출신인 희대의 연쇄살인범 루이스 알프레도 가라비토를 비롯해서, 동유럽에 뱀파이어리즘(흡혈귀를 믿는 것)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마르크 베네케는 증인들의 진술을 믿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범죄의 현장에서 발견된 물적 증거들 다시 말해서 흔적을 믿는다. 이는 앵글로-색슨 계통인 미국이나 영국의 그것과는 다른 독일 민족 특유의 증거제일주의에 근거한 것일까. 그가 말하는 “경계의 경계”에서 각양각색의 범죄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들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면서 판단 역시 독자들에게 맡긴다. 다시 한 번 뛰어난 법의학자의 냉정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책의 시작은 카니발리즘과 뱀파이어리즘으로 시작한다. 미신이 횡행하던 중세에 뱀파이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프로이센과 동부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죽은 사체에 대한 시신훼손 행위가 자행되어 왔다고 한다. 망자가 산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몸이 아프고 질병에 시달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법정에서조차 그런 행위를 한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시신훼손 행위는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뱀파이어리즘에 대한 믿음으로 루마니아에서 2004년에 중세에서 시행되던 스트리고이(strigoi:루마니아에서 뱀파이어를 지칭하는 말)에 대한 “의례”를 거행했다고 한다. 물론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을 해서, 의례에 참가한 이들을 법원에서 금고형에 처하긴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의례를 정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카니발리즘은 듣기만 해도 오싹해지는 주제였다. 하위문화인 사도마조히즘 과정에서 살해된 마이베스 케이스와 콜로라도의 식인종으로 알려진 알페르드 파커 케이스가 소개된다. 1972년 실제로 발생했던 우루과이 럭비 팀이 안데스 산맥에서 불시착하게 되면서 비행기 탑승객 45명 중에 16명이 살아남게 된 사건 역시 그 중심에는 카니발리즘이 자리 잡고 있다. 1993년에 영화 <얼라이브>로도 소개가 된 적이 있는데, 역시 극한 상황에서 생존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다는 어느 생존자의 진술로 매조지 된다. 그에 비하면 1980년대 초반 파리에서 자신의 여자 친구를 살해한 이세기 사가와의 진술은 정말 들어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고 난 뒤, 무려 29년 동안이나 인정받는 지역의 유지이자 학교 교장 선생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경력의 영국의 고든 파크의 경우는 연쇄살인의 범주에는 들어가진 않지만 해당 장에 나오는 대로 “진실을 위한 오랜 추적”이라는 말에 이보다 더 적합한 경우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의 제목으로 선정된 “연쇄살인범”의 정의에 가장 잘 들어맞는 인물들은 3부에 등장하는 독일 출신의 위르겐 바르취와 콜롬비아의 루이스 알프레도 가라지토이다. 지은이가 말한 대로, 이 둘은 시간과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놀랄 만큼의 유사성을 보여 주고 있다. 유아성도착자이자, 아이들을 유괴해서 잔인하게 살해한 방법도 그렇지만 전혀 자신이 한 행위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르취의 경우에는 자신의 범행대상을 ‘사랑’했다고까지 자신이 갇혀 있던 벽에 적어 놓았었다.

300여명의 어린이들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가라지토는 콜롬비아 언론에서 “야수”(La Bestia)라고 불렀다. 가라지토의 경우에는 당시 콜롬비아에서 진행 중이던 합산 형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에 편승해서,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했다. 그리고 종교에 귀의해서 개과천선한 삶을 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를 담당했던 전문가들은 그는 전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만약에 풀려난다면 언제라도 다시 연쇄살인을 할 인물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그 외에도 미국의 플로리다 주에 허공에서 갑자기 떨어진 시체에 대한 놀라운 사실, 프로이센 제국 시절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헨리테 빌케라는 이름의 황금공주, 그리고 천문학적 금액이 걸린 미스터리로 여전히 미결 사건으로 보이는 독일 베를린 출신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라스 올리버 페트롤의 자살사건 들이 차례로 소개가 된다.

책의 후반부에서 진짜 연쇄살인범이라기 보다는 완전범죄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건으로 페루의 잉카 오솔길에서 자신의 아내 우슬라 글뤽 테슬러를 살해하고, 완전범죄를 가장한 이스라엘 출신의 이란 테슬러의 케이스가 있다. 지은이를 필두로 한 독일에서 파견된 실사 팀들은 직접 잉카 길에 오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치밀한 증거수집과 현장재현의 과정을 거쳐 아내를 살해하고 거액의 생명보험금을 수령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이란 테슬러의 범죄를 밝혀내는데 성공한다. 말미에서 이 사건에 참여했던 수사관들의 말을 통해, 어떠한 비용이 들더라도 의도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말살시킨 사건에 대한 범행을 밝혀내는 것이 법치국가의 기본 임무라고 강조하고 있다.

