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1 - 맛의 시작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영만 화백의 <식객>을 마침내 원전 그대로 접하게 됐다. 아마 <식객>처럼 원소스 멀티유즈(one-source multi-use)의 전형적인 예도 없을 것 같다. 이웃 일본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경향이지만,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식객>이 원조가 아닐까 싶다. 만화에서 출발을 해서, 영화 그리고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더 대단한 것은 만화-영화 그리고 드라마 모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의 경우가 그렇듯이 원전의 탄탄한 구성과 성공적인 캐릭터의 창조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한 허영만 선생의 치밀한 사전조사가 뒷받침이 되어서일 것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로 허영만 선생은 “쌀”이라는 소재를 골랐다. 굳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우리의 식생활에서 쌀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근대화 이전 우리나라는 농업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였다. 그리고 쌀은 우리의 주식으로 우리네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물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미국으로 입양된 제임스는 어려서 씹어 먹던 쌀맛 하나만을 가지고 자신의 부모를 찾아 나선다.

이 이야기는 기묘한 공명을 울리고 있다. 우리의 뿌리를 찾는 시발점은 바로 쌀이라는 거다. 그리고 허영만 선생이 만들어낸 ‘성수’라는 전국방방 곡곡에 발품을 팔아 가며 우리네 농산물들을 차로 공급하는 청년이 등장한다. 그의 도움으로 결국 자신이 그 맛의 기억을 잃지 않고 있던 순천의 해룡면에서 꿈에도 잊지 못하던 ‘올게쌀’을 찾게 되는 제임스. 에피소드의 처음에 등장하는 <우리쌀 지키기 백일 운동>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허영만 선생의 설명이 진중하게 느껴졌다.

다음은 명절을 맞이하야 고향집을 찾은 성찬이 이웃집 할머니에게 생선을 건네주고, 어릴 적 얻어먹던 고추장 굴비를 답례로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멘트로 지어진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에 누가 사는지 그리고 이사를 가는지 마는지 전혀 교류와 소통이 없이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네 삶의 모습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긴 여운이 남는 에피소드.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가을 전어 맛을 소재로 한 3탄, 가을 전어 맛은 깨가 서말에서는 한강 인도교에 올라가 투신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남자를 성찬이 텔레비전 중계로 보다 말고 직접 전어와 번개탄 숯불로 구출해내는 모험담이다. 조금은 황당한 구성이긴 했지만 그만큼 가을 전어 맛이 일품이라는 말이겠지? 전어(錢魚)는 말 그래도 먹다가 보면 돈 생각을 못하게 돼서 전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던가.

<36-2-0-60>은 약간의 수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편에서는 곰탕이 주인공인데, 장맛은 뚝배기라고 하듯이 음식이건 사람이건 어울림이 있어야 한다고 허영만 선생은 말하고 있다. 그야말로 청바지 입고 갓을 쓸 순 없잖은가. 레스토랑과 같은 화려한 식당이 곰탕집으로 어울리겠는가? 장터 같이 시끌벅적함이 곰탕과 같이 보통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에는 제격인 것이다. 게다가 수십 년간 만드는 방법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말이다. 무슨 일이든,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답이 있는 것이다.

1편의 마지막은 다시 ‘밥맛’으로 돌아온다. 성찬은 차를 끌고 다니며 야채장수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신문사 기자인 진수를 만나게 된다. 넉살 좋게 ‘진수성찬’ 같은 커플이 어딨겠냐며 너스레를 떤다. 한편, 일본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는 역할을 맡게 된 진수는, 무언가 가장 한국적인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데이트를 미끼로 성찬을 꼬신다. 과연 성찬이 이 때 준비한 것은 무엇일까?

만화에서라면 아마 전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주제들에 이르기까지 만화적 상상력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허영만 선생이 후기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기존에 일본에서 나온 만화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캐릭터의 창조에 고심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등장하게 된 주인공이 바로 차로 야채를 파는 성찬이다. 성찬은 우리네 식재료와 식생활에 그 누구보다도 장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등장하게 되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성찬은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형성해 나가게 된다. 우리가 본 영화 <식객>에 나오는 “대령숙수” 에피소드는 만화 <식객>의 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시간적 제약이 영화보다는 덜한 드라마에서 소개된 에피소드들이 더 많을 것 같다. 드라마는 보질 못했으니 패스하도록 하자.

오늘도 만화적 상상력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계실 허영만 선생에게 응원을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