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찬 여행기
류어 지음, 김시준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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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나라 말기는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침탈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을 위시해서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서구 열강들이 중국에서 경제적 이권을 챙기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제국주의의 선봉 영국은 아편무역을 위해, 가장 부당한 전쟁 중의 하나였던 아편전쟁을 통해 결국 중국을 강제로 개방하고 연안무역권을 따내고, 지금의 홍콩을 할양받았다. 중국은 이러한 외환에 겹쳐, 태평천국의 난과 내부적으로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로 설상가상으로 전대미문의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류어의 <라오찬 여행기>는 바로 이런 시기의 중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당시의 사회를 비판한 소위 견책소설(譴責小說)의 백미라고 할 수가 있겠다.

주인공 톄잉(鐵英)은 지은이 류어(劉鶚)의 페르소나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고 과거의 길에 들어서려고 했지만, 입신하지 못하고 대신 우연한 기회에 중앙의 관리들을 도와 황하의 치수를 도우며 비로소 이름을 날리게 된다. 류어는 철저한 보수주의자로, 의화단 운동 같은 보수운동에도 반대를 하고, 혁명가 쑨원이 이끌던 혁명운동과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라오찬 여행기>는 류어의 유일한 소설로 알려져 있는데, 소설에서 요령을 흔들면서 인민을 구제하고 불의를 보면 못 참고 항상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도우려는 모습에 자신을 투영시키고 있었다.

소설의 가장 첫 이야기인 <풍랑에 휩쓸리는 거선> 편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류어는 자신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서구의 제국주의의 침탈이 횡행하는 망망대해에서, 시류의 휩쓸려 있는 거선은 바로 청제국이다. 뜻있는 청나라의 대신들이 양무운동과 무술개혁 등을 통해 쓰러져 가는 제국을 일으켜 보려는 노력을 했으나 그들만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틀 안에서 무언가 시도해보려는 지은이의 모습이 비춰진다. 거선에 탄 승객들은 바로 중국의 보통 사람들이다. 밖으로는 외세의 침탈에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부패한 관리들의 압정(壓政)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모습이 류어식 비유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바로 혹리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백성들을 가차 없이 수탈하는 파렴치한 관리는 아니지만, 비록 개인적으로는 청렴하지만 어떤 사건의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오로지 실적만을 위해 무고한 백성들을 못살게 군다. 위센이라는 혹리는 멀쩡한 백성들을 도적으로 몰아, 형틀에 매어 달아 가혹한 고문으로 하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게 하는 방법으로 주위에 악명을 떨친다. 라오찬은 이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9장에 등장하는 <산골처녀와의 고담준론>에서는 위구라는 묘령의 처녀를 등장시켜, 송나라 때에 등장해서 중국 유학의 판세를 뒤바꾸어 놓은 성리학에 대한 작가의 비판을 은근하게 전개해 나간다. 가령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이라면 좋아하는 색(色)을 가까이 하는 것을 사문난적시하는 성리학적 접근은 옳지 않다고 이 산골처녀의 입을 빌려 강력하게 주장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당시 왕조적 봉건제 하의 질서에 대한 부정이라고도 할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참설 같은 미신에 근거한 미래에 대한 어설픈 예측은 과학적 사고에 입각한 저자의 자각이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반증처럼 보였다.

다시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황하 주변에서 벌어지는 치수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 류어는 유사 이래 중국에서 치수사업이 얼마나 중요했는가에 대해 자세한 기술을 하고 있다. 민중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리들의 임의적인 제방 쌓기로 인해, 수해시기를 맞아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수해로 죽고, 재산의 손실을 당했는지 류어는 라오찬과 다른 이들의 진술을 빌어 말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한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민중들에게 엄청난 재난이 된다면 고려를 해봐야할 것이라는 사실은 현재의 위정자들도 깊이 새겨 들어야할 것 같다.

류어의 <라오찬 여행기>가 오로지 사회비판에만 치중을 했다면, 중국 현대문학의 사조로 손꼽히는 후스(胡適)이 이 소설을 두고 그렇게까지 극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여행기”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 소설에서 라오찬이 주로 유람을 다닌 산동지방의 절경들에 대한 묘사는 가히 탁월했다. 특히, <속 라오찬 여행기>에 등장하게 되는 태산 참배기에서는 마치 묘사가 마치 두 눈으로 직접 보는 듯하다는 느낌이 정도로 자세하면서도 생생한 기술로 독자들을 매혹시키고 있었다.

통쾌한 사회비판과 절묘한 묘사 그리고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명징한 전개로 <라오찬 여행기>를 통해 지은이 류어는 그야말로 ‘백조의 노래’ 같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시대를 앞서 내다보는 혜안의 부족 탓인지 보수적이다 못해 수구적인 경향들이 조금씩 엿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이런 뛰어난 작품을 발표했다는 사실은 역시 높이 평가할만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과거에서 배운다’라는 명제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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