마르크 베네케는 이 책을 통해, 이런 다양한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범죄사건들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행과 범행자의 특징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가에 역점을 두었다”(207페이지)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비근한 예로 뱀파이어리즘에 대한 중부유럽에서 민간의 광범위한 믿음이 그렇다. 카니발리즘은 일상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범죄행위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지만, “안데스의 기적”과 같은 극한 생존의 경우에 있어서는 예외적으로 분류가 되는 것 같다.

저자는 이런 사건들의 소개를 통해 어떤 해결책이나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지는 않다.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성도착자들의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극히 충동적인 범죄를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정황에 따른 모든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다만 마르크 베네케가 헤르만 헤세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밝음을 이해하려는 자는 어둠”(10페이지)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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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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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교수의 <괴물의 탄생> 표지를 보면서 참 투박하게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니 게다가, ‘괴물’의 머리와 몸통 사이에 서울, 스카이(SKY), 한나라당 그리고 조선일보가 들어가 있는 미적분 값은 또 무언가? 그런데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석훈 교수가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대한민국이 이미 기형이 되어버린 자본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나 건전한 국민경제로 올바르게 서기 위해서 청산되어져야 하는 요소들이 모두 예의 공식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작년 초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불의 기억>을 읽고 나서, 미국식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피폐된 중남미의 처참한 경제 사회상황에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딱 일 년 만에 다시 이렇게 우리 사회를, ‘괴물’이 되어 버린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을 우석훈 교수의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4부작 중 마지막 편에 해당하는 <괴물의 탄생>을 통해 적시하게 되었다. 우석훈 교수가 그렇게 경고하고 있는, 따르지 말아야 할 중남미식 모델로 진화하고 있는 ‘괴물’의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

책의 내용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책의 제목부터 설명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괴물’은 말할 것도 없이 17세기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에 나오는 바로 그 괴물 리바이어던에서, 나머지 탄생은 프리드리히 니체가 훗날 파시즘의 도래를 경고했던 <비극의 탄생>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가 있겠다. 저자는 모두 세 개의 파트로 나눠, 먼저 세계사적 경제의 흐름을 소개하고, 두 번째로는 바로 한국식 기형적 자본주의 ‘괴물’의 탄생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괴물의 해체와 그에 따른 대안들을 각각 4장씩의 구성으로 해서 강의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석훈 교수는 먼저 워밍업 수준으로 한국 경제학에 대한 계보 설명으로 시작을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당장의 무언가 성장과 발전에 공헌을 하는 응용부분의 학문들이 아닌 순수학문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발을 붙일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경제학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1930년대 <조선사회경제사>라는 걸출한 저작으로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으로 한국의 경제를 설명하려고 했던 백남운 선생과 현재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장하준 교수 정도를 저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로 꼽고 있다. 이 두 인물 간의 시간적 격차는 자그마치 70년이나 되고, 아쉬운 것은 장하준 교수 후에 한국 경제학을 이끌어나갈 연구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고전경제학의 거장이자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  자본주의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1867) 그리고 자본주의 최대의 위기였던 대공황 탈출의 신호탄이었던 존 케인스의 <일반이론>(1936)의 등장의 과정을 통해 저자는 경제학의 큰 그림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경제주체 가운데 하나인 정부를 제 1부분으로, 기업을 제 2부분으로 그리고 사회적 기업과 생활협동조합, 복지단체 등을 통칭해서 제 3부분으로 나뉘어서 균형과 견제에 따른 발전의 모델을 제시한다. 이 중에서도 3부분의 중요성은 이 책을 통해, 계속해서 반복된다.

2부 괴물의 탄생을 통해 본격적으로 기형화된 한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시작한다. 1945년 해방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근대화와 더불어 자본주의 이식이 시작된다.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따위에 대한 논의는 패스하도록 하자. 대한민국 경제의 고속성장은 다음의 두 가지 개념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압축성장(condensed economic growth)과 재벌(Chaebol)이 바로 그것이다.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소장은 자본주의 방식이 아닌 계획경제식 방법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중심으로 해서, 경제에 올인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매진하기에 이른다. 물론 정치적으로 유신독재틀 통해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면서, 선 성장 후 분배를 주장했는데 이 역시 재벌 위주의 정책으로 인해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통해, 자본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대화와 동시에 경제개발이라는 두 마리의 토기를 잡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해외 자본의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유입된 대외차관은 수출입국을 국정의 좌표로 삼았던 유신 치하에서, 수출경쟁을 벌인 재벌들에게 우선적으로 분배가 되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정경유착의 폐단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 경제의 치명적인 요소로 잠복하게 된다.

고속의 산업화와 근대화의 과정에서 완전고용의 신화가 도래하기도 했지만, 1974년 석유파동으로 인한 살인적인 물가상승, 그에 따른 성장률 둔화 그리고 국민들의 뜨거운 민주화 열기로 인해 불안했던 정치경제 상황들은 다시 전두환 일당의 군사 쿠데타로 개발독재 2기를 맞게 된다. 5공의 무시무시한 폭압에 의한 국가 자본의 재조정과 인플레이션 억제가 이루어지고, 저유가 엔고 등의 경제여건 호조로 인해 다시 고속성장을 경험하게 되는 과정들이 소개된다.

다음으로 국가 권력을 초월할 정도의 힘을 가진 재벌 삼성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줄다리기가 그려지고, 1997년 IMF 사태로 대변되는 외환위기 이래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지방권력을 행사하게 된 중앙의 경제 엘리트와 지방 토호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보수언론들의 연합으로 결국 2007년 MB정부가 들어서게 되는 과정들이 소개된다. 삼성의 이건희와 노무현은 한 때, 복지국가로 유명한 스웨덴식 발전 모델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미국식 모델로 극적인 전환을 하게 되면서 한국형 자본주의의 ‘괴물’은 더욱 더 기형적 성장을 하게 된다.

중앙의 경제 엘리트들과 지방 토호들에게 부와 토지 집중현상이 빚어지고, 김대중 정권 초기에 간신히 기초를 잡기 시작했던 사회복지정책들이 일제히 후퇴를 하기 시작하면서 소위 말하는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은 더욱 더 심화되기 시작했다.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수도권 집중현상으로 인한 지방의 소외와 고용불안으로 인한 대량실업 사태는 지역 발전의 불균형과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특히,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한계점에 달한 이 시점에서 모든 이들이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고용불안을 피해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이유가 저절로 설명이 되었다.

다시 여기서 우석훈 교수는 대안경제로서의 3부분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나 대기업과는 전혀 작동방식이 다른 사회적 기업, 가족형 기업, 생협 혹은 생산자협동조합들의 활동을 통해 3부분이 담당하는 경제를 활성화시켜, 장기불황과 같은 위험요소에 대비해서 국민경제를 안정시키자는 것이 저자의 핵심주장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국가정책이 오직 재벌위주의 성장과 소득증가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달성되기 어렵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 경제는 앞으로 수년 안에 극적 전환점에 서게 되리라는 것이 또한 우석훈 교수의 전망인데,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걸었던 파시즘의 길을 쫓게 될 것인지 아니면 현재 몇몇 나라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3부분을 통해 균형과 조화의 방법을 택해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게 될 것인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위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

자, 이제 문제점들을 죄다 살펴보았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대안을 찾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저자는 수년간의 연구 결과를 다음의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요약한다.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은 줄이고, 지식과 문화의 투입은 늘리는 국민경제”(217페이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가장 먼저 지목하는 것은 거의 망국병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사교육 문제의 해결이다. 해마다 사교육비에 지출되는 비용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경제에서 전혀 제 구실을 못하는 사교육 시장의 폐해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모두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내 아니만 잘되면 장땡이다라는 사고를 버리고,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라는 것이다. 앞으로 대학은 정말 학문적으로 심층적인 공부를 하고 싶은 이들만이 가는 그런 시스템으로 바뀌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혁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의 대졸자들이 스위스의 고졸자들보다 경쟁력에서도, 소득에서도 떨어진다는 말은 더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지방 토호 세력의 타파를 위해 건전하고 상식적인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방자치의 실현이 필요하다. 우석훈 교수가 말한 대로, 지방이 한번쯤 방문하고 싶은 곳이 아닌 정주(settlement)의 개념에서 정말 살고 싶은 곳으로 거듭나게 되기를 바란다.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 번 진정한 의미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승리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저자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세 번째 경제주체로서 작용하게 될 제3부분의 육성을 주장한다. ‘삼각균형의 국민경제론’이라는 멋진 타이틀로 시작을 하고 있는데, 우선 전통적인 사회기관인 종교단체들이 그 역할을 맡아주길 주문한다. 물론 기업과 정부의 협조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미국의 록펠러와 같이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기업들이 그러하듯이 부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제3부분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초기에 정부의 협력과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나 혼자 잘살겠다는 ‘부자 되세요!’의 표어는 필요 없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이상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운명 공동체이다. 내가 아닌, 우리가 잘사는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다. 정부나 기업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보다 경제주체로서 자주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획일적이고 암기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잃어버렸던 창의력과 독자적인 사고를 되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아울러 일중독이 아닌, 보수를 조금은 덜 받더라도 인간적인 삶의 영위를 위해, 그리고 보다 크게는 건전한 국민경제 형성을 위한 개개인의 노력과 자각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순간이다.

<괴물의 탄생>과의 만남은 괴로웠지만, 이러한 깨달음으로 인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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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1 - 맛의 시작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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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화백의 <식객>을 마침내 원전 그대로 접하게 됐다. 아마 <식객>처럼 원소스 멀티유즈(one-source multi-use)의 전형적인 예도 없을 것 같다. 이웃 일본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경향이지만,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식객>이 원조가 아닐까 싶다. 만화에서 출발을 해서, 영화 그리고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더 대단한 것은 만화-영화 그리고 드라마 모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의 경우가 그렇듯이 원전의 탄탄한 구성과 성공적인 캐릭터의 창조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한 허영만 선생의 치밀한 사전조사가 뒷받침이 되어서일 것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로 허영만 선생은 “쌀”이라는 소재를 골랐다. 굳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우리의 식생활에서 쌀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근대화 이전 우리나라는 농업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였다. 그리고 쌀은 우리의 주식으로 우리네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물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미국으로 입양된 제임스는 어려서 씹어 먹던 쌀맛 하나만을 가지고 자신의 부모를 찾아 나선다.

이 이야기는 기묘한 공명을 울리고 있다. 우리의 뿌리를 찾는 시발점은 바로 쌀이라는 거다. 그리고 허영만 선생이 만들어낸 ‘성수’라는 전국방방 곡곡에 발품을 팔아 가며 우리네 농산물들을 차로 공급하는 청년이 등장한다. 그의 도움으로 결국 자신이 그 맛의 기억을 잃지 않고 있던 순천의 해룡면에서 꿈에도 잊지 못하던 ‘올게쌀’을 찾게 되는 제임스. 에피소드의 처음에 등장하는 <우리쌀 지키기 백일 운동>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허영만 선생의 설명이 진중하게 느껴졌다.

다음은 명절을 맞이하야 고향집을 찾은 성찬이 이웃집 할머니에게 생선을 건네주고, 어릴 적 얻어먹던 고추장 굴비를 답례로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멘트로 지어진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에 누가 사는지 그리고 이사를 가는지 마는지 전혀 교류와 소통이 없이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네 삶의 모습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긴 여운이 남는 에피소드.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가을 전어 맛을 소재로 한 3탄, 가을 전어 맛은 깨가 서말에서는 한강 인도교에 올라가 투신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남자를 성찬이 텔레비전 중계로 보다 말고 직접 전어와 번개탄 숯불로 구출해내는 모험담이다. 조금은 황당한 구성이긴 했지만 그만큼 가을 전어 맛이 일품이라는 말이겠지? 전어(錢魚)는 말 그래도 먹다가 보면 돈 생각을 못하게 돼서 전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던가.

<36-2-0-60>은 약간의 수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편에서는 곰탕이 주인공인데, 장맛은 뚝배기라고 하듯이 음식이건 사람이건 어울림이 있어야 한다고 허영만 선생은 말하고 있다. 그야말로 청바지 입고 갓을 쓸 순 없잖은가. 레스토랑과 같은 화려한 식당이 곰탕집으로 어울리겠는가? 장터 같이 시끌벅적함이 곰탕과 같이 보통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에는 제격인 것이다. 게다가 수십 년간 만드는 방법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말이다. 무슨 일이든,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답이 있는 것이다.

1편의 마지막은 다시 ‘밥맛’으로 돌아온다. 성찬은 차를 끌고 다니며 야채장수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신문사 기자인 진수를 만나게 된다. 넉살 좋게 ‘진수성찬’ 같은 커플이 어딨겠냐며 너스레를 떤다. 한편, 일본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는 역할을 맡게 된 진수는, 무언가 가장 한국적인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데이트를 미끼로 성찬을 꼬신다. 과연 성찬이 이 때 준비한 것은 무엇일까?

만화에서라면 아마 전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주제들에 이르기까지 만화적 상상력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허영만 선생이 후기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기존에 일본에서 나온 만화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캐릭터의 창조에 고심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등장하게 된 주인공이 바로 차로 야채를 파는 성찬이다. 성찬은 우리네 식재료와 식생활에 그 누구보다도 장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등장하게 되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성찬은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형성해 나가게 된다. 우리가 본 영화 <식객>에 나오는 “대령숙수” 에피소드는 만화 <식객>의 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시간적 제약이 영화보다는 덜한 드라마에서 소개된 에피소드들이 더 많을 것 같다. 드라마는 보질 못했으니 패스하도록 하자.

오늘도 만화적 상상력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계실 허영만 선생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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